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99화 (299/1,307)

# 299

“알았어.”

사내 하나가 쏜살처럼 사라진다.

“진짜라니까요. 누가 여길 토벌하러 온단 말입니까?”

현수가 항변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누구긴? 율리안 영지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오겠지.”

“율리안 영지에선 이곳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런데 어찌…….”

“흥! 거짓말 마라. 율리안 영지에 사는 놈들이 우리가 여기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네? 그, 그건…….”

현수가 말문 막혀 끝을 흐리자 사나운 표정을 짓는다.

“말해! 어떻게 우리 마을을 알아냈는지.”

“정말입니다. 정말 모릅니다.”

현수가 두 손을 내젓자 흉기를 들이댄다.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인한 듯하다. 하여 얼른 손을 다시 들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정말이에요. 전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가 어딘지 몰라?”

“당연히 알죠. 라수스 협곡 아닙니까.”

“그래, 인적 끊긴 지 무척 오래된 곳이지. 그런데 여기를 우연히 방문했다는 걸 믿으라고?”

“네, 정말 우연히 여길 찾아온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어림도 없는 소리! 아, 근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오고 있어.”

누군가의 대답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적게 잡아도 30명은 넘는다. 모두들 무기를 들고 있다.

“어떤 자식이 감히 우릴 토벌하러 온 거야?”

누군가의 음성에 여태껏 현수를 취조하던 사내가 입을 연다.

“우연히 왔다고 합니다.”

“우연히? 여길?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은 사내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놈은 당장 창고에 넣고 밖에서 지켜. 너, 너, 너, 너희들이 지켜. 그리고 나머지는 각기 셋씩 짝을 지어 주변을 샅샅이 뒤져.”

“네, 알겠습니다.”

명이 떨어지자 마치 훈련된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사내 둘이 현수에게 다가와 양쪽 팔을 잡는다. 나머지는 언제든 찌를 자세를 취하고 있다.

“넌 주변을 다 뒤져 이상이 없어야 목숨을 부지하게 될 거다.”

촌장 비슷한 중년인의 말에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 참 사람 말 안 믿네. 쩝, 그나저나 갇혀 있어야 하나?’

11장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

쿵―!

문이 닫히자 어두워진다. 하지만 아주 깜깜한 정도는 아니다. 판자와 판자 사이로 빛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손목을 너무 강하게 묶은 밧줄 때문에 통증이 느껴진다. 하여 조금씩 움직여 헐겁게 하려 했다. 하지만 어찌나 단단히 묶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법을 쓰면 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견딜 만하기에 그냥 있었다.

“끄응! 졸지에 이게 뭐람? 그나저나 이 깊은 산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사네.”

창고라 불린 이곳까지 오는 동안 현수는 마을을 살펴보았다. 대충 헤아려 봐도 40여 채 이상의 집들이 있다.

사내들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제법 있다. 총 인원은 150명쯤 되는 마을인 듯싶다.

“사내들이 서른둘, 여자는 서른하나, 나머진 모두 아이들인가?”

깊은 산속 마을임에도 누구 하나 얼굴에 버짐 피거나 피골이 상접해 있지 않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수는 두리번거리며 창고 내부를 살폈다. 생산된 농작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맞다.

판자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사방에서 지키고 있다. 마을엔 비상이 걸린 듯 아이와 여자들은 마을 밖 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중이다.

유사시를 대비한 곳이 있는 모양이다.

사내들은 흉흉한 기세로 무기될 만한 것들을 꺼내온다. 칼과 창, 그리고 활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농기구들이다.

그렇게 어수선한 시간이 흘렀다. 자신들을 토벌하러 올 영지군을 찾으러 나갔던 사람들이 터덜거리며 돌아온다.

“하긴 여기가 어디라고…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드나든 적이 없는 곳인데…….”

갑작스런 긴장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 스트레스였는지 사내들은 약간 맥 빠진 모양이다.

“이제 저놈은 어쩌죠? 진짜 우연히 여기로 왔을까요?”

“그 말을 믿어? 여기가 어딘데? 라수스 협곡 안이야.”

“맞아요. 여긴 아무도 못 들어오는 장소잖아요.”

사내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현수의 처리 문제이다.

“일단 놈을 끌어내. 취조해 보면 알겠지.”

“알겠습니다.”

곧이어 창고의 문이 열리고 현수가 끌려나왔다.

“확인해 보셨듯이 저는 일행이 없습니다. 진짜 우연히 이곳으로 온 겁니다.”

“좋아! 네 말대로라고 치자. 그럼 이곳으로 온 목적은 뭐지?”

“저는 라수스 협곡을 지나 미판테 왕국의 동쪽으로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협곡을 지나……? 여기 어떤 분이 계시는지 알면서도?”

“네, 압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던 인간들 모두 목숨을 잃었다는 걸 몰라?”

“그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라수스 협곡을 지나가려 했다고?”

“네. 급히 저쪽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겨서요.”

현수의 대답에 대다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놈 의자 갖다 놓고 묶어!”

“네.”

삽시간에 투박한 의자 하나가 나왔고, 현수는 거기에 꽁꽁 묶였다.

반항하거나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기에 순순히 묶여주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진실만을 대답해라. 만일 거짓말로 우릴 기만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말씀하십시오.”

현수는 태연자약했다.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여길 토벌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은?”

“하인스 킴이라 합니다.”

“하인스 킴……? 귀족이냐?”

“그쯤 됩니다.”

“좋아! 그건 상관없고, 여길 온 목적은?”

“라수스 협곡을 지나 미판테 왕국의 저쪽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여기 위대하신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분은 탐욕스런 인간들을 몹시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조심스럽게 지나칠 생각이었습니다.”

“이건 뭐 멍청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 귀족이라는 놈이.”

“여러분들도 이곳에서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현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뜬다.

“뭐라고?”

“여러분들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 나 하나쯤 지나치는 게 무어 대수겠습니까?”

“클클! 클클클클…….”

“킥킥! 킥킥킥……!”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온다.

“……? 왜 웃습니까?”

뭔가 이상해서 물은 말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보여?”

“네에……? 그게 무슨……?”

현수는 말없이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사람들을 살폈다.

산골에 사는 평범한 인간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 마나를 품고 있다.

대피소에서 되돌아와 구경하던 여자들 가운데에도 마나가 많은 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비교적 마나의 양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범 이상은 된다.

‘뭐야? 이 사람들은……. 마을 전체가 마법사 마을이라도 되는 거야?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의 가슴을 살펴보았지만 마법사 특유의 마나링은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괴이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딱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가만……! 우리가 인간으로 보여라고 했지? 그럼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설마 수인족? 흠, 꼬리가 없는 걸 보면 묘족이나 호족은 아니고, 그럼 라이칸스로프인가?’

라이칸스로프는 평상시엔 보통 인간으로 보이지만 특정 상황이 되면 동물로 변해 버린다.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내가 다시 묻는다.

“인간이 감히 신성한 라수스 협곡에 발을 들여놓다니…….”

“네? 그게 무슨……? 그럼, 여러분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까?”

“우리가 인간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네, 인간으로 보입니다. 그럼 인간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크크크! 크하하하!”

“킥킥! 오래 살다보니 별 미친놈이 다 있군. 라수스 협곡 안에 사는 인간이 있을 리 있어?”

“네……? 그럼 여러분들은……?”

“우린 위대하신 존재의 성혈을 이은 자손들이다. 쿼터이긴 하지만……. 그런데 감히 우릴 인간으로 여겨?”

“기분이 심하게 나쁘군. 인간 주제에.”

“여보게들, 이놈을 어쩌지? 확 죽여서 묻어버릴까?”

“일단 어르신들께 보고부터 해야지. 우린 그냥 그분들의 처분만 기다리세.”

“그래, 그게 제일 낫겠다. 이봐, 엘르! 후딱 가서 어르신들께 멍청한 인간 하나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고 보고 드려.”

“네, 알겠습니다.”

엘르라는 사내가 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잇는다.

“보고만 하고 그냥 오지 말고 이놈을 어떻게 처결하실 건지 여쭙고 와. 알았어?”

“네, 아버지.”

말을 마친 엘르가 쏜살처럼 달려간다.

같은 순간 현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가늠하고 있었다.

평범한 산골 마을로 오인한 이곳은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의 자식의 자식들이 머무는 곳이다.

다시 말해 드래고니안의 자식들만 모여 있는 곳이다.

드래고니안들끼리 결합하여 낳은 자식은 마나의 양이 많다.

하지만 드래고니안과 인간이 결합하여 쿼터가 되면 품고 있는 마나의 양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아까 현수가 마나를 감지하였을 때 많은 이와 적은 이가 있었던 이유이다.

라이세뮤리안의 후손답게 드래고니안들은 인간을 납치해서 남편 혹은 아내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쿼터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라이세뮤리안의 레어 근처에서 살 자격을 잃었다. 직계 자식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어에서 제법 떨어진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

현수가 라수스 협곡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라이세뮤리안 또는 드래고니안들이 즉각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스스로를 드래곤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드라데스라 부른다. ‘Descendants of the dragon’의 앞뒤 단어 중 일부를 딴 것이다

이들 드라데스 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정도가 여럿 있다. 그리고 현수는 반지 덕분에 평범한 인간 정도의 마나만 있는 것으로 탐색된다.

수렵과 채취, 그리고 작은 텃밭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에 드라데스들은 라수스 협곡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렇기에 현수의 움직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들 중의 일원으로 오인하여 아직까지 공격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왔다면 즉각 알아차렸을 것이다. 드라데스들의 수효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세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랬다면 드래고니안들이 공격을 받아 전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드래고니안은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길다.

검을 좋아하는 녀석은 검을 익혀 상당수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있다. 아울러 6∼7써클 마법사들도 여럿 있다.

세상에 알려진 바 없지만 이곳 라수스 협곡엔 드래고니안이 48개체나 있다. 이중 5개체는 현수와 같은 수준인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고, 30개체는 소드 마스터이다.

미판테 왕국에 딱 하나밖에 없는 소드 마스터가 무려 서른 배나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13개체 중 일곱은 6써클, 여섯은 7써클 마법사이다. 세상에 나가면 마탑주 대접을 받을 존재들이다.

최종적으로 궁극의 마법 생명체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이 있다. 이러니 기사단들이 와도 전멸을 면치 못한 것이다.

현수는 의자에 묶인 채 뙤약볕 아래 방치되었다.

아주 단단히 결박해 놓았기에 도주할 우려가 없다 판단하였는지 모두 제 할 일 하러 갔다.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해야 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현수의 주변을 빙빙 돌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은 어린놈들이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녀석부터 열두어 살은 됨 직한 녀석들까지 아홉이나 주변을 겉돌고 있다.

어떤 놈은 막대기로 쿡쿡 찔러본다.

‘이 녀석들은 쿼터에 하프니까 8분의 1짜리인가? 그럼 인간에 훨씬 더 가깝다는 거잖아.’

현수는 아까부터 막대기로 쿡쿡 찌르는 어린 녀석을 보고 웃어주었다. 마나의 양이 형편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드래곤의 피가 8분의 1밖에 섞이지 않은 녀석이기 때문이다.

“꼬마야! 네 이름은 뭐니?”

“나? 나는 세바스찬이라고 해.”

“그래, 세바스찬! 너는 아저씨를 찌르니까 재미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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