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09화 (309/1,307)

# 309

왼쪽엔 숲이 시작되고, 오른쪽은 초지이다. 재빨리 계산을 마친 현수는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하기 위함이다.

“이놈! 죽어랏!”

“아앗! 실드! 실드! 실드! 블링크!”

“어림도 없다! 안티 매직 필드!”

쇄에에엑! 콰직! 콰지직! 콰직!

이번에도 세 겹짜리 실드가 종잇장 찢기듯 찢긴다.

“아앗!”

현수는 블링크가 시전되지 않음에 당황했다. 그러는 사이에 라이세뮤리안의 검이 쇄도한다.

찌이익―!

“크윽!”

검이 옷을 찢고 왼쪽 어깨를 파고든다. 당연히 격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상처를 볼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얼른 왼쪽으로 빠져나왔다.

설마 대결하다 말고 숲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라이세뮤리안이 움찔거린다.

“안티 매직 필드!”

현수가 마법을 써서 몸을 피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 듯하다.

현수는 검을 들어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며 좌우를 살폈다.

울창한 수림이 시작되는 부분인지라 굵은 나무들이 있다.

이 순간 라이세뮤리안의 신형이 급격하게 바뀐다. 폴리모프를 풀고 본체로 돌아간 것이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마치 미꾸라지처럼 교묘하게 빠져나가곤 해서 화가 잔뜩 난 때문이다.

한편, 현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현상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다. 놈이 곧장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우우우욱―! 파아아아아!”

고오오오오오오―!

화르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엄청난 고열이 느껴진다.

5장 전능의 팔찌

“아앗! 앱솔루트 배리어!”

챠라라라라랏!

주변에 이물질이 많아서 그런지 앱솔루트 배리어가 쳐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는 사이에 살이 익기도 전에 증발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닥쳐온다.

“으윽! 실드! 실드! 실드!”

현수의 바람과 달리 열기를 감소시켜 줄 실드는 쳐지지 않았다. 영리하다 못해 교활하기까지 한 라이세뮤리안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안티 매직 필드를 설정해 놓은 때문이다.

현수보다 상위 마법사인 7써클 마스터지만 이 순간만은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으으윽!”

너무도 뜨겁기에 검을 휘둘러 검막을 만들었다. 그러면 혹시 나아질까 싶어서이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 순간 현수의 눈에는 걸치고 있는 옷에서 연기가 솟는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인다.

이제 불과 몇 초 사이에 화르륵 타오를 것이고,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덮칠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피부가 녹아내리면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곳은 물론이고 지구에서 이루려던 모든 것이 그 시간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천지건설에 입사하여 전무후무할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 결과 초고속 승진을 하여 전무이사가 되었다. 아마도 지금쯤 전무이사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것이다.

애써 마음을 얻은 강연희 대리는 현수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더 괜찮은 사무실을 만들까 골몰하면서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생활의 안정을 찾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언제 귀가하나 기다릴 것이다.

현수는 모르지만 이 순간 권지현은 현수의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있다.

지현은 현수가 출장 중일 때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방문하여 이은정 실장과 접촉한 바 있다.

그 결과 주소와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그날 이후 우미내 마을에 있는 현수의 집을 여러 번 방문하였다.

결혼하기로 작정했으니 먼저 시어른 될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문이었다.

선물도 사갔고, 식사도 여러 번 하였다. 현수의 어머니는 지현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볼 때마다 보듬어주곤 한다.

아버지 역시 너무도 아름다운 데다가 현숙하고 명석한 며느리 후보에게 100점 만점에 1,000점을 주고 있다.

무조건 합격인 것이다.

이것은 현수가 강연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기에 일어난 일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기 일보 직전이다.

현수는 살이 익을 것 같은 뜨거운 열기를 느낌과 동시에 의식이 아스라이 스러짐을 느꼈다.

‘으으으, 이게 죽는 건가?’

죽음을 인식한 순간 현수는 모든 의식을 놓았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엄청난 열기가 영혼마저 증발시키려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때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

번쩍! 스팟―!

“헉! 이건 뭐야?”

현수의 신형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무리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라이세뮤리안이 경악성을 터뜨린다.

8써클 마법사가 안티 매직 필드를 설정했다. 상위 마법사가 아니라면 결코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마법의 기운이 감지된다.

라이세뮤리안은 즉시 주변을 살폈다. 혹시 조력자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경 2㎞ 내에는 아무도 없다.

8써클이 되면 와이드 센스 마법의 감지 범위가 1㎞ 남짓이 된다. 그럼에도 그것의 두 배 정도 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은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변엔 쥐새끼 한 마리, 벌레 한 마리조차 없다.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인 라이세뮤리안이 나타난 바로 그 순간 최대한 멀리 이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긴 어떤 짐승과 몬스터, 그리고 곤충이 흉포한 레드 드래곤의 기세를 감당해 내겠는가!

라이세뮤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홀연히 사라진 현수의 종적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근처엔 아무것도 없다.

“뭐야? 이게 대체……!”

라이세뮤리안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때문이다.

현수는 분명 화염에 타서 죽지 않았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앱솔루트 배리어가 뜨거움의 상당 부분을 가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브레스를 뿜는 순간 재가 되었어야 한다.

아무튼 배리어의 틈새를 파고든 열기는 현수를 증발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처절한 고통 때문에 절규하듯 일그러지는 표정만으로도 짐작된다.

그리고 재가 되기 일보 직전엔 그 표정이 사라진다. 고승이 해탈의 순간을 맞이하듯 모든 것을 포기하면 그렇게 된다.

그런데 현수의 그 표정은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죽었겠지만 사라지는 그 순간엔 화상만 입었을 뿐 결코 목숨까지 잃지는 않았다.

라이세뮤리안은 용암 같은 자신의 브레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현상 때문이다.

“허어, 이상하군. 놈이 9써클이었나?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마나 고리가 여덟 개뿐이었어. 그나마 하나는 온전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 7써클 마스터 정도일 거야.”

라이세뮤리안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눈앞에서 사라졌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라이세뮤리안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주변을 뒤졌다. 심지어 땅속을 파보기까지 했다. 그래도 현수는 없었다.

같은 순간, 현수는 전혀 다른 곳에 나타난다.

고오오오오―!

털썩―!

“쿨럭! 쿨럭―! 으으으! 으으으으! 끄응!”

아무것도 없던 허공 1m 높이에서 마치 돋아나는 것처럼 나타난 현수의 신형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기침을 했고, 신음을 토했다. 그리곤 곧바로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팔뚝에서 서늘한 푸른빛이 나타나더니 온몸을 감싼다. 그것은 마치 도롱뇽의 알을 감싸고 있는 알주머니 같다.

이것은 전능의 팔찌가 가진 공능 가운데 하나이다.

현수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팔찌 안쪽에 새겨진 컴플리트 힐 마법이 구현되는 중인 것이다.

일찍이 멀린이 아더왕의 애검 엑스컬리버에 새겨 넣었던 바로 그 마법진과 같은 것이다.

현수가 화염의 브레스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그 순간 팔찌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새겨 넣은 오토 워프 마법진이 작동한 것이다. 그 결과 라수스 협곡에 있던 현수의 신형은 바세론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멀린의 레어에 나타났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능의 팔찌에서 또 다른 빛이 새어 나온다. 이번 것은 에메랄드빛이다.

팔찌 주인의 뇌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이 마법이 왜 구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초록빛은 현수의 뇌 부분에 집중되었다. 그리곤 시간이 흘러갔다.

“끄으으응! 어라? 여긴 어디지?”

깊고 깊었던 잠에서 깨어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현수는 주변 환경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의식의 마지막은 이제 꼼짝없이 죽는구나였기 때문이다.

“흐음, 천국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지옥인 건 아니겠지?”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런 치장도 되어 있지 않은 석벽이다. 그런데 왠지 눈에 익다.

“어라? 여긴… 설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두리번거렸다.

“여긴 스승님의 레어잖아. 그렇다면……?”

현수는 얼른 전능의 팔찌를 살폈다. 아무런 이상도 없다.

사용된 마나는 오토 리차지 마법진이 가동하면서 모두 채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 스승님 덕이구나.”

비약적으로 뇌 기능이 좋아진 현수는 금방 사태의 전말을 깨달았다. 팔찌 안쪽에 새겨진 오토 워프와 컴플리트 힐 마법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나저나 라이세뮤리안! 으드득! 이 빚은 반드시 갚아

주마!”

현수는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했다.

라이세뮤리안은 검법으로든 마법으로든 자신보다 상급에 위치해 있다. 그와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최소 8써클 마스터는 되어야 하고, 소드 마스터 최상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

“드래곤이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세긴 세군. 하지만 기다려. 반드시 널 꺾어줄 테니.”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부탁은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드리안 공국까지 가야 하는데 그 길목이 라수스 협곡이다. 따라서 라이세뮤리안을 꺾지 못하면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건 안 되지. 좋아, 당장 수련 시작이다.”

현수는 타임 딜레이 마법진이 그려진 안쪽에서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주입했다.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딜레이!”

다른 장소에선 하루가 180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멀린이 이미 타임 딜레이 마법진을 설치해 놓은 곳이다.

그 안에서 또다시 타임 딜레이 마법이 시전되는 것이기에 여기서의 30년은 외부의 하루에 해당된다.

현수는 또 한 번 고행에 가까운 수련을 시작했다.

검술을 연마하다 지치면 마법을 수련했고, 골치가 아파지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궁술을 연마했다.

아공간에 담겨 있던 서책을 모두 꺼내 아주 샅샅이 뒤져 읽었다. 드래곤과 싸워 이기려면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결계 안 시간으로 27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다.

“마나를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여기라고?”

누군가가 만든 마법서를 읽던 중이다. 서두에 쓰여 있기를, 5써클 유저가 기록자이다.

전반부에 기록된 것은 모두 아는 마법이다. 그래서 덮으려다 마법을 익히던 중 느낀 바를 기록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수련 중 어떤 소회가 있는지 궁금했기에 재미삼아 읽던 중이다.

“마나를 공기처럼……?”

같은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읽던 그 순간 현수의 몸으로부터 찬란한 금광이 퍼져 나온다.

마치 몸속에 강한 전구가 있어 그 빛이 밖에까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이때부터 현수의 뇌리로 수만 가지 상념이 교차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섭렵했던가!

지구에선 모든 교과서 외에도 과학 서적과 의학 서적, 그리고 각종 기술 서적을 읽은 바 있다.

전공인 수학 서적도 상당히 많다.

아르센 대륙에서도 상당히 많은 마법서를 읽었다.

물론 이실리프 마법서가 그중 가장 방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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