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뭐야? 어디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목욕을 마치고 나온 현수는 집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쭸다. 두 분 모두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 귀국하냐며 현수의 결혼을 걱정했다. 적령기에 있건만 외국으로만 나돌다 언제 결혼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기 아무리 외로워도 아프리카 아가씨의 썸씽을 만들진 말라고 하셨다. 현수는 얼른 알았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이 아니면 회사?’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게 하고는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 사장님!”
“네, 이 실장님. 회사에 별일은 없죠?”
“그럼요. 여긴 괜찮은데 사장님은 너무 더운데 계셔서 어떻게 해요? 몸은 건강하신 거예요?”
“네, 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회사일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니 다행입니다. 민 실장은요?”
“요즘은 이실리프 빌딩으로 출근하고 계셔요. 사원들 뽑느라 정신없이 바쁜가 봐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이상도 없단다.
다음은 듀 닥터를 생산하는 태을약품에 전화를 걸었다. 내친 김에 울림 네트워크의 박동현 대표와도 통화했다.
시화공단에 위치한 극동 솔라파워 주윤우 사장과도 이야길 나누고, 심지어 드미트리와도 통화를 했다.
모두들 아무런 문제 없다고 한다. 마지막은 이실리프 어패럴의 박근홍 사장이다. 아무 이상 없으며 조만간 국방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럼 여기가 아닌가?’
현수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여러 거점을 거쳐 킨샤사로 이동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당도했을 때 코리안 빌리지를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를 억눌렀다.
“지사장님!”
“아이고, 이 사람아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녀?”
“네?”
“지금 큰일이 났네.”
이춘만 지사장은 현수를 보자마자 얼른 자리에 앉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
“킨샤사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질 모양이야.”
“네? 소요사태라니요?”
현수는 눈을 크게 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북부 지역이라면 몰라도 수도인 킨샤사는 안정적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12장 어쭈! 니들이 감히……?
“잉가댐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가운데 상당수가 지나인의 것이라는 것은 알지?”
“그럼요. 모두 제가 쏜 건데요.”
“그 사건을 보고 받은 대통령과 내무장관 등이 대노하였네.”
“그렇겠죠. 근데요?”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지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해.”
“그게 무슨 말이죠?”
“지나놈들은 아프리카 곳곳에 진출하여 자원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건 알지?”
“그럼요. 어마어마하죠.”
“그래, 그렇게 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사회 기반 시설 등을 제공한다는 협약을 맺었지.”
“알아요. 항만, 다리, 도로 등이죠.”
“근데 그것들 대부분이 부실공사였다고 하네.”
현수는 이내 무슨 뜻인지를 파악했다.
지나인들은 비교적 미개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낮춰보고 이득만을 추구했다. 계약을 할 땐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온갖 혜택을 언급했다.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면 자원부터 캐갔다.
계약 당시 약속한 것들도 이행하기는 했지만 이 지사장의 말대로 부실공사로 일관했다.
굵기 20㎜짜리 철근을 넣어야 할 곳에 10㎜짜리를 넣었다. 또한 주요 구조부를 건설하며 콘크리트 압축강도가 360㎏f/㎠는 되어야 할 곳에 200㎏f/㎠쯤 되게 했다.
어떤 곳은 철근 대신 나무막대를 꽂은 것도 있다.
이러다 보니 지나에서 건설한 도로는 쉬이 패이거나 붕괴되었다. 하자 보수 보증기간엔 찍소리 않고 공사를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많은 돈을 요구하곤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역시 이런 폐단을 알지만 눈을 감았다.
공무원들의 태반이 지나로부터 받은 뇌물을 상납했기 때문이다. 그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부패한 곳을 쳐내자니 정부 전체가 지탄을 받을 수 있어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프리카 각국이 거의 공통이다.
지나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상납의 사슬이 끊이지 않는 한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사업을 할 수 있기에 그것만 주의하는 중이다.
어제 정부는 주 콩고 지나대사관으로부터 지나인들을 사살한 범인 인도를 요구받았다.
그러면서 말하길 현수에 의해 사살된 인원 모두 평범한 관광객이라고 했다.
정부는 사망한 지나인들이 반군에 가담한 군사고문으로 판단하는 상황이었다. 어이가 없어 하는데 사망자들에 대한 막대한 보상까지 청구했다.
만일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경제적 압박을 가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잉가댐 및 발전소 공사를 지나건축공정총공사에 맡겼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는 상황인지라 콩고민주공화국에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는 폭탄 테러가 발발하였다.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던 곰베 지역에서 폭발물을 실은 트럭 하나가 정부기관 건물로 쇄도했다. 그 결과 사망 25, 중상 13, 경상 41명이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 와중에 외국인들 중 몇몇이 총상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둘이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죽은 외국인의 수효가 30이 넘는다. 이에 정부는 킨샤사 전역에 계엄을 선포했다.
군인과 경찰이 전 지역에 깔렸고 삼엄한 검문이 계속되고 있다. 반군의 소행인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데 무슨 소요 사태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마투바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 했지?”
“네, 실종되었다는 소리도요.”
“오늘 아침, 그가 나타났네. 그리고 마투바를 데리고 갔어.”
“네?”
“마투바의 오빠는 마림바이네. 반군 지도자 중 하나지.”
“네에?”
현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림바는 전에 만난 적이 있다. 노보로시스크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질 화물을 검사할 때이다. 그리고 마타디항 인근 계근장에서도 보았다.
그가 마투바의 오빠라 하니 놀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비슷하다.
“마투바를 데리고 가면서 하는 말이 그동안 잘 보살펴 주어 고맙다고 했네. 그리고 천지건설과 천지약품이 공격의 목표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 하였네,”
“네? 반군들이 왜 우릴 공격해요?”
현수의 이런 반문은 당연한 것이다. 천지건설은 정부에서 발주한 공사를 수행하곤 있지만 엄연히 외국 기업이다.
천지약품도 정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외국 기업이다. 그런데 표적이 될 수 있다니 어폐를 느낀 것이다.
“그가 가고 난 뒤 생각해 보았는데 우릴 공격하는 놈들은 반군이 아닌 것 같아.”
“그럼 설마 지나놈들이……?”
이춘만 지사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생각도 그러하네. 혼란을 틈타 우리를 노리는 거겠지.”
“흐으음……!”
현수는 깊은 침음을 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어찌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놈들이 우릴 공격할 확률은 어느 정도라 생각하십니까?”
“높지, 아주 높아! 자신들의 터전을 우리가 빼앗았다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가요? 그럼, 직원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천지건설 직원들은 현재 비너스 킨샤사 호텔에 있네. 경찰에서 보호하는 중이지.”
“후조토 쿠아레 경찰청장님께 연락하신 겁니까?”
“그렇네. 너무 급해서 그리했네.”
“잘 하셨습니다. 그럼 천지약품 직원들은요?”
“당분간 휴업한다 하고 모두 휴가 조치했네.”
“네에, 교민들은 어떤가요?”
“아카시아 식당을 중심으로 비상연락망을 가동하고 있는 중이네. 경찰에 신고하여 비상시 무기 사용을 허가받았네.”
“그럼 이제 지사장님과 저만 남은 건가요?”
“그렇네,”
“지사장님도 비너스 호텔로 가십시오.”
“나만? 자네는?”
“제가 산 집은 아무도 모르니 거기에 있을 생각입니다.”
“아닐세. 자네도 같이 가세.”
이춘만 지사장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그러세요. 지사장님도 제 집으로 가시죠.”
“……!”
“대통령이 경호팀을 보내줬습니다. 24명이 3교대로 24시간 경호하고 있으니 안전할 겁니다.”
“대통령 경호팀?”
“네. 어쩌면 호텔보다도 더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참, 방도 많으니 직원들도 모두 제 집으로 오라고 할까요?”
“이, 일단 가보고 말하겠네.”
이춘만 지사장은 주섬주섬 짐을 꾸렸다. 커다란 가방만 몇 개다. 두고 가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물어보니 안에 담긴 것 전부 현금이라고 한다.
인터넷 뱅킹이 일상화된 곳이 아닌지라 아직 현금 거래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놔두고 가면 지나놈들이 가져갈 것이다. 그러면 킨샤사의 무료급식소 운영이 어렵다고 한다.
결국 현수와 지사장의 차는 현금으로 가득했다.
“헐……! 이게 집이야?”
“네, 조금 크죠?”
“끄으응!”
이춘만 지사장은 웅장한 저택을 보곤 입을 딱 벌렸다. 방만 서른 개가 넘는 집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현수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메이드복을 걸친 알리사가 공손히 절을 한다.
“알리사! 피터스 가가바 경호팀장은 어디에 있지?”
“네, 지금 후원에 계십니다. 불러 드릴게요.”
“고마워!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 좀 부탁해.”
“네에.”
알리사가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물러난다.
“하녀도 있어?”
“네. 집이 워낙 큰 데다 제가 음식 솜씨가 없거든요.”
“몇이나 있는데?”
“저번엔 셋이 있었는데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겠네요.”
“끄으응!”
전형적인 귀족 같은 대답에 지사장은 침음을 삼켰다.
“보스! 부르셨습니까?”
“네, 이쪽은 천지약품 사장님이자 천지건설 킨샤사 지부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경호1팀장 피터스 가가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춘만이라 합니다.”
둘이 악수를 하고 떨어지자 현수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도 알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천지건설 직원들을 이쪽으로 불러들이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요?”
“지사장님, 우리 직원들 수효가 얼마죠?”
“킨샤사에 있는 직원은 16명이네.”
“팀장님, 여기 빈방은 얼마나 되죠?”
“보스가 사용하시는 방과 하녀들이 사용하는 방, 그리고 저희 경호원들이 사용하는 방을 빼고 나면 16개가 남습
니다.”
“2인 1실로 하면 방은 충분하군요. 불러들여도 되겠습니까?”
“그건 보스의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이 저택 안에서만 생활하셔야 할 겁니다.”
“그럼요. 그리고 총기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총기는 왜?”
“우리 직원들은 전원 군복무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사시엔 전력의 한 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사용하는 것을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가가바는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듯 즉답을 한다.
“윗분들에게 여쭙지 않아도 됩니까?”
“대통령님께서 저희를 파견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
니다.”
“뭐죠?”
“보스를 경호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동원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제가 대통령님께 빚을 지게 되는 거군요.”
“마음 편히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가가바가 흰 이빨을 보이며 웃는다.
현수는 마음이 결정을 내렸다. 하여 이 지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사장님, 호텔로 연락하셔서 직원들을 이리로 불러들이세요. 호텔보다는 여기가 더 안전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