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26화 (326/1,307)

# 326

1장 뭐하는 놈들이지?

현수가 세바스티앙과 헤어져 택시에 탑승한 시각은 밤 10시 40분경이다.

“손님! 조금 이상한데요.”

“네? 뭐가요?”

뒷좌석에 몸을 싣고 내일 있을 일을 생각하던 현수는 택시기사의 말에 반문했다.

“아까부터 우릴 따라오는 차가 있는 것 같아서요.”

“네?”

“호텔을 나설 때부터 뒤를 따랐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그래요.”

“……! 어떤 차죠?”

“뒤에 뒤에 있는 검은색 승용차요.”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현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혹시 수상한 사람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호텔은 강남에 있었고, 현재 택시는 워커힐 호텔 인근을 지나는 중이다. 웬만해선 동선이 같기 어렵다.

“그럼 양평 쪽으로 가주세요.”

“손님, 혹시 수상한 분은 아니지요?”

“에구, 절 보세요.”

택시기사와 거울을 통해 시선을 맞춘 현수가 싱긋 웃는다.

“네에, 양평으로 가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시계(市界)를 한참 벗어나는데…….”

“요금은 미터기에 나오는 것의 두 배를 드리지요.”

기사는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에, 알겠습니다. 근데 따라오는 사람이 누굴까요?”

“글쎄요. 지은 죄가 없으니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네요. 다만 의심되는 기관은 있습니다.”

“네에? 기, 기관이요?”

기관이라는 말에 기사는 깜짝 놀랐음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괜한 사람 힘들게 할 필요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조금 더 가다 세워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돈 버는 것보다는 남의 일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하여 현수가 택시에서 내린 곳은 아치울 삼거리이다. 깊은 밤이 되면 차량 통행만 있을 뿐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괜한 의심이었다면 산책삼아 천천히 걸어 집까지 갈 생각이다. 아니라면 누군지 정체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이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모양이네.’

현수는 선진식 소령과 강철환이라는 자를 떠올리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부우우우웅―!

내려놓자마자 꽁지 빠지게 가버리는 택시를 본 현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미행을 알려주었으니 원망스럽지는 않다.

뒤쪽을 돌아보니 미행한다던 검은색 승용차가 속도를 줄인다. 택시기사의 의심이 맞은 모양이다.

끼이익―! 텅, 텅! 텅―!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뒷좌석의 문이 열리더니 사내 셋이 내린다. 그리곤 현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현수는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어이, 형씨!”

“……?”

“잠깐 우리와 같이 가줘야겠어.”

“……!”

“아! 왜 대답이 없어?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저 차에 타는 게 좋을 거야.”

철컥―!

사내가 꺼낸 것은 어둠 속에서도 예기를 뿜는 잭나이프였다.

‘일단 조폭이나 군인은 아니군. 그럼 누구지?’

조폭이라면 회칼을 뽑았을 것이고, 군인이라면 칼이 아니라 권총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순순히 갈 거야? 아님 우리가 힘을 써야 해?”

“당신들의 정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갈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어쭈! 우리가 무섭지도 않은가 보지? 그리고 우리 정체는 알아서 뭐할 건데?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건데.”

“글쎄! 별로 가고픈 마음이 없어서.”

“흐음, 권주는 안 마시고 벌주를 마시겠다?”

“권주고 벌주고 둘 다 마음에 안 들어서.”

현수의 말이 끝날 즈음 사내들은 현수를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다.

“자! 이래도 순순히 차에 안 탈 거야?”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나를 데리고 가고 싶으면 먼저 너희의 신분을 밝혀. 아니면 어디 소속인지를 말하든지.”

“흐음, 좋은 말로는 안 되겠군. 왕 상위! 이 상위! 놈을 잡아.”

“넵!”

“알겠습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득달처럼 달려든다. 그 순간 현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상위라는 계급은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위가 지나의 상위이다.

‘뭐야? 짱꼴라였어? 짱꼴라가 왜……?’

현수의 이런 의문은 길지 않았다. 양쪽에서 쇄도하는 두 녀석의 주먹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휘익! 쉬이익!

보통 사람들이 주먹을 휘두를 땐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 들린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 소리에 현수는 싱긋 웃었다.

마음 놓고 두들겨도 될 놈들이란 판단을 내린 것이다.

퍽―! 퍼억!

“케엑! 끄윽!”

놈들의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함과 동시에 곧장 반격했다. 그 결과 둘 다 엎어지고 있다. 턱과 옆구리를 강타당한 결과이다.

“……! 이잇!”

상관인 듯한 자가 다짜고짜 공격한다. 지나가 자랑하는 쿵푸를 익힌 놈인 듯하다. 하지만 어찌 소드 마스터를 당한단 말인가!

쉬익! 퍽! 쉬이익! 퍼억!

“크으윽! 컥―!”

왼손으로 놈의 팔뚝을 가격하고 오른 주먹을 복부에 먹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생전 감당해 보지 못한 격렬한 통증 때문일 것이다.

“흐음, 이놈들을 어쩐다?”

현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나치는 차에서 사람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 길만 건너가면 아차산이다.

“흐음, 플라잉 브랜켓(Flying Blanket)!”

마법이 구현되자 공기로 이루어진 비행 담요가 생성되었다. 이 위에 놈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차량 통행이 끊겼을 때 얼른 산으로 올라갔다.

짝, 짝!

“끄으응!”

뺨따귀 두 대에 가장 상관이었던 놈이 깨어난다.

“정신이 들어?”

“끄응, 네놈은……!”

놈은 말끝을 흐렸다. 만만히 보고 덤벼들었다가 변변한 공격조차 못해보고 한 방에 당한 기억을 떠올린 때문이다.

“지나 대사관 소속이지?”

“지나라니? 대중화민국이다.”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았네, 중화민국은 무슨 말라비틀어진……. 니들 조상은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 곁에 조그맣게 붙어 있던 곁가지 국가야. 그래서 나라 이름이 지나(支那)잖아. 안 그래?”

“무슨 소리? 우리나라는 세계의 중심인 중화민국이다.”

“지랄하네. 가지 지(支) 나라이름 나(那)! 그 뜻을 헤아려 봐. 다른 나라 옆에 붙어 있는 곁가지 나라라는 뜻이잖아.”

“헛소리!”

“니들 나라 이름 ‘China’라 쓰고 ‘차이나’라고 읽지? 그걸 쓰여 있는 대로 읽으면 뭔지 알아? 치나야.”

현수는 슬쩍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을 뜨게 뜬다.

“쉬나?”

“그래, ‘支那’를 니들 발음대로 읽으면 ‘Shina’야. 이것도 쉬나지. 어때? 둘이 비슷하지? 치나와 쉬나. 우린 그걸 지나라 읽어.”

“……!”

“우리 선조들이 세웠던 나라, 한웅이 만드셨던 나라가 융성했을 때 니들은 눈치만 보면서 조공을 바치던 국가였어. 그런데 뭐? 중화민국? 대가리 수가 좀 늘어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탐구하는 걸 한국학이라고 해. 이걸 영어로 ‘Koreanology’, 일본학은 ‘Japanology’라고 하는데 지나학을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알아?”

“말은 똑바로 해, 지나학이 아니라 중국학이야. 그리고 영어론 ‘시노로지(sinology)’라고……!”

말을 해놓고 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듯 말끝을 흐린다.

“발음 좀 정확히 해봐. 쉬놀로지! 안 그래? 봐라, 차이날로지라고 안 그러잖아. 너희 나라는 쉬나라는 뜻이야. 곁가지 국가. 안 그래?”

“끄으응……!”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상대는 국가관에 혼란이 오는 듯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수의 아우라가 놈의 심령을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인다.

“너희가 동중국해라 부르고 싶어하는 바다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동지나해라 부르고, 남중국해는 남지나해라 불러. 알아?”

“……!”

“예를 들어줄까? 2012년 7월 12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아.”

현수는 작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을 읊어주었다. 물론 일본어로 쓰여 있는 기사를 지나어로 번역했다.

동남아시아 제국연합(ASEAN) 의장국 캄보디아의 호르 남홍 외상은 20일 프놈펜에서 회견하여 ASEAN 가맹국과 지나가 영유권을 다투는 남지나해에 대한 기본 원칙을 명시한 ASEAN 10개국 외상에 의한 성명을 발표했다. 9일의 ASEAN 외상회의에서는 남지나해 문제를 두고 캄보디아와 필리핀의…….

이것은 ASEAN 외상 설명으로 남지나해 6원칙에 관한 보도였다.

놈은 계속되는 남지나해라는 표현에 움찔거린다.

“진짜인 거야?”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놈이군. 좋아.”

현수는 아공간에서 노트북을 꺼내 기사를 검색해서 놈에게 보여주었다. 요미우리신문의 기사는 한자가 많기에 남지나해라는 표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끄으응!”

현수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 녀석은 나직한 침음을 낸다. 이때 현수가 한마디 더 덧붙인다.

“니들은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이정기(李正己)라는 사람에게 정복을 당했어야 해.”

“이정기? 그게 누구지?”

“고구려 유민이고, 니들이 세운 당(唐)이라는 왕조 시절 사람이지. 그분이 갑작스레 서거하지만 않았어도 당나라는 멸망당했을 거야.”

“……!”

놈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여간 그런 분이 계셨어. 나중에 책에서 찾아봐. 니들의 역사책인 자치통감, 착부언귀, 문헌통고, 신당서, 구당서 등에도 아주 자세히 나오는 분이시니까.”

“……!”

“그건 그렇고 어디 소속이지?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걸 보니 주한지나대사관의 무관이겠군. 그렇지?”

“……! 아, 아니다.”

“흐음, 아냐? 그럼 내가 고문을 해야 입을 열 거라는 말이지? 흐음, 할 수 없지. 본인이 원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현수는 가방 속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꺼냈다.

놈은 작은 가방에서 나오는 칼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칼은 말이지. 인정이라는 게 없어. 한번 베기 시작하면 껍질을 홀랑 벗기지.”

현수는 부러 잔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놈이 보지 못할 때 입술을 달싹였다.

“홀드 퍼슨!”

놈은 자신이 마법에 걸린 걸 모르는 듯 가만히 있다. 그 순간 현수의 검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쉬이익! 휙! 휙! 휘이익! 휘익! 쉬익!

“헉! 이, 이럴 수가……. 으윽! 몸이, 몸이 왜 이러지?”

칼이 다가오자 황급히 물러서려던 녀석은 그제야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는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 순간 현수의 검이 그의 의복을 헤집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자 베어진 의복이 너풀거린다.

불과 수분 후 놈은 완전한 나신이 되었다. 모든 의복이 걸레 내지는 넝마가 되어 사방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다. 다만 겁에 질려 흘린 식은땀이 흐를 뿐이다.

“흐음, 이제 다음은 네놈의 껍질이야. 그건 옷보다 더 쉽지. 지금부터 껍질을 베어낼 테니 어디 소속이고, 누가 보냈는지 말하고 싶으면 그때 말해. 즉시 멈춰줄 테니. 단, 헛소리를 한 번 할 때마다 손목과 발목을 하나씩 내놔야 할 거야, 알았지?”

“……!”

대답이 없다.

“좋아, 이제 시작하지.”

현수는 부러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곤 잔인한 눈빛으로 놈의 사타구니를 바라보았다.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이 느낌을 그대로 전달 받았는지 안색이 급격히 변한다.

“이, 이러지 말라구. 말, 말할게. 말해줄게.”

“아! 규칙 변경. 지금부터 난 반말, 넌 존댓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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