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29화 (329/1,307)

# 329

그 결과 침술에 있어 ‘漢醫學’과 ‘韓醫學’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나의 침술사들은 병을 치료하는 데 상당히 많은 침을 놓는다.

반면 한국에선 침을 많지 놓지 않는다. 심지어 딱 하나나 둘의 침만 놓는 한의사들도 있다. 호일침 학회 소속들이다.

이 침법은 동의보감을 근간으로 한다.

어쨌거나 아폰테 사장은 스위스 사람이지만 세상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바 있다. 그중 한의학(韓醫學)도 끼어 있다.

조금 전, 엘리자베스와의 말싸움 주제처럼 아폰테 사장은 지나인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돈밖에 모르는 바퀴벌레만도 못한 족속쯤으로 여긴다. 그리고 지나인들이 만든 물건들은 하나같이 허접하여 반 쓰레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나 조선소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절대 주문하지 않을 것이니 괜한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무튼 아폰테 사장은 엘리자베스를 위하여 한의학(韓醫學)의 본고장인 한국을 찾아온 것이다.

“으윽……!”

참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을 만한 고통이 느껴진 듯 엘리자베스가 나직한 신음을 토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대화가 끊겼다.

“……!”

“집 사람이 좀 아프네.”

“네에? 사모님이요?”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는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 폐암이라더군. 정확히는 비소세포암(Non―small cell lung cancer, NSCLC)이지. 3B기라고 하더군.”

“……!”

모두 입이 닫힌다. 3B기가 뭔지는 몰라도 폐암이 결코 쉽게 제압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소세포암 3B기는 종양이 흉곽 내에 있지만 수술적 절제가 곤란하거나, 흉수 또는 심낭액이 고여 있는 경우이다.

서양의학에선 대체로 완치가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아폰테 사장이 현수에게 시선을 준다.

“미스터 킴!”

“네.”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한의사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개개인의 의술을 제가 잘 모릅니다만 경희의료원이 가장 권위 있는 한방병원입니다.”

“경희의료원이라고?”

“네. 경희대학교 부설 종합병원인데 양방과 한방의 협진도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폐암도 잘 고치나?”

“그건 제가 잘…….”

현수가 무어라 하겠는가! 하여 말끝을 흐렸다. 이때 베아트리체가 불쑥 나선다.

“사장님! 사실은 여기 있는 무슈 킴도 의술을 익히고 있어요. 어제 우리 부회장님과 저의…….”

베아트리체도 프랑스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고 속사포로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아폰테 사장은 이야기 도중에 세바스티앙을 바라보곤 했고,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베아트리체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미스터 킴! 식사 후 엘리자베스를 진찰해 주겠소?”

“……! 네, 그러겠습니다.”

묻는 순간 70이 넘은 노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짠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여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정찬이었지만 식사는 금방 끝났다.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다.

“진맥에 앞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우선 저는 의사면허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선 면허 없는 사람의 진료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의 진료가 최상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괜찮네. 모두 수용하지.”

“나도요.”

아폰테와 엘리자베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진맥해 보죠.”

현수는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곤 커프스 버튼을 해제한 뒤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폰테 사장은 긴장되는지 마른 침을 삼킨다.

현수가 맥문에 손을 얹는 순간 아폰테는 숨소리조차 죽였다. 엘리자베스는 극도의 긴장을 느끼는지 바르르 떤다.

“사모님! 긴장을 푸세요. 이렇게 긴장하고 계시면 제가 오진할 수도 있습니다. 아셨죠? 자아, 이제 심호흡 몇 번 하세요.”

잠시 후,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맥문을 통해 잠입을 시도했다. 그리곤 천천히 엘리자베스의 전신을 훑어갔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장기들이 ‘이제는 늙어서 힘들어!’라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아직 망가져서 못 쓰게 된 것은 없다.

폐를 점검한 결과 예상보다 더 중증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마나가 헤치고 지나기에도 힘들 정도였던 것이다.

현수는 이전에 이런 병을 완치시킨 바 있다. 우미내 마을 집주인의 부인은 임파선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그때 뭣도 모르고 회복 포션을 열 병이나 주었다. 하지만 컴플리트 힐이나 리커버리 마법은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 쉽게 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떤가?”

현수가 진맥을 마치고 뒤로 물러앉자 아폰테 사장이 초조한 기색으로 묻는다.

“우선 폐암인 것도 맞고 심각한 것도 맞습니다.”

“……! 치, 치료는… 한방으론 치료가 가능하지? 그치?”

마치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매달리듯 애처로운 눈빛이다. 시선을 돌리려는데 엘리자베스의 눈빛도 보인다. 반쯤 포기한 듯하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그, 그럼! 말을 하게.”

“이 병은 한방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너무 늦으셨어요.”

“……!”

낙심한 듯 뒤로 물러앉는다. 눈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이때 현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치료는 못 합니다.”

“할 수 있는데 왜……? 그게 무슨 소린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게 의사면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면허가 무슨 소용이야? 내가 허락하겠네. 치료만 해주게. 사례를 하겠네.”

“돈을 바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그럼……?”

“한국에서 그러면 불법이거든요. 그러니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

대체 무슨 뜻이냐는 표정들이다.

스위스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의사들이 모두 손을 놨다. 양방으론 치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한국에 와서도 이미 여러 한의사를 만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현수처럼 자신있게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희의료원에 대한 이야기는 일찌감치 들었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거기에서도 손을 들면 완전히 끝이다. 그럼 희망은 없고 절망만 남게 된다. 그래서 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럼에도 현수에게 실력 좋은 한의사를 아느냐고 물었던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실력은 있지만, 명성은 없는 한의사가 하나쯤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분명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면허가 없다고 난색을 보인다.

“오, 오늘 출국할 수 있겠는가?”

“네?”

“베트남에 별장이 있네. 그곳에서라면 시술을 해도 되지?”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오후 늦게나 시간이 있습니다.”

“좋네. 그럼 이따 출국하세.”

갑작스런 베트남행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치료가 가능한 거유?”

출국을 지시하기 위해 아폰테 사장이 밖으로 나가자 엘리자베스가 물은 말이다.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릴 수 있어요. 믿으세요.”

“……!”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현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폐암인데도? 이거 고칠 수 있다는 의사를 못 봤다우.”

“전 이미 치료한 바 있어요. 그러니 마음 푹 놓으세요.”

“흐흑! 흐흐흑……!”

엘리자베스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린다. 무어라 위로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 울라고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여자의 눈물은 젊으나 늙으나 참 어렵다는 느낌이다.

“저이만 두고 가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나 가는 건 괜찮지만, 저이 혼자 어떻게 살까 했었는데……. 휴우∼! 고마워요.”

엘리자베스의 눈물은 금방 그쳤다. 그리곤 환히 웃는다.

“정말 고마워요. 저이랑 같이 가고 싶었다우.”

“……!”

“정말 그럴 수 있는 거우?”

“걱정 마세요.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금방 갈라지지 않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이런 부부애는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현수는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부를 만나 벌써 두 번째 느낌이다.

‘나도 연희 씨와 이렇게 늙어야지. 그런데…….’

세 번에 걸친 바디 체인지의 결과로 자신의 수명이 400년가량 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한 현수의 낯빛은 무거워졌다.

100년 이내에 사랑하는 사람들 전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때문이다.

‘수명 연장!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현수는 갑자기 새로운 목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 *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형님!”

“그래, 오랜만이야. 얼굴을 보니 잘 있었던 모양이군.”

“네, 형님!”

오광섭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커피숍의 다른 손님들은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금껏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조폭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인해 겁먹고 있었던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안도하는 이유는 전혀 조폭 같지 않은 사람이 형님이라는 칭호를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올라온 거야?”

“아뇨, 아우들하고, 고강철 씨와 함께 왔습니다.”

오광섭이 손짓을 하자 앉아 있던 조폭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꺾는다. 그들 가운데에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낯익은 사내도 있다. 청송교도소에 있던 고강철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일이 시선을 마주쳤다. 모두들 황송하다는 표정이다.

“앉아라!”

오광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 자리에 앉는다.

“그나저나 형님! 웬일로 저를 다 부르셨습니까?”

“어제 기무사에 근무하는 동기가 있다고 했지?”

“네. 저하곤 죽고 못 사는 사이인 동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지?”

“지난달에 휴가 나왔었습니다.”

“그럼 은밀히 몇몇 사람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해줄 수 있나?”

“말씀만 하십시오. 안 해준다고 하면 목을 비틀어서라도 해오라고 할 테니까요.”

오광섭은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좋아, 알아봐 줄 사람은 두 명이야. 선진식 소령과 강철환이라는 자. 이 둘의 소속이 어딘지를 알아봐 줘.”

“선진식 소령과 강철환이라고요?”

“그래. 아주 세세한 것까지는 알아낼 필요 없어. 그냥 어디 소속인지 정도만 알아도 돼. 알았지?”

“물론입니다. 꼭 알아내겠습니다.”

오광섭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건 되었고,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네, 형님!”

“마음 편하게 말해봐.”

“우선 전무이사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 아우는 그걸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역시 형님은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형님!”

“에구, 너무 칭찬하지 마.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니까.”

“아이고, 어쩌다라니요? 어쩌다가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형님이시니까 된 거지요. 아무튼,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아버지도 형님께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이……?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게.”

“네, 형님!”

오광섭은 자신의 일인 양 정말로 기뻐하는 모습이다. 현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완전한 내 편이 있는 것 같아서이다.

“참, 형수님은 어떠세요? 서울중앙지검으로 가신 후론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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