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그리고 전체적인 설계는 업계 기술진들이 모여서 작업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기술 교류를 통해 업계 전반의 기술력 제고를 꾀하려는 것이다.
공사비는 극동 솔라파워에서 받는 즉시 분배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태양광발전 업계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다들 극동 솔라파워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모 축소를 이야기하면 잔뜩 기대들 하고 있는데 체면이 구겨지는 것이다.
하여 주 사장의 얼굴에서 맥 빠진다는 표정이 읽힌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일련의 상황을 모른다. 그렇기에 왜 표정이 그런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묻는다.
“왜 공사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신 거죠?”
“네……?”
공사 축소를 이야기하러 온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주 사장은 더 묻지 못했다.
“오늘 온 건 공사 규모가 전보다 훨씬 더 커져서 주 사장님과 상의하려고 온 겁니다.”
“네에……?”
주 사장의 눈이 커지는 순간 미스 김이 들어와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다방 레지처럼 곁에 주저앉았다.
방금 현수가 한 말을 들은 때문이다.
“두 분 커피 드세요.”
“아, 네.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근데 공사 규모가 더 커져요?”
미스 김이 버릇없이 끼어들었지만 주 사장은 고개만 끄덕여 동의함을 표시했다. 그게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네, 우선 주택 3만 호에 대한 발전 설비가 추가될 거예요.”
“네에? 사, 3만 호요……?”
“네, 한국으로 치면 24평짜리 주택들이 건설될 거예요. 여기에 필요한 전력으로 태양광발전과 화력발전을 병행할 생각이에요.”
“24평짜리 3만 호면…….”
상상도 안 되는지 주 사장은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암산해 보았다.
24평 30,000호=720,000평.
“그리고 새로운 농장이 추가될 거예요. 총 면적은 3,000㎢ 정도 되니까 한국식으로 따지면 약 9억 평 정도 되죠.”
“헐……! 9억 평……! 꿀꺽!”
주 사장은 너무도 놀라운 수치에 침만 삼켰다. 미스 김도 상상조차 되지 않는 면적에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거긴 주로 농사를 지을 건데 그래도 고용인들을 위한 주택이 필요합니다. 도정공장 및 가공 공장과 창고 등도 지어야 하니…….”
“잠깐만요. 먼저 말씀하셨던 거기엔 커피와 바나나, 그리고 야자를 재배한다고 하셨죠?”
“네, 그 인근에 우사, 돈사, 계사 및 가공 공장 등을 지을 거구요.”
“방금 말씀하신 곳은 거기완 다른 곳인가요?”
“그렇습니다. 추가로 조성될 곳이지요. 그리고 말나온 김에 말씀드리는데 이전의 곳도 규모가 대폭 늘어났습니다. 거긴 약 1,500㎢가 될 겁니다.”
“허얼……!”
“세상에 맙소사!”
주 사장과 미스 김은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렸다.
“아무튼 추가로 조성될 곳도…….”
말을 이으려던 현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 사장의 질문 때문이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두 곳에 농장 등을 만든다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한 곳엔 농사만 짓고 다른 곳은 커피농장과 축산을 하는 겁니까?”
“네, 그럴 생각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네……?”
현수가 눈을 크게 뜬다. 예상치 못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혹시 전염병은 고려하지 않습니까? 한 군데 몰아두면 효율은 좋을지 몰라도 벼멸구나 키다리병, 또는 도열병 같은 게 돌면 어떻게 될 지 예상치 않았습니까? 축산도 그렇습니다. 구제역도 그렇고 돈 콜레라나 조류독감 같은 것도 있잖습니까.”
“아……!”
현수는 지금껏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이에 주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저는 농촌 출신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농장을 조성할 때 이런 점을 감안하셔야 할 겁니다.”
“네, 조언 감사합니다. 충분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 사장이 입을 다문다. 이때 미스 김이 다시 나섰다.
“사장님! 아까 공사 규모가 더 커진다고 하셨는데 이전에 비해 얼마나 더 커지는 건가요?”
“전에 말씀드렸던 반둔두 지역은 규모가 두 배 정도 늘어날 거고, 그거의 두 배 정도 되는 공사가 추가될 겁니다.”
“세상에……!”
맨 처음 제시했던 공사도 커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 공사가 열 배쯤 늘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태양광발전 관련 인원이 총동원 되어야 할 판이다. 물론 그 중심에 극동 솔라파워가 자리하게 된다.
미스 김은 상기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 정말 괜찮다. 근데 결혼했을까? 물어볼까? 안 했다고 하면 확 대시해 봐?’
미스 김은 군침을 삼키며 현수를 뜯어보았다. 눈빛 작렬이다. 이때 주 사장이 입을 연다.
“김현수 사장님!”
“네.”
“방금 말씀하신 거 확정 사항입니까?”
“아뇨, 더 할 일이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자원 부국이기는 하지만 최빈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가동비용이 필요치 않은 태양광발전 설비가 많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
“그걸 위해 기술 인력 확충을 서둘러 주셔야 할 겁니다. 없으면 교육을 통해서라도 늘려야 하고요. 왜냐하면 지금 언급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헐……!”
주윤우 사장은 더 이상 감탄할 기력이 없다는 듯 입만 벌렸다. 미스 김은 아예 멍한 표정이다.
이때 누군가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
주 사장과 미스 김은 소리를 듣지 못 했는지 반응이 없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작업복 차림 사내들이 보인다.
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일제히 허리 숙여 절을 한다.
“감사합니다. 김현수 사장님! 열심히 일해서 보답하겠습니다.”
극동 솔라파워 직원들은 백수로 전락해서 도시 빈민이 될 자신들이 어엿한 직장인이 될 수 있도록 한 사람이 누구인지 들은 바 있다.
그간 볼 기회가 없었지만 사무실에 와 있다 하니 만사를 제쳐두고 왔다. 노크를 했는데 반응이 없어 갔나 싶었다.
하여 문을 열었다. 주 사장과 미스 김의 등이 보인다.
맞은편에 젊은 청년이 있다. 말로만 듣던 김현수이다. 그렇기에 일제히 허리를 꺾은 것이다.
“아……! 네에, 반갑습니다.”
현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앉아서 절 받기가 계면쩍은 때문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주 사장이 직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여기 계신 김현수 사장님 덕분에 우리 극동 솔라파워는 회생할 수 있었네. 그런데 오늘 우리 회사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태양광발전 회사가 되게 생겼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회사는 방금 이전보다 열 배 늘어난 공사를 하게 되었네.”
“네에……? 여, 열 배요?”
“허걱……! 열 배라니…….”
“말도 안 돼. 그걸 어떻게 우리가…….”
직원들 모두 얼이 빠진 표정이다. 현수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하여 보다 자세한 공사 규모를 설명해 주었다.
“만세! 만세! 김현수 사장 만세! 극동 솔라파워 만세!”
현수가 극동 솔라파워를 떠나는 순간 뒤에서 터져 나온 환호성이다. 기분 좋아진 현수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아! 어서 오게.”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던 신형섭 사장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현수는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이기 때문이다.
“앉지.”
“네.”
현수가 자리에 앉자 신 사장은 궁금한 것을 적어놓은 리스트를 들고 왔다. 그리곤 하나하나 물어본다.
천지건설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해야 할 공사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는 잉가댐 및 발전소 건설이다.
둘째는 반둔두 지역에 조성될 주택 3만 호와 각종 축사와 임가공 공장, 그리고 근린생활 시설들이다.
웬만한 신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것과 맞먹는다.
셋째는 총연장 2,000㎞로 예상되는 4차선 고속도로 건설이다.
천지건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어떤 건설사도 수주해 보지 못한 엄청난 금액의 공사이다.
네 번째는 비날리아 지역에 조성될 신도시 개발 공사이다. 이것 역시 엄청난 규모이다.
이들 공사를 수행하기 위해 천지건설은 시멘트 제조 공장과 원유 정제 공장 등을 지어야 한다.
도시 건설과 도로 포장에 필요한 자재를 얻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비로 받아낼 콜탄, 구리, 금, 은, 원유를 채굴하여야 하고, 그것들을 가공하는 공장들도 지어야 한다.
천지건설은 분명 대한민국 건설사 가운데에서도 큰 회사이다. 그럼에도 맡은 공사를 소화해 내기 힘들다.
다시 말해 다른 일 하나도 안 하고 오로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주한 공사만 하기에도 벅차다.
뿐만이 아니다. 향후 어떤 공사가 얼마나 더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제 막 개발에 눈을 뜬 나라이다.
그런데 자력으로 공사할 능력은 별로 없다. 따라서 나라 하나를 건설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 비해 영토가 무려 23.5배나 넓은 나라이니 얼마나 할 게 많겠는가!
신 사장은 아무리 퍼서 써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만난 기분이다. 이 우물은 오염되지 않았으며 달콤하고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얼마나 좋겠는가!
메모를 마친 신 사장은 현수를 다시 보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일궈낸 장본인이다. 너무 예뻐서 딸이 있으면 사위 삼고 싶다.
“조만간 좋은 일 있을 걸세. 그때까지 출국하지 말고 있게. 아!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이거… 장소가 바뀌었네.”
신 사장이 건넨 것은 메모지였다.
롯데호텔 신관 Pierre Gagnaire `a Seoul 오후 6시
예약자 : 이연서 회장님
현수가 쪽지를 보는 사이 신 사장이 입을 연다.
“회장님께서 자네에게 저녁을 사주신다고 하셨네.”
“그래요? 근데 사장님은 안 가십니까?”
“난, 바빠서 못 가네. 그리고 공을 세운 건 내가 아닌 자네지. 기왕에 사주신다니 비싸고 맛있는 걸 먹게.
“하하, 네에.”
신 사장의 익살스런 표정에 현수는 환히 웃었다.
“여기 피에르 가니에르가 몇 층에 있죠?”
“네, 손님! 35층에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저쪽입니다.”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는 상냥했다.
“흐음, 껄끄러운 자리가 되겠군.”
대하기 어려운 사람과의 식사 자리인지라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은 직장인이다. 그러는 사이에 35층에 당도했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네, 이연서 회장님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을 겁니다.”
“아, 네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지나의 치파오2)를 본 뜬 듯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세련된 드레스를 걸친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여섯 명이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이다.
창밖을 보니 북한산과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 좋은 자리이다.
“이 회장님은 아직 도착 전이십니다. 이곳에 계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잠시 서울 시내를 두루 살폈다. 프랑스 파리와 러시아의 모스크바, 일본의 동경 등지와 비교해도 처지지 않을 정도이다.
대략 5분쯤 구경했을 때 문이 열린다. 정각 6시이다.
“흐음! 자네가 먼저 와 있었군.”
“네,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연서 회장이 들어서기에 현수는 깍듯하게 절했다. 고개를 드니 이 회장의 뒤에 웬 아가씨 하나가 있다.
“이쪽은 내 손녀일세.”
“아! 그렇습니까?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이수린이에요.”
“흐음, 자리에 앉지.”
“네.”
자리에 앉자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물 잔에 물을 채우고 간다. 잠시 후, 웨이터가 온다. 그리곤 각자의 앞에 메뉴가 적힌 것을 놓았다.
“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김 과장은 무엇을 들겠는가?”
“네? 아, 회장님 먼저 주문하십시오.”
이때 이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Menu Exclusif로 주세요. 그리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이수린은 유창한 불어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조금 까탈스럽다. 어떤 건 살짝 익히고, 어떤 것은 바싹 익혀달라고 했다. 그리곤 식재료의 생산지까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