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89화 (289/1,307)

# 289

현수가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곤히 잠든 최윤준이 보인다. 너무도 편히 잠들어 있기에 잘못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정말 우리 윤준이가 다시 걷고 뛰고를 할 수 있을까요?”

“재활운동을 하면 금방 그렇게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강소현 여사는 연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군인에게 시집을 와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딱 하나 태어난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늘 엄마 맘을 흡족하게 해주던 녀석이다.

원하던 대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4학년 1학기에도 장학증서를 받아왔다.

그렇게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름시름거린다. 놔두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닌 듯하여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곤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중증근무력증에 걸렸으며 발병 첫해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말을 들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어떻게든 치료하려 했는데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하나뿐인 자식이기에, 너무도 잘 큰 자식이기에 부부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강 여사는 늘 눈물 속에서 살았고, 최 대령은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윤강혁 소령으로부터 한줄기 빛과 같은 이야길 들었다. 윤영지가 같은 병에 걸렸었는데 어떤 청년이 치료해 줬다는 것이다.

즉시 고쳐 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런데 치료제가 이제 겨우 두 병밖에 남지 않아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매달릴 곳이 없었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멀고 먼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출장을 갔으며 언제 올지 모른다 하였다.

하여 최 대령 부부와 윤준은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을 찾아 비자 신청을 했다. 윤준의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갈 생각이다.

가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매달릴 생각을 한 것이다.

어제 비자가 나왔기에 수속을 밟아 출국하려는데 윤강혁으로부터 희소식이 왔다. 김현수가 마음을 바꿔 치료를 해준다는 것이다.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인지라 어젯밤은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현수가 왔다. 치료하겠다고 방문을 닫고 들어간 지 30분 만에 나온다. 그리곤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한다.

아들을 보니 정말 괜찮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림에도 환히 웃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난 후 현수는 윤강혁 소령의 차에 타고 있었다.

“이제 약속 지켜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꼭 지킬 겁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치료한 겁니까? 별다른 진단 장비나 의료기구도 없었는데.”

“기 치료를 믿으십니까?”

“기(氣)요?”

“그냥 그 정도만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당부 드리는데 소문내지 말아주십시오. 이제 딱 한 병밖에 약이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도 발병할 수 있기에 남겨두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군인의 명예를 걸고 입에 지퍼를 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현수는 두 번째 와보는 천지대학교 건물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변한 건 하나도 없네.”

계절만 바뀌었을 뿐 발랄한 대학생들이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수가 이곳에 온 이유는 두 번째 표창장을 받기 위함이다.

킨샤사 현지에 급파된 계약팀으로부터 킨샤사로부터 비날리아 인근 지역까지 총연장 2,432㎞짜리 4차선 고속도로 공사가 확실하다는 보고가 온 결과이다.

잠시 후, 현수는 단상 쪽으로 이동 중이다.

시상자는 대표이사 사장인 신형섭이며, 이례적으로 이연서 그룹 총회장과 계열사 사장 및 임원들이 모두 자리에 있다.

현수의 뒤쪽엔 천지건설 직원들 대부분이 있다. 해외영업부 최영섭 부장도 있으며 인사부 이준섭 차장도 있다.

기획3팀장인 박진영 과장은 떫은 감을 씹은 얼굴로 앉아 있으며, 자재과의 곽인만 대리와 유민우 사원도 보인다.

뿐만이 아니다. 사장 비서실의 조인경 대리도 앉아 있고,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보는 것만으로도 안구 정화가 되는 강연희 대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현수가 단상 앞에 당도하여 신 사장에게 정중히 목례를 했다.

그와 동시에 신 사장의 치사가 시작되었다.

“에, 오늘 우리는 천지건설의 비약적인 도약에 크나큰 공헌을 한 김현수 과장에게…….”

신 사장의 치사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그간 있었던 일들이 요약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스나기를 타고 날아가 공수특전요원이 되었으며, 기막힌 사격 솜씨로 반군들을 물리친 이야기는 그야말로 무용담이다.

비너스 호텔에서의 총격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직원들은 전쟁터에서 건설공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나간다.

“…이에 당사는 김현수 과장을 특별 진급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임명장은 그룹 총괄 회장님이신 이연서 회장님께서 직접 수여하시겠습니다. 회장님……!”

신 사장이 시선을 돌리자 지금껏 점잖게 앉아 있던 이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곁에 있던 사장단 및 임원진들이 모두 일어서자 장내의 사원들 역시 모두 일어났다.

이 회장은 천천히 걸어 단상으로 왔다.

“아, 모두들 앉으세요.”

앉으라는 손짓까지 곁들이자 사원들이 일제히 착석하느라 작은 소음이 났다. 잠시의 소음과 함께 모두가 앉자 어느새 보조 연단 앞에 선 신 사장이 발언을 했다.

“지금부터 천지건설 해외영업부 김현수 과장에 대한 특별진급 임명장 및 포상금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발표는 그룹 총괄 회장님이신 이연서 회장님께서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신 사장의 말이 끝나자 이연서 회장이 잠시 현수와 시선을 맞춘다.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에 현수는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이 회장이 시선을 내리더니 기록된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임명장! 천지건설 해외영업부 김현수 과장은 당사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세운 바 있기에 사규 제37조 2항 회사에 큰 발전에 기여한 사원을 특별 진급시킬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천지건설 기획영업단 단장 겸 전무이사로 임명합니다. 2013년 9월 10일 천지그룹 대표회장 이연서.”

“와아아아아―!”

짝짜짜짜짝짝!

이날의 특별진급은 천지그룹 창사 이래 전무후무한 것이다.

천지건설은 수습사원,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부사장, 사장, 부회장, 회장의 순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밖에 부장 대우와 이사 대우라는 직함도 있다.

현수는 과장에서 단숨에 전무이사가 되었다. 무려 5계급이나 특진한 것이다. 재벌가의 직계 후손이 아니면 불가능한 진급이다.

모두가 환호하고 신기해하는 순간에 홀로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이 있다. 기획3팀장인 박진영 과장이다.

“말도 안 돼! 저 자식 입사한 지 2년도 안 넘었는데 전무이사라니? 아버지하고 같은 직책이잖아.”

박진영 과장의 말처럼 현수는 이제 겨우 입사 2년차이다. 그런데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의 전무이사가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임원들이 상무에서 퇴직한다. 그런데 현수는 그걸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래서 배가 아픈 것이다.

게다가 오늘 이 자리엔 오랜만에 귀국한 강연희 대리도 있다.

현수와는 나름 연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연적이 눈앞에서 까마득히 높은 전무이사가 되어버렸다.

본인도 능력이 있어서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더 크게 작용하여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과장으로 진급했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여신급 미모를 갖춘 강연희 대리의 마음만 얻으면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연적이 생겼다.

어이없게도 놈은 수습사원 딱지를 갓 뗀 새내기 사원이다. 게다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고, 3류대학 수학과 출신이다.

생긴 것도 허여멀건한 게 별 볼일 없다.

이런 놈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수시로 불러 압력을 가했다. 그러던 놈이 이제 님 자를 붙여야 하는 상사가 되었다. 그렇기에 박진영은 속이 쓰렸다.

하여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자재과의 곽인만 대리와 유민우 사원, 그리고 조인경 대리와 강연희 대리는 더 이상 환할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곽 대리는 그냥 아낌없는 찬사를 뜻하는 웃음이다.

유민우는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꼭 서야지 하는 야심찬 결심을 자축하는 웃음이다.

조인경 대리는 자신이 차지하고자 하는 사내가 너무도 멋져 웃고 있고, 강연희 대리는 저런 사내가 사랑 고백을 했다는 뿌듯함에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열렬한 환호가 잦아들 즈음 신 사장의 발언이 있었다.

“다음은 상금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참고로 이 상금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는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상금 수여식은 그룹 총괄 회장님이신 이연서 회장님께서 맡으시겠습니다.”

신 사장의 발언이 끝나자 이 회장이 나직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저음으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전무이사 김현수는 당사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한 바 있어 감사의 뜻으로 일금 100억 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합니다. 2013년 9월 10일 천지그룹 대표회장 이연서.”

“우와아아아……!”

“배, 백억 원? 세상에…….”

모두들 입을 딱 벌렸다. 직원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단상의 임원들 역시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는 모양이다.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고, 본인들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포상금이기에 그럴 것이다.

과장으로 진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현수는 5,000만 원에서 조금 빠지는 액수를 연봉으로 받았다.

그것과 비교하면 무려 200년치 연봉을 상금으로 받은 것이다.

재계에서 이연서 회장은 통 크기로 이름나 있다.

평상시엔 짠돌이처럼 절약, 절약을 외치지만 쓸 때가 되면 정말 화끈하게 쓴다는 평이다.

사실 오늘 지급된 포상금을 갖고 신 사장과 많은 대화를 했다.

신 사장은 대폭적인 승진을 하는 만큼 10∼20억 원 정도가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이 회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여 어젯밤의 대화까지도 액수가 결정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신 사장은 이 회장에게 포상금의 액수를 뜻하시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실질적인 주인이니 주인 맘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 결과가 100억 원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엄청난 액수의 포상금이다.

곽 대리는 물론 유민우 사원과 조인경 대리, 그리고 강연희 대리까지 눈은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박진영 과장만 사약을 삼킨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하물며 연적이 엄청난 액수를 상금으로 받았다. 속이 쓰리다 못해 빵꾸가 난 것 같다. 그렇기에 잔뜩 인상 쓰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신 사장의 추가 발언이 있었다.

“참고로 김현수 전문이사는 60세 정년까지 보직 및 근무가 보장됩니다. 그리고 기본 연봉은 60억 원부터 시작됨을 알려 드립니다.”

2012년 현재 금융감독원에 자료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임원 평균 연봉은 10억 3,300만 원이다.

GS건설은 6억 6,000만 원, 현대건설은 5억 7,800만 원이다. 포스코 건설은 3억 2,700만원, 대우건설은 2억 8,000만 원이다.

“커억―!”

“유, 육십 억……?”

“세상에 연봉이 60억이라니…….”

“그럼 한 달에 5억……? 하루엔……?”

“하루에 1,666만원! 한 시간엔 약 70만 원이야.”

계산 빠른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진다. 턱이 빠질 지경이다.

요즘 일반적인 알바비가 시간당 4,500원 수준이다.

현수는 그것의 약 155배를 받게 된다. 잠을 자든, 꿈을 꾸든, 화장실에 앉아 있든, 빈둥거리든 하루 24시간 내내 지급된다.

그러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헐……!”

모두들 탄성만 터뜨린다.

신 사장이 인비(人秘)라 할 수 있는 연봉을 밝힌 것은 이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사전에 현수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누구든 회사를 위해 공을 세우면 기대 이상의 포상이 내려진다는 것을 전 사원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사실 원래 책정되었던 현수의 연봉은 36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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