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
“……!”
“납품이 완료되는 날 잔금을 전부 치르겠습니다.”
“……!”
대꾸가 없다. 혼이 반쯤 나간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오늘 구매한 건 리어카 대당 30만 원씩 40대니까 1,200만 원이네요. 바퀴는 하나당 4만 원씩 80개면 320만 원이구요. 에어펌프 5대는 가격이 얼마죠? 그리고 교체공구 3세트는요?”
“그, 그건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감사하죠. 자아, 그럼 물품대금 총액이 1,520만 원이군요. 계좌번호 주십시오.”
“네?”
“현금이 없으니 송금해 드리려구요.”
“아! 네에. 잠깐만요.”
주인은 얼른 들어가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명함을 들고 온다.
“여기, 이게 제 계좌번호입니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현수는 이실리프 상사로 전화를 걸었다.
“아! 민 실장.”
“그래. 왜?”
“내가 불러주는 계좌번호로 송금 좀 해. 아니다. 내가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할게.”
현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연결을 시도했다.
“이 실장님.”
“네, 사장님!”
“지금 불러주는 계좌로 돈 좀 보내주세요. 액수는 3억 6천만 원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수출할 손수레와 일륜차 구입 대금 중 계약금 명목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따로 1,520만 원을 송금해 주세요. 이건 내 개인 통장의 돈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계좌번호는…….”
전화 통화하는 동안 주인은 주머니 속에 넣은 자신의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물론 많이 아팠다.
“저어, 김현수 전무님!”
역시 국민 전무라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이거 꿈은 아닌 거죠?”
“하하, 물론입니다.”
너무도 뜬금없는 물음이었기에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참, 여분의 바퀴와 타이어, 그리고 에어펌프와 교체용 공구가 더 있어야 합니다.”
“그건 얼마나…….”
“흐음, 리어카가 10,000대니까. 바퀴는 5,000개, 그리고 타이어도 5,000개는 있어야겠죠? 그리고 에어펌프는 300개가 필요하고 교체에 필요한 공구도 300세트는 필요할 겁니다.”
“이건 금방 구입하실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리어카가 다 제작되면 그때 제가 알아서 준비해 놓겠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되죠?”
“정말 바퀴 하나당 4만 원씩 주실랍니까?”
“물론입니다. 그거 값이 2억이군요. 타이어는 얼마죠?”
“타이어와 튜브 세트로 해서 1만 5천 원 주십시오.”
주인이 부른 타이어와 튜브 가격은 단골손님에게 받던 가격이다. 물론 현수는 모른다.
“좋습니다. 에어펌프와 공구 가격은 얼맙니까?”
“그건 제가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고, 고맙기는요. 오히려 제가 너무 고맙죠. 감사합니다. 김현수 전무님! 제 생애 최고의 거래를 하게 해주셔서.”
“그런가요? 그렇다면 축하드립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40대 후반인 주인이 허리를 직각으로 꺾는다. 나이를 떠나 정말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수가 이토록 큰 선심을 베푼 것엔 이유가 있다.
주인은 40대 후반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한 인상이다. 그런데 처음 보았을 때 가장의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린 듯 몹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40대 후반이라면 자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시기이다. 이제부터 돈이 많이 들어가는 때이다.
그런데 리어카는 내구연한이 꽤 되는 상품이다.
다시 말해 한번 물건을 사간 사람이 재구매하기 위해 오는 시기가 아무리 짧아도 몇 년 후이다.
어쩌면 10년, 20년에 한 번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리어카는 고가품이 아니다. 그러니 몇 대 판다 해도 떼돈 벌리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물건도 아니다.
그렇다 하여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만한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가장들 대부분이 이럴 것이다.
그래서 매주 복권을 살 것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낙첨된 복권을 확인하곤 씁쓸한 기분이 되어 술 한잔할 것이다.
혹시나 해서 샀지만 역시나 낙첨이라는 그 기분을 거의 모든 서민 가장들이 알 것이다.
현수도 한때는 복권을 샀다. 천지건설 신입사원일 때 그랬다. 그때만 해도 가정 형편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기분을 안다.
그래서 복권은 아니지만 이 가게 주인에게 당첨의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가격 흥정도 하지 않고 계약금을 지불한 것이다.
현수의 이런 의도는 그대로 적중했다. 가게 주인은 지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거처를 제공해 주기 위해 몇 년 전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물론 무리해서 산 것이다.
살고 있던 낡은 연립주택을 팔았지만 사려던 아파트 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상당히 많은 금액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허리가 휠 정도이다.
아파트를 팔아치우고 싶지만 집값이 나날이 떨어지는 상황인지라 내놔도 보러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설사 팔린다 해도 문제이다. 은행 빚을 갚고 나면 이전에 살던 연립주택의 전세를 얻을 돈도 못된다.
여기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등록금은 밀린 상태이고, 카드 대금은 매달 돌려막기 하는 중이다.
물론 그 액수는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집에 들어가면 바닥이 꺼지도록 한숨 쉬는 마누라가 바가지를 박박 긁는다. 그 마음을 알기에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갈 묘수는 없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로또 당첨이다. 그것의 당첨 확률이 무려 814만분의 1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매주 한 장씩 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오늘 사지도 않은 복권이 당첨되었다.
납품만 되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정도는 단숨에 갚을 수 있다. 밀린 등록금도 모두 낼 수 있고, 카드빚도 해결된다.
마누라 옷도 사줄 수 있고, 모처럼 외식을 나갈 수도 있다.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승용차를 구입할 수도 있다.
이런 일련의 생각이 가게 주인으로 하여금 90。로 허리를 꺾게 만든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요. 아무튼 좋은 물건을 납품해 주십시오.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아셨죠?”
“아이고,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게 주인은 실제로 이 약속을 지킨다. 하여 최상의 품질을 가진 리어카와 일륜차들을 납품한다. 값싸고 품질 개판인 지나산 부품이 아닌 100% 국산 자재와 부품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자신에게 온 행운을 독점하지 않는다. 합판을 덧대는 작업 단가는 평상시보다 훨씬 후하게 책정해 줬다.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리어카와 바퀴를 납품받을 때도 짜게 굴지 않았다. 이번 거래에 관련된 사람들이 골고루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래도 많이 남았다.
황학동을 떠난 현수는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가진 않았다.
민주영과 이은정, 그리고 박진영 과장에겐 전화를 걸어 당분간 출근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기자들 등살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룡이라는 자의 지시에 따라 주한지나대사관 소속 무관 장근평 등이 납치를 시도한 바 있다.
당사자들은 현재 지나의 어느 깊은 산골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명령에 따라 다시는 세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현수는 멀쩡히 돌아다니는데 그들만 사라진다면 분명 사단이 벌어질 것이다.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이실리프 무역상사나 이실리프 상사 사람들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흑룡이 누군지 파악될 때까지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행선지를 대지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어카가 올 때까지 할 일이 없기에 인근 마트를 방문했다.
아공간에는 백두마트 서초점, 송파점, 평촌점의 모든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무엇이 있는지는 대강만 아는 상태일 뿐 정확히 무엇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마트에서 팔고 있는 상품의 종류를 파악했다.
그러고 보니 진짜 별의별 것들이 다 있다.
온갖 식품, 의류, 가구, 가전제품, 그리고 스포츠용품과 생활용품, 의약품, 서적 등이 망라되어 있다.
세 시간 남짓 돌아다니며 물품들을 확인하고는 이실리프 무역상사 지하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리어카 40대와 바퀴 80개, 그리고 에어펌프 5개와 바퀴 교체 시 사용할 공구 3세트가 얌전히 놓여 있다. 이밖에도 주문했던 농기구들도 있었다.
모두 아공간에 넣고는 곧장 계룡산으로 텔레포트했다. 그곳의 마나 농도가 서울보다 훨씬 진하기 때문이다.
“흐음, 훨씬 낫군.”
단골 자리를 찾은 현수는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무술인들이 모여서 막걸리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으음, 여긴 안 되겠군.”
산을 조금 더 올라가 보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인다. 하여 한참을 헤매고야 인적 없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덕항산이 차라리 낫겠구나. 앞으론 거길 이용해야지.”
나직이 투덜거리고는 결계를 쳤다. 그리곤 마나를 모았다.
“마나여, 나를 아르센 대륙으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8장 이게 우물이라고요?
“휴우∼! 제대로 도착했군.”
눈에 익은 모습에 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 이곳으로 차원이동하면서 좌표를 착각했다고 느꼈다. 만일 이곳이 아닌 라이세뮤리안이 있던 곳으로 갔다면 큰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 알베제 마을에 당도한 현수는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하긴 낮에는 쉐리엔 채취에 온 힘을 기울였고, 저녁엔 배가 터지도록 삼겹살과 소주를 마셨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희미하지만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이들은 오늘 하루가 힘들었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맛있는 저녁도 먹었고, 창고엔 온갖 식재료들이 그득하다. 갑자기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 듯할 것이다.
마을 어귀에 리어카 40대를 가지런히 꺼내 놓았다. 그 곁에 농기구들도 모두 꺼냈다. 그러고 보니 상당히 많은 양이다.
할 일도 없기에 가구 수를 세어보았다. 정확히 32가구이다.
한 집에 대략 5명씩 사나 보다. 그런데 그러기엔 오두막의 크기가 작다. 아무리 인심 써서 크게 봐줘도 10평 남짓한 공간에 다섯 식구씩 사는 것이다.
“쩝! 세상 어디나 가난한 사람은 있군. 가난이 죄야, 죄! 그놈의 돈이 뭔지……. 제기랄!”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 현수일 것이다. 아공간에 산더미처럼 쌓인 수천 톤의 황금이 있지 않은가!
이밖에도 세정파 금고에서 꺼내온 것과 야쿠자들로부터 빼앗은 현금, 그리고 왕가 약포 등에서 가져온 것들을 합치면 엄청난 액수이다.
지금 세상 최고의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현수는 천천히 걸어 마을 전체를 살폈다. 진짜 별 볼일 없다. 이런 데서 어찌 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가져온 리어카와 각종 농기구가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