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잘 된 거예요?”
“네, 아마도요.”
현수의 간결한 대답에 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현수가 짐짓 몹시 피곤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병원에서 포기한 암을 완치시켰다고 하면 보나 마나 엄청난 질문공세에 시달릴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궁금해 미칠 것이다. 하여 입을 열었다.
“세 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엘리자베스 사모님은 말기 폐암이셨습니다. 살펴보니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어 있더라고요.”
“……!”
이건 아폰테 사장도 모르는 일이다. 워낙 빠르게 암세포들이 성장한 때문이다. 그렇기에 긴장한 표정이다.
“동양엔 기(氣)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서양엔 없는 거죠. 제가 사모님을 치료하는 데 침술과 더불어 기라는 것을 썼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수련하여 얻은 겁니다.”
“그래서요?”
베아트리체가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다행히 사모님은 치료된 듯합니다. 아마 재발하진 않을 거예요.”
“정말인가?”
세바스티앙의 물음이다.
“네, 믿기 힘들겠지만 침술과 기로 사모님의 암세포들을 제압했습니다. 내일 병원에서 확인해 보면 확실할 겁니다.”
“으으음! 정말 믿기 힘들구만.”
다시 세바스티앙의 말이다.
“아무튼, 사모님을 치료하느라 제 기를 너무 많이 썼습니다. 이렇게 기가 빠져나가면 제 수명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겐 말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자네의 목숨을 걸고 치료를 한 거란 말인가?”
기에 대해 모르기에 아폰테 사장은 오해를 한 것이다. 현수는 이를 바로잡아 줄 생각이 없다.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 다시는 외부에 발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제가 사용한 기는 이제부터 석 달 동안 꼼짝도 않고 모아야 할 정도입니다.”
“으음! 알겠네. 오늘의 일은 함구하지.”
“나도 그러겠네.”
“저도요.”
셋이 이구동성으로 약속을 한다. 현수의 안색이 창백하다 여긴 때문이다. 물론 마법의 결과이다.
8써클에 오른 후 현수의 마나량은 종전의 여덟 배 정도로 늘어나 있다. 이래서 7써클이 절대 8써클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를 치료하는 정도로는 전혀 무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당부를 한 것은 세계의 시각이 자신의 한 몸에 쏠릴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1시간 만에 말기암을 완치시켰다고 하면 전 세계의 모든 암환자가 몰려들 것이다.
아무리 8써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일 년이면 국내에서만 7만 2천여 명이 암으로 죽는데 이를 어찌 감당해 내겠는가!
하루에 200명꼴이다. 아무리 마나량이 늘었다곤 하지만 하루에 200번씩 리커버리 마법을 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약간의 연출을 한 것이다.
“근데 저 영화는 뭡니까?”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한 말인데 세바스티앙이 친절히 설명한다.
“작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지. ‘R2B’란 영화인데 세계적인 스타 레인이 나온다고 해서 보는 중이네.”
힐끔 바라보니 전투기들이 서울 상공을 누비며 독파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아무래도 베아트리체의 입김이 작용한 듯하다.
넷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폰테 사장이 자꾸 들썩인다. 아내에게 가보고 싶은 모양이다.
“사장님, 사모님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 아냐! 그래서 그러는 게.”
아폰테 사장은 속내를 감췄지만,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제가 잘 봐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말을 마친 현수는 엘리자베스가 있는 침실 쪽으로 이동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슬립!”
말을 마침과 동시에 셋 모두 고개를 떨군다. 현수는 각자 편안한 자세가 되도록 소파에 눕혔다.
그리곤 밖으로 나왔다. 아까도 본 거지만 오염이 덜 되어 그런지 하늘에 참 많은 별이 떠 있다.
“흐으음!”
심호흡을 하니 상쾌한 기분이 든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아암……! 끄응, 여긴? 아차!”
잠에서 깨어난 아폰테 사장이 두리번거린다. 그리곤 엘리자베스가 있는 침실로 향했다. 이때 현수가 커피잔을 들고 나타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자넨……! 엘리자베스는……?”
“사모님은 괜찮습니다. 산책 나가셨어요.”
“뭐어……?”
현수는 새벽녘에 엘리자베스의 몸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예상대로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그리고 면역력의 압승이다.
암세포는 모두 정상 세포로 바뀌었다. 아울러 다른 장기들 모두 생생한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 30년은 더 거뜬할 정도이다.
잠에서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다. 이에 현수는 아침 산책을 권했다.
새벽의 맑은 공기는 신체에 이롭기 때문이다.
“잠시 후면 오실 겁니다. 병원 예약부터 하세요. 오늘 검사해야 하잖습니까.”
“그, 그래. 알겠네.”
아폰테 사장이 서둘러 병원으로 전화를 하는 동안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도 깨웠다. 둘은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옷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서 잠들었다면서 실소를 터뜨린다.
4장 어쭈, 진짜 이럴 거야?
일행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츌라이 경제개방지구’에 건립된 한림대병원으로 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ASEM 회의에서 건립 지원을 약속한 것에서 비롯된 병원이다.
정식 명칭은 꽝남성 중앙종합병원(QNCGH)이다.
병원에 당도하니 병원 고위층들이 환영해 준다. 아폰테 사장의 인맥이 작용한 결과이다.
곧장 안내 받아 각종 검사를 받았다.
저선량 흉부 컴퓨터 단층 촬영(Low―dose spiral chest CT), 컴퓨터 양전자 단층 촬영(PET―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이용하여 폐암 병변을 평가받았다.
모든 검사가 끝난 후 담당의는 대체 왜 정상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러느냐는 의문을 표시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아폰테 사장의 말에 담당의는 엘리자베스는 암세포가 전혀 없는 완전한 건강체라는 대답을 했다.
단 하루 만에 폐암을 완전히 정복한 것이다.
당연히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이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병원을 나설 때 엘리자베스는 현수의 목을 꼭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감사하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했다.
아폰테 사장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이 이제 먼 훗날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눈가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낀 때문이다.
같은 순간.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는 어제 한약방에서 가져온 약을 복용법에 꼭 맞춰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들의 눈에 현수는 대단한 의사로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미스터 킴을 위해 건배합시다.”
“네, 무슈 킴을 위해!”
아폰테 사장의 선창에 세바스티앙이 화답했다. 베아트리체 역시 잔을 들어 부딪치려 할 때 현수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절지에서 생환한 불굴의 여전사 엘리자베스 사모님을 위해서 건배해야죠.”
“그래, 아팠지만 이젠 멀쩡해진 엘리자베스를 위해! 마누라, 이젠 아프지 마라. 알았지?”
아폰테 사장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암에 걸린 이후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너무도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도요!”
“그래!”
노부부가 눈빛만으로 깊은 애정을 나누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이때 세바스티앙이 잔을 들며 외친다.
“엘리자베스 사모님의 100세 건강을 위하여!”
“하하, 네에. 위하여!”
모두가 환히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금방 다시 잔이 채워졌고, 이번엔 현수를 위해 건배했다.
이번엔 사양치 않고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일행이 한국으로 되돌아온 것은 늦은 밤이다.
“미스터 킴! 조만간 또 보세.”
“네, 또 뵙지요. 참, 이거……!”
“이건 뭔가?”
현수가 건넨 삼각 플라스크를 받아 든 아폰테 사장이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건강에 좋은 겁니다. 마시고 주무시라고요.”
“고맙네. 신경 써줘서.”
현수가 건넨 것은 회복 포션을 이온음료에 섞은 것이다.
현재 아폰테 사장은 특별한 병이 없다. 따라서 반병이면 충분하리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만 오래 살고 아폰테 사장이 일찍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노부부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면서 지내라는 뜻으로 주는 선물이다.
헤어지기 전 세바스티앙이 묻는다.
“무슈 킴! 말기 암을 단 하루 만에 고쳐 내다니 정말 대단하네.”
“대단하긴요……. 어쩌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나와 베아트리체는 하루 만에 안 된 건가?”
진짜 궁금했던 게 이것인 모양이다. 하여 현수는 실소를 지었다.
“그야 엘리자베스 사모님은 이미 발병된 상태이고, 무슈 세바스티앙과 마드모아젤 베아트리체는 발병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미 병에 걸려 있을 때 더 고치기 쉽다는 뜻인가?”
“아뇨.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영어식 표현을 하자면 ‘Case by case’인 거죠.”
“……?”
“엘리자베스 사모님은 치료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만 무슈 세바스티앙과 마드모아젤 베아트리체는 신체 전체의 균형이 틀어진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되십니까?”
“신체 전체의 균형이 틀어져……?”
“네, 세바스티앙 부회장님을 예로 들자면 혈관 전체가 문제입니다. 고지혈증으로 인한 중성지질이 혈관을 좁히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고혈압이 동반되었고, 혈류의 흐름에 문제가 발생한 거죠. 그런데 사람 몸 속 혈관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혈관 전체의 길이……? 글쎄? 얼마나 되는가?”
“대략 10만㎞ 정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구 둘레의 두 배가 넘습니다. 참고로 모세혈관의 지름은 8∼20㎛3) 정도 됩니다.”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치인 듯 세바스티앙은 놀란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적혈구4)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가는 모세혈관도 있고, 지름이 30∼40㎛ 되는 굵은 혈관도 있죠. 모세혈관의 길이는 40,000∼95,00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끄으응!”
“세바스티앙 부회장님의 경우는 10만㎞나 되는 혈관 중 어디에, 얼마만큼, 어떤 문제가 발생한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치료 기간이 길어져야 하는 겁니다.”
“알겠네. 설명 고맙네. 새로운 걸 배웠군. 혈관 길이가 그렇게 긴 줄 몰랐어.”
“네에.”
세바스티앙과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의문점이 해소되었다는 표정이다.
* * *
“흐음! 아직 덥네.”
귀가하여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현수는 후텁지근함을 느꼈다. 오후에 비가 와서 습도가 높아진 모양이다.
에어컨을 가동했다가 이내 껐다. 지난달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어머니의 투덜거림을 상기한 때문이다.
“할 수 없군. 에어컨 신세를 안 지려면 내 방에도 해야지.”
아공간에서 판금 재료를 꺼내 항온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번 것은 마나석을 어디에 끼우느냐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는 마법진이다.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지만, 전공이 수학이다. 그리고 두뇌가 비약적으로 좋아진 상태이다. 그렇기에 마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마법진을 그리고 그것을 시험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험 가동 결과는 만족이다. 원하는 온도를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는 김에 부모님의 방에 설치할 마법진 역시 만들었다. 하지만 장치하지는 않았다. 설명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