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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271화 (271/1,307)

# 271

치안을 맡은 기사와 병사들은 전부 밖에 있고, 그마나 남아 있던 병사들은 내성으로 난입한 엘리터들을 막으러 나가 있다.

시종들은 혹시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내성에서 대피 준비를 하고 있다. 성내 행정을 담당하던 문관들은 성벽의 상태를 파악하거나 성내로 들어온 사람들을 분류하여 머물 곳을 찾아주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로니안 자작은 휘휘 시선을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자신 이외엔 모두가 정신없이 바쁘다.

“끄으응! 할 수 없지.”

스르르르릉―!

침음을 낸 자작은 애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바쁜 걸음으로 북문 쪽으로 향했다. 성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순간, 현수는 외성 입구에서 개판을 치고 있는 엘리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대강 헤아려 보니 삼백 마리는 되는 듯하다. 기사 오백 명이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 떼이다. 하지만 놈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법을 알기에 차근차근 숫자를 줄여 나갔다.

“이야압!”

쒜에엑! 퍼억! 쒜에엑! 퍼어억! 쒜에에에엑! 퍼억!

크르르르! 크와아아! 츄르르르! 크라라라!

하나를 베어놓으면 적어도 열은 달려들어 삽시간에 사체를 발기발기 찢어놓는다. 아귀다툼이 분명하다.

현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종횡무진하면서 엘리터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스스로 알아서 뒷정리를 해주니 확인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같은 순간, 로니안 자작은 내성을 벗어나 외성 북문 쪽으로 가고 있다. 북문이 보이는 곳에 가니 엘리터 여섯 마리가 분탕질을 치는 중이다.

크롸롸롸! 꿰에에에에! 끄아아아아! 췌에에에엑!

엘리터들의 전면엔 십여 명의 병사가 창을 꼬나든 채 한 발짝씩 물러서고 있다.

로니안 자작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후퇴하는 것으로 여기고 한마디 하려고 했다. 이때 누군가 먼저 소리친다.

“모두 술통을 굴려라!”

데구르르, 떼구르르르르, 데구르르르―!

몸통만 한 술통들이 난입한 엘리터들에게 굴러간다. 그런데 마개를 제대로 닫지 않았는지 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엘리터들은 자신들에게 쇄도하는 술통들이 같지 않다는 듯 육중한 몸통으로 그것을 깔아뭉갰다.

퍼억! 빠지직! 뿌드득! 와지직!

술통이 빠개지자 담겨 있던 술들이 튀어올랐다.

“조준! 발사!”

쉐에엑! 쉬이익! 슈우우욱!

명이 떨어지자 어디선가 불화살들이 날아든다. 물론 엘리터들을 노린 것이다.

엘리터들의 몸통에 맞은 불화살들은 힘없이 떨어졌다.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임무의 다는 아니었다. 쏟아져 나온 술에 불화살이 닿는 순간 화염이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꿰에에엑! 캬아아악! 꾸아아아악! 꾸르르르륵!

갑작스런 화염에 휩싸인 엘리터들은 그야말로 지랄발광을 했다. 온몸에 묻은 술 때문이다.

물러났던 병사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나뒹굴던 엘리터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의 고함이 들린다.

“오크들의 습격이다! 북문이 열려 있다. 오크들이 다가온다.”

잠시 엘리터에 시선을 주고 있던 로니안 자작이 입을 연다.

“이곳은 이대로 둔다. 나를 따르라!”

명령이 떨어지자 시선을 주었던 병사들은 영주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른 고개를 숙인다.

“네, 영주님!”

“클로니, 수고했다.”

로니안 자작의 시선을 받은 이는 육십을 훌쩍 넘긴 늙은 기사이다. 클로니는 나이를 먹어 정식 기사단을 떠날 수밖에 없어 은퇴를 해야만 했다.

이런 경우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여생을 살아야 한다.

로니안 자작은 그에게 자식이 많음을 알기에 사정을 헤아려 영지 내의 치안만 담당하도록 했던 것이다.

“아닙니다. 영주님! 이건 제 임무인 걸요.”

“그래, 클로니! 그나저나 오크들이 몰려온다. 어떤 미친놈들이 북문을 열어놓아 위험하니 어서 가세.”

“네, 영주님! 너, 너, 너! 너희들은 이곳에 남아 엘리터들의 최후를 확인하고 합류하라. 나머진 모두 영주님을 따르라!”

“네, 기사님!”

클로니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로니안 자작에게 시선을 준다. 어서 가자는 뜻이다.

고개를 끄덕인 로니안은 두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성내로 난입하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행이 내성을 나섬과 동시에 북문은 닫혔다.

자작 일행은 외성을 향해 달리면서 서문 쪽을 바라보았다. 엘리터들이 우글거린다. 다행인 것은 이쪽으로는 오는 놈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달리니 외성 북문이 보인다. 보고대로 성문이 활짝 열려 있다.

“어떤 미친놈이……!”

로니안 자작은 욕이 저절로 나옴을 느꼈다. 그런데 열린 문 사이로 다가오는 오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적게 잡아도 수백 마리는 넘는 듯하다.

“달리자!”

“네, 영주님!”

로니안 자작과 클로니가 선두에서 달리고 병사들이 헉헉거리며 따라간다. 먼저 성문에 당도한 둘은 온 힘을 기울여 문을 닫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목재 위에 철판을 입힌 두꺼운 성문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오크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문과 문 사이가 약 2m 정도 남았을 때이다.

꿰에에! 꾸에에엑!

오크 두 마리가 문틈 사이로 뛰어든다. 그와 동시에 문에서 강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오크들이 반대쪽에서 밀기 시작한 것이다.

“둘만 남고 모두 달려들어!”

“네!”

이미 들어온 오크 두 마리는 다가오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놈들을 상대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놈들을 죽이는 사이에 문이 활짝 열려 버리면 모두가 죽기 때문이다.

병사들 역시 위험성을 깨달았기에 병기를 내던지고 얼른 문을 밀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남겨진 병사 둘은 오크와 생사를 다투는 접전을 벌였다.

물론 일방적인 후퇴이다. 녹슨 도끼 비슷한 것을 휘두르는 오크들은 눈앞의 병사를 얼른 잡아먹고 싶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병기를 휘둘렀다.

챙! 챙! 퍼억!

“크억―!”

병사 하나가 오크의 강력한 타격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머리 쪽을 맞았는지 투구 속에서 선혈이 흘러나온다,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죽었거나 기절했을 것이다.

꿰에에에!

“아아아악!”

오크가 다가가 병사의 팔뚝을 잡아 뽑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온다. 방금 전 타격에 기절만 했었던 모양이다.

팔이 뽑힌 어깨에선 선혈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이런 개 같은……!”

“이잇! 어서 문을 닫아라! 이이이잇!”

나머지 병사와 자작은 분노에 떨면서도 온 힘을 다해 문을 밀어붙였다. 그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성문은 조금씩 닫히고는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저항력이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문이 닫히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어쨌든 문과 문 사이가 1m쯤 남았을 때 또 다른 오크들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문을 닫느라 검과 창 등 병장기를 내려놓았기에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네 마리가 또 들어왔다. 놈들은 문 뒤의 병사보다는 눈앞에서 피 흘리고 있는 먹이가 더 좋았는지 그쪽으로 달려간다.

꿰에엑! 꾸아아악! 꿰에에에!

“아아악!”

산 채로 오크들에게 뜯어 먹히던 병사의 비명이 잦아든다. 죽은 모양이다.

문을 밀던 병사와 자작 등은 눈물을 흘렸다.

“뭐해? 온 힘을 다해 밀어라!”

“네에. 야아아압!”

끼이이이익―!

분노한 병사들이 문을 밀어 간신히 닫았다.

빗장을 들고 있던 병사가 얼른 그것을 걸자 로니안 자작 등은 재빨리 병기를 잡았다.

오크 다섯 마리가 보인다. 한 마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놈을 찾을 여력이 없다.

“이놈들! 죽엇!”

“야아아압!”

오크 다섯 마리에 로니안 자작을 비롯한 병사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로니안 자작과 노기사 클로니가 각기 한 마리를 맡았고, 나머지 병사 일곱이 세 마리와 접전을 벌였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로니안 자작과 초급인 클로니는 여유가 있다. 반면 병사들은 쩔쩔매는 상황이다.

로니안과 클로니는 전력을 기울여 오크를 베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온 힘을 다해 문을 닫느라 기력을 소모하여 평상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병사들은 오크의 공격에 연신 물러나기에 바빴다.

한편, 엘리터들을 베던 현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느꼈다. 바벨강으로부터 계속해서 엘리터들이 기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 가지곤 하루 종일이 지나도 안 끝나겠어. 이이잇!”

검을 휘두르며 머릿속을 뒤진 현수는 8써클 마법 중 쓸 만한 것을 찾았다.

“드래곤 피어! 그래, 이거면 될 거야. 근데 과연 될까?”

현수는 현재 7써클 마스터이다. 아울러 희미하기는 하지만 여덟 번째 마나 고리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게 곧 8써클 마법 전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덟 번째 마나 고리가 그곳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뜻일 뿐이다.

체내의 마나량을 확인해 보니 소모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마나는 단전의 것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안 되면 말고! 마나여, 적에게 강력한 두려움을 심어라. 드래곤 피어!”

고오오오오오오―!

소리없는 기세가 현수의 몸을 중심으로 확 뿜어졌다.

그 순간 뒤엉켜 동족의 몸을 물어뜯던 엘리터들이 일제히 물러난다. 그들 중 일부의 시선이 현수와 마주쳤다.

그러자 대경실색했다는 듯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현수들 중심으로 반경 20여m가 금방 공터가 된다. 8써클 유저가 되었다면 최하 50m이고, 마스터라면 120m는 되었을 것이다.

몇 발짝을 내디뎌 보니 엘리터들이 황급히 물러난다. 현수는 드래곤 피어가 먹힌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놈들의 선두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다시 마법을 구현시켰다.

“마나여, 적에게 강력한 두려움을 심어라. 드래곤 피어!”

고오오오오오오―!

또 한 번 기세가 뿜어지자 엘리터들이 황급히 물러선다. 이 상태에서 놈들에게 다가가니 죽어라 내뺀다.

현수는 조금씩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자 주변의 엘리터 전부가 황급히 바벨강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수가 놈들을 강으로 되돌려 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60여 분 정도이다. 살아 있던 놈들의 95% 이상을 해결한 것이다. 나머지 5%는 드래곤 피어의 범위 밖에 있던 놈들이다.

이놈들 중 일부는 하수구를 통해 성내로 들어가 분탕질을 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현수가 드래곤 피어 마법으로 엘리터들을 몰아내는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철혈 기사단과 무적 기사단의 공격에 하나둘 제압되었다. 물속에서는 강적이지만 육지에선 그만한 위력을 내지 못하기에 죽은 것이다.

한편, 로니안 자작 등은 여전히 다섯 마리 오크와 혈전을 벌이고 있다. 문을 닫느라 온 힘이 빠진 상황이었다.

회복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대결에 임했다. 그렇기에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사람이 어찌 몬스터의 근력을 당하겠는가!

꿰에에에! 꾸아아아!

“이놈, 죽어랏!”

쉐에에엑!

채엥―!

검과 도끼 비슷한 것이 부딪치자 불꽃이 튄다. 그와 동시에 로니안 자작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오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해 놓친 것이다.

이때부터 오크의 강력한 공격이 재개되었다. 무기를 잃은 로니안 자작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도 놓친 검이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오크는 분명 몬스터이다. 그렇다 하여 이것이 멍청하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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