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34화 (334/1,307)

# 334

그 기사가 나간 후 대구의 곳곳에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역전회 조직원들의 가족이다.

남편이, 오빠가, 동생이, 조카가, 형이 조직폭력배인 것이 자랑스러운 가족은 없다. 언제 경찰에 붙들려가 감옥행을 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일제히 손을 씻는다 하니 반가움에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참, 그 동기한텐 그 사람들에 대해 더 알아볼 것 없다고 말해줘.”

“네? 왜요?”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까.”

“근데…….”

오광섭이 말끝을 흐린다.

“왜? 무슨 일 있어?”

“네, 뭔가 이상하다고, 계통을 밟는다는 소릴 했거든요, 동기가!”

“계통을 밟아?”

“네, 상부에 보고하고 본격적인 내사를 해볼 모양입니다.”

“흐음, 뭐 기무사에서 그런다면 그러라고 하지.”

현수는 쉽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안녕하십니까? 여기가 신세계마리타임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김상렬은 키 큰 외국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지금껏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처럼 부티 나는 차림은 처음이다.

하나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를 걸쳤고, 다른 하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를 입고 있다.

만드는 데만 거의 한 달, 한 벌 가격은 200∼300만 원이나 하는 비싼 브랜드이다.

뿐만이 아니다. 차고 있는 시계는 비싸기로 이름 난 파텍(Patek)과 피아제(Piaget)이다. 쓰고 있는 안경은 부쉐론(Boucheron)이다.

일련의 것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상렬이 소위 말하는 명품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들이 신고 있는 구두의 브랜드를 알아보지 못했다. 상렬은 구두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 중 하나가 재차 묻는다.

“이 회사의 사장인 김상렬 씨를 만나러 왔는데 계신지요?”

“김상렬이라면 전데요.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전 CMA 오머런에서 온 메지에르라 합니다.”

상렬이 명함을 받았으나 너무 당황하여 불어와 영어로 쓰인 명함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MSC 사에서 온 제마일리라 합니다. 여기 명함……!”

이번 명함은 독일어와 영어로 쓰여 있다. 이번에도 상렬은 당연히 못 읽었다. 경황이 없어서이다.

“네, 반갑습니다. 여, 여기… 여기 앉으세요.”

상렬은 저답지 않게 당황했다. MSC와 CMA 오머런이란 이름 때문이다. 신세계마리타임은 수없이 많은 복합운송주선업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반면 둘은 세계 2위와 3위 컨테이너선사의 임원들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구멍가게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 이름의 무게 때문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렬의 이런 모습을 두 임원이 재미있게 본 모양이다.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근데 여기는 손님에게 차는 안 줍니까?”

“아!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삐이이익―!

“미스 최, 여기 커피 세 잔만……. 아니, 두 분 차는 뭘로 드시겠습니까? 커피? 주스……?”

“하하! 주스 주십시오.”

“나도요.”

“네. 미스 최, 오렌지 주스 세 잔 부탁해요.”

허둥지둥대는 상렬의 모습을 지켜보던 두 임원은 또 한 번 피식 실소를 터뜨린다.

잠시 후, 미스 최가 오렌지 주스 세 잔을 가져왔다. 그제야 진정된 상렬이 정색하며 묻는다.

“저어, 두 분은 어떤 일로 저희 회사를 찾아주셨는지요?”

CMA 오머런과 MSC 사가 신세계마리타임을 먼저 찾을 일이 없기에 물은 말이다.

“MSC 사를 대표하는 내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세계마리타임이 우리 회사 한국 대리점을 맡아줬으면 해서입니다.”

“네……?”

“우리 CMA 오머런의 한국 대리점도 신세계마리타임이 맡아줬으면 합니다.”

“뭐라고요?”

상렬은 너무도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MSC 사의 대표이사인 지앙뤼지 아폰테 사장님께서 한국 대리점은 신세계마리타임이 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CMA 오머런 사도 세바스티앙 오머런 부회장님께서 직접 신세계마리타임을 한국 대리점으로 지목하셨습니다.”

“끄으응…!”

상렬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나지막한 신음만 토했다.

만일 현 상황이 실제라면 신세계마리타임은 단순한 복합운송주선업체가 아닌 것이 된다. 군대로 치면 이등병에서 단숨에 대령이나 준장으로 진급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믿어지겠는가! 하여 허벅지를 슬그머니 꼬집어보았다. 아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꿈꾸고 있는 것 아니면 환상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하여 아주 세게 꼬집었다. 꿈이나 환상이라면 그래도 된다.

‘으윽……!’

아프다!

너무 세게 꼬집었기에 살갗이 까지기라도 했는지 몹시 쓰라리다. 하여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마주 앉은 두 임원은 일련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나 보다. 인상 찌푸리는 상렬을 보고 파안대소했던 것이다.

“프하하하!”

“크하하하!”

“끄으으응!”

상렬은 신음을 토하곤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눈앞의 사람들이 사라지면 아프긴 해도 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킴! 정신 차려요.”

“아! 네, 네에.”

상렬은 허둥지둥 미망에서 깨어나려 노력했다. 이때 메지에르와 제마일리가 한마디씩 한다.

“설마, 신세계마리타임은 우리 MSC 사와 한국 총괄 대리점 계약을 맺지 않을 겁니까?”

“우리 CMA 오머런 사도 한국 총괄 대리점을 신세계마리타임과 맺고 싶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아, 네에.”

이번에도 상렬은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다.

“대리점 체결 계약서는 우리가 가져왔습니다. 검토하신 후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네? 아, 네에.”

상렬은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은 계약서를 받아 가지고 갔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신세계마리타임 사장실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만세! 만세! 김현수 이 자식……. 만세! 친구야, 고맙다. 만세! 만세! 하하하! 만만세다. 현수야, 고맙다. 이 자식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어 널브러져 있던 상렬은 현수의 전화를 받고야 어찌 된 영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신세계마리타임은 복합운송주선업체라는 틀을 깨게 된 것이다.

* * *

“여보세요. 김현수 씨? 로빈훗입니다.”

“아……! 로빈훗님.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오늘 전화 드린 건 말씀하셨던 컴파운드 보우 때문입니다.”

“아! 그래요? 제작 가능하대요?”

“네. 만들 수는 있지만 내구도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합니다. 김현수 씨가 말한 500파운드짜리를 견딜 만한 소재가…….”

“아! 그래요?”

현수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로빈훗의 말이 이어진다.

“300파운드짜리는 제작 가능하답니다. 그럴 경우 사거리가 1,400m 정도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어쩌면 더 나갈지도 모르고요.”

“그래요?”

“그래서 여쭙는데, 이 프로젝트 없었던 걸로 할까요? 계좌번호 말씀하시면 전에 주셨던 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5장 스텔스 미사일

현수는 라이세뮤리안과의 대결을 떠올려 보았다.

놈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와 같다. 하긴 그랜드 마스터를 넘볼 실력이니 어찌 빠르지 않겠는가!

놈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시뻘건 검강은 무시무시했다. 이 세상에 못 벨 게 없고, 파괴하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놈과 다시 대결할 경우 거리 유지는 이제 필수이다. 놈의 마법이 미치지 못할 거리를 떼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다.

안티 매직 필드 속에선 전능의 팔찌에 새겨진 마법 외엔 어떤 마법도 쓸 수 없다.

같은 8써클이 되기는 했지만, 마법 실력은 여전히 라이세뮤리안이 상위에 있다. 검술도 놈이 아직은 우월하다. 보우 마스터가 되었으니 오러 실은 화살만이 한 가닥 희망이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거리 밖에서의 공격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사정거리 2,000m짜리 컴파운드 보우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사정거리를 못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요 없는 물건이다.

“아쉽지만 그러지요. 제 계좌번호는 문자 메시지로 보내 드릴게요.”

“네, 그럼 그러십시오.”

로빈훗은 이번 주문의 10%에 해당하는 커미션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주문이 무산되니 약간 실망스러운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 목적지에 당도하였기에 현수는 택시에서 내리려 했다.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맞아! 사거리를 늘릴 방법이 있어. 그래, 그거야!”

화살에 플라이와 헤이스트 마법을 걸면 활공 거리가 분명히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로빈훗님! 그냥 300파운드짜리 보우를 주문하겠습니다. 진행해 주십시오. 전에 말씀드린 대로 화살도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내곤 씩 웃었다. 난제를 해결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 * *

“여어, 어서 오십시오.”

민윤서 사장은 언제나처럼 반겼다.

“하하, 네에.”

“웬일로 또 오셨습니까?”

“한 가지 깜박한 게 있어서요. 김지우 실장님을 뵙고 싶은데 지금 연구실에 계신가요?”

“그럼요. 그 양반이 거기 말고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요즘은 아주 연구에 푹 빠져 계십니다.”

“그렇군요. 그럼 같이 뵈러 갈까요?”

민윤서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을 섰다.

“그런데 김 실장님은 왜……? 아! 효소 때문에 오셨구나.”

합성되지 않은 두 가지 물질을 복제할 유사 효소를 만들어달라는 말을 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네, 그 건도 있구요. 먼저 뵈었을 때 잊은 게 있어서요.”

“그래요?”

말을 하는 동안 연구실에 당도하였다.

“김 실장님!”

“아! 사장님. 김현수 전무님도 오셨군요.”

현수의 직책은 이제 어디를 가든 전무이다.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후 국민 전무라는 칭호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 잘 되시죠?”

“하하, 네에. 김 전무님이 하도 숙제를 많이 주셔서. 요즘은 바쁜 줄도 모르고 지냅니다.”

“전에 왔을 때 제가 잊고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서요.”

“뭡니까?”

“잠깐만요.”

현수는 들고 있던 상자 속에서 쉐리엔을 꺼냈다.

“쉐리엔이군요.”

눈에 익은 모습이기에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다른 점을 찾았다.

“아! 이건 뿌리가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 뿌리에 진통작용을 하는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그걸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진통작용이요?”

“네, 생리 때마다 아주 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어떤 여자가 이 뿌리의 즙을 내서 마신 후 그걸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주 심한 생리통은 타이레놀을 네 알이나 먹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효능이 있었다면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군요.”

김지우 박사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현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증을 주는 질병 중 하나를 떠올렸다.

지상 최악의 통증을 느끼게 한다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 그것이다.

“혹시 CRPS에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 테스트해 봐주세요.”

“네에? 설마요.”

김지우 박사의 의문은 타당성이 있다.

인간이 느끼는 신체적 고통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01. 작열통(몸에 불이 붙으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

02. 신체의 절단(손가락 또는 발가락)

03. 출산의 고통(초산)

04. 두 번째 출산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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