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10년이라고요?”
“네. 활은 생각보다 익히기 어려운 병기랍니다.”
다프네는 우쭐하는 기분을 느끼며 시위를 놓았다.
피잉―!
말을 하던 다프네가 시위를 놓았다. 그리곤 입을 연다.
“저는 저놈의 오른쪽 가슴을 노렸어요.”
자신의 유방 위를 손으로 콕 찍는다. 정확히 유두가 있을 부위이다. 아마도 무의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민망하게 느껴져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달려드는 오크를 바라보았다.
쉬이익―!
퍼억!
꿰에엑! 꿰에에엑!
오크는 오른쪽 가슴에 박힌 화살을 잡고 비명을 지른다.
“잘 쏘네요. 다프네 양은 10년 넘게 활을 쏜 겁니까?”
“그럼요. 여덟 살 때부터 활을 쐈으니까 올해로 14년째 쏘는 거죠. 여긴 다 그래요.”
말을 하면서도 연신 화살을 날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크들이 비명을 지른다.
“왜 머리엔 안 쏴요? 그럼 단번에 죽을 텐데?”
“그럼 너무 아프잖아요. 죽을 수도 있구요.”
“네?”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온 몬스터에게 연민의 정이라도 느낀다는 어투이기에 할 말을 잃은 현수의 반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프네는 연신 화살을 날린다. 쏘아 맞추는 곳을 보니 사람으로 치면 팔과 다리 부분이다.
몸통과 머리엔 가급적 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하인스님도 한 10년쯤 쏘면 저처럼 쏠 수 있을 거예요.”
“10년이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한 며칠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현수는 한때 동이족이라 불리던 선조의 피를 물려받았고, 남녀 양궁 대표팀이 금메달을 싹쓸이하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뭐예요? 내기하실래요?”
“내기요? 무슨 내기를……?”
다프네는 발끈했고, 현수는 무심코 한 얘기에 반응이 예민하다 싶은 생각을 했다.
“하인스님은 며칠 동안 연습하면 저만큼 쏠 수 있을 거 같아요?”
“겨냥한 곳에 맞추는 거 말하는 건가요?”
“그래요. 저것들처럼 움직이는 표적이요. 며칠이면 돼요?”
조금 도전적인 어투이다. 남은 애써 이룬 성과를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글쎄요? 한 이삼 일이면…….”
현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웃자고 한 말에 목숨까지 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뭐라고요?”
더욱 화가 나기라도 하는지 말을 하면서도 계속 활을 쏘던 다프네가 행동을 멈춘 채 째려본다.
언니들에게 수없이 많은 구박을 받아가며 익힌 궁술이다. 그런데 폄하되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화가 난 것이다.
“삼 일 드리죠. 만일 삼 일 만에 저만큼 쏘신다면 해달라는 거 다 해드릴게요. 대신 저만큼 못 쏘면…….”
다프네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 일어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게요. 대신 삼 일 안에 저만큼 쏘지 못하면 뭐해 주실 건데요?”
“근데 어쩌죠? 전 내일 떠나야 하는데.”
“제가 길을 안내하죠.”
“네?”
“라수스 협곡을 벗어나고 싶다면서요? 우리 마을을 지나 동쪽으로 가면 미혹의 숲이 있어요.”
“미혹의 숲이라니요?”
“같은 곳을 빙빙 돌게 되는 곳이에요.”
“그런 길도 있나요?”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한 반문이다.
“네,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라면 벗어나는 게 만만치 않은 길이에요.”
“그런 길이 있어요?”
“네, 거기가 미혹의 숲인지 모르고 발을 들여놓으면 그곳에서 한평생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고 해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한 평생을…….”
현수의 반문에 다프네가 살짝 째려본다.
“미혹의 숲 가보셨어요?”
“아, 아뇨.”
“미혹의 숲은 거대하죠. 너무도 잎사귀가 많아 대낮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아요. 그 사이로 사람이 다닐 만한 공간이 있어요. 늪도 있고요. 물론 맹수와 몬스터도 있지요.”
“……!”
현수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다프네가 미혹의 숲이란 곳에 대한 설명을 한다.
미혹의 숲은 가로 100㎞, 세로 200㎞ 정도 된다.
이 엄청난 크기의 숲이 설명대로라면 한곳을 빙빙 돌게 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꼬박 하루를 허비했다.
“그러니까 내기하는 동안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요?”
“그래요. 사흘을 드리죠. 그동안 활 쏘는 법을 가르쳐 달라면 가르쳐 주기도 할게요. 어때요? 내기할래요?”
“저도 뭐… 좋아요. 그럽시다.”
“그럼 내기에 지면 뭘 걸 건가요?”
“저도 다프네님이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드리죠.”
현수는 타임 딜레이 마법을 걸고 결계 안에서 궁술을 익힐 생각을 품었다. 다프네가 준 시간은 사흘이다.
사흘간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잠을 잘 것이다.
하루에 8시간씩 24시간이면 결계 안 시간으론 180일이다.
바디 체인지 후 쉬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되었으니 오로지 궁술만 익힐 수도 있다. 그 결과 어쩌면 신궁이라던 태조 이성계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신궁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태조 이성계가 첫 번째 인물이다.
두 번째는 4군과 6진을 개척한 최윤덕 장군이다.
힘이 남달라서 어느 누구도 당기지 못하던 강궁을 당겨 범을 사냥한 장수이다.
셋째는 이석정이라는 무인이다.
배후문과 함께 명궁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특히 먼 거리의 유동 표적도 백발백중의 실력으로 명성이 높았다.
넷째는 평안도 자성에서 태어난 부낭이라는 여성 무사이다.
기사(騎射) 시 긴 머리와 자그마한 체구가 뿜어내는 궁력이 가히 폭발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은 지나를 놀라게 한 조선의 명궁 김세적이다.
성종 5년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인물이기도 하다.
선위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을 때 각국 사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발연중의 솜씨를 보였다.
여섯 번째는 일본 통신사였던 황진이라는 무인이다.
아무리 작은 과녁이라도 명중시켰고, 새처럼 움직이는 과녁 또한 그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일곱 번째는 정조대왕이다.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는 야간의 활쏘기에서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덟 번째는 고종 때 사람 안택순이다.
늘 술에 취해 있었지만 표적만은 놓치지 않은 인물이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충무공 이순신이다.
이분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는 것이 사족인지라 언급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이런 조상을 가진 현수이기에 다프네의 도발에 은근히 부화가 솟는다. 하여 무작정 내기에 응한 것이다.
“내기 성립이에요? 근데 마법사 맞죠?”
“네? 아, 네에.”
“우선은 마법으로 저놈들을 내쫓아주면 안 돼요?”
“네?”
“마법사들은 한 번에 여러 마리를 혼내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이놈들 좀 어떻게 해봐요.”
“좋아요. 그럼 그러죠.”
마법사가 아니라 한 적이 없기에 현수는 마음 놓고 마법을 쓸 생각을 품었다.
몬스터를 퇴치하는 것이 첫째 목표이고 수련이 둘째이다.
드래고니안과의 대련을 통해 검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을 염두에 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오크의 절반 정도가 전투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여인들의 화살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결과이다.
하지만 죽은 놈들은 별로 없다. 모두가 다프네처럼 죽지 않는 곳을 향해 쏜 모양이다.
“이놈들, 자주 공격해 옵니까?”
“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와요.”
“흐음, 알겠습니다.”
현수는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오크들을 보며 눈빛을 빛냈다.
사정 봐주는지도 모르고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오크들을 어찌할 것인지를 생각한 것이다.
“악인은 지옥으로! 몬스터에겐 죽음을!”
앞의 구절은 지구에서의 슬로건이고, 뒤는 아르센 대륙에서의 행동 지침이다.
“매스 파이어 애로우!”
슈아앙! 쐐에에엑! 고오오―!
마법이 구현되자 한꺼번에 화살 열두 개가 생성된다. 그리곤 오크들을 향해 발사되기 시작하였다.
꿰에엑! 꿰엑! 꾸아아악!
“체인 라이트닝!”
뻔쩍―!
콰콰콰콰쾅―!
퀘엑! 뀨익! 꿰에엑!
단 두 번의 공격에 오크 이십여 마리가 눕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마법이 구현되고 있었다.
“매스 윈드 커터!”
슈아아아앙―!
꿰에엑! 꿰엑! 꾸아아악!
비명과 더불어 단숨에 허리춤이 베어져 내용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곤 맥없이 엎어진다.
한편, 한참 화살 공격을 하던 여인들은 놀란 눈빛이 되어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계속해서 마법을 구현시켰다. 주로 2∼3써클 마법이다.
파이어 볼, 윈드 피스트, 파이어 웨이브, 아이스 스피어, 파이어 버스트, 라이트닝 스피어 등이다.
이 마법들의 공통점은 대상 마법이라는 것이다. 현수는 마법 공격이 보다 정교해지도록 연마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여인들의 공격이 멈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난 물결처럼 쇄도하던 오크들은 마법사의 출현에 겁을 집어먹고 슬금슬금 물러서는 중이다.
여인들만으로도 버거운데 여기에 마법사까지 추가되어 있으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분 만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부상 때문에 도주할 수 없어 신음성을 내며 쓰러져 있는 오크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들 놀란 눈빛이다.
마치 우물에서 물을 뽑아 쓰듯 마법을 난사하는 현수에게 질린 것이다. 곁에 있던 다프네 역시 멍한 시선이다.
살아남은 오크들이 도망친 뒤 드러난 전장은 참혹했다.
몸이 반 토막 난 놈, 불길에 그슬린 놈, 얼음 창이 박혀 꽁꽁 얼어붙은 놈 등이 널려 있다.
대출 헤아려 봐도 최소 1,200구는 넘는다.
“으음, 그냥 놔두면 썩는 냄새가 진동하겠군.”
목책 바깥쪽으로 훌쩍 뛰어내린 현수는 가까운 곳부터 땅을 뒤집기 시작했다.
“디그! 디그! 디그!”
즉시 죽은 오크들 곁에 큼지막한 구덩이가 파인다. 한 구덩이당 최하 두 녀석을 묻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수십여 개의 구덩이를 판 현수가 뒤를 돌아보았
다.
“다프네 양, 구경만 하고 있을 거예요? 이놈들, 썩기 시작하면 냄새 지독하다는 거 몰라요?”
“……!”
“어서 내려와서 묻어요. 설마 나 혼자 이걸 다 하라는 건 아니겠죠?”
“아, 알았어요.”
다프네뿐만 아니라 다른 여인들도 목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오크 사체를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으로 덮었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현수는 수백여 개의 구덩이를 팠다. 그러는 동안 여인들은 사체 매장 작업을 했다. 힘들고 고된 일인지라 모두들 땀투성이가 되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여인들을 이끄는 루디 촌장의 말이다.
“고맙기는요. 하룻밤 신세를 지니 당연히 도와야죠. 그나저나 음식이 다 못 먹게 되었네요.”
현수의 말처럼 차려놓았던 음식들은 먹을 수 없을 지경이다.
오크들이 던진 돌이 하필이면 식탁 지지대를 부러뜨려 음식이 모두 쏟아진 때문이다.
“모처럼 손님이 와서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꺼내서 한 음식인데…….”
루디가 말을 하는 사이에 몇몇 여인들이 흙 묻은 음식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지경이다.
“재료가 있으면 다시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어두워서 못한다면 제가 마법등을 켜드리죠. 라이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20V 110W짜리 백열전구 두어 개쯤 켜놓은 듯 환해진다.
“고맙긴 한데 재료가 마땅치 않아요.”
자그마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여인들은 지구로 치면 공산주의적인 생활을 한다. 다 같이 농사짓고, 다 같이 사냥한 것을 다 같이 나눠 먹는다.
오늘은 이 여인들에겐 특별한 날이다. 드래고니안이 아닌 인간이 첫 번째로 마을을 방문한 날이기 때문이다.
하인스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현수의 불길한 예상처럼 씨받이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흙이 묻어버린 음식을 조심스럽게 거두는 이유는 그 안에 중요한 약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