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알겠네.”
지사장이 통화하는 동안 현수는 식자재 보관 창고로 갔다. 그리곤 상당히 많은 양의 식료품들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또 불안한 마음이 든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현수는 방에서 쉬겠다고 하곤 즉시 몸을 빼냈다. 그리곤 비너스 호텔로 향했다. 물론 투명 은신 마법이 구현된 상태이다.
탕, 탕! 타탕! 타타타탕! 탕, 탕! 탕탕탕!
호텔에선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복면을 뒤집어쓴 괴한들이 권총과 벨기에의 제식소총인 FN FNC 돌격소총으로 사격하면 호텔 쪽 바리케이드 뒤에서 응사하는 상황이다.
허공으로 몸을 띄운 현수는 양쪽의 숫자를 파악했다.
호텔 쪽은 12명이다. 공격하는 쪽은 36명이나 된다. 화력 면에서도 경찰이 절대 열세이다.
그러는 사이에 무엇인가가 허공을 가른다.
휘이익! 콰앙! 콰앙! 콰아앙―!
굉렬한 폭발음들이 들린다. 괴한들이 수류탄을 던진 것이다.
곧이어 다시 총성이 이어졌다.
경찰 쪽에 사망자 또는 부상자가 생겼는지 응사하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 군데 뭉쳐 있다가 당한 듯하다.
12명 중 최하 8명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그냥 놔두면 전부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현수는 아공간에서 소총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곤 지체하지 않고 괴한들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교전 중인지라 현수의 총성은 다른 총성에 묻혔다. 하지만 총알마저 다른 것들처럼 허공만 가른 것은 아니다.
한 발 한 발 사격이 이어질 때마다 괴한들 가운데 하나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현수는 증거 확보를 위해 놈들의 팔꿈치를 쏘았다.
목숨을 잃지는 않겠지만 곧바로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않으면 평생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도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콩고민주공화국엔 이것을 완치시킬 의사가 없다.
아무튼 현수는 쉬지 않고 총을 쏘았다.
탕, 탕! 탕, 탕!
괴한들도 누군가 자신들을 노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일부는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기에도 바빴던 때문이다.
10여 분 후, 총성이 잦아들었다. 괴한들 전원의 팔꿈치가 박살 난 채 신음을 토하고 있다.
“사격 중지하세요. 그쪽은 괜찮으십니까?”
“누구요?”
“천지건설 직원입니다. 공격하던 놈들을 모두 제압했으니 나와도 됩니다.”
삐뽀, 삐뽀, 삐뽀, 삐뽀……!
현수와 경찰 간의 대화가 이어질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찰차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했는데 이제야 오는 모양이다.
“무기를 버리고 손을 머리 위에 올리시오.”
경찰의 말에 현수는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조금 전 사용하던 총은 아공간에 담긴 상태이다.
“진짜 천지건설 직원입니까?”
“네, 김현수 과장입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잠시 기다리십시오.”
경찰의 말에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후, 현수의 신분이 확인되었다. 이때 소리만 요란하던 지원 병력이 당도하였다.
이들에 의해 괴한들 전원이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반항하던 셋은 아예 벌집이 되어 죽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피해가 너무 크군요.”
“네에.”
아까 있었던 수류탄 공격에 경찰 6명이 목숨을 잃었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대로 놔뒀으면 전멸했을 것이다.
“사격 솜씨가 대단합니다.”
“네, 총을 좀 쏘지요.”
현수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자 경찰도 웃는다.
“여기 있는 우리 직원들을 제 집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또 다른 공격이 있을지 모르니 보호를 요청 드립니다.”
“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병력도 늘려서 배치하겠습니다.”
보아하니 현수가 누군지 아는 듯하다. 덕분에 일은 아주 빨리 마무리되었다.
천지건설 직원들은 경찰과 호텔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현수의 저택으로 이동하였다.
곧이어 24명의 경찰이 보호를 위해 배치되었다.
저택엔 현수와 지사장, 그리고 여섯 명의 하녀를 빼고 24명의 경호원과 16명의 천지건설 직원, 그리고 24명의 경찰이 머물게 되었다.
하녀들을 뺀 나머지 전원에겐 권총과 소총이 지급되었다. 이제 총을 쏠 수 있는 인원은 총원 66명이다.
저택의 지붕엔 기관총도 네 정이나 거치되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이제 한숨을 돌렸네.”
“네에.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죠.”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따르르르릉!
“네, 김현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후조토 쿠아레 경찰청장입니다.”
“아, 청장님! 반갑습니다.”
“네, 김 과장님 덕분에 일이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증언이 필요합니다. 시간 되시면 저희 청으로 와주십시오.”
“그러죠. 언제 가죠?”
“지금 병력을 보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현수가 경찰청에 당도한 것은 불과 20여 분 후이다. 헬리콥터를 보낸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짝, 짝, 짝, 짝! 짝짝짝짝!
경찰청장과 악수를 하는데 느닷없는 박수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많은 경찰들이 웃으며 손뼉치고 있었다.
“김현수 님 덕분입니다.”
“네?”
“아까 잡힌 놈들 전부 지나놈들이었습니다.”
“……?”
“확인해 보니 삼합회라는 조직의 폭력배들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사격 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아! 네에.”
현수는 싱긋 미소 지어주었다. 잠시 후, 청장실로 안내되었고, 진술을 시작했다.
현수는 직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비너스 호텔로 향하던 중 동료들이 공격받는 것을 알고 가장 뒤에 있던 괴한을 공격하여 총을 빼앗은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총격전이 이어지던 중 수류탄이 날아가 폭발하여 경찰 쪽이 어렵게 되자 조준사를 하였다.
죽이면 증거 확보가 안 되기에 다시는 총을 쏠 수 없도록 팔꿈치만을 노려서 쏜 것으로 이야기했다.
최종 진술을 마치고 사인을 하자 경찰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군인들 사이엔 현수가 Un homme sans peur, 즉 ‘두려움이 없는 사나이’로 칭해진다.
여기에 경찰들은 하나의 칭호를 더했다.
Le dieu du feu!
한국어로 번역하면 ‘사격의 신’이다.
후조토 쿠아레 경찰청장은 한국으로 치면 용감한 시민상 정도 되는 것을 수여하겠다고 했으나 현수는 극력 고사했다.
동료를 구하려다 경찰까지 구하게 된 것뿐이라는 겸손한 말에 경찰들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킨샤사의 모든 경찰의 호감을 사는 일이 되었다.
공식적인 일이 끝난 후 현수는 향후의 일에 대한 언급을 듣게 되었다. 물론 현수에 대해 지극한 호감을 가진 후조토 쿠아레 경찰청장의 입을 통해서이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지나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발주한 공사라도 애초의 계약사항에 미치지 못할 경우 중도 해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한다.
새롭게 시행하여야 할 사업에선 가급적 지나 기업들을 배제할 예정이다.
이것에 대한 반발로 지나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거리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에 군사적 조치는 불가능에 가깝다. 문화 교류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에 당장 단절이 되어도 그만이다.
남은 것은 경제적인 분야이다. 지나의 상품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품질은 엉망이다. 그렇기에 수입선을 다변화하면 굳이 지나와 거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경우 지나가 주변 국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마저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관심을 끄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대한민국이다. 다시 말해 지나가 하던 일 또는 하게 될 일들을 한국의 기업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모든 일에는 매개가 되는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바로 김현수이다.
다시 말해 현수를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의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도입되어 전파되는 중이다.
발전을 위한 롤 모델이 되는 국가이니 향후엔 보다 적극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의 각종 사업을 해결해 달라는 뜻이다.
경찰청장이 말하길 이는 대통령과 내무장관의 뜻이라 한다.
그럼에도 미리 언질해 주는 것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콩고민주공화국의 개발 사업에 뛰어들 한국 기업들을 일찌감치 선정해 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저택으로 되돌아온 현수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콩고민주공화국 현대화 사업의 첨병이 된 기분 때문이다. 혼자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재벌 중의 재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실리프 농장과 농산, 그리고 축산을 개발하기에도 버겁다.
그렇다면 몸담고 있는 천지그룹과 조경빈의 백두그룹 등 한국의 재벌들에게 일감을 나눠주어야 한다.
생각을 마친 현수는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리, 띠리리, 띠리리!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Bread가 부른 If라는 곡이다.
If a man could be two places at one time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다면
I’d be with you.
난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Tomorrow and today.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Beside you all the way.
당신 곁에 있겠어요.
신형섭 사장이 총각 시절 애인에게 불러주며 청혼했던 노래라 한다. 그 대상이 지금의 사모님이다.
잠시 음악을 들었다.
딸깍!
“천지건설 대표이사 비서실 조인경 대리입니다.”
“아! 조 대리님, 저 킨샤사의 김현수 과장입니다.”
“어머! 김 과장님. 반갑네요. 호호, 건강하시죠? 근데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하시고?”
조인경 대리의 반색하는 음색에 현수는 등에서 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홀로 좋아해 주는 이 여인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해서이다.
“사장님 계시면 바꿔주시겠어요? 긴급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호호, 물론입니다. 근데 맨 입엔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호호, 농담이에요. 사장님 바꿔 드릴게요. 대신 귀국하시면 데이트 한 번 해요. 아셨죠?”
조 대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대기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
이번에도 감미로운 음악이 들린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둘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Is to save every day
Till eternity passes away
Just to spend them with you.
영원토록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아껴두는 거예요.
짐 크로스라는 가수가 부른 Time in a bottle이라는 노래이다. 이번에도 가사를 음미하고 있었다.
딸깍―!
“아! 김 과장, 그렇지 않아도 자네와 통화하려 했는데 전화 잘 했네.”
“네, 사장님! 긴급히 보고 드릴 게 있는데 전화로는 말씀드리기 그렇습니다. 일시 귀국을 허락해 주시면 들어가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오게. 자넬 보러 가려던 참인데 잘 되었네.”
『전능의 팔찌』 제1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