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07화 (307/1,307)

# 307

그것의 이름은 ‘실프의 눈물’이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 카세이론 백작을 따라왔다가 멀린의 아내가 된 프리실라가 술에 탔던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아드리안 멀린 후작은 프리실라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리고 그날 맏아들을 임신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여인이 마음에 드는 사내를 취하고자 할 때 사용한다던 실프의 눈물은 이제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액체이다. 이 마을에 남은 것도 딱 한 방울뿐이었다.

귀한 것이지만 언제 남자가 올지 모른다. 그래서 그걸 음식에 넣어 현수에게 먹이려 했다.

현수의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 열 명은 건강한 씨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오크들이 공격하는 바람에 엎어진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의 호감을 얻기 위해 여인들은 최상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 모두가 쓰레기가 되어버려 루디는 울상이다.

“왜 그러세요?”

“대접할 음식이 없어서…….”

전투가 끝난 후 죽은 오크들을 묻느라 땀투성이가 된 여인들을 둘러보니 모두가 꾀죄죄하다.

“제게 식재료가 조금 있는데 그걸로 한번 해볼까요?”

“어머, 요리할 줄 아세요?”

“제 고향 음식은 조금…….”

“고마워요. 에스더, 샬롯, 다프네, 너희들이 도와라.”

“네, 언니!”

루디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셋이 튀어나온다.

“그럼 한번 해보죠.”

현수는 안내를 받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게 부실하다.

이런 데서 어떻게 음식을 조리해 내는지 궁금할 지경

이다.

“일단, 라이트!”

불부터 환히 밝힌 현수는 아공간의 식재료들을 꺼냈다.

가장 먼저 야채수프를 준비했다. 단호박, 양파, 당근, 양배추가 주재료이다.

다음은 샤우르마()이다. 이것은 러시아식 케밥이다.

포크와 나이프도 없는 곳이기에 맨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현수의 아공간에서 나온 주방 기구를 본 여인들은 놀랍다는 표정이다. 세상에 이런 것이 다 있나 싶은 듯하다.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식칼 정도는 이곳에 남겨둬도 괜찮을 것 같기에 조금 더 꺼내놓았다.

어쨌거나 현수의 현란한 솜씨 덕에 음식 준비는 금방 끝났다. 이제 40인분 정도는 순식간에 뚝딱이다.

4장 웬 녀석이냐?

“흐음, 음식만 먹으면 조금 그렇지? 뭐가 좋을까?”

샤우르마는 이들에게 기름진 음식일 수도 있다. 하여 느끼함을 덜어줄 음료를 찾아보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탄산음료는 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웬만큼 적응되지 않으면 톡 쏘는 맛을 상당히 강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현수가 고른 것은 커피우유이다.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도 느끼함을 중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 마을의 그릇들을 썼다. 하지만 커피우유만은 그럴 수 없어 일회용 종이컵을 꺼냈다.

에스더와 샬롯, 그리고 다프네는 이 마을의 막내 삼총사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 식탁까지 운반되었다.

일인당 야채수프 한 접시와 적당량의 샤우르마가 배당되었다. 이걸 받은 여인들은 어찌 먹느냐는 표정이다.

현수는 숟가락으로 수프 먼저 떠먹고 샤우르마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후루룩! 쩝! 쩝! 후루룩! 쩝쩝! 쩝쩝! 후루룩! 쩝쩝쩝!

다들 수프 한 모금에 샤우르마 한 번씩 먹는다.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이다. 그리곤 저마다 찬사를 늘어놓는다.

“어머,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수프도 맛있고, 이것도 너무 맛있어요.”

“흐으응! 이건 정말……!”

“남자가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거죠?”

현수는 대답 대신 웃음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말 맛있었어요. 어떻게 만드는 거죠?”

식사를 마치고 커피우유까지 마신 루딘의 말이다.

“만드는 방법은 아까 세 분 아가씨께 알려 드렸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으니 앞으로 많이 만들어 먹으세요.”

“고마워요. 귀한 식재료를 쓰게 했네요.”

“아닙니다. 라수스 협곡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 받았으니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요.”

“그래도 고마워요. 아무튼 편히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현수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침상에 눕지는 않았다. 벌레가 몇 ㎝ 아래에 우글거리는데 어찌 자겠는가!

잠시 머물다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프네가 지나치다 시선이 마주쳤다.

“어머! 어디 가시게요?”

“아! 네에. 잠시 산책 좀 하려고요.”

“너무 멀리는 가지 마세요. 위험하니까요. 참, 마법사라 괜찮겠구나. 아무튼 조심하세요.”

“네에.”

잠시 어슬렁거리다 마을 밖으로 나섰다. 벌레 우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언제 이런 한적한 기분을 느껴보겠는가!

하늘은 맑고 공기는 달콤하다. 숲 속이라 그런지 피톤치드도 많은 것 같고 마나도 농밀하다.

현수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곳을 찾았다.

그리곤 좌표를 기록해 놓고 결계를 쳤다.

전 같으면 안에 들어가 마나 집적진부터 꺼냈을 것이다. 그리곤 마나 모으기에 열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가장 먼저 꺼낸 것은 활과 화살이다. 적당한 과녁을 만들어놓고 활쏘기에 몰입했다.

내기를 했으니 이겨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활에 대한 매력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나 오러 탄을 쓸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일정 거리 이내의 적만 벨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활은 검보다 훨씬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쪽은 초보자라 할지라도 아무런 피해도 없이 멀리 있는 적도 상대할 수 있는 병기이다.

현수는 활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남녀 선수들이 국제 양궁대회에서 금, 은, 동을 휩쓸었다는 오래전 기억 때문이 아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레골라스’라는 활을 다루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잘생긴 얼굴에 긴 금발이 인상적이다.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에 나온 ‘남이’라는 캐릭터도 멋지다. 시위를 비틀어 곡사하는 장면은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여건만 갖춰지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게 활이었는데 마침 내기를 하자하니 본격적으로 수련해 볼 생각이다.

해가 떨어지면 잠자리에 들고 날이 새야 일어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풍습이다. 그런데 이곳은 협곡의 안쪽이다. 다시 말해 여름이라 하더라도 다른 곳보다 일찍 해가 떨어지고 늦게 뜬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얼추 9시간은 된다.

9×180÷24를 해보니 68.5일이다.

두 달 하고 일주일쯤 죽어라 연마하면 족히 국가대표 수준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현수는 잉가댐 건설 현장과 비너스 호텔 총격 현장에서 사람을 상대로 한 사격을 해본 바 있다.

집중하기만 하면 상대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텔레스코프 마법을 써서 그런 게 아니다.

마법을 익히기 전에도 가늠자에 집중하면 과녁이 명확히 보였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인정하는 특등 사수로 인정받은 것이다.

게다가 바디 체인지가 되면서 근력이 대폭 상승했다.

겉보기엔 약간 마른 듯하지만 헤비급 보디빌더나 들 덤벨과 바벨을 거뜬히 들어 올릴 정도이다.

현수는 아공간 속의 활과 마법 화살통을 추가로 꺼냈다.

멀린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겉보기엔 불과 이십여 발 정도지만 20,000발이나 들어 있다.

결계의 저쪽 끝에 과녁을 만들어놓고 이쪽 끝에 섰다.

“흐음, 이제 시작인가? 좋아,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지.”

쉬이익―! 타악―!

“조준한 것보다 조금 아래 맞는군.”

다시 조준을 하곤 활을 쐈다. 몇 번을 하자 어느 정도 감히 잡힌다. 이때부터 현수는 활쏘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처음 1,000발을 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네 시간이다. 14.4초당 한 발을 쏜 것이다.

두 번째 1,000발은 3시간 44분 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세 번째는 3시간 32분, 네 번째는 3시간 16분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3시간 12분 걸렸고, 마지막 스무 번째를 쏘았을 때엔 2시간 14분이 걸렸다. 4.02초당 한 발이다.

이 정도면 다음에 쏜 화살이 앞 화살의 꼬리에 붙어서 가는 정도이다. 곁에서 보면 거의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 과정을 보면, 시위를 놓자마자 손이 화살통으로 향한다. 그리곤 다시 화살 한 발을 꺼내서 시위에 얹는다.

힘주어 시위를 당기면서 조준하게 마련인데 그런 정지 동작 없이 시위를 놓는다. 그리곤 앞의 행동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화살은 과녁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나중엔 조금씩 옆으로 움직이면서 쏘았다. 그래도 명중이다.

거의 명사수가 된 것이다.

현수는 6,000발을 쏠 때마다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피로현상 때문이 아니다.

바디 체인지의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잠시의 휴식을 취한 이유는 과녁 앞에 수북하게 쌓인 화살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녁을 뚫고 앱솔루트 배리어에 충돌한 화살의 앞부분은 모두 뭉개져 있다. 하지만 이 화살들은 다시 화살통에 들어갔다. 쏘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의 휴식을 가진 현수는 다시 사선에 섰다. 그리곤 쏘기 시작한다.

쉬이익! 타악! 쉬이익! 타악!

쉭! 쉭! 쉭! 탁! 탁! 쉭! 탁!

화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이미 넝마가 되어버린 과녁을 통과한 화살들을 배리어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공간엔 20만 발이 넘는 화살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다.

20,000발의 화살이 모두 못 쓰게 되었음을 확인한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흐음, 그래도 기회가 닿으면 화살을 잔뜩 사둬야겠구나.”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유비무환이다.

아공간의 화살을 꺼내 화살통에 넣고 다시 쏘기를 반복했다. 처음 2만 발 이외에 추가로 꺼낸 것이 18만 발이다.

20만 발을 모두 두 번씩 쏘았으니 40만 번을 쏜 셈이다.

이렇게 많이 쏘았는데 어찌 실력이 늘지 않겠는가!

결국엔 조준하기만 하면 명중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 2만 발을 마법 화살통에 넣던 현수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화살에도 오러를 실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즉시 여러 문헌을 찾아보았다.

아주 오래전, 오러 실린 화살을 쏘던 궁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소드 마스터 셋과 대결하여 결코 곁을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가 가까이 다가올 수 없도록 계속 연사를 하니 소드 마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기록은 무승부로 되어 있지만 소드 마스터들은 패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궁사는 상처 입지 않았으나 소드 마스터들은 각기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때문이다.

흥미가 돋아 더 많은 서적을 뒤졌다. 하지만 수련법은 없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우선 활을 쏘기 전에 화살에 오러가 생성되도록 하고…….”

말을 하며 화살에 마나를 불어넣으니 촉 부분에서 푸른빛이 난다. 오러가 실린 것이다.

쉬이익! 투앙―!

시위를 떠난 화살의 끝은 푸른빛을 잃는다.

“아닌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이때부터 현수는 화살에 오러를 싣는 방안을 모색했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3,000여 발을 더 쏘았다. 그 결과 얻은 소득은 오러의 시간차 발현이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화살에 마나를 불어넣되 과녁에 적중하는 순간만 오러가 발생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은 안 된다. 화살에 타임 딜레이 마법진을 새겼기에 가능한 것이다.

“흐음, 이건 사기지. 다른 방법은 뭐 없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이 방법 저 방법으로 활을 쏘았다. 그렇게 다시 10,000발을 쏘았을 때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혹시 그렇게 하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