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12화 (312/1,307)

# 312

“아! 그렇습니까?”

로버트 중령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말은 안 했지만 항온 전투복의 납품 단가는 ACU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기능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납품 받으면 그걸 복제해 내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미국엔 그만한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향후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미군을 위한 군복을 납품받을 수 있다.

“참 어렵게 개발한 기술일 텐데… 전 세계인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시다니… 정말 훌륭하신 처사입니다.”

로버트 중령은 속내를 감추고 칭찬했다. 입술에 침은 발랐으나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현수는 내심 실소가 터져 나오려 했으나 억지로 참았다.

예전에 어떤 시인이 대학교에 재직 중인 친지를 만나러 캠퍼스로 간 적이 있다.

우연히 문학 강의실을 지나치는데 수업에 사용된 시(詩)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 대학에서는 자신의 시를 어떻게 해석하나 싶어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곤 숨어서 강의 내용을 들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은 빨개졌다.

자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작자의 의도라면서 아주 대단하게 설명을 하는데 부끄러웠던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베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베껴보라는 뜻에서 특허 출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수가 지구 유일의 마법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장 대단한 소동이 빚어질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끊임없을 것이고, 각국 방송사들도 끈질긴 출연 요청을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부를 것이다. 물론 마법의 군사적 적용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연구한 후의 일일 것이다.

기업도 현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항온 마법진 같은 열역학 제1법칙을 무시하는 대단한 마법을 어찌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온도와 관련 있는 마법만으로도 산업혁명에 버금갈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가 가능하다. 선풍기 정도의 바람만 만들어낼 전력만 있으면 에어컨도 가능하다.

둘 다 콘센트의 위치와 관련이 없으므로 인테리어도 훨씬 자유로워진다.

포항제철에선 고로에 열을 공급하는 코크스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김연아가 스케이팅하는 아이스링크 역시 조명할 정도의 전력만 소모하게 될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냉동, 냉장창고와 보냉 탑차, 보온 탑차 등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얇은 철판에 그려진 마법진이 일으킬 효과이다.

물론 그에 적용될 마나석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 리 없으니 논외로 해야 한다.

쇼핑몰이나 대형 빌딩을 건설함에 있어서도 온도 조절 마법은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겨울엔 난방을 할 필요가 없고, 옥상엔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공조 설비도 필요 없다.

따라서 여름마다 뉴스에 등장하던 레지오넬라(Legionella)2)라는 이름도 듣기 힘들어질 것이다.

건물 유지 비용이 대폭 줄어들 터이니 건축계에서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아르센 대륙에서 구현시킨 바 있다.

사랑하는 카이로시아의 집무실과 침실에 항온 마법진을 설치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지구에서도 당장 적용 가능한 마법이다.

이밖에도 항온 마법의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화력발전소, 거의 모든 공장, 목욕탕, 사우나, 찜질방, 자동차, 온실 등등이다.

적용만 되면 아마 산업 전반에서 엄청난 반향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석유의 몰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항온 마법 하나가 이러니 다른 모든 마법까지 등장하면 어쩌겠는가!

세상은 마법을 중심으로 돌게 될 것이고, 현수는 거의 신(神)에 버금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할 사람의 수효만 적게 잡아도 10억은 될 것이다.

마법사의 제자가 되면 일등급 신랑, 신부가 된다.

부와 명예, 그리고 돈은 저절로 따르고, 추종하는 무리까지 생긴다. 이렇듯 팔자를 고치게 되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그래서 공부는 하기 싫고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던 녀석들이 대거 달려들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되더라도 이런 녀석들은 절대 제자로 받아주면 안 된다. 남들이 놀고 싶은 걸 꾹 참고 공부할 때 놀았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본인을 위해서라도 영원한 비밀이 되어야 한다.

“언제든 납품 물량 및 단가가 결정되면 꼭 연락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헤어질 때 로버트 중령은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이쪽은 슈퍼 갑이고, 자신은 힘없는 을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로버트 중령이 문 밖으로 나가자 현수가 박 사장을 바라본다.

“최세창 대령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쩌시려구요?”

박근홍 사장이 저어된다는 표정이다.

“중간에서 다른 마음을 품고 농간을 부리고 있다면 그 자리에 못 있게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그래야죠. 그나저나 조금 전에 참 창피했습니다.”

현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왜요?”

“한국은 미국과 달리 군납을 하려면 여러 곳을 거쳐야 한다는 말 말입니다.”

“아! 그 말……!”

대한민국에선 무기 도입 과정에 리베이트가 오가는 걸 관행으로 여긴다.

“리베이트만 없애도 탱크 같은 무기 도입 비용의 20%를 줄일 수 있습니다.”

2009년 7월 정부 예산안 보고 자리에서의 발언이다.

“무기 구입과 조달, 병무 업무는 근원적으로 비리가 생길 틈이 있습니다. 획기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건 2009년 12월 8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막대한 리베이트가 오간 무기 도입을 꼽으라면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에 있었던 율곡사업이 있다.

국민들은 무기 도입 리베이트를 근절하라는 요구를 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은 무기 거래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발의했던 ‘원가부정방지법’에서 리베이트 금지 조항을 삭제한 바 있다.

해외 무기 도입이 많은 상황에서 법에 따라 일일이 중개 수수료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유이다.

또한 자유 경쟁을 제한해 업체 간 담합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에 국회가 동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래서인지 아직도 군납엔 상당한 비리가 숨어 있는 듯하다. 그걸 외국인이 지적했으니 어찌 낯이 뜨거워지지 않겠는가!

“어쨌든 군복 납품에 우리는 단 한 푼의 뇌물도 쓰지 않을 겁니다. 마침 달라는 데도 있으니까요.”

“네, 김현수 사장님의 뜻 압니다. 그런 일 절대 없도록 할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박근홍 사장이 믿어달라는 표정으로 웃음 짓는다.

이때 탁자 위의 핸드폰이 울린다.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잘 알려진 팝이다.

“여보세요. 아! 최 대령님! 네, 네. 그래요? 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네, 그러지요.”

박 사장은 금방 전화를 내려놓았다. 상대가 용건만 말하고 서둘러 끊은 때문이다.

“뭐랍니까?”

“물건이 좋으니 어서 절차를 밟아달라는군요.”

“절차를 밟아요?”

“네, 군납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곳들이 있습니다.”

“거쳐야 하는 곳이요? 전에 말씀하셨던 그…….”

현수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관련 기관이 한둘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박근홍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수는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맞췄다.

“박 사장님!”

“네?”

“우리 군납 하지 맙시다.”

“……!”

“현역으로 근무 중인 군인들을 위해 군복을 납품하려던 것이지 엉뚱한 놈들 배불려 주려 한 것 아니잖습니까?”

“그, 그렇지요.”

“그러니 포기합시다. 아울러 최 대령에게 제공된 샘플을 모두 수거하세요.”

“그렇게까지……!”

“그냥 두면 그거 미국 본토에 갈 겁니다. 일본과 지나에도 갈 거구요. 안 그렇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수하죠.”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제품에 예상치 못한 하자가 있다고 하세요.”

“네? 왜요?”

“괜한 앙심 품게 할 일 있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불만이 있으셔도 회수하세요. 판로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턴 내수 판매를 겨냥한 제품을 디자인하겠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에도 수출할 겁니다. 여름용과 겨울용 두 가지 모두 디자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미군 군복은 어쩌지요?”

“달라니 팔지요. 다만 제값을 다 받을 생각입니다.”

“제품 원가는 빤합니다. 거기에 얼마나 더 얹으실 생각이신지요?”

“미군 ACU의 가격이 150$ 정도 하지요? 그러니 한 300$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00$면 좀 비싼데…….”

“비싸면 입지 말라고 하면 되죠. 하하!”

“맞습니다. 그래도 사 입기는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300$로 가격을 책정하죠.”

“바로 전화하지 마시고 며칠 뜸들이세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내수용 가격은 얼마나……?”

“요즘 아웃도어 쪽이 활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 디자인을 참고하세요. 굳이 저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요. 디자인도 별로고 원단도 시원치 않은데 요즘 아웃도어 가격이 상당합니다.”

박근홍 사장은 기분이 좋아진 듯 웃음 짓는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겨울용도 생각하세요. 그건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세요. 학부모들 등골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네에, 알겠습니다.”

박근홍 사장은 국민 교복이라 불리던 것의 고가 정책을 떠올렸다. 가장 싼 것이 25만 원, 비싼 것은 69만 원이다.

아이들이 한두 해 겨울에 입는 옷치고는 지나치게 비싸다.

그리고 이 브랜드는 14년간 할인 판매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경쟁 상대가 없으니 그런 것이다.

이것은 너무 비싸 학부모 등골 브레이커라는 별명도

있다.

“너무 두툼하지 않게 만드세요. 활동성 부여를 컨셉으로 잡고요. 제 생각엔 10∼15만 원이면 충분할 겁니다.”

“네. 아마 센세이션을 일으킬 겁니다. 그런데 미군 군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네요. 문제 삼지 않을까요?”

“그럼 안 판다고 하세요. 잊으셨어요? 우리 배짱 장사 하기로 한 거요.”

“네, 그래도…….”

현수는 박근홍 사장의 우려에 대한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노인용도 생각해 두세요.”

“네? 노인용이라니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 만하게 된 게 누구 덕이겠습니까? 불우한 노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네, 겨울에도 냉골에서 지내는 분들이 많죠.”

“생활보호대상자들은 보건복지부를 통해 제공할 겁니다. 질기고 때 덜 타는 원단으로 디자인하시면 될 겁니다.”

“헐! 전부 무료입니까?”

“아뇨. 무료는 아니지요. 보건복지부에 납품하는 걸로 알아보십시오.”

“그 비싼 걸 보건복지부에서 매입할까요?”

“노인용은 파카가 아니라 내복처럼 만드시면 되잖아요. 그분들이 매일 나와서 돌아다니시는 게 아니니까요.”

“아! 그렇군요.”

박근홍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현수가 첨언한다.

“시중에서 팔리는 내복 값에 조금만 더 얹으면 보건복지부에서도 흔쾌히 매입할 겁니다. 뭐 안 하겠다면 말구요.”

“하하, 네에. 그 정도면 사겠지요. 알겠습니다. 그것도 준비하죠. 근데 그러려면 물량이 상당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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