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그렇기에 이상하다 싶은 생각을 한 것이다.
아무튼 현수의 긴 이야기가 끝났다.
“휴우∼! 대단하군. 자네 우리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거 어떤가?”
“네?”
“우리 백두그룹은 천지그룹보다 규모가 조금 작네. 하지만 재계 순위 6위이네. 자네를 임원급으로 스카웃하고 싶은데 어떤가?”
“아버지……!”
“넌 잠시 빠져 있어.”
끼어들었던 경빈은 찍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왜 현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조경빈의 부친은 백두그룹의 창업주인 조연호의 장남이다. 아울러 백두그룹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백두화학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조인성 백두화학 회장은 현수가 당도하기 전 비서로 하여금 천지건설 김현수 과장에 대한 조사를 시켰다.
그리고 놀라운 보고를 받았다.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궈낸 성과를 알게 된 것이다.
잉가댐 및 발전소 공사와 최근 신문에 발표된 총연장 2,000㎞짜리 고속도로 공사 수주가 모두 현수의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천지약품이라는 현지 회사의 공동대표이사이며 이실리프 농산 및 축산 등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파악되었다.
“우리 계열사 가운데 백두사료라는 회사가 있다는 것은 아는가?”
“물론입니다. 카길과 퓨리나 등에 맞서는 토종기업이지요.”
“잘 아는군. 앞으로 자네와 협력할 일이 많을 것 같네. 그러니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떤가?”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천지그룹과의 인연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백두그룹에 도움이 되도록 할 생각이니 거두어주십시오.”
“……!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래야지. 그래, 그건 그렇고 거기엔 어떤 일들이 있는가?”
“아시다시피 콩고민주공화국은 후진국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발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니 세상을 보는 안목이 조금 좁습니다.”
“……!”
조인성 회장은 현수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러니 그쪽에 지사 비슷한 것을 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사를……?”
“네. 직원을 파견하셔서 백두그룹이 할 만한 일들을 찾아내십시오. 그걸 제게 알려주시면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등에게 알려 일이 성사되도록 하겠습니다.”
“……! 신경 써주어 정말 고맙네.”
조인성 사장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찌 어른으로부터 절만 받고 있겠는가! 현수 역시 얼른 맞절을 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경빈이를 잘 이끌어주게.”
“네……?”
“저 녀석 순 맹탕이야. 자네 같은 인재가 곁에서 조언해 주면 언젠가는 사람 노릇하겠지. 안 그런가?”
“에구, 절 너무 높이 평가하신 듯합니다. 회장님!”
“아니야. 자네 같은 인재를 놓친 게 아까우이. 근데 왜 우리 백두그룹엔 입사 지원을 안 했나?”
조인성 사장은 현수에 대한 보고를 받은 직후 계열사 전체에 입사 지원 경력을 확인토록 한 바 있다.
만일 현수가 지원했는데 떨어뜨린 계열사가 있다면 담당자에게 심한 쫑코를 먹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백두그룹 계열사에 입사지원서를 낸 적이 없다.
재계 6위인 백두그릅에서 3류대학 수학과 출신을 뽑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지원서를 안 낸 게 아니라 못 낸 겁니다. 회장님!”
“끄으응! 그래도 한번 내보지.”
조인성 사장은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백두화학을 나설 때 현수는 조인성 회장의 비서실장이 로비까지 내려오는 배웅을 받았다.
택시를 타려는데 전화가 진동을 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김 과장?”
“네, 사장님!”
신형섭 사장의 전화이다.
“자네 지금 어디에 있나?”
“네……? 여긴 서초동인데요.”
“흐음, 다행이군. 그룹 회장님이 자넬 보자고 하시네. 올 수 있지?”
“네? 그룹 회장님이요?”
“그래, 우리 천지그룹의 이연서 회장님께서 자넬 보자고 하시네. 그러니 웬만큼 급한 일 아니면 얼른 본사로 들어오게.”
“네, 알겠습니다.”
아직은 천지건설 직원이고, 신형섭 사장은 회사의 대표이사이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가겠다 한 것이다.
“어서 오세요.”
“네, 조 대리님.”
회사에 당도하자 비서실 조인경 대리가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네, 어디로 가면 되죠?”
“사장님 방에 계십니다.”
“알았습니다.”
천지건설은 그룹 회장의 돌연한 방문에 긴장한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야말로 쓸고, 닦고, 문지르고, 조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현수가 들어서자 신형섭 사장이 소개를 한다.
“아! 어서 오게. 회장님, 이 친구가 김현수 과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해외영업부 킨샤사 지사의 김현수 과장입니다.”
“흐음……. 앉게.”
“네.”
이연서 회장은 맨주먹으로 천지그룹을 일군 경제계의 거물이다.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기에 70이 넘은 노인이지만 5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현수는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이 친구 인사기록 카드 좀 볼 수 있을까?”
“네, 회장님!”
신형섭 사장이 공손히 파일을 건네자 말없이 내용을 읽는다.
현수는 그룹 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일개 과장인 자신을 왜 보자고 했는지 이유를 몰라 말없이 기다렸다.
“흐음…….”
이 회장은 뜻 모를 침음만 내곤 현수를 빤히 바라본다. 물어본 게 없으니 할 말이 없던 현수로선 곤혹스런 시간이다.
그렇게 1분쯤 지났다.
“허험, 회사에 큰일을 해줬군. 수고가 많았네.”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신 사장으로부터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네.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겠는가?”
“네에. 며칠 전 잉가댐 현장을 반군과 지나인들이 공격하는…….”
현수는 또 한 번 자세한 이야길 해야 했다.
총격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회장과 사장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세스나기를 전세 내어 공수특전대원처럼 현장에 접근한 이야길 들을 때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 대목에서 신형섭 사장은 현수가 얼마나 총을 잘 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1차에 이어 2차 습격까지 설명하곤 곧바로 비너스 호텔에서의 총격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대목에서 둘은 또 한 번 깜짝 놀란다.
직원들이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연서 회장은 깊은 침음을 낸 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위험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라고 하였다.
다음엔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과 내무장관을 만났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하여 지나와의 결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일 일에 대한 추천권을 얻었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정말 대단하군……!”
이 회장은 현수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눈빛이 매우 반짝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엄청난 결과를 얻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일을 우리 회사가 전부 할 수는 없겠지?”
이 회장은 욕심이 났다. 한 나라 전체를 일으켜 세우는 엄청난 대역사를 할 수만 있다면 독식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지그룹은 경쟁 상대가 없는 재계 1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능력 부족이라는 상념이 스친 듯하다.
“아무튼 자네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잘해주게.”
“네, 회장님!”
“고맙네. 회사를 위해 정말 큰일을 해주었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현수는 겸손하게 고개 숙였다. 이때 이 회장의 시선이 바뀌었다.
“신 사장!”
“네, 회장님!”
“보너스 두둑하게 지급하게.”
“네? 아, 네에.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직원에게 베풀라 하니 기분 좋은 듯 웃음 짓는다.
“김 과장은 이만 가도 좋네. 만나서 기분 좋았네.”
“네, 회장님! 저도 재계의 큰 어른이신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래, 조만간 또 보세.”
“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현수는 정중히 예를 갖추고 사장실을 나섰다.
“끝나셨어요? 자, 이거 드세요. 어머, 회장님을 뵙고도 진땀 안 흘리신 거 보니 김 과장님 강심장이신가 봐요.”
조인경 대리가 건네는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들이킨 현수는 빙긋 미소 지었다.
“잘못한 게 없으니 진땀 흘릴 일이 없었던 겁니다.”
“회장님과 좋은 일로 독대한 분 치고 승진하지 못한 분이 없대요. 미리 축하드려요, 진급하실 거. 이제 차장님이 되시는 건가요?”
“김칫국 먼저 먹다 체할 수 있어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어머! 겸손도 하셔라. 호호, 아무튼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네에,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현수는 천지건설 본사를 나섰다. 그리곤 아차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득 크론 식당이 생각나서이다.
* * *
“계세요?”
크론 식당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허름하고, 손님은 보이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약간 어두운 실내엔 인적이 없었다.
현수는 문득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은 말기암도 거뜬하게 물리치는 만능 해결사이다. 그렇기에 소화기 계통에 이상이 있는 정도는 금방 치유시킬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큰 소리를 내서 그러는지 예상 외로 금방 반응이 온다.
“잠시만요.”
두리번거리던 현수는 자리에 앉았다. 온 김에 해장국이나 먹으려는 것이다. 이때 식당 주인이 나왔다.
“어서 옵……. 어라! 자넨 그때 그……!”
크론 식당의 주인은 현수를 보자 반색한다.
“그땐 고마웠네. 정말 고마워. 자네 덕에…….”
이 사내 또 울려고 한다. 현수는 얼른 웃어주었다.
“하하, 네에, 안녕하시죠? 사모님은요? 어디 계세요?”
“집 사람……? 집 사람은 안에 있네.”
“어떻게 되셨는지 진맥해 봐도 되죠?”
“그, 그럼. 근데 잠시만 기다리게. 한 10분만 기다려 주게.”
“네? 왜요?”
현수는 혹시 뭔 일이 있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못 보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집 사람 목욕시키던 중이거든.”
“아, 네에. 그럼 천천히 하세요.”
“그러겠네. 잠시만…….”
주인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들으려 하면 들을 수도 있지만 현수는 그러지 않았다.
“드, 들어오게.”
“네에.”
내실로 들어간 현수는 소파에 앉아 있는 환자를 볼 수 있었다. 전엔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는데 그간 살이 약간 오른 듯하다.
“안녕하셨죠?”
“네에. 덕분에요. 전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어요.”
“하하, 네에. 근데 지금은 어떠세요?”
현수의 물음에 대답한 이는 남편이다.
“그제까진 미음만 먹었는데 이젠 밥을 먹네. 그래도 전처럼 쏟아내지 않지. 모두 자네 덕이네.”
환자는 남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짓는다.
“다행이네요. 진맥해 봐도 되죠?”
“그, 그럼요.”
살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앙상한 손목을 내민다.
현수는 얼른 맥문을 쥐었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은 마나가 환자의 체내를 파고들었다. 신체 곳곳을 휘돌아 온 마나는 큰 이상 없음이라는 보고를 했다.
다만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는지라 기력이 약간 허할 뿐이다.
“정말 많이 좋아지셨네요. 이제 섭생만 제대로 하시면 예전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환자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병원엔 가보셨어요?”
“그, 그게…….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미안하네.”
크론 식당은 여전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아닙니다. 제게 왜 미안해하십니까?”
“그래도……!”
“아무튼 사모님이 좋아지셔서 다행입니다. 효과가 없을까 봐 걱정 많이 했거든요.”
“모두 자네 덕이네. 고맙네.”
또 고개 숙여 절을 한다.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말을 돌렸다.
“식당이 안 되면 다른 걸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사람이 좋아져서 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직하는 걸 알아봤네. 근데 결원이 없어 안 된다고 하네. 그리고 내 나이가 있어서 다른 곳에선 받아주지 않고……. 알다시피 요즘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라서…….”
주인의 얼굴엔 삶에 지친 주름과 피곤함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