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58화 (258/1,307)

# 258

“네, 그러세요.”

전화를 끊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두 시간쯤 남았으니 맥주 한잔해야지?”

“그럼요. 축배를 들어야죠.”

잠시 후 마투바까지 낀 셋만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스터 킴! 장가 안 가? 나 어때?”

“뭐어……?”

현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투바가 말을 잇는다.

“애 많이 낳아줄 수 있는데. 나랑 결혼해.”

“끄응! 마투바, 벌써 취한 거야?”

“취했냐고? 아니, 나 하나도 안 취했어. 아무튼 나 미스터 킴에게 관심있어. 그러니 우리 연애하자.”

“차장님! 얘한테 대체 뭘 가르쳐 주신 거예요?”

“아, 아냐! 내가 가르쳐 준 게 아냐. 한국 드라마 때문이야.”

둘이 뭐라 하든 마투바의 말이 이어진다.

“나 출생의 비밀 좋아해. 몰래 애 낳아줄게. 나중에 우리 애가 찾아가면 후계자로 받아줘. 알았지?”

“끄으응……!”

이 차장이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침음을 낸다.

“차장님, 얘 앞으로 드라마 못 보게 하세요.”

“에구, 그래, 그래! 나도 요즘 쟤 땜에 미친다. 하도 헛소리를 해싸서.”

마투바는 초저녁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드라마가 너무 슬퍼서 한잔 안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사장과 현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을 뿐이다.

내일부터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본다고 한다.

둘은 차라리 다행이라며 웃었다. 적어도 눈물 콧물을 쏙 빼는 드라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게 될 것이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화장실의 휴지를 감추기도 할 것이다. 현수로선 곤혹스런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곤 파티쉐가 되겠다며 오븐을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천지약품에 관한 이야길 했다.

이 지사장은 에티오피아의 대통령으로부터 아디스아바바에 지사를 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니 술이 확 깨는 모양이다.

의자를 바싹 당겨 앉은 이 지사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하여 들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자네 생각은 어때?”

“나야……! 당연히 생각이 있지.”

“근데 누가 거길 가죠?”

“여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내가 가면 되지.”

“새로운 곳에서 터 닦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요?”

“그런가? 흐음, 그럼 어쩌지? 하기만 하면 꽤 짭짤할

텐데.”

“돈을 더 벌고 싶은 거예요?”

“돈? 그럼 더 벌어야지. 근데 그보다는 지나인들의 횡포를 막고 싶다는 게 더 강해.”

“지나인이요?”

“여기 킨샤사만 해도 동양인의 대부분은 지나인이야. 콩고민주공화국의 지하자원들을 쓸어가기 위해 온 놈들과 그 떨거지들이지.”

“그래요?”

“그리고 여기서의 공사는 대부분 지나인들이 해. 아마 자네가 없었으면 그 공사도 지나인들이 맡았을 거야.”

“으음!”

“그리곤 여기의 지하자원들을 싹쓸이하는 중이지.”

“……!”

현수는 문득 이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약 50억 달러에 이르는 인프라를 제공받는 대신 지나인들에게 상당한 채굴권과 공사를 주었다.

2,185㎞에 이르는 기존 철로 개보수 공사와 1,015㎞짜리 신규 철로 공사, 그리고 총연장 3,400㎞에 이르는 도로 포장 공사가 그것이다.

이밖에도 병원 31개 및 보건센터 145개를 건설했으며, 대학교 두 개도 건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킨샤사 도로 정비, 에너지 및 수도망 정비 사업도 지나인들이 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영국과 일본, 남아공과 호주, 이스라엘과 콩고의 기업들도 진출되어 있다.

이들은 주로 광산 개발과 댐 건설을 맡고 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지나인들이다.

“지나놈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삼합회까지 진출한 거야.”

“그렇군요.”

현수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수주한 도로 건설 공사는 계획에 없던 것이다. 대신 추진 중이던 다른 노선들이 취소되거나 축소된다.

그런데 대부분 지나건축공정총공사에서 수주하기로 되어 있던 것들이다. 놈들의 입장에선 다 된 밥이 엎어진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기에 이번 기회에 천지그룹 계열사들이 진출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아디스아바바에 누군가를 보내야 하잖아. 안 그래?”

“네, 그런데 마땅한 사람이 없네요.”

현수는 민주영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를 아디스아바바로 보내면 이은정 실장이 눈물짓게 된다.

또한 본사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게 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하지 않았던 것이다.

‘참, 고강철 씨는 어떨까?’

교도소에서 나온 지 꽤 되었으니 뭔가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고통을 당했으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환경도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언어이다. 암하라어와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지만 고강철은 이것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가 아니다.

문득 정승준이 떠올랐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전문대학을 졸업했다. 그 정도면 암하라어는 못하겠지만 영어는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알아보라고 해야겠군.’

현수는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길 바랐다.

“이제, 아침 9시쯤 되었을 테니 전화 한번 해볼까?”

“네.”

이 지사장은 천지건설 해외영업부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네에, 천지건설 주식회사 해외영업부 윤인식 대리입

니다.”

“여긴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킨샤사 지사요.”

“네? 어디시라고요?”

“킨샤사 지사장 이춘만 차장이요.”

“아! 네에, 이 차장님! 안녕하십니까?”

현재 잉가댐 공사는 천지건설이 수행하는 공사 가운데 가장 큰 공사이다. 그렇기에 얼른 반색하는 기색이다.

“나는 잘 지내네. 최 부장님 출근하셨으면 바꿔주겠소?”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윤인식 대리는 얼른 최 부장의 방으로 갔다.

조금 전 박준태 전무가 최 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현재 안의 상황이 어떤지 감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인터콤으로 연결해 주는 것보다는 말로 전하는 편이 좋다.

이것은 실세라면 실세인 전무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똑, 똑!

“부장님! 윤인식 대리입니다.”

“윤 대리……? 으음,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박 전무와 최 부장의 시선이 쏠린다. 윤 대리는 얼른 박 전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윤인식 대리입니다.”

“그래요. 요즘 수고가 많네요.”

“네에.”

윤 대리는 또 한 번 고개를 조아리곤 최 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데?”

“부장님, 킨샤사 지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있습니다. 연결해 드릴까요?”

“킨샤사의 이춘만 지사장이……?”

“네. 부장님과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밥 먹을 때 전화를 해서 제대로 통화를 못한 상황이다. 하여 최 부장은 전화를 받으려다 박 전무를 보았다.

이 지사장보다는 박 전무와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 하여 마음을 굳혔다.

“그래, 급한 용무라 하던가?”

“아닙니다. 그런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 건다고 하게.”

“네, 알겠습니다.”

윤 대리가 나가자 최 부장은 박 전무에게 시선을 돌린다.

“죄송합니다. 근데 이번 주 일요일엔 필드 나가는 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박 전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웬만한 프로 못지않은 최 부장으로부터 골프 레슨을 받기 위함이다.

다음 주에 동창들과 라운딩이 예약되어 있는데 거기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함이다.

“안 되는가? 일요일인데?”

“전무님, 그날 사장님이 해외영업부로 오신다고 해서요.”

“사장님이? 그 양반이 왜……? 요즘 해외영업부 잘 나가고 있잖은가?”

박 전무의 말처럼 잉가댐 공사 수주 이후 해외영업부로 내려오던 압력은 싹 사라졌다.

그렇기에 박 전무의 시선을 받은 최 부장은 몹시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브라질에서 계획 중인 사업이 원만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시는 모양입니다.”

“브라질……?”

“네, 그쪽에 신도시 개발 계획이 있는데 경쟁 상대들이 워낙 막강해서 수주 확률이 조금 떨어집니다.”

“그래, 그 건에 대해선 언젠가 들은 적이 있군. 근데 상대가 누구기에 그렇게 겁을 먹어?”

박준태 전무는 요즘 국내 아파트 건설공사에 전념하고 있다.

짓기는 다 지어가는데 분양이 안 되어 자금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해외영업 쪽엔 관심이 적다.

얼마 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공사를 수주하여 성대한 파티까지 열었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

이렇듯 국내부보다 해외영업부는 잘 나간다. 그렇기에 웬 엄살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

“프랑스의 Vinci, 독일의 Hochtief, 지나의 건축공정총공사, 스페인의 ACS 그룹, 미국의 Bechtel, 호주의 Leighton Holdings 등이 경쟁 상대예요.”

“정말……? 끄응! 모두 쟁쟁한 건설사군.”

“네, 전 세계 건설사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들입니다.”

이들을 대형 할인마트에 비교하면 천지건설은 동네 슈퍼마켓 정도도 못된다. 그렇기에 결코 쉽지 않은 경쟁이다.

하지만 신형섭 사장은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그러면서 반드시 수주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해외영업부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서프라이즈 파티는 상대가 모를수록 좋다.

그렇기에 이번 주 일요일에 해외영업부를 방문하여 진행 상황을 브리핑 받겠다고 했던 것이다.

“흐으음, 그들이 하겠다고 달려들면 우리로선 어려움이 많겠군. 최 부장 부쩍 늙겠군.”

“네에, 정말 매일매일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에구, 알았네, 알았어! 골프 가르쳐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 일에 전념하게. 그나저나 왜 하필이면 일요일이야? 신 사장 그 양반 직원들 골탕 먹이기로 마음먹었나?”

“제 말이…….”

“토요일엔 직원들도 좀 쉬게 해줘야지. 안 그래?”

“감사합니다. 전무님!”

최 부장은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부장님, 저 윤 대리입니다.”

“그래, 들어와!”

문이 열리고 윤인식 대리가 또 들어선다.

“왜……? 뭐, 또 보고할 거 있어?”

“아닙니다. 킨샤사 지부의 지사장님이 공사 건으로 부장님과 꼭 통화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뭐야? 나중에 건다고 했잖아. 근데 그걸 꼭 지금 말해야 한대? 전무님과 함께 있다는 말 안 했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니면 통화하기 어렵다고 하시면서 꼭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윤 대리는 괜히 상사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듯한 느낌이다. 하여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지만 고개를 숙였다.

월급에 목을 맨 직장인의 비애이다!

“웬만하면 그 전화 받게. 나는 이 커피나 마시고 갈 테니.”

“네에, 죄송합니다. 전무님!”

박 전무에게서 시선을 돌린 최 부장이 한마디 한다.

“알았으니까 가서 전화나 돌려.”

“네, 부장님!”

윤 대리가 공손히 문을 닫고 나섰다.

최 부장은 대체 무슨 용무로 전화를 걸었는지 박 전무도 들어보라는 뜻에서 스피커폰을 선택했다.

“여보세요. 최영섭 부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킨샤사 지부의 이춘만 차장입니다.”

“아, 그래요! 요즘 수고가 많죠?”

최 부장은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밝은 음성이다. 물론 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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