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52화 (252/1,307)

# 252

이리냐는 속상했다. 모처럼 치장하고 기다렸다. 보여주진 않았지만 분위기를 띄워줄 음식과 술도 준비시켰다.

내일 출국해야 하기에 오늘 기필코 역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훌쩍 나가 버렸으니 맥이 풀린 것이다.

같은 순간, 지르코프는 현수에 대한 재정립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선 낮을 지배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위기로부터 구한 영웅이다. 따라서 가에탄 카구지와 유사한 관계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된다.

이곳에서도 실세와 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잘만 연결되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흐으음……!”

지르코프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현수와의 인연을 더욱 깊게 할 것인지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자신은 레드 마피아의 핵심인 5인 위원회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메드베데프가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 *

“장관님, 김현수 사장님 오셨습니다.”

“아! 그런가. 안으로 모시게.”

“네.”

비서와 가에탄 카구지의 대화를 들은 현수는 들고 있던 파일을 슬쩍 바라보았다. 결계까지 치고 들어가 3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성한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고마워요.”

늘씬하게 빠진 여비서에게 슬쩍 고개를 숙인 현수가 장관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하하! 어서 오시게.”

“네,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가에탄 카구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안엔 다른 사람들도 있다.

툭, 툭―!

예상대로 가볍게 포옹하고 등을 두드린다. 전에 없던 환대이다. 왜 이러나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자자, 인사하게. 이쪽은 농업부 연구계획 국장이네.”

“아, 네에. 안녕하십니까? 김현수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농업부에 재직 중인 루이스 뭇시마(Louis Imuine Mutshima)입니다.”

“이쪽은 농촌개발부 농촌개발국장이네.”

“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나는 나딘 이송고(Nadine Monlala Isongo)입니다.”

“여긴 농업부 농촌지역개발 장관 비서 펜스틴 아잘롱(Penstin Moduba Azalone)이네.”

“네에,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저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자, 인사가 끝났으면 자리에 앉지.”

“네, 장관님!”

실세의 말 한마디에 모두 착석했다.

이들은 방금 전 장관과 현수의 포옹을 보았다. 장관이 현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수의 면면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아무튼 장관은 상석에, 현수는 그의 오른쪽에, 나머지 셋은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서류는 다 준비되었는가?”

“네. 여기 있습니다.”

현수가 파일을 내밀자 잠시 뒤적인다.

“혹시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현수는 준비해 온 것들을 꺼내서 연결했다. 그리곤 스크린의 곁에 마련된 단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실내등을 꺼준다.

곧이어 현수가 준비한 PPT가 화면에 떠올랐다.

“먼저 간략히 전체의 윤곽을 알려 드리고 나서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콩고민주공화국에 와서 느낀 바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것은…….”

현수의 설명이 시작되자 넷, 아니, 비서까지 다섯의 시선이 쏠렸다.

현수는 유창한 콩고어로 설명을 시작했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10% 정도만 구사 가능하다. 현수가 콩고어로 설명을 시작한 이유는 보다 친근함을 주기 위함이다.

처음엔 너무도 유창한 콩고어에 눈을 크게 뜬다. 마치 내국인인 듯 느껴질 정도였던 때문이다.

현수의 설명은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다양한 도표와 설명이 부가된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농촌개발부 나딘 이송고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자신을 대신하여 정글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로 바꿔준다니 왜 안 좋겠는가!

곧이어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수는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신중한 대답을 했다.

“흐음! 그럼 그렇게 해서 김현수 사장님이 얻는 수익률은 얼마나 됩니까?”

“그것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수는 다시 단상으로 가서 나머지 설명을 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은 불과 5%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초기 투입자금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회수를 감안하니 수익률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콩고민주공화국 내의 다른 외국인 사업장과 달리 근로자에게 적합한 보수와 합당한 대우를 하는 까닭이다.

또한 생산된 곡물 등의 운반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마타디 항까지의 직선거리가 1,600㎞이다. 정글을 뚫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서 간다면 2,000㎞가 넘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운송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아무튼 이를 본 가에탄 카구지가 묻는다.

“흐음, 수익률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현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농토가 넓어질수록 수익률은 올라갑니다. 제가 제안 드린 330㎢일 때의 수익률은 5%지만 두 배로 넓어지면 약 8%로 상승됩니다. 세 배가 되면 10% 남짓의 이윤이 발생됩니다.”

“그래요?”

“대신 초기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해지죠.”

“흐으음, 그건 그렇겠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농촌개발부 나딘 이송고가 물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경을 고쳐 쓴 이송고가 서류에 시선을 둔 채 묻는다.

“초기 자금이 상당히 막대합니다. 이에 대한 회수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요?”

“현재로선 약 60년이 추산됩니다.”

“흐으음, 60년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긴 세월이다. 그렇기에 이송고가 말끝을 흐릴 때 현수가 덧붙였다.

“불하면적이 넓어질수록 초기자금 회수 기간이 길어집니다. 계산을 해보니 두 배가 될 경우 약 85년이 걸리고, 세 배일 때는 100년 가까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 농장의 수익률이 아까 말씀하셨던 5∼10%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근로자들에 대한 대우를 낮추면 보다 빨라지겠지만 저는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그쪽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 정부에 대한 반감이 확연하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현수 사장님은 외국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콩고민주공화국의 입장을 고려하시는지요?”

이번에 물은 이는 농업부 농촌지역개발 장관 비서 펜스틴 아잘롱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메모를 한 50대 후반의 사내이다.

“먼저, 저는 단순한 외국인이 아닙니다. 내무장관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시어 콩고민주공화국의 영주권 및 시민권을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내국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세 사람의 시선이 장관에게 향하자 가에탄 카구지가 뭐 자랑스런 일을 한 것처럼 웃음 짓는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장관님 덕분에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두 계급이나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장관님께 신세를 지게 된 거지요.”

“그래서요?”

“장관님께 신세진 것에 대한 보답이 바로 이 지역에 농지를 개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짝, 짝, 짝―!

다섯의 손뼉이 쳐지는 순간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예감이 든 때문이다.

현수는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들 것을 충분히 감안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까지 개간과 벌목 장비 등을 가져다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개설될 농지까지는 도로가 없다.

따라서 현재로선 울창한 정글을 뚫고 수천 대에 이르는 각종 장비를 가져다 놓는 유일한 방법이 헬리콥터를 동원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겠는가!

그리고 엄청난 넓이의 정글을 개간해야 한다.

수천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밤낮으로 작업해도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농지의 입지는 반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언제 공격받을지 모르므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을 배치할 수는 없다. 곧바로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계 및 호위에 드는 비용도 엄청나다.

이밖에도 농지에서 일을 하게 될 인부들에게 주택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농산물을 가공할 공장도 필요하다.

또한 농지가 유지되도록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0% 되는 마진을 보장했음에도 총 이윤이 불과 5% 남짓이었던 것이다. 물론 초기비용 균등 회수 개념이 도입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수의 복안은 이렇다.

첫째, 개간 및 벌목 장비 중 일부는 진짜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이송한다. 나머지 전부는 아공간에 담아 텔레포트로 한 번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둘째, 멀티 윈드 커터 마법으로 벌목작업의 상당량을 해결할 생각이다.

당분간 혼자 있으면서 마법 수련을 할 계획인 것이다.

셋째, 벌목 작업에서 쏟아져 나오는 나뭇잎사귀 등 부산물은 타임 패스트 마법으로 부패시켜 황무지에 뿌려놓을 것이다.

쓰레기도 청소하고, 질 좋은 유기비료를 얻는 일이다.

넷째, 벌목 작업으로 얻은 목재 역시 타임 패스트 마법을 걸어 적당히 건조시켜 이를 주택 건설의 재료로 활용한다.

다섯째, 농지 인근에 대한 방비는 정글 속 맹수들을 이용할 것이다. 맹수들에게 접근하여 복종 마법을 걸어두면 될 것이다.

여섯째, 농지에서 생산된 산물 중 정부에 팔아야 하는 것 이외엔 아공간을 이용해 옮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용 중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계산해 보니 약 15% 정도가 남는다. 면적이 두 배로 늘면 35%가 이익이 되고, 세 배일 경우 50% 가까이 남는다.

그리고 면적이 늘면 늘수록 더 많은 이익이 남는다.

어쨌거나 가에탄 카구지와 세 명의 공무원은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늦은 밤까지 설명해 주어 고맙네.”

“무슨 말씀을…….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하! 그런가? 내가 이래서 우리 김현수 사장을 좋아하네. 자네들도 많이 도와주게.”

보아하니 세 명이 이번 일의 주무관인 듯하다.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기도 힘들 정도로 고위관료들을 만났는데 어찌 그냥 가겠는가!

현수의 입술이 달싹였다.

“마나여, 내게 지극한 호감을 갖도록 하라. 어펜시브 참!”

샤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네 명에게 스며들자 눈빛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특히 마법에 중첩 노출된 가에탄 카구지의 눈빛은 아예 사랑하는 형제를 대하는 듯 바뀌었다.

2장 이실리프 농산의 시작

“어쩌면 내일, 대통령님 앞에서 다시 한 번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지 모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게. 최대한 협조하여 자네를 돕겠네.”

“감사합니다. 장관님!”

“오늘의 만남, 참으로 감명 깊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김 사장님을 돕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훌륭한 우리 콩고민주공화국의 국민입니다. 김 사장님은!”

“하하, 네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언제든 제가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셋은 앞다퉈 현수에게 명함을 건넸다. 마법이 아니더라도 이랬을 것이다. 그만큼 현수의 사업계획에 매료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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