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네, 부장님 염려 덕분에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근데 무슨 일 있습니까? 아까도 전화하고 지금도 그러고. 뭐 급한 일이라도 터졌어요?”
“네, 급한 일이라면 급한 일이지요.”
“공사 관련이라면 우리 손 떠난 거 아닙니까? 토목부나 건축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그런 성격의 일이 아니라서……. 아무튼 우리 해외영업부가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졌기에 그럽니까?”
무슨 일로 이러는지 몰라도 시원치 않은 일이라면 한바탕 야단 칠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최 부장이다.
“부장님도 김현수 과장 아시지요?”
“그럼, 잉가댐 공사를 수주한 우리 해외영업부의 영웅이죠. 근데 그 친구한테 무슨 일 생긴 겁니까?”
김현수 과장은 신형섭 사장이 특별히 주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안다. 만일 그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신 사장은 당장 비행기를 탈 것이다.
그렇기에 최 부장은 약간 긴장했다. 부하직원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무가 실세이긴 하나 신 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이다.
다시 말해 인사권자이다. 따라서 사장의 눈 밖에 나면 좋을 일 없는 것이다.
“네, 그 친구가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뭐요? 교통사고라도 난 겁니까? 아님, 누굴 때렸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춘만 지사장은 부러 말끝을 흐렸다.
“그럼 뭡니까? 김 과장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겁니까? 설마 살인이라도 한 거예요?”
“에이, 무슨 말씀을……! 김 과장이 그럴 리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뭔데 그래요? 응? 어서 말해 봐요.”
“네, 부장님! 김 과장이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로부터 도로 개설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도로 공사……? 무슨 도로 공사?”
최 부장은 도로 공사라니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지사장의 보고는 이어졌다.
“네, 킨샤사로부터 오자이르 지역 비날리아 인근까지 4차선 도로를 신설하는 공사입니다.”
“오자이르……? 비날리아……?”
해외영업부장이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의 지리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눈으로 벽에 붙은 세계 전도를 보았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네, 현재의 예상으론 총 연장 2,000㎞짜리 고속도로 신설공사입니다.”
“뭐, 뭐어? 이, 이천 킬로미터요……?”
최 부장 역시 고속도로 신설 공사에 드는 공사비 정도는 꿰고 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다.
“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조 원짜리 공사입니다.”
“사, 사십조 원……!”
“김현수 과장의 활약 덕분에 이번엔 MOU 체결 없이 바로 본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본 계약이라고요?”
최영섭 부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여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느낌이 되었다.
“네, 대통령 및 내무장관, 그리고 건설부 장관과 국회의장 등이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니 조만간 계약을 해야 합니다.”
“그, 그래서요?”
“저희야 공사비 산정을 할 능력이 안 되니 본사에서 견적을 낼 인원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아울러 계약에 필요한 계약서 작성도 해주셔야 하고요.”
“아, 알았어요. 고, 곧바로 보, 보내줄게요.”
“네, 그럼 저희는 부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참, 시일이 길어지면 지나의 건축공정총공사가 일을 채갈 수 있으니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그, 그래요! 아, 알았어요.”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던 최 부장은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5장 보너스는 몇%나 줄까?
한편, 곁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박준태 전무의 입은 딱 벌어져 있었다.
40조 원짜리 공사!
2011년 현재 건설사 도급순위 1위는 현대건설이다. 그리고 이 회사의 토건시평액은 10조 2,209억 원이다.
천지건설은 잉가댐 건설공사를 수주함으로써 1위를 넘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렇기에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던 곳에서 또 한 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세계 23위 건설사이자 국대 최대 사공사인 현대건설을 단번에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수주된 것이다.
그것도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격차이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은 러시아의 미녀새 이신 바예바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운 5m 5㎝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단번에 20m를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이신 바예바는 절치부심하여 기록을 깨려 노력을 할까 아니면 포기할까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엔 절치부심 아니라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따라서 노력하는 게 낭비가 되어버린다.
아무튼 40조 원짜리 공사는 국내에서 아파트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의 공사이다.
그것도 아프리카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지나 건설사들을 제치고 따낸 공사이다.
외형만 가지고 따지면 천지건설은 이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초대형 건설사가 될 상황이다.
그러니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박 전무는 신 사장과의 파워게임에서 본인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외는 신 사장이, 국내는 본인이 전담하여 양쪽을 키워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렇기에 서로의 영역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잉가댐 공사를 수주하여 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공사마저 확실해지면 완패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패배가 아니다. 축구 경기를 예로 들자면 1,000 대 0으로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차기 사장을 노리던 박 전무는 잠시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그것은 잠시였다.
이번 공사가 수주되면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가 수직 상승한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 세상에……! 하하! 하하하하!”
짝, 짝, 짝, 짝!
“하하! 하하하하……!”
박 전무는 박수까지 치면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너무도 통쾌한 패배였기에 승자를 위한 아낌없는 박수를 친 것이다.
이때 최 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 이보게 이 차장!”
“네, 부장님.”
“자네 말대로 최대한 빨리 팀을 꾸려서 보내겠네. 그러니 일이 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하게.”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틀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그, 그런가? 아, 알았네. 수고했네, 나, 나는 지금 즉시 그곳으로 출발하겠네.”
“네에, 오십시오. 그럼 이만 끊습니다.”
이춘만 지사장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하하, 하하하!”
“후후후……!”
현수와 이 차장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자네 들었지? 얼음장 같다는 최 부장이 말 더듬는 거.”
이쪽에서도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것이다.
“하하, 네에. 조금 심하게 더듬더군요.”
“지금쯤 해외영업부 또 한 번 난리가 났겠군.”
이 차장의 말대로 해외영업부는 난리가 났다. 만세 삼창이 아니라 만세 만창쯤 하고 있다.
너무도 소란스러워 아래위 층은 물론이고, 그 위와 훨씬 아래층에서도 직원들이 찾아가는 중이다.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업무 진행이 불가능했던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2002년 월드컵 때 안정환이 이탈리아에 골을 넣었을 때 터져 나온 환호성 정도 된다.
잠시 후, 환호성은 천지건설 사옥 전체로 번졌다. 하여 길 가던 행인까지 대체 무슨 일인가 기웃거리게 되었다.
본사 상황을 떠올린 현수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큭큭,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하! 하하하!”
이 지사장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이번엔 보너스를 몇 %나 주나 내기할까요?”
“그럴까? 자넨 얼마를 예상하나?”
이 지사장은 흥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미 회사로부터 받을 보너스 정도로는 양이 안 찰 만큼 돈이 많아진 둘이다.
하지만 거저 생기는 것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흐음, 저번 공사에서 2,000%를 받았으니 이번엔 20,000%쯤 안 주겠습니까?”
“20,000%면 16년 월급쯤 되나?”
“정확히는 16년하고 8개월치입니다.”
“흐음, 액수는 좀 되겠군. 하지만 난 그보다 많이 줄 거라고 예상해. 우리 사장님 통이 크시잖아. 안 그래?”
“그럼 지사장님은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공사 금액이 워낙 어마어마하잖아. 게다가 공사를 따내느라 들어갈 비용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자넨 이번에도 두 계급쯤 특진할 거야. 난 하나 올라가겠지. 그럼 우리 둘 다 부장이 되는 건가? 하하, 축하하네, 김 부장!”
“에구, 김 부장이라니요, 이 부장님!”
“하하, 하하하!”
현수와 이 지사장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물론 기분이 좋아서이다.
“그리고 보너스는요?”
“보너스는 한 30,000%……? 그러니까 25년치 월급쯤 되지.”
“후와∼ 생각만 해도 좋군요.”
“그리고 이번엔 6개월쯤 휴가를 줄 거 같은데?”
“아! 그건 괜찮군요.”
현수는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가가 길어서?”
“아뇨. 지사장님 휴가가 6개월쯤 되면 아디스아바바에 천지약품 지사 설립에 충분한 기간이잖아요.”
“……!”
“지사장님이 터를 닦아 놓으시면 마땅한 사람 하나 제가 추천할게요. 그 사람이라면 농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할 겁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거든요.”
“그래? 그럼 그러지. 그나저나 이제부터 파티 하는 거지?”
“아뇨. 이제 좀 주무세요. 내일 해야 할 일이 있으시잖아요.”
“끄응! 그래. 내일 마타디 항에서 화물 가져와야 해.”
“그건 제가 할 테니 일단 좀 주무세요.”
“정말……? 정말 그래주겠나? 내일 소매약품 주인들하고 정기 미팅도 있어서 조금 바쁘거든.”
“네에, 걱정 마시고 이제 주무세요, 뒷정리는 제가 할 테니.”
“고맙네. 자네 덕에 여기까지 온 거 같아. 만년 과장이었던 내가 차장으로 진급도 하고……. 내 은혜를 잊지 않겠네.”
“에이, 객쩍은 소리 그만하시고 어서 주무세요.”
“그래, 그래. 자네만 믿겠네.”
이 지사장이 자리를 뜨자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최 부장이 말 더듬던 상황이 떠오른 때문이다.
‘그나저나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직 시작도 안 한 대규모 사업이 세 건이다.
초대형 재벌들도 엄두조차 못 낼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돈도 돈이지만 별탈없이 일이 진행되려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전폭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로 일을 진행할 사람들이다.
“주영이 녀석, 면접 보다 늙는다는 소리 나오겠군.”
투덜거린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 현수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짹, 짹, 짹!
아침이 밝았다. 현수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텔레포트 마법으로 마타디 항으로 갔다.
그리곤 순조롭게 화물을 인수했다. 이실리프 무역이 보낸 약품들이다. 아공간에 담은 후 곧장 천지약품 하치장으로 갔다.
그러고 보니 천지건설 지사가 있던 인근 지역 중 한 블록 정도를 천지약품이 사용하는 듯하다.
치안 상태가 좋지 못해 높은 담장이 쳐져 있고, 외곽엔 혹시 있을지 모를 경비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물론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다.
현수는 컨테이너들을 꺼내 놓고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때 이 지사장이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