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90화 (290/1,307)

# 290

이 회장이 이를 60억 원으로 상향한 것이다. 기왕에 보여주는 것이라면 화려할수록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진급도 신 사장은 상무이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전무이사가 된 것이다.

아무튼 현재 현수의 나이는 29세이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했으니 그때 퇴직을 한다면 총 수령액은 무려 1,800억 원이다.

당첨되기만 하면 팔자를 고쳐 준다는 로또 복권보다 훨씬 더 좋다. 아마도 모든 직장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일일 것이다.

시상식이 끝난 후 천지그룹 사람들은 천지대학교 강당에서 뷔페를 즐겼다. 이것 역시 이 회장이 낸 것이다.

현수는 그룹사 임원들에게 둘러싸여 계속된 축하 인사를 받았다. 최연소 임원이기에 현수는 더욱 돋보였다.

“김 전무! 기획영업단은 기존에 없던 기구이네. 출퇴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며 조직을 키우려면 인선하여 구성해도 되네.”

“기획영업단은 해외영업부와는 별도의 기구지요?”

어제의 상사인 최 부장과 이춘만 지사장이 마음에 걸려 한 말이다.

“아닐세. 기획영업단은 영업부서 전부를 총괄하는 성격을 지녔으니 국내영업부뿐만 아니라 해외영업부를 지휘할 수도 있지.”

“끄응! 그런데 사장님,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자신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기에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자넨 잘 해낼 것이네. 그리고 내가 조언 하나 할까?”

신형섭 사장의 얼굴엔 짓궂은 웃음이 배어 있다.

“네, 말씀하십시오.”

“해외영업부 최영섭 부장은 능력은 있지만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네. 잘 다독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네.”

“네? 그게 무슨 뜻인지요?”

“주기적으로 갈구면 일을 잘 한다는 뜻이네.”

“아, 네에.”

“어쨌든 휘하 직원 하나 없는 전무이사는 없네. 먼저 비서실부터 구성하게. 그리고 사무실을 꾸리게. 자네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 필요하니 말일세.”

“네, 알겠습니다.”

“공고를 해서 지원자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신 사장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임원들이 계속해서 다가온 때문이다.

* * *

“선배님! 아니, 전무이사님! 극도로 존경합니다.”

유민우가 허리를 130 굽혀 절을 한다.

“아이 참, 사람 쑥스럽게. 이러지 말아요.”

“아닙니다. 선배님, 아니, 전무이사님은 제 영원한 우상이십니다.”

“에구…….”

현수는 대꾸할 말이 없어 말을 줄였다. 이때 곽 대리가 다가온다.

“축하드립니다. 전무님!”

“끄응, 선배! 왜 선배까지 이래요? 한번 사수는 영원한 사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한낱 대리가 어찌 하늘같은 전무님에게……. 과장님일 때도 사실 조금 저어되었는데 이젠 더합니다. 제가 어찌 전무님께 말을 놓겠습니까?”

“선배, 자꾸 이러면 아주 멀리 발령 내는 수 있습니다.”

현수는 농담이다. 하지만 곽 대리에겐 농담이 아니다.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서 상사의 몽니는 골치 아프다.

부부금슬이 유난한 곽 대리는 와이프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만일 킨샤사 지부 같은 곳으로 발령 나면 어쩌겠는가!

토끼 같은 딸내미와 여우같은 마누라를 모두 못 보게 된다.

그렇기에 얼른 항복했다.

“에구, 알았습니다. 아니, 알았어. 근데 나 이러는 거 우리끼리 있을 때만 이러는 거야. 괜히 남들하고 있을 때 그랬다가 전무한테 개기는 걸로 찍히면 곤란하니까.”

“그럼요. 그때는 그러세요. 아무튼 저는요, 한번 사수는 영원한 사수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끼린 전처럼 편하게 지내세요.”

“끄응! 알았어.”

곽 대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저어, 그럼 저는 전무님을 뭐라 부르죠?”

“얌마, 너는 그냥 전무님이라고 불러.”

“하하, 아닙니다. 유민우 씨도 우리끼리 있을 땐 전처럼 선배라 부르세요.”

“네에, 전무님. 아니, 선배님! 전 선배님의 영원한 후임입니다. 존경합니다. 딸랑딸랑!”

유민우는 두 손을 귀 근처에 대고 흔들었다.

“하하! 네에. 오늘 저녁은 제가 쏩니다. 그러니 그냥 가지 말고 남으세요.”

“알았어, 기다릴게. 참, 와이프가 축하한다고 전해달래.”

“벌써 전화하셨어요? 하하, 네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자재과를 나선 현수는 사장실로 향했다.

“어머, 김 전무님. 신수가 훤하셔요.”

현수를 본 조인경 대리가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에고, 조 대리님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아뇨, 부러워서 그래요. 보너스 100억에 연봉 60억인데 거기에 정년까지 보장된다고 하니 안 부러우면 이상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네, 그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너무 놀리진 마세요.”

“어머, 제가 어떻게 전무님을 놀려요? 이젠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이 되셨는데. 앞으론 제가 알아서 잘 모실게요. 대신 제 승진에 관심 가져주세요.”

“헐……! 벌써부터 인사 청탁인 겁니까?”

“네, 친하다는 게 뭐예요? 그러니 저도 승진시켜 주세요. 헤에.”

조인경 대리는 잠시 혀를 내밀었다. 농담이라는 뜻이다.

“네, 제 힘으로 그럴 수 있으면 그러지요. 근데 사장님 계세요?”

“네, 들어가 보세요.”

똑, 똑, 똑!

“들어오세요.”

“사장님!”

“아, 김 전무!”

“에고, 쑥스러워요.”

“쑥스럽긴 이제 적응해야지. 그나저나 어떤 일로?”

“비서도 뽑고 기획영업단을 구성하려니까 막막해서요.”

“조 대리는 안 되네. 알지? 나 조 대리 없으면 일 못 해.”

“치이, 맨날 일 못한다고 혼내키시면서…….”

조 대리가 삐친 듯 눈을 흘긴다.

“비서는 새로 채용해도 되니까 김 전무가 알아서 하게. 그리고 부서원은 직원들의 자원을 받게. 그게 조직 융화에 도움이 되니.”

“근데 특별한 업무도 없는데 얼마나 뽑죠?”

“원하는 만큼 뽑아서 쓰게. 그리고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을 해도 괜찮아. 그러니 알아서 하게.”

“네에, 알겠습니다.”

현수는 잠시 신 사장과 한담을 나누곤 밖으로 나왔다.

신 사장의 말에 따르면 기획영업단은 어떤 일이든 해도 되는 전천후 부서인 셈이다.

무엇을 하든 제약이 없으며,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 한다.

날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원하면 장기 휴가를 내서 쉬어도 된다. 그래도 연봉은 꼬박꼬박 지불될 것이라 한다.

하긴 회사에 벌어준 돈이 얼마인가!

당분간은 콩고민주공화국 쪽의 일을 봐달라고 한다. 향후에 있을 무궁무진한 일들이 천지그룹에 배당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밖에 조직 생활을 하면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충고를 들었다.

현수로선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한담을 마치고 나오니 조 대리가 승진 턱으로 저녁 사라는 말을 해서 이따가 있을 자재과 회식에 오라고 했다.

“아이고,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해외영업부 최 부장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안내한다.

“부장님, 부하가 졸지에 위로 올라가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전무님으로 영전되심을 감축 드립니다.”

“네에. 그리고 이거…….”

“이게 뭡니까?”

현수가 내민 봉투를 받은 최 부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외영업부 직원들과 회식하시라고 드린 겁니다. 나중에 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알겠습니다. 전무님께서 하사하신 금일봉이라 하고 직원들과 회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 부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일류대학을 졸업하여 지금껏 승승장구했다.

동기들보다 먼저 진급했고, 주요한 보직까지 차지했다. 내년이나 후년쯤 임원으로 진급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실세인 박준태 전무와의 연이 좋으니 그것은 바람만이 아닌 현실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밑에 있던 과장이 졸지에 전무이사가 되었다. 무려 세 계급이나 위이다.

임원이 되는 게 꿈인 최 부장은 내심 상무이사까지만 올라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현수가 그 위인 전무이사가 되어버린 현실을 믿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관할하는 상사이다.

그렇기에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부하 직원일 때 내내 갈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몇 번 마주치지 않아 서먹한 것이 다행한 일이다.

아무튼 어찌 처신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수가 왔다. 그 즉시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그리곤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몇 마디 말을 나눈 현수가 사라진 후 최 부장을 봉투 속의 액수를 확인했다.

“헉……! 뭐야? 두 장이었어? 으으음……!”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리던 최 부장은 똑같은 것이 한 장 더 있다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자신이 오늘의 현수였다면 과연 이만한 액수를 회식하라고 내놓았을까 하는 것이다.

현재 본사에 근무 중인 해외영업부 직원들의 수효는 52명이다. 그리고 현수가 주고 간 봉투 속의 금액은 2,000만 원이다.

최 부장은 한참 동안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이날 오후에 최 부장은 또 한 번 쇼크를 받는다.

천지건설 킨샤사 지사장으로 나가 있는 이춘만 지사장이 공을 인정받아 이사로 승진한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 졸지에 상전이 되는 일을 연거푸 두 번이나 경험하기에 속된 말로 멘붕 된다.

어찌된 일인가를 문의했다.

이에 대한 회사의 업무분장은 명쾌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행해야 할 공사 규모는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공사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콩고민주공화국 전체를 아우를 부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천지건설 해외영업부 소속 킨샤사 지사는 독립기구로 분리된다.

명칭은 천지건설 킨샤사 본부이고, 이 지사장은 본부장 보직을 맡게 된다. 본인이 그곳을 떠나기 싫어함을 배려한 것이다.

이밖에 이 지사장은 2계급 승진과 동시에 3개월 유급휴가, 그리고 2,000%의 포상금을 받게 된다. 포상금이 예상에 못 미치는 이유는 한 번에 두 계급 승진이기 때문이다.

이 지사장의 이런 진급에는 현수의 입김이 작용해 있다.

본인이 공사를 수주하는 등의 일을 할 때 아주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했던 것이다.

반면 해외영업부 최영섭 부장에겐 아무런 포상이 없다.

킨샤사 본부가 해외영업부에서 떨어져 나간 때문이다.

이날 최 부장은 밤새 술을 마신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김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저희 업무지원팀에는 웬일이십니까? 참,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부장급인 업무지원팀장의 허리 역시 직각으로 꺾인다. 전무이사는 3계급 위의 직급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처세라 하지만 곁에서 보기엔 조금 남세스럽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으로 보이는 현수에게 50이 넘은 장년인이 극고의 예를 취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팀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냥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닙니다. 회사엔 위계질서라는 게 엄연히 존재합니다. 일개 팀장인 제가 어찌 전무님을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끄으응……!”

팀장의 말도 맞기에 현수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자, 안으로 가시죠. 우리 업무지원팀은 커피 맛이 끝내줍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팀장실로 들어간 현수는 커피 한 잔을 잘 대접 받았다.

“저어, 무슨 일로 저희 부서를…….”

팀장의 은근한 말에 현수는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팀장님께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군요.”

“네?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아뇨, 아직은 그런 게 아니고……. 저어……! 업무지원팀의……. 에이!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뭔지 말씀만 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나중에, 나중에 다시 올게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네? 아, 네에.”

물러가는 현수를 본 업무지원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직 업무의 정체성조차 확립되지 않은 기획영업단 단장 겸 전무이사가 대체 무슨 일로 왔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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