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17화 (317/1,307)

# 317

“끄으응! 대체 어떤 미친놈이 삼합회에 선을 댄 건지 당장 알아봐!”

“네, 국장님!”

지나 최대의 건설업체인 지나건축공정총공사(China State Construction Engineering Corp.)에는 다른 건설사에 없는 기구가 있다.

긴급 업무 처리국이라는 곳이다.

건축 공사를 하다 보면 고의,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불법 행위를 하게 된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공사를 위한 터파기를 하다가 유물, 또는 유적이 발견되면 즉각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곤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한다. 그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신고를 받은 기관은 조사팀을 파견하여 유물, 또는 유적에 대한 감정을 한다.

조사 기간은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모든 발굴 비용은 사업 시행사 또는 시공사가 내도록 되어 있다.

하던 공사를 못해서 손해를 보는 입장이라도 예외는 없다.

아무튼 조사 결과 주요 유적지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공사는 완전히 끝이다. 보존 명령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국가는 단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그리고 발견된 유물 및 유적은 모두 국가 소유이다.

이쯤 되면 국가가 아니라 거의 강도에 가깝다.

이런 상황이기에 공사를 하다 유물, 또는 유적이 발견되어도 그냥 묻어버리거나 아예 파괴해 버린다.

안 그러면 공사가 무산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회사 자체가 망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는 한국과는 법률 자체가 다르지만 어쨌든 상당히 많은 유적이 발굴되는 나라이다.

그럴 때마다 깊은 밤이면 긴급 업무 처리국 직원들이 현장에 잠입한다. 그리곤 폭파해 버린다.

공사 수주 과정에서도 경쟁사 때문에 수익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입찰 금액을 낮게 써야 낙찰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회유, 협박, 암살 등의 공작이 진행된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주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달러, 금괴는 물론이고 마약을 제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술과 여자라는 향응을 베풀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긴급 업무 처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 기구는 온갖 더러운 일을 맡는 곳이다.

상석에 앉은 국장은 건축공정총공사의 임원급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다섯 개 팀 팀장이다. 이밖에도 20개의 팀이 더 있다.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업무를 보는 중이라 다섯만 있는 것이다.

“누구든 섣불리 손을 써서 이따위로 일을 망치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멱을 딸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네, 국장님!”

“모두 나가봐.”

“네!”

다섯이 이제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서자 국장이 인터컴을 누른다.

삐이이잉―!

“네, 국장님!”

“흑룡에게 연락해서 즉시 들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긴급 업무 처리국장 왕득보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감히 내 앞 길을 막아?”

나직이 중얼거리곤 창밖에 시선을 준다. 몹시 기분 나쁠 때의 습관이다.

9장 속 썩이는 놈

“하아암! 잘 잤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는 습관처럼 휴대폰의 버튼을 눌렀다.

“응? 문자가 왔네. 누구지?”

손가락을 옆으로 밀어 문자를 확인했다.

태백조선 강전호입니다. 김현수님께 긴급히 도움을 요청 드립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대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태백조선소의 강 대리구나. 근데 무슨 일이지?”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전 7시를 갓 넘겼을 뿐이다.

“통화하긴 너무 이를까?”

현수는 통화 대신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입니다, 강 대리님. 무슨 일로 연락 주신 건지요?

문자를 보내놓고 화장실로 가려는데 진동음이 들린다.

지금 통화 가능하면 전화 드려도 될까요?

‘흐음, 무슨 일이지?’

현수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김현수 전무님! 강전홉니다.”

“오랜만이네요. 근데 무슨 일이죠?”

“김 전무님, 바쁘시겠지만 저 좀 도와주십시오.”

“도와드려요?”

“네. 전에 만났던 CMA 오머런 사의 세바스티앙 부회장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그 사람이 왜요?”

“자세한 이야긴 만나서 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십시오.”

“뭐, 그럽시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천지건설로 출근해 봐야 할 일도 없다. 집무실은 인테리어 공사 중일 것이고 꼴 보기 싫은 박 과장이 설치고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강연희 대리에게 휴가를 주었다는 것이다. 영국을 다녀오는 동안 집안의 대소사가 여러 번 있었는데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하여 전무 직권으로 비서인 강연희 대리에게 휴가를 주었다. 하여 연희가 박진영 과장과 맞부딪칠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출근할 생각을 접은 것이다.

아니었다면 연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출근했을 것이다.

“제가 김 전무님 계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장소만 말씀해 주십시오.”

“흐음, 그럼 워커힐 호텔에서 구리시 쪽으로 가는 길로 오다가 보면 왼쪽에 크론 식당이라는 곳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만납시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한 30∼40분쯤 걸릴 겁니다.”

“그러세요. 거기서 해장국이나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또 전화가 진동을 한다. 번호를 확인하니 이실리프 어패럴의 박근홍 사장이다.

“네, 박 사장님.”

“에고, 김 전무님, 제가 너무 일찍 전화 드린 건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사무실로 좀 와주셨으면 합니다.”

“뭐 급한 업무가 있나 보죠?”

“네, 최세창 대령이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그럽니다.”

“그 건이라면… 알겠습니다. 지금 누굴 잠깐 만나야 하니 그 일 끝나면 바로 가겠습니다.”

“네, 점심 이전에만 오시면 됩니다. 최 대령 도착 시간이 12시거든요. 점심이나 같이 하십시다.”

“그러지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납품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 최 대령이 사무실을 찾아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둘러 샤워를 마친 현수가 크론 식당에 당도한 시각은 오전 7시 35분이다.

“안녕하세요?”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김 전무님.”

크론 식당 사장이 눈에 뜨이게 반색한다.

“네에, 안녕하셨죠? 사모님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 전무님 덕분입니다.”

크론 식당 사장은 전에 없이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에고, 사장님, 저한테 왜 존대하세요?”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사람도 찬성이고 아이들도 좋다고 합니다. 거기 가면 사장님으로 모셔야 하니 당연히 존대를 해야지요.”

“……!”

현수는 잠시 대꾸하지 않았다.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결론은 크론 식당 사장 강동호의 말이 맞다는 것이다.

이실리프 농산과 축산, 그리고 농장은 수만 내지는 수십만을 종업원으로 둔 거대 기업이 될 것이다.

그 큰 조직이 원활하게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당연히 자금력이 우선이다. 그리고 수직적 위계질서와 조화가 필요하고, 수평적 협동심이 필요하다.

방금 크론 식당 사장 강동호는 그중 위계질서에 관한 이야길 언급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셨다니 환영합니다. 하루빨리 합류하시기 바랍니다. 전에 드린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하셔서 민주영 실장을 찾으세요. 자리를 마련해 드릴 겁니다.”

“감사합시다, 사장님!”

“근데 사모님은 정말 괜찮으신 거죠?”

“네, 근력도 좀 붙었는지 혼자 일어날 정도는 되었습니다. 모두 사장님 덕입니다.”

강동호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애써 피할 일도 아니다 싶어 가볍게 맞절을 해줬다.

“다행이군요. 당분간은 재활에 힘써야 되겠습니다.”

“네,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입사하면 해야 할 업무는 뭐가 되는지요?”

“경기도 농업연구원에서 하시던 연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용 미생물을 이용한 인삼의 안전성 향상과 친환경 재배 기술을 개발하셨다고 했죠?”

“네, 맞습니다.”

“이실리프 농산과 농장에서는 여러 작물을 재배할 계획입니다. 그중 인삼도 있을 겁니다. 재배 환경이 맞을지 모르지만요. 그것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지내던 동료 가운데 몇을 합류시켜도 되겠습니까?”

“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구원을 그만둔 직원이 몇 있습니다. 제법 능력이 있는데 재취업이 어려워 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아! 그런 분들이라면 환영입니다. 다만 역삼동 본사에서 면접은 거쳐야 할 겁니다. 제가 민주영 실장에게 전화를 넣어놓겠습니다. 조만간 연락이 올 테니 그때 면접을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동호는 여러 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의 말대로 예전 동료 여럿이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신생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서 옮겨간 직원들이다.

불행히도 그 회사는 도산하였다. 졸지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스카우트를 받았다.

그때 강동호 역시 제의를 받았다. 급여와 인센티브가 좋았지만 거절했다. 아내가 불안하다고 반대한 때문이다.

아무튼 옛 동료들은 부쩍 나빠진 경기 때문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있는 직원도 줄여야 할 정도로 불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엔 아내의 병세 때문에 연락할 정신이 없었다. 언제 아내의 장례를 치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옛 동료들과 노닥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엔 완연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강동호는 예전의 동료들과 모처럼 통화를 했다.

본인들도 백수 신세라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더 어려웠던 강동호를 위해 십시일반4) 도왔던 동료들이다. 이제야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대부분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던 인력들이 막노동, 청소, 편의점이나 PC방 알바 등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신문에 난 현수를 보게 되었다.

현수가 자신에게 제안했던 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알게 된 순간 강동호는 콩고민주공화국 행을 결정했다.

이번엔 아내도 찬성이다. 경쟁 일변도인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게다가 콩고민주공화국 영토의 대부분은 청정 자연이다. 이게 어쩌면 자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매연과 공해에 찌든 서울보다는 건강에 좋을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찬성한 것이다. 물론 찬성의 저변엔 생명의 은인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강동호는 옛 동료들에게 이 같은 정보를 전했다.

모두들 쌍수를 들어 환영이다. 취직만 할 수 있다면 콩고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달의 뒷면으로라도 가겠다는 것이다.

강동호는 현수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차마 연락하진 못했다. 자신과 아내에게 베푼 호의가 얼마나 큰 건지 알기에 염치5)를 느낀 때문이다.

마침 현수가 왔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랬는데 너무 흔쾌히 허락하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아닙니다. 유능하신 분들이 오신다니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이제 막 시작하는지라 환경이 열악할 수 있지만 참고 견뎌달라고 전해주십시오. 곧 나아질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동호가 다시 허리를 꺾었다. 이때 강전호가 들어선다.

“김 전무님, 벌써 오셨네요. 제가 조금 늦었습니… 어라! 형님, 동호 형님 아니세요?”

강전호의 눈이 커진다. 육촌지간이지만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강동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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