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19화 (319/1,307)

# 319

귀국하면 대기발령 내지는 해고될 것이라며 우거지상을 하고 있던 강전호, 우정훈, 박창민의 얼굴이 떠오른 때문이다. 그들이 앉아 있던 좌석 아래엔 캔맥주 깡통 찌그러진 것이 즐비했었다.

“그때도 세바스티앙이 속을 썩이고 있었지요. 잠시 도움을 주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봐요.”

강동호는 전후 사정을 모르기에 현수의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한편, 현수는 전호의 속내를 알 것만 같았다. 그때 속 썩이는 세바스티앙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한 마법은 어팬시브 참이다.

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는 것이 짐작된 것이다. 이때 강전호가 들어선다.

“김 전무님, 오늘 오후에 어떻습니까?”

“점심때 약속이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닙니다.”

“잘되었네요. 오후 3시쯤 만나는 걸로 하지요.”

“그럽시다.”

“이따 전화 하세요. 제가 차 가지고 갈게요.”

“에구, 아니에요. 그냥 지하철이나 버스가 편해요.”

현수는 전무이사로 승진 발령을 받은 뒤 신형섭 사장으로부터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받았다.

뭔가 하고 보니 자동차 카탈로그였다.

국산 최고급 승용차인 에쿠스와 체어맨, 제네시스를 필두로 벤츠, BMW, 벤틀리, 재규어, 아우디, 폭스바겐, 캐딜락, 체로키, 랜드로버 등 거의 모든 차가 망라되어 있었다.

상무 이상의 임원이 되면 회사에서 차량을 제공하는데 아무거나 원하는 것을 고르라 하였다. 운전기사도 원하면 배속된다고 했다.

현수는 이 카탈로그를 눈여겨보았다.

국내에서 이동할 때 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사장이 준 카탈로그에서 고르진 않았다.

처음 현수의 낙점을 받은 차는 울림 네트워크의 스피드이다.

이중 최고급형인 스피드 EX 템페스트 모델이 마음에 들었다.

V6 트윈 터보 엔진에 500마력짜리 수동 6단의 기본형이 1억 8,318만 원이나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스피드 아이코닉,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타고 다니던 모델이다.

가격은 4,972만 원이다. V6 터보 엔진이고 175마력이다.

리터당 주행 거리는 무려 9.4㎞로 표기되어 있다.

현수가 이 차를 고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본인이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는 차종이라는 것이다.

어느 식당에 갔는데 주인이 김치를 담고 있다. 손님이 그건 뭐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이 먹을 것이라고 한다. 손님용은 따로 담는다는 말을 했던 그 식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다.

둘째는 바디 체인지 후 스물다섯 살로 보인다는 점이다.

전에는 젊은 사람이 벤틀리 같은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부모 잘 만난 덕에 호사하는 것은 좋지만 은연중 거드름 피우는 게 어찌 좋아 보이겠는가!

하여 처음부터 그런 차들은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

셋째는 연비이다. 카탈로그상의 연비와 실제 주행 연비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스포츠카에 이만한 연비를 가지기 어렵다.

넷째는 국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제 스포츠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섯째는 예뻐서이다. 차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현수가 요청한 차는 좀 있어야 출고된다고 한다. 러시아 수출용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림 네트워크의 박동현 대표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현수가 전화를 걸었다면 아마 만사를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제작해 줬을 것이다. 그런 게 싫어서 천지건설 명의로 계약한 것이다.

아무튼 강전호는 현수가 지하철을 언급하자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표정이다.

“그래도 어떻게…….”

“괜찮아요. 그게 편하니까요. 오가는 동안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구요. 그러니 장소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장소가 확정되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강전호와 헤어진 현수는 곧장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향했다.

10장 하자 있는 전투복

“어서 오세요, 사장님!”

“이 실장님, 별일 없죠?”

“그럼요.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내가 결제할 것들 있으면 가져오세요.”

“네에.”

이은정 실장이 물러간 후 현수는 가방에서 스피드의 카탈로그를 꺼냈다. 차가 도착하면 몇 가지 손을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차가 개선해야 할 점은 가장 먼저 승차감과 소음이겠지? 어디 보자, 다른 차들은 어떤 걸 쓰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이것저것 확인해 보았지만 마땅치 않다.

“흐음, 마법이라면…….”

뒤에서 들릴 엔진 소리는 논 노이즈 마법 한 방으로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 승차감 개선은 서스펜션이 관건이다.

에어 서스펜션이라는 것이 있다.

이건 대형 화물차나 대형 버스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장점이 많다. 호박 같은 모양인데 화물의 중량에 승차 인원에 상관없이 일정한 차고를 유지하도록 한다.

“흐음! 차고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마법이라……. 어렵구만.”

현수는 한참을 고심했다. 마땅한 마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행 중 노면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흡수하는 마법을 새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을 나선 현수가 이실리프 어패럴의 박근홍 사장과 자리를 마주한 것은 12시경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근데 최세창 대령이 왜 우리를 보자고 하는 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 대령에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물건에 하자가 발견되어 국방부에 납품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울러 제공했던 샘플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걸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만나자고 했다는 겁니까?”

“네.”

“샘플을 모두 회수하신 겁니까?”

“아뇨. 이쪽으로 올 때 가져오겠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아직 회수 못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을 하는 사이에 비서가 차를 놓고 나갔다.

“전에 말씀드렸던 것들은 진행 중이신 거죠?”

“물론입니다. 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을 위한 내복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 조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울러 콩고민주공화국에 수출할 각종 작업복 디자인이 진행 중입니다.”

“러시아에 수출할 겨울용도 진행시켜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너무 두껍지 않게 만들어 활동성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을 하는 중입니다. 샘플이 만들어지는 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 그나저나 이 사람 늦는군요.”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군수사령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세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린다. 거기엔 감색 양복을 걸친 최 대령과 낯선 인물 둘이 서 있다. 모두 양복 차림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또 뵙네요.”

현수와 박근홍 사장은 손님을 맞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네.”

최 대령은 두 인물이 자리에 앉자 입을 연다.

“이쪽은 보급처 김인문 대위고, 이쪽은 선진식 소령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실리프 어패럴의 박근홍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회사 대주주이신 김현수 사장님입니다.”

“반갑습니다.”

현수와 박근홍 사장이 명함을 건넸지만 둘은 군인인지라 명함이 없는지 받기만 해서 조금 머쓱했다.

“김현수 전무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무튼 승진 축하합니다.”

최 대령도 신문은 보는 모양이다.

“네, 감사합니다.”

“참 대단한 일을 하셨더군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의례적인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뭐, 그럽시다. 먼저 항온 전투복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하자가 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갑작스런 질문에 박근홍 사장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현수가 나섰다.

“죄송합니다. 그건 기업 비밀이라 공개해 드릴 수 없습

니다.”

“흐음, 그래요? 근데 그게 전투복을 납품하지 못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샘플로 주신 전투복을 병사들에게 입혀 몇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자 때문에 납품을 포기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최세창 대령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선진식 소령이 박근홍 사장과 현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시선 속에 의혹이 담겨 있다.

‘뭐하는 수작이지?’

현수는 최 대령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납품을 포기하겠다고 하면서 샘플을 돌려달라고 하면 주면 그만이다.

지금껏 전투복을 납품 받으면서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면 종전대로 계속해서 이득을 취하면 된다.

그런데 왜 쓸데없이 물고 늘어지는지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전투복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습니다. 그걸 밝히고 공개할 경우 회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희는 대외비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전에 드렸던 샘플도 돌려달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허험, 저희는 군인입니다. 비밀은 엄수해 드릴 테니 방금 말씀하셨던 하자를 밝혀주십시오.”

현수는 구차한 사정을 말했음에도 이러는 선 소령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은 뭐야? 마이동풍인거야? 아님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속은 이랬지만 현수의 다음 말은 차분했다.

“그걸 저희가 왜 밝혀야 하는 거지요? 이미 납품되었거나 납품이 진행 중이라면 밝히고 손해를 배상하거나 사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하지만 저흰 제의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밝히셔야 합니다.”

선진식 소령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왜죠? 저희가 밝힐 수 없다면요?”

“순순히 협조해 주십시오. 군과 관련된 일 아닙니까.”

하급자인 선 소령이 상급자를 제치고 나선 꼴이 되었지만 최 대령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납품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군대와는 관련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상대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든 박근홍 사장의 말이다. 이에 현수의 부드러운 음성이 이어졌다.

이들과 굳이 대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저희가 납품하지 않은 이상 밝힐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밝히셔야 할 겁니다.”

또 선진식 소령의 발언이다.

“……!”

현수는 잠시 선 소령과 최 대령을 째려보았다.

“저희가 왜 밝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군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

니다.”

“저흰 군에 납품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군과 관련이 없죠.”

“그건 왜죠? 왜 납품할 생각을 접은 겁니까?”

선진식 소령은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현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좋습니다. 밝혀 드리지요. 먼저 저희가 제공했던 항온 전투복 샘플을 돌려주십시오.”

“그건 왜죠?”

“물건이 있어야 하자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현수는 끝까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이 말이 타당하다 여겼는지 최 대령이 김인문 대위를 바라본다.

“김 대위!”

“네.”

“꺼내서 드려.”

“네, 알겠습니다.”

김인문 대위가 가지고 온 가방에서 항온 전투복 두 벌과 전투화 두 족, 그리고 전투모 두 개를 꺼내 탁자 위에 놓는다.

“저희가 드린 건 각각 세 개씩입니다. 한 세트가 부족하군요.”

“아! 그건 쓸 데가 있어 모처로 보냈습니다.”

최 대령은 별일 아니라는 표정이다.

“대구에 있는 19전구지원사령부로 보내셨지요?”

“어라! 그걸 어찌 아시오?”

최 대령이 눈을 크게 뜬다. 어찌 아나 싶었던 모양이다.

“폴 헐리 준장이 저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 양반 참 동작 한번 잽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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