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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272화 (272/1,307)

# 272

로니안을 잡아먹으려는 오크는 자작을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결국 절체절명인 상황이 되었다.

구석에 몰린 로니안은 오늘 인생이 끝남을 인식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는 오크는 괴소를 짓는 듯하다.

꿰에에!

쐐에에엑!

도끼 비슷한 것이 파공음을 내며 허공을 가르는 순간 로니안 자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의미한 저항을 하느니 차라리 화끈한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산 채로 몬스터에게 뜯어 먹히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여보! 사랑했소. 내세에 다시 만납시다. 로잘린, 잘 있거라.’

퍼어억―! 쿠웅!

당연히 느껴져야 할 느낌이 없는 대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실눈을 떴던 로니안 자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눈앞에 있던 오크의 머리가 부서진 채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 누군가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노기사 클로니의 목을 베어가던 오크의 목이 동체와 분리되며 녹색 선혈을 뿜어낸다.

그 사이로 클로니의 놀란 표정이 생생하게 보인다.

다음 순간 병사들을 공격하던 오크들이 차례대로 쓰러진다. 한 녀석은 목이 베어졌고, 다른 한 녀석은 허리가 베어졌다.

다른 한 놈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다음 순간, 오크들을 처치한 인물이 뒤로 돌아섰다. 용병 차림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런데 구명지은을 베푼 사내의 신형이 성벽 위로 이동한다. 그리곤 지체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은 오크들이 우글거리는 성문 부근이다.

11장 미안하지만 가야만 해

자작과 클로니 등은 후다닥 성벽 위로 따라 올랐다. 그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목도되었다.

우글거리던 오크들이 놀란 기러기 마냥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며 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문 쪽을 보니 오크 삼십여 마리가 죽어 있다. 그 가운데엔 오연한 자세로 검을 뽑은 채 도주하는 오크들을 바라보는 사내가 있다. 조금 전 그 사내이다.

“어, 어서 성문을 열어라.”

“네, 영주님!”

조금 전 온 힘을 다해 문을 닫았던 병사들이 이번엔 그것을 열기 위해 힘을 썼다.

끼이이이이익―!

문이 열렸다. 자작은 얼른 목숨을 구해준 사내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같은 순간, 현수는 내성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비명 소리가 들린 때문이다.

“오, 오크다! 모두 도망 가! 오크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오크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들의 뒤를 쫓고 있다.

내성이라 건물들이 조밀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골목 사이로 내빼자 오크는 먹이의 종적을 놓쳤다.

하여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러던 중 드디어 찾았다는 듯 어느 건물 앞에 멈췄다.

콰아앙! 콰지지직―!

주먹으로 문을 내려치자 목재가 힘없이 부서진다. 먼지가 가라앉자 오크가 실내로 들어선다.

얼른 땅으로 내려온 현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오, 오지 마! 아악! 사, 사람 살려!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얼른 뒤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밝은 데 있다가 어두운 데 들어서서 그런지 잠시 보이지 않는다.

오크도 그래서 잠시 멈춰 있었던 듯하다.

아무튼 현수가 시력을 되찾은 순간은 오크가 구석에 몰린 여자에게 다가가는 상황이었다.

“아, 안 돼! 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꺄아아악!”

꿰에에에!

“이놈! 야압!”

더 볼 것 없기에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고개를 돌렸던 오크의 눈이 커진다. 그 상태로 놈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았다.

단번에 목이 잘린 것이다.

쿠웅―!

“꺄아악!”

여자는 오크의 사체가 코앞에 쓰러지자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이제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 무, 무서워요. 흐흑! 너무 무서워요.”

눈물을 흘리며 웅크리고 있는 여인이 눈에 익다.

“혹시… 로잘린? 그치, 로잘린이지?”

현수의 말에 고개를 든 여인은 생각대로이다. 한편, 로잘린은 눈앞의 사내를 보곤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사내이다. 그런데 몬스터의 먹이가 되려는 순간에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잠시 멍한 상황이었다.

“로잘린! 나야. 진정해. 이제 괜찮으니까. 알았지?”

“흐흑! 하, 하인스님?”

“그래, 나야.”

“아아! 하인스님!”

로잘린은 현수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얼른 받아 안았다. 그런데 촉감이 이상하다. 하여 슬쩍 더듬었다.

비단보다도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로잘린이 발가벗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늘, 로잘린은 오랜만에 현수가 남기고 간 목욕용품 세트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엄마인 세실리아 자작부인은 그것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워낙 귀한 물건이니 남편이 될 하인스 백작이 왔을 때 쓰라는 뜻이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냄새만 맡아봐도 너무도 향기롭기 때문이다.

하여 몰래 목용용품 세트를 들고 나왔다. 그리곤 하녀들로 하여금 하인스 상회 뒤쪽에 마련한 개인 휴게실 내의 목욕통에 더운 물을 채워놓도록 하였다.

일과를 마치고 상점의 문이 닫히자 로잘린은 옷을 모두 벗었다. 뜨거운 물속에 푹 담가졌다가 모처럼의 사치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문이 부서진 것이고, 몬스터가 침을 질질 흘리며 들어왔다. 당연히 대경실색하며 물러섰지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싶어 다른 입구를 막아놓은 때문이다.

“로, 로잘린!”

“흐흑! 네에, 백작님!”

“옷, 옷은 어디에 있어?”

“네에? 에그머니나! 아악, 난 몰라.”

황급히 현수의 품을 빠져나간 로잘린이 벗어놓은 옷이 있는 곳으로 몇 발짝 가다 얼른 주저앉는다. 홀딱 벗은 뒷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얼른 돌아섰다.

“로잘린! 나 돌아서 있으니까 얼른 옷 입어. 누가 올 수도 있잖아.”

“네? 아, 네에. 자, 잠깐만요.”

곧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옷을 입다 자빠졌는지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웃겼지만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진 않았다. 혹시라도 민망한 장면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점포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가 들어설까 싶어서이다.

“백작님!”

“응! 이제 괜찮아?”

“네에. 고마워요. 백작님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고맙긴, 당연한 거지. 로잘린은 내 여자잖아.”

“네……?”

이후부터 말이 없었다. 몸을 배배 틀며 몹시 부끄러워하기에도 바빴던 때문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깐 고마웠네. 덕분에 희생자가 적었네.”

상황이 정리된 것은 늦은 오후였다.

무적 기사단과 철혈 기사단은 숲속에서 엘리터 30여 마리를 처치한 뒤 귀환했다.

로니안 자작은 영지 내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유사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엘리터 상륙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레나 상단 역시 피해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물론 그 보고는 카이로시아가 했다. 그렇기에 현수가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한 손엔 포크, 다른 한 손엔 나이프를 쥔 현수의 말에 로니안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자네 덕분에 그렇네.”

“백작님이 와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이번에 입을 연 사람은 세실리아 자작부인이다. 남편과 딸이 구함받은 것을 들었던 것이다.

“백작님, 이제 여행을 마치신 거예요?”

로잘린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시 가야합니다.”

“어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시게. 그간 로잘린이 몹시 기다렸네. 매일매일 외성 성벽을 서성였다네.”

“어머, 아빠……!”

로잘린이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는지 한마디 하고는 얼른 입을 다문다.

“로잘린 영애가 그랬습니까?”

현수의 시선을 받은 로잘린은 옷자락만 만지작거린다. 그런 그녀의 두 볼이 불그레하다.

“네, 매일 기다렸어요, 나를 볼 때마다 백작님 언제 오시느냐고 물어서 귀찮은 정도였지요.”

카이로시아의 말에 현수가 싱긋 웃어주었다.

“가급적 빨리 일을 마치고 올 것이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네에,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곤 잠시 환담을 나눴다. 용병 행세하며 여행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카이로시아는 상행을 하느라 노숙도 하지만 세실리아 자작부인과 로잘린은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눈빛을 빛내며 현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도중 목이 말랐던 현수는 ‘갈아 만든 배’를 꺼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다. 처음 보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따악―!

캔 뚜껑을 따고 한 모금을 마신 현수는 아차 하는 생각에 얼른 인원수에 맞게 꺼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있을 때 자주 마시던 것이라 무심코 꺼냈던 것이다.

현수에게 마법 가방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모두들 ‘갈아 만든 배’라는 한국 음료의 달콤한 맛에 빠져든 때문이다. 결국 일인당 3개씩 해치우고야 더 달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현수와 카이로시아가 코찔찔이 세실리아 여관으로 간 것은 깊은 밤이었다.

얀센이 튀어나와 코가 땅에 닿을 듯 깊은 절을 한다. 세실리아 역시 매우 반가워졌다. 로사가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며칠 전에 해산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성별을 물어보니 아들이라 한다.

먼저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는 작명을 했다.

현수가 지어준 이름은 다비드이다. 이 이름은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라는 뜻으로 이를 선택한 것이다.

밤이 깊었지만 카이로시아는 상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보인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현수는 혹시라도 불쾌한 기분을 주지 않기 위해 목욕을 했다. 그러고 나오니 로즈와 릴리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그동안 잘 있었지?”

“네에. 주인님!”

그간 영양 있는 식사를 해서인지 둘 다 살이 오른 모습이다. 하여 둘을 살피던 중 심장의 마나 고리를 느낄 수 있었다.

“로즈, 벌써 2써클이 된 거야? 어라, 릴리도 1써클이네.”

“주인님의 명을 받아 자나 깨나 마법 익히기에 힘을 썼습니다. 저희 자매 둘 다 마나 친화력이 높았는지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하하, 그래! 애썼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

“네, 주인님!”

릴리와 로즈가 물러가자 카이로시아가 들어온다.

“졸립지? 자아, 이리 와.”

현수가 부르자 냉큼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얇은 슬립 차림이다.

“오늘 일이 많았지?”

“네에.”

“피곤할 테니 이만 자지.”

“네에.”

쪼옥―!

현수는 가볍게 입맞춤을 하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슬립!”

카이로시아가 잠들자 현수는 슬그머니 이부자리 밖으로 나왔다. 피곤을 느끼지 않는 몸이기에 졸립지 않아서이다.

현수는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킨 채 영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몬스터들은 없는 듯하다.

아주 깊은 밤이 되었을 때 현수는 결계를 치고 들어가 마나를 모았다. 그리곤 차원이동 마법을 구현시켰다. 또 다른 불안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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