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83화 (283/1,307)

# 283

“혹시 국내 말고 외국에 취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외국에……?”

“네, 콩고민주공화국에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생산량 증대를 위한 기술지원을 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콩고민주공화국? 아프리카의……?”

“네, 적도 인근에 있는 그 나라 맞습니다.”

“흐음……!”

뜻밖의 제안이기에 주인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현수는 주인이 받아들이도록 부언설명을 했다.

“가족 모두 가셔도 되고, 혼자 가셔도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숙소가 제공될 겁니다. 아이들이 갈 경우엔 현지에 조성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됩니다.”

“……!”

“한국에서 하시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도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지내실 수 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게. 집 사람도 아직 쾌차한 것도 아니고…….”

“물론입니다. 언제든 마음에 결정이 내려지면 이리로 연락주세요.”

현수가 건넨 명함은 이실리프 상사 총괄비서 민주영의 것이다.

“이 친구에게 성함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 고맙네. 정말 고맙네.”

남편은 현수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절을 했다.

“그나저나 배가 좀 고픕니다. 해장국 한 그릇 어떻게 안 될까요?”

“잠시만 기다리시게. 금방 대령하지.”

“하하, 네에. 사모님! 그럼 몸 조리 잘 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크론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나선 시각은 오후 9시경이다.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어 이현우와 조경빈을 만났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은 현수는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보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사장님이 아침부터 웬일이시지?’

현수가 전화기를 들자 신형섭 사장의 음성이 들린다.

“김 과장! 좋은 아침이지?”

“네, 사장님.”

“오늘 회장님께서 자넬 또 보자고 하시네. 시간 있나?”

“네에, 그럼요.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죠?”

“오후 6시쯤 신라호텔 23층에 있는 콘티넨탈로 가게.”

“알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죠?”

“글쎄? 그건 나도 모르네. 조금 전 회장님이 전화하셔서 시간과 장소만 말씀하신 거라.”

“알겠습니다.”

“그 전에 본사에 한번 들리게. 이따 4시쯤 어떤가?”

“네, 알겠습니다. 4시에 들어가겠습니다. 그 전엔 개인적인 일을 봐도 되는지요?”

“물론이네. 4시에 오기만 하면 되네.”

“사장님 방으로 가면 됩니까?”

“그래, 이따 보세.”

“네에.”

전화를 끊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룹 총괄 회장이 보자는 뜻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 전화냐?”

“아, 어머니. 저희 회사 사장님이세요.”

“출근이 늦었다고 뭐라 하시는 거야?”

“아뇨. 천천히 나오라고 전화주신 거예요.”

“좋은 분이신가 보다.”

“네에, 그럼요. 근데 아버지는요?”

“벌써 출근하셨지.”

“아, 네에.”

“쉬거라.”

어머니는 설거지 하러 싱크대로 가셨다. 현수는 잠시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다 제 방으로 갔다.

“흐으음!”

책상 위의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잠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했다.

먼저 천지약품으로 보낸 백신 물량을 확인해야 한다. 이춘만 지사장이 차질 생기면 안 된다면서 신신당부한 일이다.

다음엔 이실리프 농산 및 축산 등을 위한 각종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농기계는 물론이고 벌목기계 등의 수배가 어찌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실리프 어패럴의 군납 문제도 알아봐야 한다.

박근홍 사장이 일은 진행시키고 있지만 순조롭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현재 군납되는 전투복 등은 상품의 가치에 비해 납품가가 너무 상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납되는 뇌물의 고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지급할 군복이다. 그런 물건마저 뇌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따라서 현수는 그런 걸 제공할 의사가 없다.

그렇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어쩌면 드모비치 상사로의 수출이 먼저일 수도 있겠구나.’

현수는 추운 겨울을 쉽게 보낼 수 있는 상품 개발도 해야 함을 느꼈다. 하여 인터넷으로 각종 의류를 살펴보았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려면 품질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 하여 몇몇 상품의 사진을 스크랩해 두었다.

‘참, 현우에게 그 이야길 안 했군.’

경빈은 백두마트 상무이사이라 상관없지만 군대 후임인 이현우는 제대 후 지금까지 백수이다. 본인이 원하면 자리 하나 만들어줄 생각을 한 것이다. 이수정을 떠넘겼으니 책임지려는 것이다.

“주영이 녀석을 도우라 할까? 아님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지사를 책임지게 할까?”

나직이 중얼거리던 현수의 뇌리로 불현듯 스치는 상념이 있다.

‘그나저나 아공간 속의 무기들은 어떻게 하지?’

공격헬기 열 대를 완전 무장시킬 수 있는 각종 포탄들이 있지만 런처가 없다.

‘에이, 놔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기겠지. 참, 그것도 확인해 봐야 하는데…….’

문득 떠오른 상념을 얼른 노트에 옮겨 적었다.

외출하기 전 마나량을 점검했다. 마법을 쓸 일이 뭐 있겠냐마는 만일을 위한 점검이다.

* * *

“민 사장님!”

“아! 김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네, 회사는 팡팡 돌아가죠?”

“하하, 그럼요! 다 김 사장님 덕분입니다.”

민윤서 사장은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시키기 위해 두 개의 제약사를 더 인수했다. 생산 설비가 더 필요했던 때문이다.

“사모님은 좀 어떠세요?”

“병원에서 깜짝 놀라더군요. 사장님 덕분에 다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태아도 괜찮죠?”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마법 연합군이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하, 그럼요. 그 녀석 쑥쑥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구, 감사는요, 우리 사이에……. 그나저나 백신 생산은 어때요?”

“전력을 다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빠듯하기는 하지만 납기에 맞춰 보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기에 둘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비서가 커피를 내왔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민 사장이 생각난 일이 있다는 듯 표정을 굳힌다.

“김 사장님! 전에 저희 집에서 만났던 형님 기억하십니까?”

“형님이요? 아! 국방과학연구소에 계시는 윤강혁 소령님이죠?”

“네! 기억하시는군요.”

“물론이죠. 근데 그분은 왜요?”

지금껏 하던 이야기의 논점에서 벗어난 인물에 대한 말이었기에 현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이 도움을 청하셨는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으셔서…….”

민윤서 사장이 말꼬리를 흐린다. 뭔가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뭔데요? 그냥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저어, 그게…….”

또 말꼬리를 흐린다.

“그냥 말씀하셔도 됩니다.”

현수의 말에 민 사장이 침을 꿀꺽 삼킨다.

“형님이 속한 팀의 팀장님이 계시는데 그분 아들도 중증근무력증이라고 합니다.”

“……!”

현수는 이 대목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챘으나 대꾸하지 않았다. 이때 민 사장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김 사장님에게 부탁을 해보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

현수는 대꾸하지 않고 침중한 표정만 지었다.

“치료제가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형님이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셔서…….”

민 사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곤 잠시 현수의 눈치를 살핀다. 이때 현수는 어떻게 할까 고심하느라 눈의 초점을 흐린 상태이다.

“알겠습니다. 형님께 곤란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선에서 끊었어야 하는데 괜히 말씀드려 심란하게 했네요.”

민 사장은 내친 김에 통보하려는 듯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곤 번호 검색 후 연결을 시도했다.

연결음 소리가 몇 번 나는가 싶더니 전화를 받는다.

“매제? 매제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오늘 한가해?”

저쪽에서 전화 받는 소리가 들린다. 윤강혁 소령의 음성이 맞다.

“형님, 전에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전에 뭐……? 한가해지면 술 마시자고 한 거? 이거 어쩌지? 나 요즘 엄청 바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해.”

“아니요.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그럼 뭐……? 아! 그 김 사장님하고 연락되었어? 해준대? 우리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면 돼?”

당장에라도 비행기를 탈 기세이다.

“아뇨. 김 사장님은 지금 귀국해 있고요. 그 치료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전에 말씀드렸듯 치료제가 딱 두 개뿐이었는데 다 썼나 봐요. 그래서…….”

“그럼 그 치료제를 다시 만들면 되잖아. 안 그래?”

“그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민 사장은 여전히 무표정한 현수를 흘깃 바라보곤 대화를 이었다.

“하여간 치료가 어려울 것 같으니 그렇게 아시라고 전화했어요.”

“이, 이봐, 매제! 그 친구 연락처를 내게 알려주면 안 돼? 내가 직접 사정해 볼게. 진짜 꼭 치료가 돼야 해서 그래.”

“형님, 국내에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 사람들 모두 치료가 급한 사람들이에요.”

민 사장은 윤 소령이 너무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고 느낀 것이다.

“알지, 알아! 하지만 이쪽도 너무 중요해. 그 때문에 여기 일의 진척이 느려지고 있다고. 그래서…….”

이후의 말은 너무 빨리해서 그런지 현수의 귀까지 당도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통화를 했다.

“하여간 형님! 이쪽으론 기대하지 마세요. 네, 네. 아뇨. 네. 네. 네. 다음에 술 한잔하면서 얘기해요. 네, 네. 그럼 이만……!”

통화를 마친 민 사장은 현수의 눈치를 살폈다. 괜한 심려를 만들어준 게 미안해서이다.

이때 현수의 시선은 탁자 위의 신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 정치인의 스캔들이 일면 톱기사이다. 큰 활자를 읽어보니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연예인 성접대를 받았으며, 본인이 소유한 기업의 장부를 조작하여 탈세했다는 내용이다.

옆에는 꼴 보기 싫은 쪽바리 나라 수상 고이즈미의 사진이 올라 있다. 기사 본문은 그 아래에 있기에 신문을 펼쳤다.

어제 오후, 고이즈미는 한일우호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때 모 일간지 기자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기사 내용은 고이즈미가 한 말을 축약해 놓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이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므로 더 이상 재론할 여지가 없다. 아울러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며, 동해는 일본해로 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 파크 공립도서관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요구했다.

이를 보는 순간 현수는 혈압이 오름을 느꼈다.

“이런,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깔 놈이……!”

갑작스레 뒷목이 뻣뻣해짐을 느끼는 순간 민 사장이 말을 건다.

“김 사장님!”

“아! 네에.”

“미안합니다. 괜한 마음을 쓰게 해서.”

현수가 방금 얼굴을 찡그린 것을 달리 해석한 모양이다.

“아닙니다. 그보다 윤 소령님 현재에도 국방과학연구소에 재직 중이십니까?”

“네, 아직은……. 근데 왜……?”

5장 얼떨결 맞선

“윤 소령님 속한 팀의 팀장님의 아들도 중증근무력증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다시 전화하세요. 치료해 준다고…….”

“네?”

민 사장은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 반문했다.

“치료해 주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네, 국방과학연구소 항공 유도 무기체계 팀장님을 소개해 달라고 하세요.”

“네……?”

“그분에게 전화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민 사장은 얼른 재다이얼을 실행시켰다.

띠리리리링∼!

“매제, 왜?”

“형님, 김 사장님이 마음을 바꾸셨어요. 치료해 준답니다.”

“뭐라고? 진짜……?”

“하하, 네에. 치료해 준대요. 대신…….”

“대신 뭐……? 말만 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고, 술 사달라면 얼마든지 사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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