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30화 (330/1,307)

# 330

“지현 씨……? 그럼, 잘 있지.”

“형수님께도 제 안부 꼭 전해주십시오.”

“그래, 그럴게.”

현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나저나 형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

“우리 역전회를 해체하려고 합니다.”

“응……? 뭐라고?”

현수가 화들짝 놀라는 사이에 오광섭의 말이 이어진다.

“조직원들을 형님이 사업을 일으키신 콩고민주공화국의 직원으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조폭이었던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더군요. 애들도 사람들의 시선이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손을 씻기로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 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형님! 저희를 경비원으로 받아주셔도 되고, 농사일을 시켜도 됩니다. 저희를 받아만 주십시오.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한국이 아니라 정말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물론입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으음……! 그래, 좋아. 받아주지. 대신 말썽 피우거나 이러면 안 돼.”

“에구, 만일 그런 놈이 생기면 제가 먼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마음 놓으십시오. 신명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에구, 충성은 무슨……! 내가 무슨 조폭이야? 그냥 직원으로서 열심히 일해주면 돼.”

“그래도 충성을 다할 겁니다. 형님!”

“이제 그 형님 소리도 좀 그만해. 나이도 나보다 많으면서 그러니까 부담돼!”

“아! 그렇습니까? 그럼 알겠습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아버님은? 아버님은 국내에 혼자 남으시는 건가?”

“아뇨. 아버지도 가고 싶어하세요. 젊어서 목부 일을 하셨답니다. 땀 흘려 일해본 지 오래되었다면서 이제부터라도 그런 일을 하고 싶으시답니다. 아버지도 받아주세요.”

“물론이야. 하지만 목부 일은 힘이 드니까 목부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시면 되겠군.”

“감사합니다.”

“거긴 일손이 많이 부족하니 한국에서 가급적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갈 생각이야. 그러니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으면 그들에게도 권해봐. 적성에 맞는 일을 맡길 테니. 알았지?”

“아이고, 형님! 아니,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오광섭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대학 동기들 몇몇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 해고된 후 갈 데가 없어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녀석들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도 가고 싶다는 사람은 모두 가도 돼. 알았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오광섭이 또 한 번 크게 고개를 숙인다.

3장 꿈과 희망을 주는 남자

“고강철 씨!”

“네!”

“이쪽으로 오세요.”

“네, 사장님!”

곁에서 대화를 모두 들었기에 이제 전직 조폭이 된 사내들은 희열에 찬 모습이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게 된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현수로부터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에 고강철은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어부인과 더불어 외국에서 새 출발 해볼 생각 있으세요?”

“물론입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고강철 씨가 원해야 하는 겁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또는 에티오피아에서 근무했으면 해요. 그러려면 영어 또는 프랑스어가 유창해야 합니다.”

“……!”

“둘 중 어느 걸 배워보시렵니까?”

“저어, 아무래도 영어가……. 프랑스어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네, 영어를 배우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고강철 씨의 근무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거기에서 누군가의 보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업무를 물려받게 될 테니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무,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역삼역 근처에 이실리프 빌딩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민주영 실장을 찾으세요.”

“네!”

고강철이 고개를 끄덕일 때 현수가 명함을 꺼냈다.

“여기 이 명함을 가지고 가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만나거든 에티오피아 근무 예정자라 말씀하시고 영어를 익히랬다는 말을 하십시오. 그럼 알아서 해줄 겁니다.”

“……!”

“어부인과 아이들도 모두 데리고 올라오세요. 수속을 밟는 대로 출국해야 하니까요. 당분간은 회사에서 마련한 숙소에 머물게 될 겁니다. 불편하더라도 참으세요.”

“아이고, 그럼요. 그런 건 걱정 마십시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매듭짓지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현수는 커피숍을 나서면서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뒤에서 들리는 우렁찬 소리 때문이다. 그 소리는 이랬다.

“안녕히 가십시오, 형님!”

“감사합니다. 형님!”

“목숨을 바쳐서라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덕분에 뉴스가 된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새로 쓴 천지건설의 김현수 전무이사!

조폭들을 개과천선 시키다.

오늘 김 전무는 대구 역전회라는 폭력조직을 해체시켰다.

이들은 전원 김 전무가 운영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이실리프 농산 및 축산 등지의 직원으로 파견될 예정이다.

또한, 김 전무는 에티오피아에도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발언을 했다.

김 전무는 조폭 중 하나를 불러…….

커피숍에 있던 기자의 눈에는 고강철이 조폭으로 보인 듯하다.

“에구, 이젠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네.”

지앙뤼지 아폰테 사장의 전용기에 탑승한 현수는 노트북을 펼쳤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반나절도 안 된 일이 벌써 기사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된 때문이다.

그래도 기사는 끝까지 읽어보았다. 상당히 호의적인 내용이다.

조직폭력배를 개과천선시켜 평범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고무적이라는 내용이다.

기사의 말미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천지건설의 김현수 전무이사!

꿈과 희망을 주는 남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구, 낯 뜨겁네.”

현수는 얼른 노트북을 덮었다.

“왜 그러나?”

세바스티앙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배시시 웃는다.

“인터넷에 무슈 킴의 기사가 떴거든요. 불어로 번역해서 읽어봤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해……? 뭘 어쨌기에?”

“무슈 킴이 오늘 낮에 한국 마피아 조직 중 하나를 해체시켰다는 내용의 기사예요.”

“뭐어? 마피아를 해체시켜? 진짜야?”

곁에서 해운업계 신문을 읽고 있던 아폰테 사장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네, 이것 보세요.”

베아트리체가 내민 노트북을 받은 아폰테 사장이 꼼꼼하게 기사를 읽었다. 정식 번역이 아니라 번역기를 돌린 것이지만 내용 자체는 제대로 전달되는 모양이다.

현수는 괜스레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라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이거야 원! 앞으로는 변장을 하고 다니든지 그래야겠네.’

이것은 생각뿐이다. 만일 현수가 이 생각대로 한다면 겪지 않을 일이 조만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야……! 미스터 킴! 이제 보니 대단한 사람이었구만.”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손을 씻고 나온 현수를 본 아폰테 사장은 웃음 띤 얼굴이다.

“네……?”

“방금 베아트리체 양으로부터 들었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아하니 베아트리체가 또 한 번 속사포 신공을 발휘한 듯하다.

“에구, 뭐 별로 큰일도 아닌데요.”

“아니긴! 이 세상에 누가 있어 4,500㎢짜리 농장을 운영해? 내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도 없네. 대체 자넨 재산이 얼마나 되기에 그리 큰일을 하나?”

“네……? 아이고, 제가 지금 농장을 경영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인 사업입니다.”

“게서 나오는 축산물 및 농산물의 양이 어마어마하겠지?”

곁에 있던 세바스티앙이 얼른 끼어든다.

“당연하죠. 4,500㎢면 45만ha고, 4천 5백만 아르입니다. 밀의 경우 1아르당 약 50㎏ 정도 생산됩니다. 그러니 이걸 환산해 보면, 헐……! 무려 225만 톤입니다.”

“끄으응……!”

아폰테는 세계적인 해운사 사장이지만 너무 막대한 양인지라 입을 딱 벌린다. 현수는 얼른 잘못된 것을 정정했다.

“에구. 절반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납품해야 하는 겁니다.”

“그걸 뺀 나머지도 엄청난 양이네. 그중 일부는 우리에게 운송을 맡길 거지?”

“……! 네에, 그래야죠. 대신 저도 청이 있습니다.”

“청……? 말만 하게. 장차 엄청난 일을 맡길 양반!”

아폰테는 벌써 익살스런 표정이다.

“제 친구 중에 신세계마리타임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녀석과 MSC 사와의 업무 제휴를 맺어주십시오.”

신세계마리타임이라는 회사는 복합운송주선업체이다.

복합운송주선업체란 한마디로 배를 직접 가지고 있지 않고 선사(船社) 또는 항공사와 화주(貨主) 중간에서 중개를 목적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통관, 포장, 검사, 검역, 보관, 배차 등의 업무까지 포괄적으로 대행해 주기도 하는 회사이다.

국내에선 일 년에 약 200여 개씩 이런 복합운송주선업체가 늘어나는 중이다. 이는 경쟁이 치열함을 의미한다.

현재 신세계마리타임은 싱가포르계 선사인 OV컨테이너라인과 계약을 맺어 해운대리점 업무도 겸하고 있다.

해운대리점이란 외국선사 중 국내에 지사를 직접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관련 업체들 중 하나를 골라 파트너십을 맺고 관련 업무를 대행케 하는 것이다.

참고로 프랑스에는 해운 컨설턴트를 전문으로 하는 AXS 알파라이너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에서 지난 2010년에 집계한 세계 100대 선사 순위에 의하면 스위스 MSC(Mediterranean Shipping Company) 사는 세계 2위이며, 세바스티앙의 CMA 오머런은 세계 3위인 선사이다.

해운시장에서 이들 둘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MSC는 11.2%, CMA 오머런은 7.6%이다.

둘이 전 세계 해상운송의 5분의 1 정도를 감당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이 3.1%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참고로 한진해운은 세계 9위이며, 427,878TEU2)이다.

MSC 사는 1,542,403TEU, CMA 오머런은 1,042,020TEU이다.

신세계마리타임이 대리점 계약을 맺은 OV컨테이너라인은 세계 100대 해운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참고로 세계 순위 100번째인 Lin Line 사는 4,267TEU이다.

현수는 이런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경영하는 신세계마리타임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폰테 사장과 인연을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신세계마리타임……?”

처음 듣는 회사명이라는 듯 비서를 바라보자 즉시 움직인다.

이제 불과 수분 후면 신세계마리타임이라는 회사에 대한 보고를 듣게 될 것이다.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나도 당연히 들어줘야지. 신세계마리타임이라는 회사가 아무리 작은 회사라 할지라도 그리하겠네.”

“고맙습니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이 대화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다.

신세계마리타임은 배가 없고, MSC 사는 399척, CMA 오머런은 360척의 배가 있다.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누빌 정도이다.

참고로 한진해운은 96척이다.

현수가 계획하는 이실리프 농산, 농장, 축산 등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배로 실어와야 한다. 항공운송을 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 소비자가가 상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지건설 역시 상당히 많은 화물을 수송해야 하고, 운송해 와야 한다. 건축자재 및 장비 등을 보내고, 그곳에서 캐어낸 원유 및 각종 광물 등을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기노선이 있지 않을 경우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