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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31화 (331/1,307)

# 331

그런데 아폰테 사장과 세바스티앙 부회장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전폭적인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인연으로 운송 부분이 자동으로 해소되었음을 현수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고맙기는……. 그거 말고 다른 청은 없나?”

“네? 다른 청은… 없습니다. 아니, 있네요.”

“뭐지?”

“저 아직 미혼입니다.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스위스를 가고 싶습니다. 그때 신세 좀 지겠습니다.”

“하하! 얼마든지……! 여보, 이 친구 얘기 들었지?”

“네, 여보! 루체른과 몽트뢰, 그리고 제네바에 있는 우리 별장을 빌려주면 되겠네요.”

“그래, 언제든 오게. 우리 집은 취리히에 있네. 집에 꽤 넓으니 아무 방이나 골라잡아도 될 것이네.”

아폰테 사장이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덕분에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 긴장된 표정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비행기가 목적지 상공에 도달할 쯤이 되자 아폰테 사장과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다시 굳는다. 잔뜩 긴장하게 된 것이다.

아폰테 사장의 별장은 다낭에 있다고 한다.

다낭은 아주 유명한 휴양지이다. 시끌벅적한 거리와 해변, 그리고 유적 등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언덕 위 하얀 집에 당도한 것은 늦은 밤이다.

밤하늘의 별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대기 오염이 심한 서울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관해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도착 즉시 샤워부터 했다. 그리곤 침대에 편안히 누웠다. 아폰테 사장은 긴장한 나머지 손을 비비며 왔다 갔다만 반복할 뿐이다.

세바스티앙은 배가 고프다며 베아트리체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치료 과정을 보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이제 진료를 시작할 겁니다. 사장님이 계시면 부담스러워서 제대로 진료할 수 없을 듯하니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그, 그러게.”

“쉐리(Sherry)주라도 한잔하고 계십시오. 잘 될 겁니다.”

쉐리주는 아주 달착지근한 와인이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특산 와인이다.

단맛이 긴장을 해소시켜 주는 데 도움이 되기에 권한 것이다.

“그러지. 잘 부탁하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쿠웅―!

아폰테 사장이 나간 후, 문이 닫힌다.

락(Lock)!

현수가 입술을 달싹이자 소리없이 문이 잠긴다. 이제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혹시 몰라 실내를 살폈다. 구석에 CCTV가 있다.

엘리자베스는 나이가 많은데다 폐암까지 걸린 상태이다. 하여 언제라도 불편을 호소하면 의료진들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긴 나이가 70을 넘었으니 성행위는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비서들의 CCTV 설치 권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마법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군. 뭐, 할 수 없지.’

이때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미스터 킴! 저, 정말 내가 괜찮아질까? 병원에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그랬는데…….”

얼마 전, 베아트리체가 프랑스의 어느 암 치료 전문 종합병원으로부터 들은 최종선고였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완치시킬 수 없으니 여생 동안 원하는 일을 하다가 가라고 한 것이다. 어찌 들으면 배려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참 잔인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그, 그래! 미스터 킴만 믿을게.”

“네에, 그러세요. 슬립!”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엘리자베스의 눈이 감긴다.

“마나 디텍션!”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맥문을 잡고 신체를 스캔했다.

CCTV에 촬영되는 장면은 현수가 진맥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마나는 거침없이 엘리자베스의 몸을 누볐고, 속속들이 보고를 한다. 아침과 달라진 것은 없다. 각종 장기는 곧 망가질 수도 있는 상태로 노화되었고, 폐는 암세포에 의해 거의 점령당한 상태이다.

그냥 놔둘 경우 남은 생명은 길어야 두 달 정도로 예상된다.

“흐음, 대체 이 암이란 놈은 뭐지? 이놈이 뭐기에 사람 생명을 이렇게 갉아먹는 거야?”

2010년에 통계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해에 암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72,046명이다.

전체 사망자의 28.21%가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폐암 21.7%, 간암 15.6%, 위암 13.9%, 대장암 10.7%, 췌장암 6%의 순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암은 다스리기 정말 곤란한 병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다각적인 연구와 노력이 병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질병이기도 하다.

“흐으음……!”

집중해서 살펴보니 임파선에 암세포가 전이되고 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현수는 회복 포션부터 꺼내 들었다. 삼각 플라스크에 든 그것은 본시 연한 초록색이다. 트롤의 피를 정제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CCTV로 녹화된 화면엔 그 색깔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플라스크 겉면을 흰 종이로 감싼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를 조심스럽게 일으킨 후 그것을 복용시켰다.

이제부터 엘리자베스의 몸을 식민지로 삼아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할 암세포들에 대항할 내부의 저항군을 투입한 것이다.

회복 포션 한 병을 모두 먹인 현수는 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태연, 곡지, 협백, 척택, 단중, 거궐, 중완, 풍문, 심유, 간유, 신유, 백회혈에 시침을 했다. 다음은 중부혈 순서이다.

이때 현수는 다른 침보다 훨씬 긴 것을 꺼내 들었다. 장침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치유의 효과를 내기 위함이다.

시침을 하곤 왼손을 침두에서 떼지 않은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CCTV를 등지고 있기에 현수의 입술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나여,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 줘.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서늘한 푸른 빛 마나가 침을 타고 엘리자베스의 체내로 스며든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임무가 뭔지 안다는 듯 암세포들을 정상세포로 바꾸는 작업을 개시한다.

오른손으로 침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이것도 장침이다. 그것은 폐유혈에 박혀들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입술을 달싹였다.

“마나여,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켜 줘.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더블 캐스팅을 한 현수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심력을 소모한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양쪽 손을 통해 엘리자베스의 체내로 스며든 마나는 내부의 강력한 특전군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엘리자베스의 몸을 식민지 삼은 폭군 암세포와 치열한 접전을 시작했다.

암세포는 악랄하고 집요하다. 하지만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한 리커버리 군(軍)과 회복 포션 군(軍)의 협공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다.

끊임없이 빠져나가던 마나가 멈추자 현수는 살며시 손을 떼었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0분쯤 된다.

현수는 다시 맥문을 쥐고 엘리자베스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암세포는 식민지를 빼앗기지 않으려 극렬한 저항을 했다. 마치 일제시대 때 왜놈 순사 같다는 느낌이다.

회복 포션 군과 리커버리 군은 암세포만 협공하는 것이 아니다.

노후 된 장기, 문제가 발생되기 일보 직전인 장기들의 세포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혈관 등에 적체되어 있던 노폐물들로 하여금 물러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곤 산소와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도록 길까지 뚫어준다.

세포들이 깨어나자 각종 조직이 되살아났고, 이는 기관들이 정상 작동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심장, 간, 췌장, 비장, 신장, 폐와 같은 장기들이 점차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장기, 심지어 자궁까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 된다.

이렇게 하여 몸이 재정비되자 회복 포션 군과 리커버리 군은 또 하나의 우군을 만난다. 바로 자연치유력의 일원인 면역력이 협공에 합세한 것이다.

암세포 군은 그렇지 않아도 열세인 싸움에 힘겨워했는데 면역력 군까지 가세하자 비명을 지르며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오랜 식민 생활로 피폐해진 폐 세포들이 저마다 태극기를 들고 나와 만세를 외치기 시작한다.

들불처럼 번지는 만세 소리는 숨죽인 채 암세포의 치하에 신음하던 다른 폐 세포들마저 이에 가세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20분이 지났을 때 엘리자베스를 괴롭히던 암세포 군은 항복을 외쳤다. 하지만 광복군은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회복 포션 군과 리커버리 군, 그리고 면역력 군은 암세포 군 전원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다행이군!”

현수는 길고 긴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한 엘리자베스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이제 암은 정복된 셈인가?”

병원에서 손을 놓은 암을 이겨냈다.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그리고 침술만 있으면 어떤 암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현수는 기분이 좋았다. 최소한 암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킬 수는 있는 능력을 검증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언락(Unlock)!”

딸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이때까지도 손을 비비며 서성이던 아폰테 사장이 황급히 다가선다.

“어,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극복해 낸 것 같습니다.”

“뭐어……?”

아폰테 사장은 현수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폰테 사장이 원한 건 암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연장일 뿐이다. 한의학(韓醫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암을 치료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만에 암을 완치시킨 것처럼 이야길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사모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체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마쳐지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니 건드리지 마십시오.”

“아, 알겠네. 그래도 잠깐만 보겠네!”

“네. 그러셔도 됩니다.”

아폰테는 얼른 엘리자베스가 누워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곱게 늙은 귀부인이 깊은 잠에 취한 듯 고요히 누워 있다.

“여보……!”

아폰테 사장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웃음을 짓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였기에 헤어짐이 불과 석 달 남짓하다는 프랑스 의사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었다.

네가 뭔데 감히 내 아내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하느냐는 성난 고함도 질렀다. 그날 이후 많은 병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최종적으로 한국에 온 것은 한 가닥 희망이었다. 완치는 꿈에도 바라지 못하던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정말 다 나은 건가?”

“저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 별다른 수술도 하지 않았지 않는가?”

“그게 동양의술입니다.”

“……! 내일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봐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저도 검사 결과가 궁금합니다.”

“고맙네. 이 은혜 잊지 않겠네.”

“네에, 잊지 마십시오.”

현수가 농담이라는 뜻으로 환히 웃었다. 아폰테 사장도 웃기는 하는데 왠지 어색하다.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사모님은 조금 더 주무셔야 합니다. 아마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깨실 거예요.”

“알겠네.”

“오늘 밤엔 다른 데서 주무세요. 사모님은 제가 보살펴 드릴게요.”

“고맙네!”

현수와 아폰테 사장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TV를 시청하던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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