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마나여, 나를 지구로 귀환시켜 줘.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테세린의 외곽에서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 * *
“아차! 여긴 서울이네.”
현수는 자신이 계룡산으로 차원이동 했음을 확인하곤 이마를 쳤다.
“그나저나 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 뭐,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지금 몇 시야?”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수는 얼른 하산하여 사우나로 향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찜질방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이다.
수건을 목에 걸고 욕탕으로 들어가려던 현수는 텔레비전 화면에 뭔가가 뜨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액션 영화가 방영되는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정장을 걸친 아나운서가 화면에 나타난 때문이다.
“방금 들어온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강원도 춘천 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의 변을 밝힌 홍진표 교수가 괴한으로부터 피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여…….”
“이런……!”
현수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의 캐비닛으로 갔다. 목욕하겠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황급히 사우나를 빠져나온 현수는 강민경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기자님! 저 이실리프 무역의 김현수입니다.”
“아, 네에. 잘 지내시죠?”
“네, 근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는지요?”
“네, 말씀하세요.”
“홍진표 교수 말입니다.”
“춘천의 홍 교수님이요?”
“네, 지금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왜요?”
“제가 잘 아는 분인데 너무 걱정 되어서 그렇습니다. 찾아뵈어야 하는데 어디 계시는지 몰라서…….”
현수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강민경 기자의 말 때문이다.
“김 사장님 잠깐 전화 끊으세요. 제가 확인해서 문자로 알려 드릴게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현수는 즉시 이실리프 상사가 있는 서울로 텔레포트했다. 하지만 사무실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문자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홍 교수님은 현대아산병원에 있습니다.
현수는 택시를 잡아타곤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속보가 이어지고 있다.
홍진표 교수에게 테러를 가한 범인은 전직 경찰로 밝혀졌다.
그는 수년 전 독직1) 사건으로 직위 해제되었고, 처벌받은 경력이 있는 자이다.
현재 춘천 선거구 보궐선거엔 홍 교수 이외에 두 명의 출마자가 더 있다. 하나는 한심당에서 공천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제1야당인 민주실현당 소속 인물이다.
홍 교수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워낙 인지도가 높아 여당과 야당 인사를 제치고 당선될 것으로 여겨지던 중이다.
병원 로비에 당도하니 많은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정치적인 탄압 사건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전국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테러에 의해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홍 교수는 현재 수술 중이다. 그리고 범인은 송파경찰서에 있다고 한다.
각 언론사 기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하나는 병원에 다른 하나는 경찰서에서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두어 시간이 흐르도록 수술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기자들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현재 상황을 알아내려 애썼다. 현수는 귀를 쫑긋거린 채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과연 기자는 기자였다.
현수라면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을 알아냈다.
홍진표 교수는 현재 깊숙한 자상을 입어 수술 중에 있다.
범인이 사용한 칼은 날의 길이만 30㎝인 회칼이다.
간을 관통한 이것은 허파까지 손상을 입혔고, 많은 혈관들이 베어져 사경을 헤매는 중이라 한다.
범인은 경찰서에서 취조받는 중인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지 9개월 정도 되었다.
또한 재판받는 과정에서 배우자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범인에겐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들은 고교 졸업 후 무직이고, 딸은 룸살롱 호스티스라 한다.
전 배우자는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자들은 나름대로 상황을 추측하고 있다. 홍진표 교수와 범인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비를 벌인 것도 아니고, 어떠한 이해관계가 얽힌 것도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사주에 의핸 테러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뒤에서 조종을 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홍 교수가 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 한심당 소속 출마자의 지지율은 31.2%였다. 민주실현당에서 공천받은 인사는 33.6%의 지지를 받았다.
오차범위까지 감안한다면 누가 당선이 되던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홍 교수가 출마 선언을 했다.
언론사들이 표본을 추출하여 긴급하게 조사한 지지율은 홍 교수 43%, 한심당 20%, 민주실현당 16%이다.
한심당도 많은 표를 빼앗겼지만 민주실현당은 더 많은 표를 잠식당했다.
그렇다면 홍 교수의 출마선언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민주실현당이다. 하여 언론사들은 민주실현당 출마자 쪽으로도 기자들을 파견하였다.
‘흐음, 민주실현당이라……. 아닐 수도 있는데. 어쩌면 한심당에서 벌인 일일 수도 있잖아.’
선거에서의 2등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그렇기에 선거철만 되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이 남발된다. 뿐만 아니라 마타도어2)와 색깔론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기자들이 민주실현당을 의심할 때 현수는 한심당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정권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정당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술에 지친 의사들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10여 분이나 질문 공세를 받았다. 그럼에도 끝없는 질문에 짜증을 내고야 쉬러 갈 수 있었다.
수술을 마친 홍 교수는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보내질 것이라 한다.
현수는 투명 은신 마법으로 홍 교수가 있는 곳까지 갔다.
마취가 덜 풀려 그러는지 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간호사들이 분주한 손길로 마지막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릉!
허공을 격하고 뿜어진 현수의 마나가 홍 교수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지 않은 이유는 감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홍 교수의 몸은 갑작스런 테러에 놀란 탓에 정상이 아니었다.
신경 써서 확인해 보니 의사들 말대로 수술은 잘 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만 그렇다.
워낙 큰 상처를 입었는지라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금방 숨이 멎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독하다. 현수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만 보았다.
잠시 후, 간호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 문이 닫히자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던 회복 포션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곤 조심스런 손길로 반 병을 복용시켰다.
의식이 없는 상황인지라 목울대를 손으로 건드려야 했다.
“에어 퓨리파잉!”
공기 정화 마법으로 회복 포션의 냄새를 지우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쾌차하십시오, 교수님!’
힐이나 큐어, 또는 리커버리 마법을 구현시키려 했으나 그러면 병원에서 의심할 것이다.
그렇기에 회복 포션만으로 끝낸 것이다.
다시 한 번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살펴보았다. 겉은 아물지 않았지만 내장 쪽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효과가 안으로부터 밖으로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다.
간호사들이 다시 들어왔을 때 현수는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그리곤 송파 경찰서로 향했다.
“아! 강 기자님.”
“못 보셨죠?”
“네,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들어가게 되면 가족 이외엔 면회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취재 수첩을 펼쳐 들고 있던 강 기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자식이 교수님께 그런 못된 짓을 했는지 얼굴이나 보려구요.”
“아! 근데 어쩌죠? 우리도 아직 놈들 못 봤어요.”
강 기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러분, 저는 겨레신문 황인수 기잡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홍진표 교수 테러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범인 이도명이 곧 이송된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네, 신뢰할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얻은 정보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들은 이렇게 정보도 주고받는 듯하다.
“우리도 준비해야겠군요.”
강 기자의 말에 동행했던 카메라 기자가 장비 등을 챙길 때 경찰서 정문으로 누군가가 나선다.
수갑을 채운 팔을 좌우에서 잡고 있는 인물은 중앙지검 소속 수사관 신분증을 패용하고 있었다.
겨레일보 기자의 말이 사실인 것이다.
곧 소란이 벌어졌다. 물론 기자들에 의한 질문 공세이다. 하지만 이도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검찰에서 가져온 차를 타고 사라졌다.
“김 사장님도 중앙지검으로 가실 거예요?”
“아뇨. 됐습니다. 저는 기자도 아닌데요. 어떤 놈인지 얼굴을 봤으니……. 아무튼 오늘 고마웠습니다.”
“원, 별말씀을……!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아! 네에.”
잠시 후, 송파 경찰서 앞마당은 언제 그렇게 북적였냐는 듯 고요해졌다.
“흐음, 대체 무슨 이유로 홍 교수님께 그런 짓을 했을까?”
천천히 돌아선 현수는 가까운 사우나로 향했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더운 물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난 후 현수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었다. 시선은 속보를 보도하는 텔레비전에 꽂혀 있다.
뉴스의 초점은 범인 이도명의 범행 동기에 맞춰져 있다.
일면식도 없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격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혀진 바는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엔 한심당과 민주실현당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어떤 당이든 범행을 지시한 것이 드러나면 치명상을 입을 상황이다.
현재 민심은 여당보다는 야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하는 짓마다 뻘짓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실시될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 여소야대 국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했던 정부는 발목을 잡힐 뿐만 아니라 저질러 놓은 일들에 대한 수습 및 해명이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시선 대부분이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었다. 누가 범행을 지시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잠시 후, 뉴스 속보엔 홍진표 교수가 정식으로 출마했음을 보도했다. 홍 교수의 선거캠프 총괄을 맡은 인권변호사가 홍 교수를 대리하여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마친 것이다.
방송에선 홍 교수가 병석에 있다 하더라도 곧 치러질 보궐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피습사건 이후 긴급하게 조사한 바에 의하면 홍 교수 63%, 한심당 13%, 민주실현당 12%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유세 한 번 안 하고 병석에 누워만 있어도 당선증을 받을 상황이다.
현수는 중앙지검으로 가볼까 하다가 말았다. 권지현을 만나게 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