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엘리터의 비명이 들리고, 난리가 벌어진다.
10장 해후! 그리고 진한 키스
“아아! 하인스님……!”
어느새 카이로시아의 두 눈에선 굵은 이슬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기도했던 사랑하는 님이다.
그런 님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찌 감동스럽지 않은가!
“야아압!”
현수의 검이 휘둘러지고 엘리터들끼리 잡아먹고, 먹히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차츰 놈들의 숫자가 줄어든다.
한 시간쯤 흘렀을 땐 몇 마리만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다시 이십여 분이 지난 후엔 움직이는 엘리터는 없었다.
백여 마리 이상이 왔으나 다 죽은 것이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주변을 살핀 현수는 더 이상 위험이 없다 판단되어 검을 넣었다.
“아아! 하인스님! 하인스니― 임!”
“로시아!”
멀리서부터 전속력으로 달려든 카이로시아가 현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현수 역시 두 팔 벌려 볼륨감 있는 교구를 힘껏 안아주었다. 현수도 카이로시아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인스님! 여긴 어떻게 알고, 으읍……!”
카이로시아의 말은 끝맺음을 못했다. 현수가 벼락같은 속도로 입을 막은 때문이다.
그 순간 전류에 감전된 듯 카이로시아의 교구가 떨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입술에 의해 본인의 입술이 덮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선 이를 진한 키스라 칭한다. 굳이 세분하여 표현하자면 강렬한 프렌치 키스이다.
그러는 동안 카이로시아의 혼백은 잠시 몸에서 떼어졌다. 너무도 황홀한 경험에 넋을 잃은 것이다.
숨 막힐 듯 열렬한 둘의 키스는 길었다.
“프흡! 아아, 하인스님!”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된 카이로시아는 현수의 품을 파고들며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현수는 카이로시아를 품에서 떼어내며 다정히 속삭였다.
“로시아! 울지 마. 으응? 울지 마,”
“흐흑, 네에. 흐흐흑! 네에, 그럴게요.”
현수의 품에서 떨어진 카이로시아는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눈웃음을 쳤다. 너무도 반가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로시아! 뚝―! 설마 울보였던 건 아니지?”
“흐흑! 네에, 그럼요. 울보 아녔어요. 흐흑!”
“울지 마. 이제 뚝! 그리고 피해 상황을 살펴야 하잖아.”
“네에, 그럴게요.”
로시아의 눈물은 금방 그쳐졌다. 슬퍼서 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총서기가 다가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백작님!”
“아, 네에.”
“저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라니요?”
“백작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겁니다. 이레나 상단은 내 처가이니 말입니다.”
“……!”
총서기와 카이로시아 둘 다 잠시 말을 끊었다. 현수의 말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나저나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담장 무너진 것과 상단 일을 돕던 상인 몇이 놈들에게 당했습니다.”
“으으음!”
“백작님이 도와주셔서, 아니, 힘써 주셔서 경미한 피해로 그친 듯합니다.”
“로시아, 희생자들에겐 보상해 줄 거지?”
“……! 그, 그럼요.”
“그나저나 내성 쪽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쪽으로 워낙 많이 갔으니 가서 도와줘야지?”
“아마도… 아마도 그럴 거예요,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가서 도와주세요. 여긴 제게 맡기시고요.”
“알았어. 그럼 후딱 갔다가 올게.”
“네에.”
카이로시아의 공손한 대답을 들은 현수는 즉시 내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춰 서서 카이로시아를 바라보았다. 눈을 크게 뜬다. 더 할 말이 있느냐는 표정이다.
“로시아! 혹시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마, 알았지?”
“네에, 걱정 마세요.”
지붕 위에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정확히 엘리터를 상대하는 법을 보았다. 그렇기에 카이로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카이로시아가 오판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현수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기에 검기를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다. 게다가 스트랭스가 인챈트된 마법검이 있다. 그렇기에 엘리터의 몸에 쉽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하지만 이레나 상단에 속한 호위 용병 가운데 최강자가 겨우 소드 익스퍼트 초급이다. 그의 힘으론 용을 써도 엘리터의 몸에 상처조차 입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엘리터를 상대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현수는 총총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카이로시아는 몽롱한 표정이다. 조금 전 있었던 너무도 강렬한 키스가 상기된 때문
이다.
“아아! 백작님!”
꿈에도 그리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자신이 뭘 어찌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카이로시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수는 엘리터들의 뒤를 따라가며 차근차근 숫자를 줄여갔다. 그때마다 서로 뜯어먹겠다는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한편, 내성은 혼란상태가 되었다.
믿었던 무적 기사단과 철혈 기사단이 연신 뒤로 물러나기에 바빴던 때문이다.
로니안 자작은 영지민들을 내성으로 황급히 불러들였다.
기사단조차 어쩌지 못하는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아아! 밀지 마. 아아악! 밀지 말란 말이야.”
“뭐해? 빨리 들어가! 어서 들어가란 말이야.”
“그래, 왜 꾸물거려? 어서 들어가!”
“아악! 엘리터가 오고 있다.”
“으아아아아!”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엘리터들이 어슬렁거리며 기어오자 병목현상은 더 심해졌다. 이는 몬스터의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긴급하게 가져다놓은 상자들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아우성치며 내성으로 밀려들고 있다.
“으으음……!”
내성 외벽에 올라선 로니안 자작은 나직한 침음을 삼켰다. 기사단의 역할이 고작 놈들을 분산시키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벌써 여럿이 당한 듯하다. 병사와 기사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엘리터는 수중생물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수륙 양쪽 모두 생활이 가능한 모양이다.
“집사!”
“네, 영주님!”
“내성에 식량은 얼마나 있지?”
“넉넉히 있습니다.”
집사의 말에 로니안 자작의 이맛살이 꿈틀거린다.
“내 말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식량이 있냐는 뜻이야.”
“그, 그렇다면… 사, 사흘은…….”
“뭐야? 그거밖에 없어?”
“영주님, 현재 내성으로 들어온 인원만 만 명이 넘습니다.”
“끄으응!”
로니안 자작은 침음을 냈다. 기사단도 어쩌지 못할 엘리터들이 성을 포위한다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흘치 식량을 아끼고 아끼면 닷새나 엿새는 갈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엔 단체로 아사하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이니 협상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맛살을 내 천 자로 찌푸렸다.
“도대체 왜 이리로 몰려드는 거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과 조우하게 된 로니안 자작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사단은 놈들을 산 쪽으로 유인하려고 애를 쓰지만 놈들은 그러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성 주변으로만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끄으응……! 이를 어쩐담. 롤랑! 롤랑 마법사 어디에 있는가?”
“네, 영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 늙은이가 얼른 한 발짝 나선다. 영지에 하나밖에 없는 마법사이다.
“통신구로 다른 영지에 구원을 요청하게.”
“다른 영지라면 어딜……?”
테세린은 두 개의 영지로 둘러싸여 있다.
하나는 칼루센 백작의 드리안 영지이다. 로니안 자작과는 우호적인 관계이다.
다른 하나는 로니안 자작의 원수이자 카이로시아를 억류했던 데니스 알만 드 유카리안 백작의 유카리안 영지이다.
“일단 칼루센 백작님께 연락을 드려.”
“네, 영주님!”
영지 마법사 롤랑이 통신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엘리터들의 횡포는 계속되고 있었다.
미처 내성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급한 마음에 아무 지붕에나 올라갔다. 거기에 올라 바싹 엎드려 있었다면 엘리터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이 서서 구경을 했다. 엘리터들은 육중한 몸무게로 그 집을 흔들어 무너뜨렸다.
그리곤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아악! 아아아악!”
일련의 광경을 목격한 로니안 자작이 집사를 불렀다.
“지금 즉시 내성의 현황을 파악해서 보고해. 부실한 곳이 없는지, 엘리터들이 기어오를 만한 곳은 없는지 말이야.”
“네, 영주님!”
집사와 시종들은 빠른 걸음으로 흩어졌다. 이때 누군가가 총총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영주님! 영주님!”
고개를 돌려보니 내성의 치안을 담당하던 병사이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북문 쪽으로 엘리터 여섯 마리가 난입했습니다.”
“뭐어?”
“북문으로 어떻게?”
“어떤 미친놈들이 문을 열어놓고 도망을 간 모양입니다.”
“어떤 개새가…….”
로니안 자작은 절로 치미는 욕설을 애써 억눌렀다.
“현재 성내의 병사들은 얼마나 있는가?”
“성내 치안을 담당한 24명의 병사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로 감당이 되겠는가?”
“그, 그건…….”
병사는 자신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놈들로 인한 피해 상황은……?”
“병사 일곱이 놈들에게 당했고, 현재 대치 중에 있습니다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끄으응……!”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적합한 상황이다.
“영주님, 영주님!”
또 다른 누군가의 고함에 고개를 돌려보니 내성에서 제법 떨어진 곳 언덕 위이다.
복장을 보아하니 무적 기사단 소속의 기사이다.
“뭔가?”
“영주님! 몬스터들이 내습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자네 눈엔 저것들이 안 보이나?”
로니안 자작은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저것들 말고 북문 쪽에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뭐야? 오크……?”
“네, 대략 1,000여 마리 정도 됩니다. 근데 문이 열려 있습니다. 어서 대비하십시오.”
“뭐야? 사실인가?”
“네, 저희는 엘리터들 때문에 북문을 닫을 수 없으니 치안 병력으로 하여금 성문을 닫게 하십시오.”
“끄응! 하필이면 왜 이때에…….”
내성의 북문을 열고 도주한 놈들이 외성의 북문까지 활짝 열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다.
“일단 문만 닫으십시오. 단장님이 말씀하시길 엘리터들이 물러나는 대로 저희가 놈들을 상대할 거라고 합니다.”
“알았네. 근데 확실히 오크들인가?”
“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본 겁니다. 1,000마리를 상회합니다. 성내로 난입하면 현재의 치안 병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얼른 북문을 닫도록 지시하여 주십시오.”
“알겠네. 그쪽 사정은 어떤가?”
“엘리터들을 최대한 바깥쪽으로 유인하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저희가 가진 병장기로는 놈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여 숲속으로 유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알겠네. 계속해서 수고해 주게.”
“네, 나의 영주님!”
기사가 얼른 가슴에 주먹을 대곤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계속 고함을 질렀기에 엘리터들이 그쪽으로 쏠린 때문이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로니안 자작의 명령에 대답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