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08화 (308/1,307)

# 308

현수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대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파아악―!

과도한 마나 유입은 화살이 터지게 만들 뿐이다.

“제기랄, 쉽지 않군. 끄응, 대체 어떤 방법으로 화살에 오러를 생성시켰을까?”

이 대목에서 현수가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다.

오래전의 그 궁사가 쓰던 화살의 촉엔 마나 감도가 좋은 미스릴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온갖 과학적 지식까지 총동원하여 오러 실린 화살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면서 5,000발을 쏘았다. 이제 남은 것은 2,000발 정도이다. 매 화살마다 마나를 불어넣으며 쏘았는지라 이번 것은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흐음, 이것 다 쏘고도 안 되면 훗날을 기약해야 하나?”

홀로 중얼거리곤 다시 사선에 섰다. 그리곤 습관처럼 화살에 마나를 불어넣자 푸른 오러가 화살 전체를 감싼다.

퉁! 쉬이이익! 타앙―!

“헐! 뭐야?”

현수의 입에서 나온 나직한 탄성이다.

이번 화살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지금까지는 시위를 놓는 순간 오러가 흩어졌다. 그럼 보통의 화살이 된다.

그런데 이번 것은 과녁에 이를 때엔 오러를 잃었지만 활공하는 동안엔 분명 푸른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내, 내가 어떻게 한 거지?”

거의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이뤄진 일이다. 현수는 방금 어떻게 쏘았는지를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이번엔 정신을 집중하여 오러를 입혔다.

“퉁! 쉬이익! 퍼억―!

“제기랄.”

쏘자마자 마나가 흩어졌다.

“한 번 더!”

현수는 또다시 시도했다. 하나 실패에 실패만 거듭할 뿐이다. 그렇게 1,800여 발을 쏘았다. 남은 것은 200발이다.

“심득을 얻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나직이 투덜거리곤 또 습관처럼 오러를 입혔다.

퉁! 쉬이이익! 타앙―!

“헉! 됐다. 근데 어떻게 한 거지?”

아무 생각 없이 쏜 화살에 또 오러가 입혀졌다.

“끄으응! 분명 뭐가 있기는 있는데 그게 뭐였지?”

나직한 침음을 냈다. 그리곤 심기일전하여 다시 활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그렇게 남은 200발을 모두 쏘았다.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시위에 얹혀 있는 것뿐이다.

“이것만 쏘고 나가야겠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위를 당기려는 찰나이다.

콰아아아앙―!

“헐! 이건 또 뭐야?”

앱솔루트 배리어에서 요란한 폭음이 전해진다.

“배리어 해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리어가 사라진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데 웬 사람이 보인다.

“헉! 누, 누구십니까?”

“그러는 넌 누구냐?”

“저요? 저는 하인스라 하는데,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 라이세뮤리안 옥타누스 카로길라아지바랄이다.”

“네?”

현수에겐 너무 긴 이름이다. 하여 잠시 혼동을 느꼈다.

“이곳 라수스 협곡은 인간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네가 감히 나 몰래 이곳에 발을 들여놓아?”

“그럼…….”

이제야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이며, 폭군 중의 폭군이고, 색마 중의 색마라 칭해지는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이다.

“네가 감히 날 보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

으르렁거리듯 나직이 씹어뱉는 말엔 강한 살기가 담겨 있다.

드래곤 알기를 지능 있는 도마뱀 정도로 생각하는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놈의 말인즉슨 보기만 해도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인데 그럴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뭐죠?”

“뭐라고? 네놈이 정녕 죽고픈 것이더냐?”

“라이세뮤리안이라고 하셨죠? 이곳 라수스 협곡을 차지하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은 레드 드래곤 맞습니까?”

“뭐, 뭐라고?”

어이가 없는지 눈까지 크게 뜬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졌다.

“드래곤이 중간계의 조율자라는 말을 언뜻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조율자가 사람의 통행이나 막습니까? 그리고 종족이 다른 인간 여인들을 납치하여 성폭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성폭행? 그게 무슨 말이냐?”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를 강제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가 듣기론 그렇게 해서 상당히 많은 자손을 보셨더군요.”

“……!”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에게 있어 자신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제 할 말 다 하는 존재는 단연코 없었다.

워낙 성질이 더럽기에 드래곤 로드조차 옆에 서서 달래듯 뜻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한낱 인간이 따지듯 묻고 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자손을 보니 좋았습니까? 여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고 혼자 욕심 채우니 좋았냐는 말입니다.”

“뭐라고? 네, 네 이놈!”

라이세뮤리안은 하마터면 화염의 브레스를 뿜을 뻔했다. 어디서 감히 인간 따위가 드래곤인 자신을 책망하는 듯 말을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참았다. 근처에 여식들의 거처가 있기 때문이다.

현수가 방문했던 마을.

그러니까 아이와 노인 없이 20대에서 30대 여인으로만 구성된 마을은 라이세뮤리안의 딸들이 사는 곳이다.

인간과 드래곤은 이종족이다. 게다가 둘의 결합은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완전한 드래곤인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둘 사이의 결합에 여러 미묘한 결과가 발생했다.

크게 나눠 드래곤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인간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마법이나 검술에 재능이 많다. 반면 이 마을의 여인들은 인간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

아르센 대륙인지라 검사할 수는 없지만 이 마을 여인들은 거의 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전자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법적 재능도 없고 검법도 시원치 않은 딸들은 드래고니안과의 결혼을 거부했다.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서이다.

아버지인 라이세뮤리안에게 협곡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자신의 피붙이가 한낱 인간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성 드래고니안과는 상종조차 하기 싫어 멀고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갈 수 없을 바엔 차라리 깊은 숲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 요량이다.

남자 없이 힘없는 여자들만 살아야 하기에 익히기엔 까다롭지만 많은 근력을 요구하지 않는 궁술을 익혔다.

그리곤 인근 텃밭을 가꿔 음식을 장만했고, 스스로 길쌈을 하여 의복을 만들어 입는다.

라이세뮤리안은 딸들이 사는 곳을 가끔 보고 가곤 했다. 그래도 딸이라고 잘사나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을 직접적으로 방문하지는 않는다. 들어주기 어려운 청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은 오크의 대규모 습격이 있었다.

혹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닌지 확인 차 왔다. 물론 이번에도 마을 밖에서 살펴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없던 결계가 쳐져 있다.

확인해 보니 8써클 마법인 앱솔루트 배리어이다.

혹시 자신의 눈을 속인 마법사가 딸들을 어쩌려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마법으로 냅다 후려갈겼다.

물론 끄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공격을 무산시킬 정도이면 9써클 마법사라는 뜻이기에 긴장한 채 결계를 바라보던 순간 그것이 해제되었다.

그리곤 이제 겨우 스물다섯쯤으로 보이는 애송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속을 박박 긁는 소리를 해댄다.

자존감 강한 드래곤으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한낱 인간 주제에 겁도 없이 잘도 나불거리는군. 좋아, 그 죄를 물어주지. 네놈의 애비 어미는 물론 사촌 이내의 친족 모조리 저승의 고혼으로 만들어주마.”

차원 이동 마법은 9써클 마스터였던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의 독창적인 마법이다. 이실리프 마법서에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다.

하긴 다른 존재들은 다른 차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니 멀린의 기록이 맞을 것이다.

그것은 드래곤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라이세뮤리안이 차원 이동 마법을 알 리 만무하다.

그러니 어찌 웃기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후훗! 그럴 능력은 있으시고?’

이건 속마음이다. 내놓고 말하면 정말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수는 속내를 감춘 채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뭐라고? 네 녀석이 정말 죽고픈 거냐?”

“아뇨!”

“그런데 왜?”

“이봐요, 드래곤 아저씨. 난 이곳에 오기 전 아저씨의 자식들인 드래고니안과 대결을 했어요.”

“뭐라고?”

라이세뮤리안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이다.

“거 뭐라더라? 레뮈라는 소드 마스터를 비롯하여 이십팔 명과 대결하여 이 협곡을 지나칠 권한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흥! 그건 그놈들과의 약조이고.”

“설마 다 큰 자식들의 약속을 깨겠다는 말입니까?”

“라수스 협곡엔 인간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이건 철칙이다. 따라서 넌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

보아하니 진짜 죽일 생각을 품은 듯하다.

‘드래곤과 한판 하는 거야? 어디 보자, 마나가 얼마나 있지?’

현수는 전능의 팔찌를 슬쩍 바라보았다.

마나석 전부 최상으로 충진된 상태이다.

‘타임 딜레이 마법으로 안 되면 차원 이동을 하면 되겠지. 그나저나 드래곤과의 한판이라……. 기대되는걸.’

현수는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 문헌으로만 보았다. 따라서 진정한 무서움을 모르기에 가볍게 생각했다.

“아! 좋아요, 좋아! 그럼 드래곤 아저씨와도 내기를 하죠. 내가 이기면 언제든 이 협곡을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걸로.”

“이놈! 어림도 없는 수작! 내가 왜 너 따위와 그런 내기를 해? 받아랏!”

언제 뽑아 들었는지 섬전처럼 쇄도하는 바스타드 소드가 있다. 최종 목적지는 현수의 목이다.

단숨에 목을 베겠다는 한 수이다.

“흥! 어림도 없습니다.”

채앵―!

“우읏!”

엉겁결에 검을 뽑아 막은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상대의 검이 묵직해도 너무 묵직했던 때문이다.

하여 순간적으로 허리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새롭게 바디 체인지를 하면서 근력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던가!

힘겹지만 무사히 상대의 검을 밀어낼 수 있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넌 오늘 여길 벗어날 수 없어.”

“드래곤이 치사하군요. 기습이나 하고.”

“흥! 인간 따위에게 갖출 예의란 없다. 야압!”

쐐에에에엑!

빙글 몸을 돌려 검을 휘두르는데 뭔가 이상하다.

팔 길이와 검의 길이, 그리고 검강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다른 것은 길어질 리 없으니 검강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채애앵―!

“으읏!”

현수는 뒤로 서너 발짝 밀렸다. 그 순간 다시 검이 쏘아져 온다. 이번엔 심장을 노린다.

“아앗! 블링크!”

현수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라이세뮤리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현수가 나타난 곳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그리스! 실드!”

콰아앙―!

“블링크!”

라이세뮤리안의 검은 실드를 찢어내고도 힘을 잃지 않았다. 현수는 또 다시 신형을 이동시켰다.

수세에 몰린 현수는 마법과 검법을 총동원하여 대항하였다. 하지만 상대 역시 마검사이다.

같은 소드 마스터이지만 현수는 비기너고 라이세뮤리안은 최상급이다. 현수는 7써클 마스터이지만 라이세뮤리안은 8써클 마스터이다.

검법에 미쳐 마법을 등한히 한 결과가 이 정도이다. 만일 다른 드래곤들처럼 9써클 마스터였다면 벌써 당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절절매면서도 두 시간 이상을 버텼다.

웬만하면 포기하고 항복했을 것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수세에 몰려 있었지만 현수는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팔목에 채워져 있는 전능의 팔찌이다. 벌써 네 번이나 앱솔루트 배리어가 저절로 발현되어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그렇다. 라이세뮤리안의 검이 세 겹 실드마저 찢고 파고든다. 등 뒤는 바위인지라 물러설 곳이 없다.

허공으로 솟으면 당장의 위기는 넘기지만 곧 더 큰 위기를 직면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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