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66화 (266/1,307)

# 266

“오늘 우리 영지에 기쁜 일이 생겼다. 검은 철퇴 기사단의 단장인 라임하르트 남작이 드디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렀다. 하여 초연을 보고자 왔다. 모두들 조용히 하도록!”

“네, 영주님!”

“자자, 자리에 앉지.”

모두가 자리에 앉는 사이 라임하르트는 비장한 표정으로 연병장 중앙에 오연한 자세로 섰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는 애검을 뽑아 들었다.

지이이잉―!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소리가 현수의 귀에는 들린다. 7써클 마스터인 대마법사의 예민한 감각 덕이다.

남작의 검에 푸른빛이 감돌자 기사단 전원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 순간 또 한 번 나지막한 소리가 났다.

물론 현수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지이이이이잉―!

소리와 동시에 검끝으로부터 푸른색 검기가 뿜어진다. 길이는 대략 1.3m이다. 그리고 굵기는 손가락 한 개 반 정도이다.

이것만으로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렀음이 증명된다. 그런데 남작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고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에 현수로부터 배웠던 바로 그 검식이다.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던 기사들의 눈이 왕방울만 해진다. 사방팔방을 베고, 찌르는 남작의 검법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깜박이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후엘 자작 역시 검을 쓰는 검사로서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라임하르트 남작이 현수로부터 검식을 전수받는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이처럼 괄목상대한 진전이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한국식으로 치면 둘레길이가 400m는 족히 넘을 연병장엔 라임하르트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의 존재감은 연병장을 가득 채운 듯하다.

보법까지 가미되면서 그야말로 팔방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던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라임하르트 남작님 만세! 검은 철퇴 기사단 만세!”

“와와와! 율리안 영지 만세!”

라임하르트가 검을 가두는 순간 터져 나온 환호성이다. 이 환성의 주인공인 라임하르트는 영주인 나후엘 자작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 그리곤 곧장 현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 달라는 뜻이다.

현수는 말없이 엄지손가락만 치켜들었다. 검법의 경우는 조금 미흡하긴 하다. 하나 이런 상황에 어찌 초를 치겠는가!

현수의 웃는 얼굴을 대한 라임하르트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편다. 그리곤 공손히 고개 숙여 사의를 표했다.

나후엘 자작은 또 한 번 칼멘이 미워졌다. 하여 곁눈으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끄으응……!”

그러는 사이에 라임하르트는 현수의 앞에 당도했다.

그리곤 기사단 전체를 둘러보았다. 수하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춘 것이다.

“검은 철퇴 기사단의 기사들은 들어라! 나, 라임하르트 헤르멘 남작은 오늘 하인스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았다. 따라서 하인스님을 대할 때 결코 결례하지 말아라.”

“네, 단장님!”

기사들도 현수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잘 안다. 개중엔 현수에 의해 목숨을 구함받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현수가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며 혈로를 뚫던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한다.

사방에서 쇄도하는 오크들 대부분이 현수의 검에 의해 베어졌다. 너무도 긴박한 상황인지라 기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모두 제 앞의 오크들을 상대하기 바빴다.

그렇기에 현수는 후미를 제외한 삼면을 맡았다. 검 한 자루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여 마법을 썼다.

인캐패시테이션(Incapacitation)!

대상자들을 잠시 무력화하는 마법이다.

이것 덕분에 어렵지 않게 오크들을 벨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어찌 한 사람이 오크 3,000을 베겠는가!

소드 마스터도 아니면서 이런 결과를 빚어낸 사람은 역사책을 뒤져 보아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수를 바라보는 시선엔 공경의 뜻이 담겨져 있다.

한편, 현수는 조금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대놓고 상찬을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에구……!’

현수가 몸 둘 바 몰라 하는 순간 자작의 입이 열렸다.

“들어라! 오늘 우리 영지에 기쁜 일이 벌어졌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오늘 밤 연회를 개최한다. 다들 파트너 동반하여 참석토록 하라.”

나후엘 자작은 직속 수하인 라임하르트가 강해졌음을 소문낼 속셈이다.

이는 이웃 영지에 대한 경고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라임하르트로 하여금 자존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수하의 면을 세워줌으로써 덩달아 자신의 명성 또한 널리 알리고픈 마음이 있어서이다.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을 연회이다.

“와와와! 나후엘 영주님 만세! 만세! 와와와와……!”

오늘 밤 신나게 춤추며 술을 마실 생각에 기사들의 환호성이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에 나후엘 자작은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도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게.”

“아, 아닙니다. 저는 영지의 기사도 아니고…….”

“아닙니다. 하인스님! 오늘 제가 얻은 성취는 순전히 하인스님의 조언과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러니 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끄으응……!”

순수한 호의로 청하는 라임하르트를 바라본 현수는 침음을 삼켰다. 수렁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팔에 무엇인가 부드러운 것이 끼워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시아의 팔이다.

“오늘 하인스님의 레이디는 저예요. 아셨죠?”

방긋 웃는다. 어찌 웃는 낯에 침을 뱉겠는가!

“그, 그렇게 하죠.”

“호호! 호호호호!”

엘리시아가 교소를 터뜨린다. 그리곤 잡아당기며 말했다.

“어서 가요. 제 파트너가 되려면 좋은 옷 입으셔야 하니까요. 제가 제일 좋은 걸로 골라 드릴게요.”

현수가 엘리시아에 의해 끌려갈 때 나후엘 자작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때 그의 뇌리로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는 상념이 있다. 하여 황급히 내성의 집무실로 되돌아갔다.

연회가 시작된 것은 해가 질 무렵이다. 현수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감자탕이다. 고기를 듬뿍 넣어 만든 감자탕은 기사들의 속을 든든하게 해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종류의 샐러드와 스테이크 등이 준비되었다. 이것들은 현수의 조언을 얻은 루갈에 의해 만들어졌다.

연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영주성 메인 홀로 가니 벌써 음식이 세팅되어 있다.

홀에는 이백여 명이 웅성거리고 있다. 검은 철퇴 기사단 전원과 영지 내의 귀족들이 파트너와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현수가 들어서자 라임하르트가 다가왔다.

“하인스님! 어서 오십시오.”

“네, 남작님!”

“제 아내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하인스라 합니다.”

“이이에게 가르침을 주시어 고맙습니다.”

남작부인 역시 귀족임에도 현수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쓴다. 아마도 라임하르트가 그렇게 하도록 사전에 교육한 모양이다.

현수는 연회 내내 엘리시아에게 시달렸다. 춤을 추자고 하여 나서면 품을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둘이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곤혹스러웠으나 어쩌겠는가!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이니 강제로 떼어내는 모습을 보이면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엘리시아가 던진 승부수이다. 영지 내의 모든 귀족과 기사들이 보는 가운데 현수 품에 안겨 있다.

누가 봐도 열애하는 사이처럼 보일 것이다. 너무 찰싹 달라붙어 있기에 같이 밤을 보낸 사이로 여겨질 정도이다.

이러고 현수가 훌쩍 떠나 버리면 평생 독수공방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것은 조급한 마음 때문이다.

곧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더 귀하고, 애틋하다는 느낌이 생긴 것이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연회는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음악 소리 역시 덩달아 커진다. 하여 여기저기서 귓속말을 한다. 안 그러면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시아와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온 현수는 잠시 의자에 앉았다. 지금부터는 파트너가 없는 사내들이 레이디들에게 춤 솜씨를 뽐내기 위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곤충들이 짝짓기에 앞서 하는 의식과 비슷한 것이다.

현수는 굳이 레이디의 관심이 필요없기에 자리에 앉아 있지만 곁에 있는 엘리시아는 아니다. 잠시도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나후엘 자작에게는 여섯 아들과 다섯 딸이 있다. 그중 막내가 엘리시아이다. 첫째는 아들인데 엘리시아보다 다섯 살이 많다. 그리고 미혼이다. 둘째도 그렇고 셋째도 그러하다.

눈이 너무 높아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한 때문이다.

아무튼 홀에는 자작의 아들들도 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참석해야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외인이기에 예외된 것이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않다. 모두들 엘리시아의 혼처로 현수가 낙점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빰빠라빰∼! 빰, 빰, 빰빠라 빠아암∼!

장중한 멜로디가 연주되기 시작하자 사내들이 한 손으론 뒷짐을 쥔 채 일제히 다리를 올렸다 내리며 한 발짝씩 나

섰다.

맞은편엔 레이디들이 성장한 채 사내들을 보고 있다.

대부분 귀족가와 기사 가문의 여식들이다.

세 발짝쯤 앞으로 나선 사내들은 음악에 맞춰 두 발짝을 물러났다. 그리곤 턴을 하며 우아한 예를 갖춘다.

음악이 이어지자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일종의 변주곡인 듯 멜로디는 같지만 악기가 달라진다든지 꾸밈음이 붙는다든지 한다.

음이 길게 늘어지면 사내들은 들었던 다리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런데 그게 조금 길어지자 비틀거리는 녀석들이 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이번엔 악공이 제법 길게 음을 끌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녀석 둘이 쓰러졌다.

그리고 하나가 더 쓰러지려 한다.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그 모습이 몹시 우습다. 하여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다.

하지만 현수는 아니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후엘 자작의 차남이다.

엘리시아의 오빠인 루스펠의 안색은 창백하다. 식은땀도 흘리고 있고, 구토를 억지로 참는 듯한 모습이다.

하긴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추한 꼴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콰당탕!

우웩―!

루스펠이 쓰러지면서 구토를 했다. 먹은 게 많아서인지 꺼내놓은 것의 양도 상당히 많았다.

즉시 음악이 멈췄고, 사람들이 물러났다.

우웨웩―!

또 한 번 토해놓고는 힘이 떨어졌는지 고개를 떨군다.

“루스펠―!”

나후엘 자작이 다가가는 사이에 시종들이 달려들어 루스펠을 일으켰다. 여전히 창백한 안색이다.

“어서 루스펠을 안에 데려다 눕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시종들의 반응은 신속했다. 그리고 여태 웃던 사람들의 반응도 바뀌었다.

현수는 엘리시아의 뒤를 따라 루스펠이 누워 있는 방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엔 마법사들이 있었다.

“힐!”

“큐어!”

“힐!”

세 명의 마법사가 연달아 마법을 구현시켰다. 창백했던 루스펠의 안색이 차츰 좋아지는 것이 역력하다.

“어떤가?”

“영주님! 다행이고 공자님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육십은 넘었을 마법사의 말에 나후엘 자작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행이네. 수고들 했어.”

“네, 영주님!”

“그 약은? 약은 만들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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