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98화 (298/1,307)

# 298

그렇게 15분쯤 더 들어가니 탁 트인 광장 비슷한 것이 나타난다. 거기엔 수십여 채에 달하는 집들이 있다. 본인들 키에 맞춰서 그러는지 높이가 낮아 장난감처럼 보인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호빗들의 집보다도 작아 보인다.

마을의 중앙엔 제법 넓은 공지가 있는데 그곳엔 많은 드워프들이 모여 있다. 대충 헤아려 보니 100여 명 정도 되는 듯하다.

중심부엔 무릎 꿇은 케린도 빌모아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인간! 하인스라 하나?”

“그렇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많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종족이니 몇 백 살은 족히 먹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를 갖춰 대답했다.

“여기 있는 케린도와 계약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현수가 순순히 시인하자 근엄하던 표정이 약간 풀린 듯 보인다.

“여기 있는 일족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말해주겠나?”

“그러지요. 저는 여기 있는 케린도 빌모아 영감님에게 제가 가진 금덩이를 이렇게 제련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현수는 말을 하며 아공간의 두 금덩이를 꺼냈다. 하나는 히데요시의 순도 낮은 금이고, 다른 하나는 컨테이너에서 습득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받아든 족장은 요모조모를 살펴보곤 도로 내민다.

“이런 걸 이렇게 만들어주면 무엇을 주겠다 하였는가?”

“코리아 제국에서 만든 맥주 1,000병입니다.”

“맥주?”

“이겁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1,000병으론 부족할 듯합니다.”

100여 명에게 1,000병이면 1인당 10병이다.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나 이틀이면 모두 동날 것이다.

해줄 일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적다 느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제안합니다. 제가 가진 금덩이들을 제련해 주십시오. 그 대가로 맥주 3,000병과 캔맥주 2,000개를 주겠습니다.”

현수는 맥주 한 병을 꺼내 그것을 땄다. 병뚜껑이 튀어가자 그것을 주운 드워프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작은 것을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잡아 놓은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게다가 안에는 뭔지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투명한 것이 붙어 있다. 떼어내 살펴보려는데 빠지지 않아 끙끙댔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500㏄짜리 잔을 꺼내 맥주를 따랐다. 누런 빛깔 위로 하얀 거품이 절로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제가 드릴 맥주입니다.”

현수가 잔을 건넸지만 족장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때론 본인의 이익을 위해 같은 종족을 서슴없이 죽이기도 한다.

족장은 그런 인간이 권하는 것을 덜컥 받아들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젊은 시절 유희 아닌 유희를 나갔다 당한 기억이 있어서이다.

현수는 작은 잔 하나를 꺼내 본인이 먼저 마셨다. 그리곤 말없이 잔을 들어 다시 권했다.

이번엔 받아든다. 냄새와 색깔을 살피더니 한 모금 마셔본다.

꿀꺽, 꿀꺽―!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난다.

잠시 잔에서 입을 떼었던 족장은 눈을 크게 뜨더니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꿀꺽, 꿀꺽, 꿀꺽……!

목젖이 위아래로 요동친다. 다른 드워프들은 대체 무슨 맛이기에 족장이 저러나 싶어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캬아아아―! 끄으으윽―!”

500㏄짜리 잔이 단숨에 비워졌다.

“이거 더 있나?”

“물론입니다.”

현수는 두말 않고 새로운 병을 땄다. 그리곤 그것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3병을 비울 때까지 별말이 없었다.

“금덩이가 얼마나 있나? 제련해 주지.”

족장의 말에 다른 드워프들 가운데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족장님, 그게 대체 뭐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알려주십시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항의 아닌 항의이다. 현수는 내심 웃겼지만 웃지 않았다. 대신 맥주를 꺼내 병을 딴 다음 그것을 건넸다.

받아든 드워프들은 말 그대로 맥주를 흡입했다. 그렇게 200여 병을 땄다. 놔두면 밤새도록 달랠 기세이다.

이를 제지한 것은 족장이다.

“자, 이제 그만……! 나는 이 인간의 제의를 받아들이려 한다. 모두들 이의 없지?”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맥주 마시기에 바쁜 때문이다. 대신 그렇게 하라는 손짓만 가득하였다.

“이제 금덩이를 꺼내보게.”

“그러지요.”

현수는 아공간에서 금덩이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케린도 빌모아의 주변이 온통 금이다.

꺼내 놓고 보니 약 75톤쯤 된다.

맥주를 더 주기로 했으니 더 많이 꺼낸 것이다. 그리곤 금괴들을 꺼냈다.

유진기의 금고에서 얻은 것은 LS―니코동제련에서 제작한 것이다.

왕영백의 것에선 지나산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그리고 스위스와 독일에서 만든 것들도 섞여 있었다.

모두 GDB 마크가 선명한 것들이다. 이것은 Good Delivery Bar의 약자로 국제적으로 인증된 골드바라는 마크이다.

“이것과 같은 순도가 되어야 합니다.”

순도 99.99%인 포 나인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 솜씨를 의심하나? 그런 건 걱정하지 말게. 그나저나 맥주를 먼저 줄 수 없나? 우린 한잔 들어가야 일을 잘하거든.”

“좋습니다. 먼저 드리지요. 단, 병은 모두 회수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새로운 것을 살 수 없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맥주병을 살피던 드워프들이 꽤 있었다. 그들 모두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중이다.

“그러지.”

족장이 흔쾌히 동의하자 현수는 창고로 가서 맥주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약속한 대로 병맥주 3,000개와 캔맥주 2,000개이다.

여름엔 4∼8℃, 봄가을엔 6∼10℃일 때의 맥주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현수는 늘 불 곁에서 지내는 드워프들이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마법진 하나를 그려놓았다.

그 온도는 5℃이다.

“헐, 마법도 할 줄 아는가?”

“뭐, 조금은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곤 돌아섰다.

“양이 많아서 제련을 마치려면 꼬박 한 달은 있어야 하네.”

“그렇게 하십시오. 한 달쯤 뒤에 오지요.”

“기대해도 될 것이네. 최선을 다 하지.”

족장은 환히 웃고 있다. 창고에 가득한 맥주를 보니 안 마셔도 취한 듯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른 새벽 무렵, 현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좌표를 확인했다.

잠시 후, 현수는 인적 끊긴 지 오래된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몬스터들의 밀도가 높은 곳이다. 드워프들은 매년 일정량의 공물을 라이세뮤리안에게 보낸다.

그렇기에 이곳 라수스 협곡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드워프들이 말하길 자신들의 거처 주변을 벗어나면 많은 몬스터가 있을 거라고 했다. 드래고니안들이 식량 삼아 놔둔 것이다.

현수는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그러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오우거가 보인다. 현수는 기척을 죽이고 잠시 기다렸다. 놈이 멀어지자 그때야 움직였다.

협곡을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지 드래곤 또는 몬스터들과의 조우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이렇게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 드래곤 또는 드래고니안과 만나는 것이 싫어서이다. 하지만 상당한 거리는 전진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라수스 협곡에 발을 들여놓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어라! 이건……?”

울울창창하기만 하던 숲속을 헤매던 중 인간의 흔적 비슷한 것이 발견되었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밟고 다닌 오솔길을 본 것이다.

“여기 사람도 사나?”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깊은 산 중에 마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여긴 아르센이지. 모든 게 부족하지만 자급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 한다.

사람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하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현수 역시 인간이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사람을 보지 못했다. 혼자 중얼거리며 걸어왔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마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오솔길을 따라 이동했다. 사실 그 길을 이용하는 것이 제일 편한 전진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현수가 아는 사실은 매우 단편적인 것이다.

라수스 협곡에는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과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 드래고니안들이 있다는 것은 안다.

남성체 드래곤과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는 인간의 몸에 드래곤의 비늘을 가진 생명체가 대부분이다.

아주 드물게 드래곤과 같은 형상으로 태어나기는 하는데 사서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아르센 대륙 역사상 딱 한 번이라 한다.

대부분의 드래고니안은 겉은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나 품성은 드래곤을 닮는다. 드래곤들은 드래고니안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레어에서 내쫓는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원래 정이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쫓겨난 드래고니안들은 대부분 인세로 흘러든다.

여성체의 경우는 빼어난 미모 때문에 성노가 되기도 한다.

남성체는 마법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 있어 고위 마법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일찌감치 제거된다.

드래고니안은 헤츨링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죽음에 응징을 가하는 드래곤은 없다.

오히려 이들 존재를 부끄럽게 여겨 드래고니안들만 골라서 제거하러 다니는 드래곤이 있을 정도이다.

하여 드래고니안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인세를 떠돈다.

그런데 라수스 협곡의 드래고니안들은 약간 특이한 케이스이다.

부친이라 할 수 있는 라이세뮤리안의 보호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라수스 협곡 안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성채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 길을 뚫기 위해 투입되었던 기사와 병사들이 보낸 전서구에 기록된 내용이다.

따라서 성채 인근만 조심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수가 알고 있는 정보이다.

그렇기에 숲속 오솔길이 몰래 협곡 안에 스며든 인간의 자취라 생각한 것이다.

현수가 그 길을 따라 이동한 지 3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때 한가로운 풍경을 만났다.

멀린의 레어가 있던 바세른 산맥 속 알베제 마을과 유사하다.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목책 안에는 아이들이 뛰논다. 어른들도 왔다 갔다 한다.

알베제 마을과 다른 점은 목책이 허술하다는 것과 몬스터의 침입을 경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잠시 마을을 살피던 현수는 천천히 접근했다.

삐이꺽―!

경첩에 녹이 슬었는지 소리가 난다.

“누구냐?”

괭이를 들고 밭으로 향하려던 사내가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

“아! 저는 길 가던 길손입니다.”

“여긴 무슨 목적으로 온 거냐?”

“네……? 전, 그냥 근처를 지나다가 마을이 보여서…….”

“근처를 지났다고……?”

“네, 저쪽을 지나고 있었는데 오솔길이 보여서…….”

“거짓말하지 마라.”

사내는 현수의 뒤쪽 숲을 예리한 눈초리로 살폈다.

“라넬, 괭이 가져오라니까 왜……? 어라! 너는 누구냐?”

또 한 사내가 다가온다. 그의 손에는 낫처럼 생긴 농기구와 쇠스랑이 들려 있었다. 그는 현수를 발견함과 동시에 공격할 자세를 취한다.

“아!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마. 여길 토벌하러 온 게냐?”

“네……? 토벌이라니요?”

이 대목에서 현수는 중대한 착각을 한다. 이 마을이 도망친 농노나 노예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엘르, 나마젤, 토가르! 여기 침입자가 있다.”

사내의 고함에 곳곳에서 반응을 보인다.

와당탕탕―!

“뭐야? 침입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콰앙―!

“침입자? 어떤 개자식이야?”

삐거덕―!

“누군지 몰라도 도망 못 가게 꼭 잡아.”

사내 셋이 금방이라도 현수를 도륙할 듯 튀어나온다. 모두들 식칼 비슷한 것을 들고 있다.

졸지에 다섯 사내에게 둘러싸인 현수는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표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이, 이것들 보시오. 난 지나던 길손이오.”

“흥! 거짓말일 거야. 엘르, 어서 가서 형제들 소집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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