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68화 (268/1,307)

# 268

“……!”

마치 준비된 사수마냥 완벽한 해결책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자작은 현수를 또 한 번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엘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영지를 급습한 수많은 오크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가히 전장의 신 같은 모습이

었다.

너무도 멋져 오줌을 지릴 뻔하기도 했다. 다음엔 삼십여 마리의 트롤을 단신으로 유인하여 영지의 위기를 구해주었다.

영지의 자랑이었던 검은 철퇴 기사단 전체가 나서도 해결하지 못할 일을 단신으로 처리해 낸 것이다.

다음엔 영지민들이 왜 신의 저주를 받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곤 그것에 대한 해결책까지 내놓았다.

어찌 달리 보이지 않겠는가!

“아아, 하인스님……!”

자작만 없었으면 품을 파고들고 싶다. 무엇을 달라든 다 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우선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수효를 알고 싶습

니다.”

“네? 그건 왜요?”

“귀족은 물론이고, 평민과 농노, 그리고 노예들까지 투약하려면 숫자를 알아야 하니까요.”

“아! 그런데 약이 그렇게 많은가요?”

“다행이 율리안 영지를 구제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

자작과 엘리시아는 또 한 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처소에서 약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동안 환자들의 숫자를 파악해 주십시오. 어린아이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모두 다 헤아려 주셔야 합니다. 전염되니까요.”

“전염이 돼?”

현수는 있지도 않은 말을 했다. 혹여 평민과 농노, 그리고 노예들에겐 투약하지 않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그 일은 제가 하지요.”

전염이라는 말에 놀랐는지 엘리시아가 나섰다. 이에 나후엘 자작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자신의 숙소로 가자 한동안 뒷모습을 보던 나후엘 자작의 입이 열렸다.

“엘리시아야!”

“네, 아버지.”

“꼭 잡아라. 무엇을 대가로 치르든……!”

“네에……?”

엘리시아는 부친의 뜻이 무언지를 깨닫고는 두 볼을 붉혔다. 육탄돌격이라도 하라는 의미로 다가온 때문이다.

한편, 현수는 경구투여로 사용되는 디―페니실라민을 적당량 꺼냈다.

‘흐음, 영지민의 수효가 대략 12,000여 명인데 열 중 셋 정도가 중독된 거 같아. 이 정도면 되겠지.’

3,600명분을 꺼내 놓고 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돈은 따지지 말자. 현실에서든 이곳에서든 환자들이 불쌍하니까.”

커다란 보자기를 꺼내 약을 담고는 내성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던 자작 일가가 반색한다.

“엘리시아 아가씨! 환자들의 수효는 얼마나 되지요?”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의하면 2,988명이에요,”

“그래요? 다행입니다. 이건 3,600명분입니다. 이걸 복용시키십시오. 투약 방법은…….”

현수의 자세한 설명을 엘리시아는 일일이 받아 적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몹시 귀해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캡슐에 담겨 있는 약을 언제 보았겠는가!

현수는 나중에 껍질들을 회수하겠다고 했다. 아르센 대륙을 오염시킬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콩이라는 작물의 씨앗입니다. 이것을 재배하는 방법은…….”

인터넷으로 알아본 재배 방법과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자작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영지가 넓기는 하지만 몬스터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늘 식량이 부족했다.

하여 철광석을 팔거나 검을 만들어서 식량과 바꾸었다. 그런데 상당 부분이 해소될 듯하니 영주로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나후엘 자작은 현수를 따로 불렀다.

“고맙네, 자네 덕에 영지의 위기도 넘겼는데 이 같은 도움을 주어……. 자네가 준 약과 콩이라는 작물의 씨앗 값은 얼마나 치르면 되겠는가?”

현수는 디―페니실라민과 콩을 매입한 가격을 떠올렸다. 너무 적게 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기에 적당히 불렀다.

“200골드를 주십시오.”

1골드당 1백만 원의 가치가 있으니 한국 돈으로 치면 2억 원에 해당된다.

“알겠네. 준비해 주겠네. 그나저나 한 번 더 묻겠네. 우리 영지에 남을 생각은 없나? 엘리시아가 자네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네. 나는 자네를 사위로 인정하겠네. 그러니 남아주게.”

“……!”

귀족이 평민에게 사랑하는 딸을 주겠다고 한다.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내일이라도 엘리시아와 결혼을 하게. 내가 저택도 지어주겠네. 그러니 남아주면 안 되겠는가?”

“……!”

현수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귀족의 뜻을 단번에 거절하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호의로 이런 말씀하시는 건 아는데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다시피 라수스 협곡은 위험합니다. 엘리시아 아가씨를 두고 그곳에 갔다가 목숨을 잃을 수 있지요. 그러니 말씀 거둬주십시오.”

한마디로 엘리시아가 신혼 초에 과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나후엘 자작은 침음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막내딸이 과부되는 꼴을 어찌 보겠는가!

“으으음……!”

“……!”

현수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좋네.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니 며칠 말미를 두고 다시 생각해 보게.”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현수는 얼른 자리를 떴다. 너무 불편했던 때문이다.

‘카이로시아와 로잘린만으로도 버거워. 근데 엘리시아까지……. 아이구,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조선시대 때 궁궐에서 있었던 여인들의 암투는 여러 차례 드라마가 되어 방영되었다.

그것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았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사랑하는 여인들간의 암투를 어찌 지켜볼 수 있겠는가!

착하디 착하던 여인도 사내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표독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런 것은 현수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나마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을 인정한 것은 둘이 친자매처럼 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엘리시아가 가세한다면 분명 파열음이 들릴 것이다.

현수는 숙소로 되돌아와 여장을 꾸렸다. 돈이고 뭐고 그냥 떠날 생각을 한 것이다.

“여기서 며칠을 머무른 거지? 후후, 그 드워프는 지금쯤 골머리를 싸고 있겠지? 나중에라도 한번 와봐야 되겠군.”

현수는 숙소 뒤쪽의 한적한 곳의 좌표를 기록해 두었다.

이젠 어디를 가든 좌표 설정하는 것을 잊지 않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이제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군. 정말 위험하겠지? 후후, 말로만 듣던 드래곤을 곧 보겠군. 그나저나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은 잘 있을까?”

현수는 갑자기 두 여인이 떠오르는데 왠지 마음이 불안함을 느꼈다. 왜 그런가 싶다.

지구에 뭔 일이 있을 때마다 느껴지던 바로 그 불안감이다. 그러고 보니 두 여인을 본 지도 꽤 되었다.

“일단 테세린으로 한번 가볼까? 가보면 알겠지.”

현수는 테세린의 좌표를 확인했다. 그리곤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을 구현시켰다.

“마나여, 나를 테세린으로…….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가 스러지듯 사라졌다.

“흐음, 테세린이 맞군!”

로니안 자작의 영주성이 눈앞에 보인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현수는 즉시 마법을 구현시켰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현수가 신형을 감춘 이유는 영지 마법사 때문이다.

텔레포트하는 바람에 마나의 유동이 있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이상을 느끼고 확인하러 올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라! 왜……?”

그러고 보니 영주성 전체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때 요란한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땡땡땡땡, 땡땡땡땡, 땡땡땡땡!

“뭐야? 이건 대체 뭐지?”

무슨 일인지 싶었던 현수는 즉시 몸을 띄웠다.

“플라이!”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린 현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몬스터들의 대규모 침공이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테세린은 항구도시이다. 그렇기에 산지로부터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대비한 든든한 성벽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깊숙한 해자까지 있다.

하지만 항구로부터는 방어시설이 전무하다.

물속에 사는 생물이 뭍으로 기어오를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여 마리나 되는 엘리터가 육지로 기어오르는 중이다. 악어와 같이 발이 달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갑작스런 엘리터의 상륙에 항구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고 있다.

“꺄아아아악! 엘리터다, 엘리터가 나타났다!”

“아아아악! 모두 도망가! 엘리터야. 엘리터가 나타났어.”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현수는 즉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외성 성곽에 이르니 병사들이 긴장한 채 병기를 움켜쥐고 있다. 테세린에 성이 생긴 이후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약간 높은 곳엔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이 서 있다.

“지금부터 병사들의 지휘는 무적 기사단장이 맡는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추웅!”

로니안 자작의 명이 떨어지자 무적 기사단의 단장 홀리세는 오른 주먹을 왼 가슴에 대며 한쪽 무릎을 굽힌다.

경례를 마친 홀리세는 도열해 있는 기사와 병사들 중 선두에 있는 펠른을 보며 소리쳤다.

“철혈 기사단은 1대부터 3대를 이끌고 즉시 좌측 길로 이동하여 엘리터의 습격을 방어해 주게.”

“알겠습니다.”

펠른이 고개 숙여 복명하자 홀리세가 나머지 병력을 보며 소리쳤다.

“무적 기사단은 4대부터 6대를 이끌고 우측을 사수한다!”

“추웅―!”

예를 갖춘 기사와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 훈련이 있었다는 듯 일사불란했다.

로니안 자작이 통치하는 테세린에는 90명의 기사가 있다.

각기 45명으로 구성된 철혈 기사단과 무적 기사단의 휘하엔 다시 3개 대대병력이 배속되어 있다.

일개 대대의 병력은 300여 명이다. 기사 15명이 병사 20명씩을 지휘하는 시스템이다. 아무튼 6개 대대가 있으니 총원 1,800명의 병사가 있는 것이다.

일개 자작가임에도 상당히 많은 병력을 갖춘 이유는 이곳이 국경지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로니안 자작은 변경백의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엘리터가 상륙한 것이니 현재로선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여 현수는 신형을 뽑아 올려 항구의 상황을 살폈다.

그새 엘리터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이젠 이백여 마리가 된 것이다. 모르고 있다 대경실색한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내성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이곳으로 오기 직전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길 모두 목책으로 둘러져 있다. 하여 무적 기사단과 철혈 기사단이 하나씩 맡은 것이다.

그런데 엘리터 무리의 일부가 다른 쪽으로 향한다.

카이로시아가 머무는 이레나 상단이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레나 상단 테세린 지부는 야트막하긴 하지만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몬스터를 대비한 것이 아니라 도둑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그리 높지도 않고, 든든해 보이지도 않는다.

“흐음, 이래서 불안한 기분이 든 것이군.”

현수는 즉시 이레나 상단 쪽으로 몸을 옮겼다. 사랑하는 카이로시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아악! 사람 살려!”

“엘리터다! 엘리터야! 사람 살려요.”

지니고 있던 소지품들을 팽개치곤 죽기 살기로 달리는 사람들의 뒤로 엘리터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이건만 사람들이 달리는 속도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람도 잡아먹는 코모드 드래곤보다 약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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