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24화 (324/1,307)

# 324

“대체 어떤 권력을 쥐고 있기에 이런 권총까지 들고 다니는 거지?”

지갑을 꺼내 확인했다. 주민등록증밖에 없다.

“흐음, 강철환이라……. 어디 소속이지? 설마 기무사는 아니겠지? 요즘엔 이런 짓 안 하는 걸로 아는데…….”

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현수는 총구를 놈의 머리에 댄 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신분을 밝히는 것이 좋을 텐데?”

“너 이거 실수하는 거야. 당장 그 총 돌려주고 나한테 빌어. 그러면 한번 용서해 줄 수도 있어.”

“미친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이걸 왜 네게 줘야 하는데?”

말을 더 이으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선 소령이 들어선다.

“헉! 아, 아니……!”

“이 새끼 체포해.”

“네?”

“보고도 몰라. 이 새끼가 지금 권총으로 날 위협하고 있잖아.”

이때 현수가 말을 이었다.

“이 권총은 누구 건데? 경찰 부를까?”

“김 전무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긴요? 보고도 몰라요? 이 새끼가 권총으로 날 위협하려 해서 빼앗은 것뿐이에요.”

“너, 내가 분명히 말했다. 실수하는 거라고.”

“에이, 시끄러운 새끼!”

퍼억―!

쿠당탕!

현수가 뒤통수를 갈기자 그대로 기절한다.

“흠, 이제 좀 조용하군요. 선 소령님, 좀 앉아주시겠습

니까?”

“네? 아, 네에.”

선 소령이 자리에 앉자마자 현수가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에 와서 출입을 제한한 것은 월권행위 아닙니까? 그리고 박근홍 사장님과 나는 민간인입니다. 군대의 민간인 사찰 등은 불법이라는 거 아시지요?”

“민간인 사찰이라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면 이 자식은 대체 뭐하는 놈입니까?”

“그건…….”

선 소령은 말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밝히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은 처음이라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시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말아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나는 민간인입니다. 군과는 연관이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현수의 손에 권총에 있어서 그러는지 신 소령은 협조적이었다.

“부하들 데리고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현수가 들고 있던 권총을 건네자 얼른 받아 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대답을 한 선 소령이 무전기를 꺼내 지시를 내렸다. 그로부터 불과 5분 후 이실리프 어패럴은 예전의 평화로움을 되찾았다.

“아까 왔던 그자의 신분은 뭡니까? 그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현수의 물음에 박근홍 사장은 한숨부터 쉰다.

“그자의 정확한 신분은 모릅니다. 선 소령이 쩔쩔매는 걸 보면 상관인 것 같은데 명확히 무어라 말한 적은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놈이 뭘 요구했습니까?”

“우리 항온 전투복의 제조법을 달라고 하더군요.”

강철환이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한 말이다.

“뭐라고요?”

“국익을 위해 기술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주 큰 하자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선 소령에게 들어 안다고 하면서, 그래도 기술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자신들이 나머지를 연구 개발하면 된다는 겁니다.”

“미친놈이군요.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면 놈의 신분이 대강 짐작이 갑니다.”

“그래요?”

“네, 현역에 있다면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언론에서 알게 되면 아주 큰 곤욕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겠죠. 그럼 그자의 신분은 뭘까요?”

“모르긴 해도 군에서 예편한 장교들의 모임 같은 곳에 속해 있겠지요. 현역 때 만들어둔 인맥을 이용해 이권 개입이나 하는 무리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아!”

박근홍 사장의 뇌리로 여러 단체 이름이 떠오른다. 현수가 말한 것에 부합되는 단체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 다른 요구는 뭐가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기술을 내놓지 않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뒤져 이 땅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하겠다는 협박만 있었을 뿐입니다.”

“치사한 놈이군요.”

“아무렴요. 자식들 취업문도 막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더 정확히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놈은 기무사 또는 정보사에서 예편한 것 같습니다.”

“기무사와 정보사라면…….”

기무사는 국군기무사령부를 줄인 말이고, 정보사는 국군정보사령부를 줄인 말이다.

기무사는 군 관련 방첩, 첩보, 방위 산업 관련 보안 업무,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정보사는 대북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둘 다 한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곳이다.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지금도 상당한 권력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과 같은 일은 불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급적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역이라면 오늘처럼 내놓고 협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예편한 사람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 현역에 남아 있으니 그들에게 청탁 내지는 압력을 넣어 각종 이권에 개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쉽게 추측해 낸 것이다.

“우리가 괜히 건드린 게 아닐까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에 기무사, 또는 정보사에 대한 이야길 들은 바 있어서 그런지 박근홍 사장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기무사, 또는 정보사에서 직접 나선 게 아닙니다.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그럴까요?”

“네에. 거의 확실하니 마음 놓으십시오.”

현수는 한참 동안 박근홍 사장을 다독였다. 몹시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하여 김주미 여사에게 연락을 하였다.

오랜만에 영화라도 한 편 감상하면서 데이트를 하시라고 했다. 그래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을 떠나 삼청각으로 이동하는 동안 현수는 찜찜한 기분이 되었다.

선진식 소령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철환이란 사람 때문이다.

문득 서울고검장이 된 권철현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군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물어볼까?”

한참을 고심하던 중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대구 역전회 회장인 오대준의 아들 오광섭이다.

예전에 얼핏 듣기로 특전사 중위로 예편했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형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전무님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잘 지냈지?”

“물론입니다.”

“아버진 좀 어떠셔?”

“원기왕성하십니다. 형님 덕입니다. 하하! 근데 어디십니까? 혹시 대구에 내려오신 겁니까?”

“아니. 여기 서울이야.”

“아, 그래요?”

약간 실망한 듯한 분위기다.

“내가 뭣 좀 물어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자네 특전사 중위를 예편했다고 했지?”

“네. 근데 뭐가 알고 싶은데요?”

“혹시 동기 중에 기무사나 정보사에 있는 사람은 없어?”

“정보사엔 없고 기무사엔 동기가 있습니다. 근데 왜요?”

“어떤 놈이 날 협박했는데, 아무래도 그쪽 계통 사람 같아서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어떤 시러배 잡놈이 감히 형님에게! 형님, 그렇지 않아도 형님 만나 뵙고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잘되었네요. 제가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오늘은 그렇고 내일 뵈면 어떻겠습니까?”

“나야 좋지. 오랜만에 아우 얼굴도 보고. 그래, 내일 보세.”

오광섭과 통화를 마친 현수는 삼청각으로 향했다.

* * *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김현수라는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

“네, 명단에 있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상냥한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수국B룸으로 갔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다. 현수는 잠시 창밖 풍경을 즐겼다.

잠시 후,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 그리고 강전호가 당도했다. 옆방에도 이실리프 무역상사 직원들이 당도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

코스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요리의 색깔과 모양, 그리고 맛 모두 까다로운 그들의 입맛을 완벽히 충족시켜 준 때문일 것이다.

현수도 본인도 이런 곳은 처음이기에 그들과 똑같이 즐기며 즐거워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원기 회복과 심신 안정에 좋은 인삼차를 골랐다.

“쌉쌀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군요.”

“그렇죠? 한국의 인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약효가 좋은 걸로 유명합니다. 특히 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의 효능은 대단히 좋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기념으로 홍삼을 선택하길 권합니다.”

“그래요? 홍삼은 어떤 효능을 보이는지요?”

“홍삼은…….”

현수는 본인이 읽었던 한의학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효능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면역력을 증진시켜 주는 것이다. 둘째는 혈류 작용을 돕는다. 혈소판 덩어리와 혈전을 용해시키는 효과가 있다.

셋째는 항암 작용을 보이는 것이다. 넷째는 당뇨 환자의 특징인 갈증과 신체의 허약함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다섯째는 수족 냉증을 보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으며, 일곱째는 정력 증강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여덟째는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많은 효능들을 열거했다.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는 홍삼이 가진 효능에 깜짝 놀란 표정이다. 현수의 설명대로라면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현수는 본인의 설명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바스티앙을 진맥하였다. 그리곤 물었다.

“혹시 사물이 두 개로 보이거나 눈이 침침할 때가 있습니까?”

“가끔.”

“그럼 얼굴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죠?”

“어! 그걸 어떻게……?”

손목만 잡고도 간혹 느끼는 것들을 물어오자 세바스티앙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물었다.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자주 생겼을 겁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괜히 머리가 아픈 적이 있죠?”

“마, 맞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가끔 손발이 저리거나 힘이 없어졌을 겁니다. 특히 엄지와 검지가 더 저리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맞네. 근데 내 손목만 잡고 어찌 그런 걸 아는가?”

“제가 한때 한의학 공부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한의학?”

“네. 일단은 동양의 전통 의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건 좋네. 그럼 지금 내가 어떤 병에 걸린 건가?”

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여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는다. 발병을 빨리 알아차리면 치료가 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껏 세바스티앙은 뚱뚱한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운동 처방만 받았을 뿐 전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현수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에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아무런 병도 없는 것 같지만 무슈 세바스티앙은 장차 중풍이라는 병을 앓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풍?”

“영어로는 뇌졸중(Stroke)이라는 병입니다. 원인은 고혈압과 비만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무슈 세바스티앙의 발병 확률은 75%입니다. 고위험군이라는 뜻이지요.”

“……!”

“이 병에 걸리면 몸의 한쪽에 마비가 와서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말도 잘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치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

지금껏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급전직하하여 싸늘해진다. 세바스티앙은 정말이냐는 눈빛이고, 베아트리체는 설마 하는 표정이다.

전호는 중풍이 무언지를 알기에 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척 중에 세바스티앙과 비슷한 체형을 가졌던 어른이 중풍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딘가 불편하군요. 어디죠?”

“뒷목이 조금… 뻣뻣해지는 것 같네.”

“흐음, 알겠습니다.”

현수는 아공간에 있는 침을 꺼냈다. 물론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 꺼내는 시늉을 했다.

식당이기에 옷을 벗기고 시침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손에 침을 놓았다. 수지침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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