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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27화 (327/1,307)

# 327

말을 마치곤 번데기가 되어버린 것을 또 한 번 바라보았다.

“무, 물론입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그러니 칼은 제발…….”

놈은 사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마초였던 모양이다.

“좋아, 먼저 이름부터!”

“네, 제 이름은 짱진핑입니다.”

“흐음, 짱진핑이라면 장근평(張近平)인가?”

“네, 그, 그렇습니다.”

“좋아, 근평이! 소속은?”

“중국대사관, 아니, 지나대사관 소속 무관입니다.”

“계급은?”

“사, 상교입니다.”

지나군 편제상 상교라면 국군 대령에 해당된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50은 넘은 듯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말이다.

그래도 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지나어에는 존댓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나를 미행한 목적은……? 만일 거짓을 고하면…….”

현수는 또 한 번 놈의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흠칫거린다.

장근평 상교는 한국에 주재한 지 6년이나 된다. 대사관의 무관이지만 그동안 한 일은 스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그 일은 한국인 정부(情婦)가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지불하는 생활비는 대사관 경비 중 일부이다. 다시 말해 장근평의 스파이 활동은 지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장근평으로선 예쁜 한국여자와 즐길 건 다 즐기면서 임무도 수행하니 꿩 먹고 알도 먹는 셈이었다.

어쨌든 오늘 오후 장 상교는 본국으로부터 은밀한 훈령을 받았다. 천지건설 전무가 된 김현수를 납치하라는 것이다.

납치에 성공하면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데려가는 것이 나머지 임무이다. 왜 납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들은 바 없다.

묻지도 않았다. 알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 되었으므로 은밀히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만 받았을 뿐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자신을 바라보자 장근평은 얼른 입을 연다.

“김현수님을 납치하여 차이나타운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거기서 김현수님을 인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좋아, 차이나타운의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며, 내 신병을 인수받을 놈은 누구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제 차로 거길 가면 인수할 사람이 시간 맞춰 나온다고 했습니다.”

“으으음!”

이건 뭐 간첩들의 공작이나 다름없다. 만일의 일이 발생하더라도 꼬리 자르기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좋아, 나를 언제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지?”

“내일 새벽 세 시입니다.”

“세 시라…….”

현수는 이놈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를 가늠하려 슬쩍 눈을 감았다. 이때 장근평의 눈빛이 변한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놈! 으윽, 몸이……!”

“미친놈! 에라, 이놈아!”

퍽―!

“크윽!”

현수의 주먹에 복부를 강타당한 장근평이 나직한 비명을 터뜨린다. 이때 현수가 곁에 쓰러져 있던 두 놈에게 시선을 준다.

“어이, 거기 두 놈, 다 깨어 있는 거 알거든. 눈 떠!”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녀석 모두 눈을 뜬다. 그들의 눈앞엔 벌거벗은 채 신음을 토하는 장근평이 서 있다.

이들은 장근평이 걸치고 있는 의복이 넝마가 되기 시작할 때 이미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상대의 손에 장검이 들려 있는 것을 실눈 사이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슬쩍 품을 뒤져 보았다. 예상대로 권총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의식을 잃은 척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 아니까 술술 불어야 할 거야. 만일 거짓말을 하면 이놈처럼 될 테니까. 알았어?”

“네? 네에.”

두 놈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다. 하긴 날이 시퍼렇게 선 바스타드 소드를 앞에 두고 어찌 겁먹지 않겠는가!

“방금 전 이놈이 한 말이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내일 새벽 세 시까지 차이나타운에 가면 사람이 나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거짓말이 아니고?”

현수가 눈빛을 빛내자 오금이 저린다는 듯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에도 원하는 정보는 얻어냈다.

놈들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좋아, 어떤 놈이 수작 부리는지 알아봐야겠군. 그렇지 않아도 지나 놈들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 되었어.”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여러 인물이 있다.

킨샤사에서 약방을 하던 두 놈과 금괴와 마약을 몰래 들이려던 화영공사 왕영백, 그리고 잉가댐 현장에서 총격을 가했던 놈들과 비너스 호텔에서 공격에 가담했던 놈들 모두 지나인들이다.

그러고 보니 두 녀석이 더 있다. 저격총 체이탁으로 천지건설 직원들에게 총을 쏘던 두 놈이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적지 않은 지나인들과 얽히게 되었다.

“슬립!”

마법이 구현되자 왕 상위와 이 상위 모두 고개를 떨군다. 마법으로 걸어놓은 잠이기에 현수가 깨라 명하기 전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미지 컨퓨징!”

현수는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장근평의 얼굴에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자신의 얼굴과 아주 흡사한 형상으로 보인다.

이모저모를 살피다 다시 마법을 걸었다.

“보이스 익스토션!”

음성 봉인 마법이다. 장근평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표정이 묘하다.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이다.

“흐음! 이제 새벽 세 시에 차이나타운엘 가면 되는군.”

현수는 놈들을 차례로 차에 태웠다.

“내 얼굴에도 마법을 걸어야지? 이미지 컨퓨징!”

장근평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영락없는 장근평의 모습이 된다.

현수는 차를 몰고 곧장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새벽 세 시까지라 시간은 널널하다. 그렇기에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감상하며 달렸다.

가는 동안 차 안을 뒤져 보았다. 권총도 있고, 위조된 신분증들도 있다. 모두 챙겨두었다. 당장은 쓸모가 없으나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신분증들을 잘 챙겼다.

한국인의 주민등록증 둘과 지나인의 거민신분증 셋이다. 사진이 현수로 보이게 하는 건 일도 아니기에 일단 챙겨만 둔 것이다.

새벽 세 시.

차이나타운의 중화가라 쓰여 있는 일주문 비슷한 것을 지나면서 속도를 떨어뜨렸다. 공화춘 근방이 되자 골목에서 누군가 손전등의 불을 켰다 끈다.

현수는 차를 세웠다. 하지만 시동은 끄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창을 톡톡 두드린다.

지이이잉―!

창문을 내리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 서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군인이다.

“북경 오리 주문받나?”

“물론입니다. 그런데 화청지의 물은 맑습니까?”

“아니, 거긴 맑은 적이 없지. 오늘은 붉었다.”

장근평에게서 알아낸 접선암호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인.”

사내가 고개를 숙인다. 상교는 결코 낮은 계급이 아닌 까닭이다.

“자넨 누구지?”

“밝히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습니다. 놈은 데리고 오셨습니까?”

“물론이야. 이봐!”

현수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장근평을 툭툭 건드렸다.

도착하기 전에 놈의 의식을 제압했다. 흑마법 중 꼭두각시를 만드는 것이 있기에 시험삼아 걸어본 것이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무슨 명을 내리든 무조건 따르게 된 것이다. 현수는 장근평으로 하여금 본인 흉내를 내라 하였다.

나머지 두 녀석 역시 마법에 걸려 있다. 이놈들에게 현수가 내린 명령은 날이 밝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지나로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그곳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둘이서만 생활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만났던 기억은 삭제하였다.

“네, 여, 여긴 어딥니까?”

약간은 겁먹은 듯한 말투에 창밖의 사내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는다.

“놈을 저희에게 인계해 주십시오.”

“자네 둘이 데려가게? 저래 봬도 얼마나 날쌘지 잡는 데 애먹었네.”

“걱정 마십시오. 형제들이 더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 오라고 하게. 아니면 놓치기 십상이야.”

“알겠습니다.”

휘이이익―!

가볍게 휘파람을 불자 골목으로부터 사내 넷이 더 튀어나온다.

“여섯이면 충분하지. 데려가게.”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수석 문이 열린다.

“헐……! 왜 벗겨놓으신 겁니까?”

발가벗은 녀석을 보고 누군가 한 말이다.

“그래야 못 도망갈 테니까.”

현수의 말에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얼른 장근평을 끄집어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주변을 살폈다. 오가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적막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쪽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대인은 이제 가셔도 됩니다.”

“하나 묻겠네. 놈은 어디로 데려가나?”

“본국으로 갈 겁니다.”

“그래? 이놈을 데려오라고 한 사람은 누군지 아나?”

“저는 흑룡이라는 분이 지시했다는 것만 압니다.”

“흑룡?”

“네. 저도 그 이상은 모릅니다.”

“좋아, 알겠네. 수고하게.”

더 캐물어봐야 알아낼 것이 없다 판단하였기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순순히 놈들에게 끌려가던 장근평이 발악하기 시작한다.

분명 50대 인물인데 20대 후반 여섯이 쩔쩔맨다.

장근평은 쿵푸의 고수였던 것이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두 녀석이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두 녀석이 나가떨어진다.

그리곤 뛰기 시작한다. 심야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발가벗은 채 뛰고 있기에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짓고는 차를 몰아 차이나타운을 빠져나갔다.

장근평이 현수에게 받은 최종 지령은 온갖 지랄을 떨라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도주하라 하였다. 무사히 몸을 빼내면 지나로 되돌아가 나머지 두 놈처럼 늙어 죽을 때까지 산속에서 살라고 하였다.

물론 자신을 만난 기억은 지웠다.

만에 하나 도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자비를 베풀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사는 거주지 인근에 차를 버린 현수는 꼼꼼하게 지문 등을 닦아냈다. 두 녀석은 깨워서 보냈다. 아마도 집에 당도하는 대로 출국준비부터 할 것이다.

텔레포트해서 집으로 왔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곤 책상 앞에 앉아 다이어리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흑룡이라는 자가 명령을 내려 자신을 납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놈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놈에 대해 알아볼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 있는 인물들은 상당히 많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지나놈들 귀에 들어갔다면 지나 정부에서 나섰을 수도 있다.

지나건축공정총공사일 수도 있고, 삼합회의 인물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나의 허접한 특수부대 SAXZC 소속일 수도 있다.

현수는 명단을 적어놓고 고심을 했다. 누군지 파악해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걱정된다. 하여 반지 두 개를 제작했다.

여기엔 강연희에게 준 것과 거의 동일한 마법진들이 새겨졌다.

첫째는 임플로빙 이뮤너티이다.

반지를 끼고 있는 한 감기 같은 병에 걸리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는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다.

오장육부 전부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이다.

셋째는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극도의 불안 또는 공포를 느낄 경우 곧장 집으로 가게 될 것이다.

넷째는 앱솔루트 배리어이다.

자동차 사고 또는 누군가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유사시에 몸 주위 60㎝ 이내론 어떠한 것도 다가갈 수 없도록 해줄 것이다.

겉보기엔 가느다란 줄 몇 개와 작은 수부 다이어가 박힌 것 같은 이것은 커플링처럼 제작되었다.

대학 다니면서 아버지가 일하시던 공방에서 이런 걸 배워놓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다 만들고 나니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다시 세안을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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