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39화 (339/1,307)

# 339

현수는 마을 공터에 탁자 비슷한 것을 펼쳤다. 마트에서 물건을 팔던 매대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곤 가스버너와 불판, 삼겹살과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 상추, 깻잎, 마늘 등을 꺼내 놓았다. 물론 소주도 있다.

잠시 후 마을 사람 전부가 우르르 몰려온다.

“아이고, 천천히 오게. 먼지 나면 음식 못 먹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현저히 느려진다. 표정을 보니 꾸지람 들은 초딩들 같다.

현수는 너무도 순박하다는 생각에 피식 실소를 지었다.

꿈에 그리던 삼겹살 파티가 시작되었다.

현수가 가장 먼저 쌈을 싸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엔 마늘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적응한 듯한 모습이다.

물론 아이들은 어른 몰래 마늘을 슬쩍 빼돌렸다.

밤이 깊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현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하여 많은 정보를 획득했다.

마을 사람 전체가 배를 채웠을 즈음 촌장이 일어나 내일부터는 쉐리엔 채취를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걸 왜 또 채취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촌장은 하인스 마법사님이 필요하셔서 그런다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창고마다 식재료가 그득하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표정이다.

모두들 잠이 든 깊은 밤, 현수는 결계를 치고 들어가 마나를 모았다. 지구로 귀환하려는데 전능의 팔찌에 박힌 마나석에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에 가긴 또 처음이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 * *

“역시 텁텁해.”

갑작스레 호흡하는 공기가 바뀌자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리어카 파는 데부터 가야지. 근데 어디서 팔지?”

노트북을 꺼내 리어카의 대략적인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어디서 파는지도 파악한 후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중구 황학동으로 가주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택시가 달린다. 가는 동안 구매해야 할 물건과 수량들을 체크해 보았다.

‘흐음, 한 30가구쯤 되니까 한 가구당 리어카가 하나씩은 배당되어야겠지? 타이어를 갈 수 없으니 바퀴 여분도 좀 있어야 하고, 교체에 필요한 공구도 구비되어야 해. 작두도 사야 하고, 괭이와 호미도 필요하지. 그리고…….’

현수는 노트북을 꺼내 필요한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동안 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다음이 현수가 구매하려는 것들이다.

손수레 40대, 예비 바퀴 80개, 에어펌프 5개, 타이어 교체에 필요한 공구 3세트, 괭이 200개, 호미 200개, 쇠스랑 200개, 쟁기 10개, 갈퀴 100개, 가래 200개, 멍석 50장, 맷돌 40조, 체 100개, 지게 200개, 삼태기 200개, 도롱이 200개…….

쉐리엔 채취에 필요한 물품뿐만 아니라 고구마, 감자 등을 캘 때 쓰는 농기구 등도 한꺼번에 마련하려니 목록이 제법 길어진 것이다.

“다 왔습니다. 손님!”

“아, 네에, 얼마죠?”

요금을 치르고 내렸다. 현수는 황학동 만물시장을 지나치던 중 눈에 익은 물건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물을 뿜어 올리던 수동 물 펌프가 그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하여 펌프에 맞는 배관을 넉넉하게 구매했다. 물이 귀한 알베제 마을에 펌프를 설치해 줄 생각을 한 것이다.

현재는 150명 정도지만 샤벨타이거가 마을을 보호하고, 왕명으로 귀족들의 행패가 차단된 상태이므로 인구는 점차 늘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가게에 있던 재고를 모두 구매했다.

당연히 상인의 입이 쫙 찢어진다. 하긴 요즘 누가 수동 물 펌프를 대량 구매하겠는가!

상인은 서비스로 설치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공짜로 주었다. 하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애물단지 펌프 20대를 처분했으니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부품들일 것이다.

현수는 우물 파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어찌 만드는 것인지 그 방법을 물어보았다.

가게 주인은 땅을 판 뒤 콘크리트로 만든 우물틀. 그리고 토관 또는 흄관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이밖에 항타기를 이용하여 관을 두들겨 박은 뒤 양수관을 이용하는 법이 있다고 한다.

현지 사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항타기를 가져가긴 힘들 것이다. 하여 주인에게 부탁하여 콘크리트로 만든 우물틀 등을 넉넉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나중에 더 사러 올 것이니 수동식 물 펌프를 더 구해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무조건 OK이다.

현수는 이 가게에 있던 멍석과 맷돌 등을 추가로 구매했다.

마침 곁에는 각종 농기구를 파는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는 필요로 하던 농기구 거의 대부분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가게 주인 역시 희색이 만면하다. 정말 오랜만에 대박을 터뜨린 것 같은 기분이 된 때문이다. 하여 자신의 가게에 없는 물건들을 본인이 알아서 구해준다고 하였다.

이들 두 가게에서 구매한 물건들은 모두 이실리프 무역상사 지하로 배달토록 했다.

다음에 현수가 방문한 곳은 손수레를 파는 곳이다. 손님이 없는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어서 옵쇼! 뭐 필요하십니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이 그래도 손님이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손수레 좀 사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필요한 거 골라보십쇼.”

나이가 훨씬 어린 것을 알 텐데도 반말은 아니다. 훑어보니 손수레를 팔기는 하는데 뼈대만 있다.

“보통 손수레는 바닥과 양쪽 옆 등에 합판이 대어져 있던데 그건 따로 주문해야 하는 겁니까?”

“네에. 하지만 해달라면 해드리죠. 다만 비용이…….”

“얼맙니까?”

“손수레 가격만 25만 원입니다. 11.5㎜짜리 합판으로 덧대는 건 공임 포함해서 5만 원만 더 주십쇼.”

눈치를 보니 현수의 겉모습만 보고 평상시보다 조금 값을 높게 부른 듯하다.

현수는 흥정할 생각이 없다.

이곳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결과 합판을 덧댄 리어카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오면서 느낀 점은 황학동 시장이 명성만큼 북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사가 시원치 않다는 뜻이다.

본인은 지금도 많은 돈이 벌리는 중이다. 그렇기에 값을 후려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바퀴도 추가로 구매할 수 있죠?”

“그럼요. 바퀴 하나당 4만 원입니다.”

“주문하면 금방 되나요?”

“네에. 오래 안 기다려도 될 겁니다.”

구경만 하고 가려는 게 아니라 물건을 사려고 한다고 느꼈는지 웃음까지 짓고 있다.

“좋습니다. 값을 깎지 않고 사지요. 대신 빨리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금방 만들어 드리죠. 어이, 손 씨!”

가게 주인이 건너편에서 일하던 사내에게 소리치자 고개를 들어 왜 불렀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리어카 하나 새로 손 좀 봐.”

“아! 네에.”

한두 번 거래한 것이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가온다. 이때 현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필요한 건 하나가 아닙니다.”

“네? 그럼 몇 대나……?”

“손수레는 40대, 예비용 바퀴는 80개, 그리고 에어펌프 5개와 바퀴 교체에 사용되는 공구 3세트입니다.”

“네……? 그 많은 걸 다 어디에……? 리어카 장사하시려구요?”

“아닙니다. 필요해서 사는 겁니다. 금방 되죠?”

“리어카 40대를……? 잠깐만요. 아주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게 주인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이때 현수의 뇌리가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흐음, 그러고 보니 리어카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많이 필요할 텐데. 그때 가서 사러 오면 물건이 없겠지? 그럼 미리 주문 좀 해놓을까?’

이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도로가 없는 좁은 곳에서 작업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맞아! 외발 손수레도 많이 필요할 거야. 근데 몇 대나 주문하지? 얼마나 필요할까?”

현수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게 주인이 헐레벌떡 튀어나온다. 모처럼 만난 대박 손님이 혹시 가버렸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아이고 손님! 미안합니다. 40대 작업 모두 하는 데 4시간만 주십시오. 작업 마치면 어디로 가져다 드릴까요?”

“여기 이 명함에 적힌 건물 지하로 배달해 주십시오.”

현수가 명함을 건네자 소중한 물건을 받는다는 듯 두 손으로 받아든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인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때 현수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네, 손님!”

“외발 손수레도 있죠?”

“아! 일륜차요? 그럼요. 플라스틱 적재함을 올린 건 6만 원이면 됩니다.”

“그럼, 그거 주문 제작됩니까?”

이 대목에서 주인은 어쩌면 괜찮은 거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고, 그러믄입죠.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글쎄요.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각각 10,000대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네에……? 어, 어, 얼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주인의 눈이 커진다. 이때 번개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 모양이다.

“저어, 혹시 천지건설의……. 맞죠? 그분 맞는 거죠?”

“네, 그 김현수 맞습니다.”

“아이고, 이거 영광입니다.”

가게 주인이 손을 불쑥 내민다. 악수하자는 뜻이다. 현수가 손을 쥐고 가볍게 흔들자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듯하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무슨 말씀을……! 절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제야 얼굴을 붉힌다.

“저어, 그런데 리어카와 일륜차를 정말 10,000대씩이나 주문하실 겁니까?”

“외발 손수레를 일륜차라 부르는군요.”

“네, 바퀴가 하나라…….”

주인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현수가 말을 이은 때문이다.

“최하 그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사용할 곳이 덥고 습한 지역이라 녹이 잘 슬 터이니 칠을 잘해서 제작해 주십시오.”

“……!”

가게 주인은 넋이 나간 모양이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이 정도 물량을 주문의뢰 하면 합판까지 덧댄 리어카는 16만 원, 일륜차는 플라스틱 적재함으로 4만 원이면 충분하다.

제작비가 아니라 납품을 받는 가격이다.

이것들을 각기 10,000대씩을 판다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진짜로 한 푼도 안 깎는다면 16억쯤 생긴다.

그렇기에 입이 딱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곳은 리어카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이 만들 걸 가져다 파는 곳이다.

만일 현수가 제조업체로 직접 간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솟는다.

“저어, 손님!”

“네, 말씀하십시오.”

“사실은 제가 조금 전에 값을 좀 많이 불렀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리어카는…….”

“말씀 더 안 하셔도 압니다. 하지만 시중에서도 그 정도는 받더군요. 값은 깎지 않을 겁니다.”

“네?”

주인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한 표정이다. 이런 손님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현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기분 좋은 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러믄입죠.”

“아까 그 가격에 팔면 얼마나 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장사하신 것 같은데 그만큼 남는 장사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주인은 여전히 멍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계약금이 있어야 발주를 하실 테니 일단 10%를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다 만들어지면 명함의 그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