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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38화 (338/1,307)

# 338

“어휴! 많이도 컸네.”

할짝, 할짝, 할짝!

몇 번 핥더니 발랑 몸을 뒤집는다. 명백한 복종의 표시이다. 현수는 녀석의 배를 문질러 주었다. 벌써 다 컸는지 누린내가 난다.

“이 녀석 목욕은 안 시키나?”

“목욕이요……?”

이곳은 물이 귀해 사람도 제대로 씻기 힘든데 덩치가 송아지만 한 샤벨타이거의 목욕 운운하니 엘베른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냄새가 좀 나는군. 너, 이리 좀 와.”

현수의 명에 따라 샤벨이가 어슬렁거리며 움직인다.

“워싱!”

갑자기 물기가 느껴지자 깜짝 놀란 듯하다. 하지만 현수가 앞에 있어 그런지 어디로 몸을 피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워싱! 워싱!”

덩치가 커서 세 번의 워싱 마법을 쓰고야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욕심 같아선 페브리즈라도 뿌려주고 싶지만 안 되겠지?”

“네? 페, 뭐요?”

“아냐,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그간 잘 지냈나?”

“아이고, 그럼요! 이 녀석이 있어 우리 마을은 참 살기 좋아졌습니다.”

길들여진 샤벨타이거를 본 마법사들은 대경실색했다. 자신들의 복종 마법으론 기껏해야 생쥐나 가능하다.

그런데 맹수 중의 맹수를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만들어놓았기에 놀라면서도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역시 이실리프 마법사는 확실히 대단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현수로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성과이다.

당시 이곳 알베제 마을을 방문한 고위 귀족과 마법사들은 현수의 생김새를 아주 상세히 물었다.

다행이라면 따라온 화공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여 마법사 가운데 그림에 소질이 있다던 이가 현수의 몽타주를 그렸다.

그 그림은 현수와 전혀 닮지 않았다.

지구로 치면 이곳 아르센 대륙은 서양인들만 사는 땅이다. 여기에 전형적인 동양인인 현수가 방문한 것이다.

알베제 마을 사람들은 정말 충실히 증언했다. 하지만 그려진 현수의 모습은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그림을 그린 마법사는 자신의 그림 실력 때문에 조롱받는 걸 원치 않았다. 하여 완성된 몽타주를 알베제 마을 사람들에게 최종 확인받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수가 제법 오래 테세린에 머물렀지만 아무도 의심하거나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다행이네. 저쪽에 만들어놓은 어미는 어때?”

“그 녀석이 있는 쪽도 몬스터들은 감히 접근조차 못 합니다. 너무 생생해서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요.”

“다행이군.”

“네, 마법사님 덕분입니다.”

“저녁은 먹었나?”

“아뇨, 이제 막 도착하여……. 근데 또 음식을 만들도록 하셨습니까? 냄새가 아주 죽여줍니다.”

“그래, 가서 일단 배를 채우게.”

“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상단이 와서 마중 나갔던 것 아닌가?”

“네, 그랬습죠. 근데 제가 날짜 계산을 잘못한 겁니다. 며칠 더 있어야 올 겁니다.”

“그런가? 아무튼 뭣 좀 먹게.”

“네, 그럼 염치불구하고 배부터 채우겠습니다.”

엘베른이 아낙네들이 있는 곳으로 갔지만 샤벨이는 현수의 곁에 발랑 누운 채 네 발을 들고 있었다.

놀아달라는 뜻이기에 녀석의 뜻대로 배를 긁어주었다. 목욕을 해서 그런지 확실히 냄새는 덜 난다.

“흐으음! 이런 녀석이 하나쯤 더 있어도 괜찮겠군.”

생각이 미치자 즉각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에 올랐다. 그리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사방을 살폈다.

8써클에 오른 후 반경 1㎞까지 탐지거리가 늘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군.”

몬스터의 몬 자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긴 샤벨이는 마을을 중심으로 반경 10㎞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그러니 샤벨타이거를 무서워하지 않는 몬스터를 제외하곤 어떤 녀석도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내친 김에 비행 마법으로 숲 속 깊숙한 곳까지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의 샤벨타이거는 없었다.

“쩝, 하나 더 있으면 괜찮을 텐데.”

현수는 길들여진 샤벨타이거를 말 대신 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숲을 지날 때 아주 편할 것이다.

모기떼처럼 귀찮게 구는 고블린이나 코볼트 등이 감히 접근조차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지날 때이다. 아마 보는 사람마다 기절초풍할 것이다.

“쩌업, 안 되겠군.”

현수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텐트로 들어가 다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해가 떨어지고 난 뒤였다.

“어라! 너희들은 왜 집에 안 갔어? 밖이 이렇게 캄캄한데.”

텐트 밖에는 눈빛 초롱초롱한 개구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다.

“마법사 아저씨!”

“왜?”

“마법 구경시켜 주시면 안 돼요?”

“헐! 이 녀석들이 날 서커스의 광대쯤으로 여기나? 떼끼, 이 녀석들아! 마법은 너희 구경하라고 있는 게 아냐. 라이트!”

말을 끝내며 마법을 구현시키자 하얀 광구가 허공에 둥실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사라진다.

“우와! 마법이다. 마법 등이 켜졌어.”

현수는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싱끗 웃었다. 그러다 뭔가가 눈에 뜨인다.

“에구, 이 드런 녀석들! 가만히 있어봐. 워싱! 워싱! 워싱!”

마법이 구현될 때마다 한 녀석씩 말끔해진다.

“우와! 나, 이것 좀 봐. 옷이 깨끗해졌어.”

“나도, 나도! 히히, 손톱에 끼었던 때까지 없어졌어.”

“아이고, 시원해. 형아들, 근지러운 게 없어졌어.”

한마디씩 하는 녀석들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 있었다.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피곤할 텐데도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알았다. 이 녀석들아!”

현수는 아공간에서 초콜릿바를 꺼내 하나씩 나눠줬다. 물론 껍질은 벗겨서 줬다.

“와아아! 마법사님 최고다!”

“고맙습니다. 마법사님!”

“잘 먹을게요. 근데 하나 더 주시면 안 돼요?”

현수는 아예 수북하게 꺼내 주었다. 한 녀석당 세 개씩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 놓곤 마을 밖으로 나갔다. 마침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는 중이다.

“아! 마법사님.”

“많이 채취했나 보네.”

“네, 워낙 지천으로 널려 있는 거라서요.”

인력으로 끄는 수레마다 쉐리엔이 가득하다.

열매와 줄기, 그리고 뿌리를 분류해 달래려다 말았다. 이들에게 작두 같은 게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흐음, 장비를 좀 갖춰줘야겠구나.”

현수는 리어카와 작두, 마대자루 등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런 건 아공간에 없으니 한 번은 지구를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다.

“할 수 없지.”

“마법사님 이거 그냥 놔두면 금방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질 겁니다. 어떻게 하죠?”

“마을을 돌아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오두막이 꽤 있던데 그걸 창고로 써도 되겠나?”

“아이고, 그러믄입죠. 요즘은 찾는 사람도 없는 걸요.”

“알겠네. 그럼 빈집부터 보러 가야겠군.”

“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촌장의 안내를 받아 빈 오두막들을 일순했다. 가는 곳마다 워싱과 클린 마법으로 말씀하게 청소를 했다.

아울러 보존 마법을 인챈트시켰다.

“일단 가져온 건 창고에 쌓아두게.”

“그냥요? 열매와 줄기, 그리고 뿌리를 따로따로 나눠놔야 하지 않습니까?”

“원래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일단 넣어두게. 내가 도구를 마련해 주겠네.”

“네……? 도구를 주신다굽쇼?”

“그래, 근데 이것들 어떻게 채취했나?”

“그야 손으로 땅을 파서……. 그 방법 밖에 없잖습니까?”

“흐음, 알겠네. 일단 넣어두고 오늘은 쉬게.”

“네, 알겠습니다요.”

창고에 넣어놓고 보니 하루 만의 수확량치고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얼마나 더 채취할 수 있겠나?”

“더 필요하신 겁니까?”

“그렇네. 아주 많이 필요하네.”

“그렇다면 우리 마을이 가득 차도록 캐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나?”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눈길이 미치는 곳엔 어디든 쉐리엔이 널려 있습죠. 마법사님이 더 원하신다니 내일 더 캐어오겠습니다.”

촌장은 모든 일을 제쳐 두고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표정이다.

“그러게. 그리고 날 좀 따라오게.”

“네, 알겠습니다요.”

왜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따라오는 촌장을 보며 현수는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렇게 많다면 굳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재배할 필요가 없지. 이 마을에 필요한 것을 주는 대신 채취해 달라고 하면 서로에게 득이 되겠군.”

“네? 뭐라 하셨습니까?”

현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는데 생전 들어보지 못한 언어인지라 묻는 것이다.

“이 마을과 내가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었네.”

“상생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인은 무식해서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요.”

“상생이란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뜻이네.”

“아! 네에.”

촌장은 캐묻지 않았다.

“여길세! 문을 열어보게.”

삐이꺽―!

“헉, 이건……!”

밀가루와 각종 곡물 포대들이 차곡차곡 쌓여 천장에 닿아 있는 모습을 본 촌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옆의 오두막으로 가세.”

“네, 네에.”

“또 열어보게.”

“네!”

촌장은 큼지막한 박을 타려는 흥부의 마음이 되어 문을 잡아당겼다.

7장 리어카 얼마 합니까?

삐이꺽!

“……!”

안에는 양파, 당근, 오이, 감자, 고구마, 옥수수, 양배추, 시금치, 우엉, 배추, 무, 양상추, 브로콜리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촌장의 눈은 당연히 화등잔만 해진다.

“이제 다음 오두막일세.”

“고맙습니다요, 마법사님!”

“일단 열어보게.”

“네.”

이번엔 뭘까 하는 마음으로 오두막의 문을 잡아당겼던 촌장은 입을 딱 벌렸다.

S자형 갈고리에 걸린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뿐만 아니다. 바닥엔 잘 손질된 닭고기들 또한 수북하다. 옆을 보니 거기엔 각종 생선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이 오두막은 다른 것과 달리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무식해도 마법이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사들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편협한 성격을 가져 오만불손할 뿐만 아니라 거들먹거리길 좋아하고 남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족속이다.

이는 이 마을을 찾았던 마법사들이 입증해 주었다.

기껏 마을을 방문해선 잠잘 곳이 없다면서 주민을 집 밖으로 내쫓고 자기들이 안에서 잤다.

아침엔 음식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주민은 쫄쫄이 굶어야 했다.

며칠씩 머무는 바람에 비축해 놓은 곡식과 식재료들이 모두 동났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그에 대한 보상은커녕 신경도 쓰지 않고 가버렸다.

그런데 이실리프 마법사인 하인스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흐흑! 마법사님!”

“울기는 왜 우나? 자네들에게 쉐리엔 채취를 의뢰한 것에 대한 대가인데.”

“아닙니다. 마법사님께서 원하시면 쉐리엔쯤이야 얼마든지 캐다 드려야죠.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시니……. 흐흑!”

늙은 촌장의 눈에서 또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에구, 그만 울게. 늙어서 주책이네.”

“흐흑! 네에. 압니다. 하지만 너무 고마워서. 고맙습니다요. 마법사님! 정말 고맙습니다요.”

“당분간은 쉐리엔 채취에 온 힘을 기울여 주게. 내일 자네들이 보다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구들을 마련해 주겠네.”

“네에. 알겠습니다요. 한데 도구라니요?”

“보면 알 것이네. 일단 오늘 밤엔 술이나 한잔하세.”

“술이요?”

촌장은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눈빛을 반짝인다. 아이들이 초콜릿바에 환장할 때의 그 눈빛이다.

“전에 먹었던 고기를 기억하는가?”

“아이고, 그러믄입죠. 입에 넣기만 하면 살살 녹는 그 맛을 어찌 잊겠습니까요?”

“오늘 그거 한 번 더 먹세. 아낙네들을 불러 모아주시게.”

“네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촌장은 쏜살처럼 사라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꿈에서라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던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니던가! 그러니 절로 마음이 급해져 뛰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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