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김 전무님! 말씀 중에 미안하지만 그 이론이라는 거, 혹시 문서로 읽어볼 수 있을까요?”
윤 소령의 말이었다.
“네……?”
“최소한 어떤 원리인지 정도는 알아야 다른 연구원들에게 미리 설명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건 곤란합니다.”
“왜죠?”
최 팀장과 윤 소령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 어떠한 경우에도 이론을 발표하거나 특허를 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특허는 출원한 날로부터 대략 20년간 권리를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출원을 해야 하고요.”
“맞습니다.”
“전 제 이론을 세상이 공유하도록 할 생각이 없습니다. 누구든 복제할 능력이 있으면 따라서 해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금방 누군가가 그 기술을 파악해 낼 것이고 먼저 특허를 내면 권리 주장조차 못 하게 됩니다.”
“압니다. 하지만 전 자신 있습니다.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이 기술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란 것을……!”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닙니까?”
“아뇨, 전 인류가 다 덤벼들어도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 제 기술은……! 왜 그런지는 두 분이 가장 먼저 깨닫게 될 겁니다. 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현수가 화장실로 향하자 윤 소령이 최 팀장을 바라본다.
“이거야 원……! 너무 느닷없지 않습니까?”
“그러게. 하지만 윤준이를 치료해 준 걸 보면 안 믿을 수도 없네. 근데 느닷없는 비대칭 나노 금속은 또 뭔가?”
“저도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어디서 그런 고급 기술을 습득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눈에 안 보인다고 레이더에 안 잡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래, 그건 그렇지.”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왠지 이상하게 끌립니다. 어쩌면 김 전무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소령은 모든 병원에서 포기한 중증근무력증을 단번에 치료해 낸 현수에게서 왠지 신뢰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면야 얼마나 좋은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텔스 미사일이라니……. 그건 곧 우리 기술로 투명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맞습니다. 팀장님! 하지만 실험했다가 실패하면 개망신이니 다른 연구원들이 자리에 없을 때 비공식적인 실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흐으음!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 시스템을……! 비공식 실험이란 건 없네. 모든 걸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아무튼, 묘안을 내서라도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쎄! 난 조금 회의적인데……. 아무튼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세. 난 아까부터 술이 올라서 띵하네.”
“저도 그렇습니다. 평상시보다 과음한 듯합니다.”
현수가 돌아온 후 셋은 언제 어떻게 실험할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 * *
“사람들 참 못 믿네. 하긴, 나라도 수학과 나온 놈이 스텔스 미사일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못 믿을 거야.”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서 현수가 중얼거린 말이다.
“참, 기사 아저씨!”
“네?”
“혹시 우리 차 따라오는 거 없나 확인 좀 해주세요.”
“네? 그게 무슨…….”
“미행하는 차가 있는지 봐달라는 겁니다.”
“미행이라니요?”
택시기사가 갑자기 긴장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저씨! 저 몰라요? 요즘 유명인산데.”
“유명인사요? 글쎄요?”
“그럼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는 알죠?”
“아! 그 사람이야 알죠. 신문과 방송에서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모르면 간첩이죠. 근데 그 사람은 왜……?”
“제가 김현수입니다. 요즘 기자들이 하도 따라와서.”
“네……? 아! 맞군요. 아이고, 이거 영광입니다. 제 차에 김현수 전무님이 타시다니…….”
뒤를 힐끔 돌아보았던 기사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현수의 얼굴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알아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하, 네에. 대신 내리시기 전에 사인 한 장 부탁드립니다. 고3짜리 아들놈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주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신 미행하는 차가 있는지 봐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확실히 파악해 드리겠습니다.”
가는 동안 택시기사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현수는 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줬다. 그래서인지 수시로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통해 주변의 교통 흐름을 살피곤 했다.
“다녀왔습니다!”
“오냐! 회사 일이 바빴니?”
“네, 그렇죠, 뭐.”
“밥은?”
“직원들이랑 회식하면서 먹었어요.”
“그래, 그럼 어여 씻고 쉬어라.”
“네, 어머니!”
제 방으로 총총히 올라가는 현수의 뒷모습을 본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즘 동네 사람은 물론이고 성당 식구들로부터 계속된 축하인사를 받느라 너무 기분이 좋아서이다.
여기저기서 선 볼 자리가 있다면서 연락이 오고 있지만, 정중히 거절하는 중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인데다 재벌의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어쨌거나 어머니는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물론 너무 기분이 좋아서다. 이게 다 하나뿐인 아들 때문인지라 뒷모습도 예뻐 보여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휴우, 나름대로 긴 하루가 끝났군.”
긴 한숨을 몰아쉰 현수는 기지개를 켰다.
“9월 하고도 중순인데 왜 이렇게 덥지? 아르센 대륙은 아직 초여름이라 조금 덜 덥겠지?”
엔진 공부하느라 늘어놓은 책상을 치우며 중얼거리던 현수는 라이세뮤리안에게 당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용암처럼 뜨거운 화염 속에서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갑작스레 분노가 치솟는다.
“당하고 못 살지! 아르센으로 가야겠어.”
생각이 미치자 전능의 팔찌를 살폈다. 어느새 완전 충진되어 있었다.
“마나여, 나를 아르센으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또 한 번 안개처럼 스러졌다.
* * *
“흐으음, 역쉬∼!”
한국에 비해 습도와 온도 모두 떨어지는 아르센 대륙에 당도한 현수는 심호흡을 했다.
공기 자체가 다른지 신선함이 폐부에서부터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이곳은 멀린의 레어이다.
“일단 검법과 마법을 더 가다듬어야 해.”
현수는 멀린이 새겨놓은 타임 딜레이 마법진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딜레이!”
밖의 시간으로 하루, 결계 안 시간으론 30년짜리 타임 딜레이가 걸렸다.
현수는 검법서들을 다 꺼냈다. 그리곤 검법 먼저 가다듬었다. 이번엔 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전에는 그저 검법서의 검결만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라이세뮤리안 및 그의 자식인 드래고니안들과의 대결을 떠올린 심상 대결이 먼저였다.
소드 마스터가 되었기에 마법 없이 대결에서의 승리를 취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번번이 패했다.
상대는 하나같이 소드 마스터 최상급에 이른 검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28번째 대결에서의 승리는 정말 운이다.
상대가 많이 봐주지 않았으면 타임 딜레이가 아닌 다른 마법으론 패배했으리라는 것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6장 다시 알베제 마을
현수는 수천 번의 패배 속에서 조금씩 정진했다. 그 결과 검에 무거움과 가벼움을 자유자재로 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빠름과 느림의 조절도 이젠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 검강의 굵기도 균일해졌고, 길이도 늘어났다.
이제 소드 마스터 유저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급이 되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최상급에도 발을 걸칠 수 있을 것이다.
마법도 능숙해졌다. 8써클 유저 최상급이다. 얼마 후면 마스터가 될 듯하다.
궁술 연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러 실은 화살이 줄줄이 발사될 때까지 쉬지 않고 쏘고 또 쏘았다.
보우는 마스터 중에서도 최상급에 이르렀다.
특히 화살의 사거리를 늘리는 것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아르센의 활로는 300보가 최고이다.
그런데 헤이스트와 플라이 마법을 거니 비거리가 확실히 늘어난다. 900보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현수는 화살에 오러를 실어보았다. 처음엔 비거리가 줄었다. 하지만 차츰 길어진다.
30년 훈련을 마칠 즈음이 되자 결국 애초의 1,000보를 달성하게 되었다. 공간 확장 마법을 무려 열두 차례나 중첩했기에 가능한 수련이었다. 이때까지 현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현수는 작정했던 세월이 흐르자 결계를 풀고 마법진 밖으로 나왔다. 레어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이세뮤리안! 기다려라. 원수는 반드시 갚아주마.”
현수는 어금니가 으스러지도록 이를 갈았다.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련에 열중한 기간만 60년이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의 여섯 배나 되는 길고 긴 기간 동안 오로지 검법과 마법, 그리고 궁술만 가다듬었다.
당연히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현수는 자신만만했다.
게다가 두 가지 병기가 더 있다. 하나는 지구에서 제작되고 있을 300파운드짜리 컴파운드 보우와 사냥용 화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거리가 2㎞가 넘는 체이탁 저격소총이다. 무게가 12㎏이 넘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나 현수에겐 그 무게가 부담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거운 체이탁을 돌격소총처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408 체이탁 전용탄환의 탄두에 플라이와 헤이스트, 그리고 스트렝스 마법을 인챈트하거나 오토믹 붐을 걸 생각이다. 그러면 천하의 라이세뮤리안이라도 상처입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마법의 생물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상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탄환을 감당해 내기엔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걸로도 안 된다면 훨씬 더 강력한 무기를 구할 생각이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라이세뮤리안을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말은 안 했지만 하다 하다 안 되면 미8군에서 핵무기라도 훔쳐올 생각을 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 하지만 핵무기까지 감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레어를 떠났다. 그리곤 알베제 마을로 향했다.
“누구냐? 어디서 온 누구인지 신분을 밝혀라.”
“엘베른을 만나러 왔네.”
“뭐라고? 엘베른 경비대장을 만나러? 좋아, 이름이 뭐냐?”
목책에서 경계를 서던 청년은 안광을 빛냈다.
“하인스 킴이라고 하네. 전해주시게.”
“하인스 킴……? 설마 그, 하인스 킴……? 정말입니까?”
사내의 어투는 급격하게 공경하는 투로 바뀌었다.
“그렇네, 지난겨울에 이곳을 방문했던 하인스 맞네.”
“그, 그렇다면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삐이꺽―!
경첩조차 없는 목책이 열리는 소리는 요란했다. 청년은 허리를 직각으로 꺾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마을 복판으로 뛰어간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중 하나의 낯이 익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인스님!”
“마레바 촌장 오랜만이네.”
현수를 영접한 이는 다리에 상처를 입었던 촌장이다. 현수가 왔다는 전갈을 듣자마자 먹던 음식을 팽개친 채 달려왔다.
현수로 인해 알베제 마을의 위상이 달라진 때문이다.
“하인스님! 건강하신 거죠.”
“그래, 나는 잘 있었네. 촌장도 잘 있었는가!”
“네, 하인스님 덕분에……!”
현수가 떠난 후 이곳 알베제 마을은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가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소문이 번진 때문이다.
아드리안 공국을 공격하던 미판테 왕국은 물론이고, 쿠르스 왕국과 엘라이 왕국의 마법사와 귀족들이 연달아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