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33화 (333/1,307)

# 333

“휴우! 이제 되었군. 그나저나 장근평은 제대로 숨어들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놈에 관한 기사는 전혀 없다.

“흑룡이라는 놈이 나를 납치하라고 지시했다고? 근데 대체 뭐하는 자식이지? 지나 정부 요원일까? 아님 지나건축공정총공사? 흐으음!”

현수는 턱을 괸 채 상념에 빠졌다. 신변에 위협을 가하려는 놈이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이런 시도가 있으면 그땐 확실히 알아봐야겠군.”

왕 상위과 이 상위, 그리고 장근평 상교를 그냥 보내 버린 게 후회되는 순간이다.

날이 밝자 출근을 했다. 전무이사실은 아직 공사 중이고 강연희 대리는 여전히 휴가 중이다.

박진영 과장은 어디서 노닥거리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자재과에도 아무도 없다. 하여 사장실로 향했다.

“여어! 우리 대단한 김 전무. 이젠 조폭들도 순화시키나?”

“에구, 사장님도 참……! 그 사람들 원래부터 그쪽에서 손을 씻으려던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대단해. 덕분에 회사 이미지도 많이 좋아졌어.”

“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신형섭 사장은 여전히 현수에게 지극히 호의적이다. 하긴 현수의 덕을 얼마나 많이 입었던가!

앞으로 10년은 더 사장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둘의 대화가 막 시작하려는데 조인경 대리가 음료를 들고 들어온다. 그런데 살짝 삐친 듯 입술을 내밀고 있다.

“조 대리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전무님.”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같으면 생글생글 웃음 지으며 시선을 마주쳤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이다.

이 모습은 본 신형섭 사장이 빙그레 웃는다.

“자네가 강연희 대리를 비서로 정해서 그러네. 천지건설 양대미녀 가운데 강 대리를 택했다는 소릴 듣고부터 저리 뚱하지.”

“……!”

“쳇! 좋겠어요.”

조인경 대리가 한마디 하고는 밖으로 나가자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정리한 것 같아 부담감은 덜하지만 그래도 상처를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 언제쯤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려는가?”

현수가 가야 추가 일감이 생긴다. 하여 요즘엔 천지정유 등에서 날마다 전화가 걸려온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정유회사를 만드는 것과 석유 시추권 사업을 따내고 싶은 때문이다.

천지통신, 천지화학, 천지전자에서도 수시로 전화를 건다.

대한민국에 비하면 광활하다는 표현을 써도 괜찮을 콩고민주공화국이다.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는가!

화학은 사회 기반 산업이다. 따라서 천지화학이 할 일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각종 가전제품을 소비시켜 줄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 네 계열사는 현재 몸이 바싹 달아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에 현수는 왜 그러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절 그렇게 빨리 보내고 싶으신 거예요?”

“하하, 나야 물론 아니지. 그런데 계열사에서 계속 전화가 와서 못살 지경이네.”

“……?”

“전자, 통신, 화학, 정유 등 계열사 사장님들이 매일 전화를 하시네. 자네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아……!”

이제야 왜 그러는지를 깨달은 현수는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분들께는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가는 대로 최선을 다할 거라는 말씀 전해주십시오.”

“그러지. 어련하겠나. 그나저나 며칠 전에 백두화학 조인성 회장님을 만났다고?”

“네, 잘 아는 아우가 다리를 놓아주어서 만나 뵈었습니다.”

신형섭 사장은 굳이 아우의 이름을 묻지는 않았다.

“그래, 그쪽엔 어떤 일감을 주려는가?”

“이실리프 농장 등에 사용될 사료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료……!”

다행히 천지그룹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상품이기에 신형섭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천지그룹 총괄회장 이연서는 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라는 명을 내렸다. 걸어 다니는 화수분5)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감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혹시라도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으니 잘 보호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현수가 수시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제도 그렇다. 아무리 이연서 회장이 명령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베트남 다낭에 있는 아폰테 사장의 별장까지 따라갈 수는 없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를 이용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현수는 아폰테 사장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갔다. 이런 경우는 따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아무튼 천지건설 입장에선 일감이야 지금도 넘치도록 많이 받은 셈이지만 사람 욕심이 어디 그런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이연서 회장은 이 기회에 천지그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에 현수에게 사랑하는 손녀딸을 주려고까지 생각을 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보호해야 할 인물로 지목했던 것이다.

“태백조선소 사람들은 왜?”

신 사장은 현수가 자신의 이목하에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은밀히 살피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불쾌감을 느낄까 싶었던 것이다.

한편, 현수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속속들이 보고된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 사장의 얼굴을 보고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프랑스를 경유할 때 우연히 태백조선소 직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만난 겁니다.”

“그랬군. 기분 나빴나?”

“아뇨. 회사에서 절 보호하려고 그런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사실은 그룹 회장님께서 자네의 신변을 특급 경호하라는 명을 내리셨네.”

“이해합니다.”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네, 그러지요.”

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부해 봤자 소용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네가 원하는 시기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가도 좋네. 출근해서 날마다 나를 찾을 이유도 없고. 자넨 우리 회사의 전무이지만 사실상 독립된 부서의 수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아! 부서라 할 수는 없겠군. 수장이 전무이사이니. 그럼 독립된 기구쯤으로 여기게.”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공사가 아직 안 끝나서 불편하지?”

“아뇨,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기에 불편함은 없습니다.”

“이야길 들어보니 조만간 공사가 끝난다고 하더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이야기하게. 내게 말하기 곤란하면 인사부장이나 경리부장에게 직접 말해도 되네.”

“……!”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자넨 독립기구의 수장이네. 그룹 회장님께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하라 하셨으니 뜻대로 해도 되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킨샤사와 비날리아 간 고속도로 공사의 계약은 체결된 겁니까?”

“아닐세. 공사비 산정이 아직 안 끝나서 도장은 안 찍었네. 하지만 현지에선 이미 착공을 했네.”

“계약도 안 했는데 벌써 착공을 해요?”

“그래, 그쪽 내무장관님께서 공사비는 우리에게 일임할 테니 품질 좋은 도로만 만들어달라면서 착공을 서둘러 달라 하셨거든.”

“그래요?”

“아마도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현지 사정은 현수가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현재는 반군 및 죠셉 카빌라 대통령에 좋은 감정이 없는 국민이 많은 상황이다. 이럴 때 대규모 공사를 하여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 인심이 돌아설 것이다.

실제로 현지에선 이실리프 농산과 농장, 그리고 축산에 불하될 토지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국무회의에서 발의한 이 안건은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를 얻었다. 남의 나라 사람이 자기 돈을 들여 자국을 개발시켜 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땅을 200년간 조차해 주는 것도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가장 마지막에 개발될 곳을 가장 먼저 개발하는 것이다.

200년 후에는 잘 개발된 땅과 건물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그렇기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선 손해 볼 일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아무튼, 반둔두 지역과 비날리아 인근 지역에서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하여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이실리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취직만 하면 월급 이외에도 잠잘 곳까지 마련해 준다니 빈곤에 처한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선 탐나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네, 알겠습니다. 회사에 이익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장실을 나선 현수는 자신의 방으로 가보았다. 아직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고 먼지만 날리기에 얼른 빠져나왔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설마 벌써 알아낸 거야? 여보세요.”

“사장님! 저 오광섭입니다.”

“그래, 알아봤어?”

“네, 근데 전화로는…….”

“알았어. 지금 어디에 있어?”

“여긴 플라자 호텔 커피숍입니다.”

“금방 갈게 기다려.”

“네.”

현수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곤 곧장 시청 앞으로 향했다.

“여깁니다.”

“그래!”

현수가 자리에 앉자 오광섭이 상체를 기울인다.

“형님,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알아보라고 하신 겁니까?”

오광섭답지 않게 속삭이는 목소리이다.

“왜……? 그놈들 정체가 뭔데 이래?”

“형님, 선 소령은 기무사와 관련된 소속이고, 강철환은 얼마 전 그곳에 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입니다.”

“그래? 내 예상이 맞군.”

“짐작하신 겁니까?”

“그래서 확인해 달라고 한 거야. 근데 아무 문제 없겠어?”

“네? 그게 무슨……?”

“누군가가 자신들의 신분을 캐고 다녔다면 문제 삼을까 봐 그러지.”

“동기 녀석은 기무사 현역이라 괜찮을 겁니다. 저는 곧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갈 거니 별문제 없겠죠.”

“하긴, 그래! 역삼역 이실리프 빌딩으로 가서 민주영 실장을 찾아. 가면 출국에 필요한 수속을 알아서 해줄 거야. 아우와 아우의 동생들 모두 가급적 빨리 출국해. 가서 말썽 피우진 말고.”

“네, 형님.”

오광섭이 고개를 숙인다.

역전회를 암흑가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오대준과 오광섭은 조직을 재정비했다. 가장 먼저 악질들을 조직에서 내보냈다.

그리곤 주유소나 편의점 같은 정상적인 업체들을 인수하거나 만들었다. 조직원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근무케 하려 했던 것이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조직원들도 좋아했다. 주먹으로 남들을 위협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이 보유한 돈이 많았기에 얼마간은 어려움없이 조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황이 닥쳤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운영하던 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적자로 돌아섰다. 결국, 몇몇 사업체는 남에게 넘기거나 문을 닫아야 했다.

적자 폭이 점점 커져서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직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이걸 조직원 전체가 n분의 1씩 나눠 갖는 걸 고려해 보았다.

처음에 그랬다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작은 가게 하나씩은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하여 n분의 1로 나누면 푼돈밖에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백수가 된 조직원들은 다시 암흑가를 기웃거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진 않았다.

회주인 오대준이 살던 집을 팔아 원룸으로 이사를 가면서 조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현수에 관한 기사가 나갔다.

오광섭은 조직원 전체를 완벽히 개과천선시킬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상경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하였다.

신문에도 보도되었듯이 이제 역전회는 없다. 이실리프 농산 등에서 일을 하게 될, 과거가 불우한 청년들만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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