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91화 (291/1,307)

# 291

업무지원팀을 나선 현수는 제 손으로 제 머리를 두드렸다.

‘어휴! 이 바보. 강연희 대리를 기획영업단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왜 못해? 몇 마디면 되는데. 어휴……!’

현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엘리베이터 홀로 이동했다.

땡―!

정지신호음이 울리고 문이 열린다. 안에는 여사원 둘이 있다.

현수를 보자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축하드려요. 전무님!”

“아, 네에. 고맙습니다.”

현수는 34층으로 이동했다. 새롭게 마련될 전무이사 집무실과 기획영업단 업무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형섭 사장에게 말하길 당분간은 특별한 업무가 없으니 넓은 사무실은 필요없다고 했다. 하여 전무이사실은 30여 평이고, 업무 공간 역시 비슷한 넓이이다.

사무실을 열고 들어간 현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사방이 탁 트여 경관이 매우 좋다.

“흐음……!”

똑, 똑, 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십니까?”

“전무님, 수장공사팀에서 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들어오십시오.”

물이 열리고 나이 지긋한 분이 들어선다. 현장 직원이다.

인사를 하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한다. 현수는 특별한 요구 사항은 없으니 알아서 깔끔하게 해달라고 했다.

줄자를 들고 여기저기를 재더니 깍듯하게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

딱히 할 일이 없던 현수가 나가려는 찰나 전화가 진동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번호를 보니 강연희의 것이다. 현수는 반가움 마음에 얼른 통화를 시도했다.

“아! 연희 씨.”

“네! 오랜만이죠? 안녕하셨죠? 전무님 되신 거 축하드려요.”

“네, 고맙습니다. 근데 지금 어디 계세요?”

“사무실에 있어요.”

“잠깐 제 방으로 와줄 수 있나요?”

“보는 눈이 많아서요.”

“아! 그렇구나. 그럼 회사 근처 커피숍은 어떨까요?”

“혹시 희색이라는 커피숍 아세요?”

“네, 지하에 있는 거죠?”

“거기라면 나갈 수 있어요.”

“근데 거기도 보는 눈이 많지 않을까요? 여긴 아무도 없는데.”

현수의 말이 일리있다 여겼는지 연희는 금방 생각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럼 사무실에 계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34층이죠?”

“네.”

이때부터 현수는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연희에게 어떤 이야길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은 때문이다.

같은 시각, 천지건설 직원들이 술렁이고 있다. 사내 통신망인 인트라넷3)에 올려진 공고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당사의 새로운 기구 기획영업단에서 근무할 직원을 지원받습니다.

기획영업단은 신임 김현수 전무이사가 수장으로 있는 부서입니다.

당사 영업을 총괄하는 부서로서 국내영업부와 해외영업부를 관할하게 될 것입니다. 지원 방법은…….

“김 전무님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라면서요?”

“그래! 그러니 스물아홉 이하만 지원해. 나이 많은 직원이 밑에 있으면 불편해하시니까. 김 주임은 어때? 가볼래?”

“아뇨! 싫습니다. 직급 차이도 너무 나고……. 무엇보다도 배가 아파서요.”

처음엔 현수가 세운 공에 환호를 했다. 회사가 발전된다 함은 향후에 받을 연봉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시기심이 샘솟는다.

포상금 100억, 연봉 60억, 그리고 전무이사로서 정년까지 보직 보장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할 파격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장본인이 아니기에 그러는 것이다.

기획영업단이 천지건설의 영업부서를 총괄한다 함은 힘이 있는 부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원자가 전무한 상황이다.

한편 자재과에서는 약간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수, 저 기획영업단에 지원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안 되지. 네가 가면 난 어떻게 하냐?”

곽 대리는 기획영업단으로의 이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유민우를 만류하고 있었다.

“글구,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야. 이럴 때 쓰는 말이 불가근불가원이야. 뭔 뜻인지는 알지?”

“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리하지도 말라는 뜻이잖아요.”

“지금 현수는, 아니, 전무님은 불꽃같은 상황이야. 활활 타오르는 중이지. 그리고 지금은 겨울이야. 너무 멀리 있으면 춥고, 너무 가까이 가면 뜨거워.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좋은 거야.”

“끄응, 알았어요.”

머리 좋은 유민우는 무슨 뜻인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사장 비서실도 술렁였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기에 기획영업단이 가질 파워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조인경 대리이다.

“사장님, 저 진짜 김 전무님 부서로 가면 안 돼요?”

“뭐어……? 안 돼! 조 대리가 가면 난 어떻게 해?”

“맨날 일 못한다고 타박하셨잖아요. 이 기회에 비서를 바꿔보시는 거 어떠세요?”

조인경 대리가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돼! 딴 사람은 다 되도 조 대리는 절대 안 돼!”

“치이, 알았어요.”

조인경 대리는 현수의 비서가 되려는 꿈을 접어야 했다. 신 사장이 자신에게 보내준 무한 신뢰를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강 대리.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애썼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건강은 괜찮은 거지?”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팀장님 덕분에 영국 구경 실컷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업무지원팀장은 강연희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래, 내게 할 말이 뭐 있어?”

“복귀하고 나니 제 책상이 없어졌더군요.”

“아! 그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마냥 비워둘 수 없어 인원을 충원했네. 강 대리 자리는 조만간 다시 만들어주지. 그게 섭섭해서 온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팀장님! 저 소속을 옮겨봤으면 해서요.”

“왜에? 더 좋은 책상으로 사줄게. 자리도 좋은 데 해주고,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

“아뇨,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여기 있으면 박진영 기획3팀장이 계속 와서 불편해요.”

“응? 박 과장하고 교제하는 사이 아니었어?”

업무지원팀장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출국하기 전까지 박진영 과장이 수시로 찾아왔고 강연희 대리는 늘 상냥하게 대화를 했다.

그렇기에 둘의 사내연애가 발전하여 부부가 되라는 뜻으로 자리를 비켜주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아니라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진짜 박 과장하고 교제하는 거 아니었어?”

“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준 거예요.”

“흐음!”

“그러니 저 이번에 부서를 옮겼으면 해요. 허락해 주세요.”

“어디로 가고 싶은데? 인사부장에게 말해줄게.”

“기획영업단이요.”

“……! 하필이면 왜 거기지?”

천지건설의 비너스이기에 사내들의 끊임없는 구애에 시달릴 정도이다. 심지어 연예기획사에서 연예인하라면서 수십 번도 더 왔었다.

그럼에도 늘 한결같았기에 여신급이라 칭찬받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분 상승을 노리는 속물처럼 느껴졌기에 물은 것이다.

“거기로 가면 박 과장이 방문하기 어려울 거예요.”

“아……!”

한때 박진영 과장이 자재과의 김현수 사원을 심하게 다룬다는 소문이 번졌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갈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수가 있는 기획영업단으로 가면 박진영 과장이 강연희 대리에게 찝적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허락만 해주시면 기획영업단으로 가겠다는 지원을 할게요.”

“으음! 강 대리는 우리 업무지원팀에 꼭 필요한 인원인데…….”

“가게 되면 우리 업무지원팀에 대해 자세히 알릴 수 있잖아요.”

강 대리의 이 말은 결정타였다.

업무지원팀은 다른 부서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부서이다.

좋게 말하면 해결사고, 나쁘게 평하자면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청소부이다.

트러블 메이커들이 만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 난관이 왜 없겠는가!

업무지원팀에 지원을 요청할 때엔 이미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진 상태가 된 이후이다.

그간 강연희 대리는 일종의 미인계로 일을 무마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돈이 걸리면 미모만으로는 안 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들은 이런 고충을 모른다.

그런데 강 대리가 이제 실세가 될 김현수 전무이사 곁에 있으면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로 우리 팀을 위해 말해줄 건가?”

“그럼요. 제가 여기 말고 다른 부서엔 있어본 적도 없잖아요. 그러니 절 보내주세요. 네?”

“좋아! 갈 수만 있으면 가게.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감사합니다. 팀장님!”

강연희 대리는 얼른 고개 숙였다. 이제 박진영의 끈적한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 조금 아까 김현수 전무님이 여길 오셨다 가셨네. 뭔가 말씀하실 게 있나 본데 망설이다 그냥 가셨지. 가거든 왜 그랬는지 알아서 알려주게. 윗분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가 해결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

잠시 후, 강연희 대리는 34층 전무실 앞에서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있었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팔짱 낀 채 밖을 내다보던 현수가 뒤돌아선다.

“아! 강 대리님.”

“전무님!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누가 볼까 싶어서인지 문은 열려 있고,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였다.

“문부터 닫으세요.”

“아, 네에.”

연희가 문을 닫고 돌아섰다. 어느새 현수가 다가와 있었다.

“연희 씨!”

“……!”

“보고 싶었습니다. 언제 귀국했어요?”

“어제요. 그간 안녕하셨죠? 아니, 안녕하시네요.”

멀쩡한 사람이 앞에 있으니 과거형 질문이 맞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배시시 미소 짓는다.

“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죠?”

“네? 아, 네에. 그럼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요?”

전에 현수는 맨체스터에서 만난 연희에게 진지하게 사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한 연희의 대답은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같이 펍에도 갔고, 카지노에도 갔었다.

그때 연희는 무언의 대답을 했고, 현수도 그걸 느꼈다. 하지만 직접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그 대답 저는 이미 했는데요?”

“네에? 언제요?”

현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영국에서… 제가 김현수 씨라고 하지 않고 현수 씨라 부를 때 이미 한 거예요.”

“그, 그러니까……. 그, 그 말은…….”

심리적 격동 때문에 현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연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네, 저도 현수 씨가 좋아요. 전무님, 아니, 과장님이 되기 전부터 전 현수 씨와 사귀고 있었어요.”

“저, 정말이요?”

믿어지지 않는 말에 현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등산 다니면서 현수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 알았어요. 근데 너무 거리감을 두셔서 제가 먼저 말하긴 그래서…….”

강 대리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현수가 눈빛을 빛낸 때문이다.

“연희 씨! 사랑합니다.”

“아……!”

연희가 현수의 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나직한 신음을 냈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갈비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내 마음을 받아줘서.”

“저도 고마워요. 절 사랑해 줘서.”

둘은 말없이 한참이나 포옹하고 있었다.

“현수 씨! 저 기획영업단으로 오고 싶은데 받아줄 거죠?”

“정말요? 하하, 그럼요. 대환영입니다.”

“호호! 그럼, 비서로 받아주세요.”

“그럼 더 좋죠. 잘 되었네요, 이 사무실을 어떻게 할까 구상했는데 연희 씨가 맡아서 해줘요.”

“정말요?”

연희가 눈빛을 빛낸다. 이번에 영국을 다녀오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왔다. 이중에는 인테리어와 집기에 관한 것들도 있다.

“예산은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 연희 씨가 원하는 대로 해봐요.”

“호호, 네에. 알았어요.”

연희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같은 시각, 기획3팀장 박진영은 전화 통화 중이다.

“아버지,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김 전무가 어린 나이에 나와 같은 반열에 오른 건 운도 운이지만 뭔가 다른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찍소리 말고 기획영업단에 지원해.”

“아버지! 그래도 그건…….”

“시끄럽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니 따르거라.”

“아버지!”

“말을 안 들을 거면 오늘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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