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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37화 (337/1,307)

# 337

아울러 알베제 마을이 속한 테리안 왕국의 고위 귀족과 마법사들도 방문했다.

살아생전 남작 이상의 귀족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알베제 마을의 농담 가운데 하나이다. 길도 없는 첩첩산중에 홀로 남겨진 화전민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작, 백작, 후작, 공작을 그야말로 실컷 보았다. 나중엔 남작 알기를 평민처럼 여길 정도이다.

아무튼, 테리안 왕국은 알베제 마을을 특별구역으로 선포하였다. 어떤 영주들도 이곳을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지 못하도록 왕명을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알베제 마을은 귀족이 다스리지 않는 독립영지가 되었다. 이실리프 마탑의 비호를 받는 마을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이실리프 마탑과의 관계가 나빠지질 원치 않기에 선언된 것이다.

어쨌거나 복잡했던 날들이 지난 이후 알베제는 아주 살기 좋고 평온한 마을이 되었다.

어떤 귀족이나 기사라 할지라도 감히 침범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을의 수호 영물 때문이기도 하다.

현수가 복종 마법을 걸어 엘베른에게 사육토록 맡긴 샤벨타이거가 그놈이다.

불과 반년 사이에 놈의 덩치는 몇 배로 커졌다. 이 녀석이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에 자신의 오줌을 뿌렸다.

개처럼 오줌으로 자신의 영토라는 것을 표시했던 것이다.

전에는 고블린이나 오크, 때로는 트롤이나 오우거가 출몰해서 주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젠 그러지 않는다.

샤벨타이거가 거의 매일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고 있기에 몬스터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전엔 몬스터 경계를 위해 몇 명씩 보초를 두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딱 한 명만 경계근무를 선다.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심심치 않게 방문하는 외부인들 때문이다.

알베제 마을이 살기 좋아진 이유는 이곳에 정기적으로 상단이 방문하게 된 때문이기도 하다.

왕명에 의해 케이상단은 거의 매달 알베제를 방문한다.

이실리프의 마법사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에 정보 획득 차원이다.

덕분에 생필품을 얻기 쉬워졌기에 살기 좋아진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상단이 매일 들어와도 돈이 없으면 구매할 수가 없다. 이전의 알베제 마을은 너무 가난하여 매일 한 끼는 굶어야 간신히 버틸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필요한 생필품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물론 케이상단으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이실리프 마탑의 비호를 받는 마을로 판정되면서 왕명으로 특별 하사금이 교부된 결과이다.

이는 마을 바깥쪽에 보존 마법이 걸린 채 존치되어 있는 어미 샤벨타이거의 사체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마법사가 아무 관련도 없는 마을에 마나석까지 써가며 마법을 걸어주겠는가!

마법사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 세상의 평판이기에 이실리프 마탑의 비호를 받는 것으로 판정한 것이다.

아무튼, 요즘엔 샤벨타이어가 비정기적으로 사냥하는 몬스터의 사체를 팔아서 돈을 마련한다.

이 모든 것이 하인스 마법사 덕이다. 그렇기에 촌장 마레바가 얼른 뛰어나온 것이다.

“엘베른은 어디 갔는가?”

“네, 오늘 상단이 들어올지 모른다고 해서 마중 나갔습니다.”

“그래? 위험하진 않고?”

엘베른은 용감한 사냥꾼이긴 하다. 하지만 숲 속의 몬스터들을 모두 감당해 낼 정도가 아니기에 물은 것이다.

이 순간 현수는 새끼 샤벨타이거에 복종 마법을 걸어 그에게 준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몇 달 사이에 커봤자 얼마나 컸겠나 싶었던 것이다.

“위험하긴요. 샤벨이가 있어서 아무도 못 덤빕니다.”

“샤벨이?”

“네, 마법사님이 복종 마법을 걸어주셨던 새끼 샤벨타이거의 이름입니다.”

“아……! 근데 벌써 사냥할 정도로 컸나?”

“그러믄입죠. 오크 정도는 우습게 사냥합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참,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가시지요.”

“그래, 그러세.”

촌장의 뒤를 따라 마을 쪽으로 접근하는데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전에는 아이들 얼굴에 버짐이 피어 있고 비쩍 말라 있어 보기에 안쓰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제법 영양이 좋아졌는지 그런 아이들은 별로 없다.

“와아아! 하인스 마법사님이시다.”

“와아아아! 환영합니다.”

이 아이들은 현수과 함께 했던 며칠을 잊지 못한다.

하긴 아르센 사람들이 피자, 콜라, 호떡, 초콜릿바, 라면, 삼겹살 등의 맛을 어찌 잊겠는가!

입에 넣기만 하면 살살 녹는 그 맛은 태어난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하! 그래, 녀석들 잘 자라고 있구나.”

“네에, 마법사님!”

현수는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들을 꺼냈다. 일일이 포장을 벗겨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마법이 있다. 만드라고라의 표피를 제거할 때 사용했던 마법이다.

“필 리무벌(Peel Removal)!”

츄라라라락―!

“역시 마법은 편리해!”

삽시간에 알몸을 드러낸 사탕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얘들아! 이것 나눠 먹고 있어. 씹어 먹지 말고 입안에서 살살 녹여서 먹어야 오래 먹을 수 있다. 알았지?”

“네에!”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녀석들은 현수에게서 받은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는 모두 눈을 크게 뜬다.

환상적으로 달콤한 맛에 환장할 지경이 된 때문이다.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짓고는 촌장의 뒤를 따라 새로 지은 건물로 갔다. 외부에서 들이닥친 귀족들을 위해 새롭게 지어진 오두막이다.

“전에 못 보던 거네.”

“네, 하도 손님들이 많이 와서 새로 지은 겁니다요.”

“그런가? 마을에 별일은 없겠지?”

“네에, 마법사님 덕분에 우리 마을은 살기 좋아졌습죠. 마법사님께서 떠나시고 난 뒤…….”

상세한 이야기를 들은 현수는 테리안 왕국의 처사가 마음에 들었다.

“흐음, 언젠가는 한번 왕성을 찾아주어야겠군.”

촌장과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아낙네들은 모여서 머리를 맞댔다. 은인인 하인스 대마법사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데 어떤 게 입맛에 맞을지 몰라 회의한 것이다.

그런데 결론이 날 리가 있겠는가!

마을의 아낙네들 역시 현수가 제공했던 음식 맛을 잊지 못해 꿈까지 꾸는 상황이다.

똑, 똑, 똑!

“누군가?”

“저어, 촌장님! 저 마리인데요.”

“오, 그래. 마리, 왜 무슨 일 있어?”

현수와의 대화 도중 찾아온 마을의 젊은 아낙 마리를 촌장은 격하게 반긴다. 작년에 얻은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님을 대접할 음식이 마땅치 않아서요. 어떤 걸 준비해야 할지 몰라…….”

현수는 단번에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차렸다.

“음식은 걱정하지 마시게.”

“네?”

주근깨 가득한 마리가 현수를 바라본다. 한국식 나이로 치면 이제 겨우 열여덟쯤 되었을 얼굴이다.

“알베제에 오랜만에 왔으니 내가 준비해 주겠네.”

“아, 네에.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흐음, 마리는 이제 물러가도 돼.”

“네, 촌장님!”

공식적인 자리라 아버님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은 것이다.

“마법사님, 저희 마을을 다시 찾은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는지요?”

“쉐리엔 채취를 당부하고 싶어서이네.”

“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잡초 쉐리엔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반문을 한다.

이곳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하루에 한 끼로 버틴 날이 많다. 그렇기에 비만이 없다. 그러므로 쉐리엔은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자꾸만 돋아나는 귀찮은 식물이다.

그런 걸 채취해 달라니 반문한 것이다.

“오다 보니 쉐리엔의 열매가 맺기 시작했더군.”

“요즘 한참 그럴 때죠.”

“열매와 줄기, 그리고 뿌리를 채취해 주게.”

“알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신지요?”

“가급적 많이……! 마을에 필요한 식량은 내가 제공하겠네. 그러니 당분간은 쉐리엔만 집중적으로 채취해 주게.”

“저어, 그 많은 걸 무엇에 쓰시려는지요?”

촌장의 이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초식을 하는 짐승들도 쉐리엔은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해서 그러네. 오늘부터 쉐리엔을 채취해 주게.”

“알겠습니다. 마법사님이 원하신다니 그렇게 하죠.”

“고맙네. 참, 전에 주었던 초록색 병들을 잘 모아두었지?”

“물론입니다. 마을 밖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져다 드릴까요?”

현수가 전에 주고 간 소주병을 혹시나 마을을 방문했던 귀족이나 마법사에게 빼앗길까 싶어 감춰두었던 것이다.

“그렇네. 모두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촌장은 욕심이 났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법사를 상대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인스는 마을의 은인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병에 대한 욕심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도 않았다.

“이건 고구마와 감자라는 식물이네. 이걸 심으면 제법 수확이 괜찮을 것이네. 그리고 이건 옥수수와 콩이네. 이것도 밭에 심게. 마을의 식량난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이네.”

현수는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옥수수와 콩에 대한 재배방법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알베제 마을이 다른 건 몰라도 식량만이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이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촌장은 밖으로 나가 마을 사람들을 소집시켰다. 현수가 왔다는 소문이 번진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금방 모여들었다.

곧 쉐리엔 채취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느 누구도 투덜대지 않는다.

하인스 대마법사가 필요하다 하니 찍소리 않은 것이다.

현수는 아낙네들만 따로 모이도록 하곤 먼저 화덕부터 만들었다. 그리곤 각종 식재료를 꺼냈다.

마을 밖으로 일을 하러 나간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도록 했다. 손으로 집어먹기 편한 샤우르마를 만들었다.

아낙네들에게 먹여보니 아주 맛이 있다며 환히 웃는다.

현수가 자세한 조리법을 알려주니 알아서들 잘 만든다. 이때부터 현수가 한 일은 식재료를 꺼내주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먹였다. 그리곤 그 아이들로 하여금 어른들에게 샤우르마를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시켰다. 몬스터가 없기에 이젠 마음껏 마을 밖으로 나다녀도 되는 모양이다.

마을 어귀에 마련된 공터에 전처럼 원터치 텐트를 쳤다.

안에 들어가 공간 확장 마법을 걸고는 아공간의 서책들을 꺼내 읽었다. 지금껏 검술과 마법에 관한 책을 주로 읽었다면 이번엔 아르센의 풍습과 역사에 관한 것들이다.

읽는 동안 수시로 밖에 나가 부족해진 식재료를 꺼내주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전에 만들어놓은 소금 창고로 가보았다.

아직 많은 양이 남아 있다. 여기에 추가로 소금을 더 꺼내놓았다. 곁에 있던 오두막들은 모두 비어 있다.

마을을 찾아온 귀족과 마법사들을 위해 새로 지은 오두막으로 이사한 모양이다.

워싱과 클린 마법으로 청소를 한 후 밀가루와 각종 곡물, 그리고 감자, 양파, 당근 등을 꺼내놓았다.

곁의 오두막에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와 고등어, 꽁치 등의 생선들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모든 창고는 보존 마법을 인챈트하여 식재료가 상하지 않도록 했다.

아무튼, 현수가 꺼내놓은 것은 알베제 마을 150명 인구가 적어도 일 년은 풍족하게 먹을 분량이다. 이것은 쉐리엔을 채취해 주는 대가이다.

일련의 행위를 마친 후 밖으로 나가보니 아낙네들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음식 만들기에 열중하는 중이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는지라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하인스 대마법사님!”

“아! 엘베른. 그간 잘 있었는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엘베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어려 있다. 그리고 그의 바로 곁을 따르는 거대한 놈이 있다.

새끼였던 샤벨타이어가 어느새 송아지만 하게 자란 것이다. 녀석은 다가오자마자 넙죽 엎드리더니 현수의 신발을 핥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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