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
“아! 참…….”
현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그리곤 아공간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이그드라실의 잎을 꺼냈다.
그것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것을 준 레이찰 토틀레아가 말하길 샘이 솟을 곳에 당도하면 잎사귀가 아래쪽으로 휘어진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잎사귀가 아래로 휘어지는 곳들이 있다. 다행히 마을을 통과하는 수맥이 있는 모양이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땅이 푹푹 파여 나간다. 땅이 파여 나갈 때마다 우물틀들을 차례로 내려놓았다.
불투수층이라 할 수 있는 암반층이 나왔다. 이건 워터드릴 마법으로 구멍을 뚫었다.
어두운 밤이지만 소리는 멀리까지 번지지 않았다.
깊게 파인 구덩이 속에서의 소리였기 때문이고, 암반의 강도가 그리 강한 것이 아닌지 잘 뚫렸기 때문이다.
구멍이 뚫리니 물이 솟구쳐 오른다.
흙탕물이었지만 시원하다. 환경오염이 없는 곳이니 수질검사는 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수는 바닥에 숯을 깔았다. 불순물 제거, 세균 번식 억제, 음이온 발생, 악취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숯 위에는 굵은 자갈들을 깔았다. 물을 뿜어 올릴 때 숯이 딸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련의 작업이 마쳐지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우물 뚜껑을 덮었다. 그리곤 가운데에 파이프를 박아 넣었다.
되메우기를 한 뒤 최종적으로 수동 물펌프 설치를 마쳤다. 가게 주인이 워낙 꼼꼼하게 부품 등을 챙겨줘서 부족한 것들은 없었다.
마중물6)을 넣고 펌프질을 해보았다. 첫 작업이건만 다행히도 물이 잘 나온다.
자신감이 붙은 현수는 이그드라실의 잎을 가지고 다니면서 잎사귀가 휘어지는 곳마다 표시를 했다. 그 결과 수맥이 어떻게 마을 아래를 흐르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물은 집 가까이 있어야 편한 법이다.
가급적이면 이용하기에 편리한 위치를 골라 수동식 물펌프들을 설치했다. 경험이 생겨서인지 어렵지 않게 작업을 했다.
그렇게 4군데를 마쳤을 때 날이 밝았다.
“하아암! 아니, 마법사님!”
가장 먼저 오두막 밖으로 나온 사람은 촌장이다.
소변을 보러 목책까지 가던 중 땅을 파고 있는 현수를 발견하곤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잘 잤는가?”
“네, 그런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냐고? 자네들을 위해 우물을 파네.”
“네? 이게 우물이라고요? 뭔 우물이 이렇게 작답니까?”
아르센 대륙의 우물은 직경이 5m 정도 된다. 곧고 깊게 파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현수가 파낸 땅은 지름이 1m 정도밖에 안 되기에 물은 것이다.
“아이들이 빠질까 싶어서 작게 만드네.”
“아! 네에.”
아이들이 우물 근처에서 놀다가 빠져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그의 눈에 못 보던 것이 뜨인다.
“어라, 마법사님! 저건 뭡니까?”
“아……! 저거? 저건 물펌프라는 것이네.”
“네? 물펌… 뭐라고요? 저건 뭐하는 겁니까요?”
처음 듣는 말이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잠깐만 기다리게. 이거 다 끝나면 어떤 것인지 알려주겠네.”
“네에.”
촌장은 현수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볼트와 너트, 와셔, 스패너, 고무패킹 같은 것들이 등장했지만 묻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쓰는 신기한 물건 정도로 여긴 것이다. 나머지 작업은 순조로웠기에 불과 30분 만에 설치가 마쳐졌다.
“자아, 이번 것도 제대로 되는지 시험해 볼까? 제일 먼저 여기에 이렇게 물을 한 바가지 넣게. 그런 다음에 이렇게……!”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푸욱! 푸우욱! 쏴아아! 쏴아아……!
“헉……! 세, 세상에……. 여기서 무, 물이 나옵니다요.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촌장은 대경실색하는 모습이다.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알았는가? 이렇게 하면 물이 나오네.”
“마, 마법사님!”
알베제 마을 사람들이 식수를 가져오는 곳은 7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개울이다.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넘어야 하고, 지금이야 덜하지만 예전엔 몬스터가 출몰하기도 했다. 녀석들도 물은 마셔야 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몬스터와 같은 곳에서 식수를 구했다.
다른 곳에도 계류가 있기는 하지만 절벽이거나 경사가 너무 가팔라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접근성이 나쁘다.
어쨌든 마을 식수를 구하는 곳은 하루 종일 응달인 곳이라 겨울이 되면 너무 춥고 물도 꽝꽝 얼어붙는다.
다시 말해 식수 구하는 것이 고역이다.
이런 상황이니 마실 물과 음식물 조리에 필요한 물만 간신히 떠다 쓴다. 목욕은 당연히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마을 한복판에서 물이 펑펑 나온다. 이때까지의 불편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방금 설치한 것 말고도 4개나 더 보인다.
“마, 마법사님! 저, 저것들도 다 물이 나옵니까?”
“그럼! 가서 한번 해보게. 단, 너무 세게 누르진 말게. 적당한 힘만으로도 물은 나오니.”
무쇠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부러질까 싶어 한 말이다.
촌장은 현수의 말을 못 들었는지 냅다 뛰더니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여 본다.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쏴아! 쏴아아! 쏴아아……!
“세, 세상에……!”
물이 나오자 또 다른 펌프로 가서 확인한다.
현수는 촌장이 모두 다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 줬다.
“다 확인했는가?”
“마법사님……! 흐흑, 정말 고맙습니다요. 이렇게 신경 써주시다니……. 흐흑!”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흘린다. 물론 감격의 눈물이다.
“이게 있으면 물을 쉽게 쓸 수 있겠지?”
“아이고, 그럼요.”
“그런데 문제가 있네.”
“네? 무슨 문제가……?”
촌장은 뭔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아닌지 다소 겁먹은 표정이다.
“보게. 펌프질을 하고 나면 물이 나오네. 이 물을 그냥 놔두면 근처가 다 진창이 되고 말지.”
“……!”
“그러니 날이 완전히 밝으면 마을 사람들 동원하여 납작하고 편평한 돌들을 가급적 많이 골라오게.”
“그건 왜……?”
“쓰고 남은 물이 흘러갈 수로를 만들어야지. 기왕이면 농사짓는 농지 근처로 물을 인도하게. 그럼 비가 오지 않아도 농작물이 말라죽는 일을 피할 수 있으니까.”
“아……!”
촌장에게 어찌 관개농업7)개념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효용을 깨우친 듯 눈을 크게 뜬다.
“펌프 두 개는 실내에 만들어주겠네.”
“네? 실내엔 왜……?”
“그래야 목욕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자용과 여자용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네.”
“아!”
“참, 여자용은 그곳에서 식재료를 다듬거나 빨래를 할 수 있도록 펌프가 최소 두 개는 있어야겠군. 안 그런가?”
“마, 맞습니다. 그러면 엄청 편하겠지요.”
촌장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용은 작아도 되지만 여자용은 조금 커야겠지? 나무 기둥에 물이 자꾸 닿으면 쉽게 썩으니 아랫부분은 돌을 박는 것이 좋을 것이네. 이렇게.”
현수가 바닥에 슥슥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인다. 건물의 기초만 돌이 아니라 바닥도 돌이고, 사용한 물이 흘러내릴 도랑도 그려서 보여주었다.
촌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마을에는 펌프가 많이 있어야 하니 나는 하루 종일 그 작업을 할 생각이네. 자넨 쉐리엔 채취를 하게.”
“아이고, 네에. 그러믄입죠. 알겠습니다요.”
촌장은 연신 굽신거리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마을의 환경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것임을 느낀 듯하다.
“그리고 화장실도 몇 개 파주겠네. 앞으론 그곳에서만 용변을 보도록 하게.”
“화장실이라니요?”
“용변 보는 변소 말이네.”
“아! 그거요. 그건 아무데나…….”
“앞으론 아무데나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줄 변소만 쓰도록 마을 사람들을 지도하게.”
“그건 왜……?”
“위생 때문이네. 아무데나 용변을 보면 그게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이 우물의 물과 섞일 수 있네. 그럼 좋겠는가?”
똥과 오줌 섞인 물을 상상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무, 물론 아니지요.”
“그리고 분뇨들이 썩으면 좋은 비료가 된다는 건 아는가?”
“네……? 비, 뭐요?”
현수는 이들에게 비료의 개념이 없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이곳은 농업으로 입에 풀칠을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퇴비와 비료의 개념이 아직 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똥과 오줌이 썩은 걸 재와 지푸라기, 잡초 등과 적당히 섞어 놓은 걸 밭의 흙과 버무리면 농장물이 훨씬 더 잘 자라고, 열매도 크게 맺히네.”
“네에. 그게 정말입니까?”
눈은 크게 떴지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내 말을 믿게. 그게 농작물에 필요한 양분이라네.”
“……!”
대답이 없다. 여전히 못 믿는 표정이다.
구린내와 지린내가 나는 것들이 어찌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작물의 원료가 된다는 말인지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하여간 그러하니 내 말을 믿게. 알겠는가?”
“네에. 알겠습니다요.”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지만 지금 그걸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다. 하여 나중에라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곧장 다음 번 작업을 개시했다. 그러는 동안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깨워 두 부류로 나눴다.
노약자와 아이들은 개울가에서 납작한 돌을 주워오는 작업을 하도록 했고, 나머지는 모두 쉐리엔 채취에 동원되었다.
물론 모두가 물펌프를 보고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역시 이실리프의 마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이들의 입은 또 한 번 크게 벌어졌다.
마을 어귀에 진열되어 있는 40대의 리어카와 갖가지 농기구들을 본 것이다.
현수는 우물을 만들다 말고 그것들을 어찌 쓰는지 알려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처음 져보는 지게를 등에 지곤 순박한 웃음을 짓는다.
쇠로 만든 호미와 괭이를 보곤 저마다 눈빛을 빛냈다. 나무로 된 것만 쓰다 쇠로 된 것을 보니 욕심이 난 것이다.
현수는 웃으면서 각 가정당 최소 하나씩은 돌아갈 테니 다투지 말라고 해야 했다.
다음엔 쟁기와 가래, 작두, 맷돌 등을 어찌 쓰는지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멍석은 일단 각 가정마다 하나씩 가져다 깔기로 했다.
현재 쓰는 지푸라기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촌장은 골고루 배분하고 남은 것은 마을 창고에 보관토록 했다.
그리곤 썰물처럼 마을 밖으로 나갔다.
알베제 마을 남정네들은 하루 종일 작업을 했다.
음식은 아낙네들이 준비했다. 샤우르마 만드는 법이 익숙해졌는지 300여 개를 금방 만들어낸다. 이것만 먹기엔 조금 뻑뻑할까 싶어 걸쭉한 쇠고기 스튜를 준비하도록 했다.
여자들은 음식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며 깔깔거린다. 물론 너무 편하고 좋은 때문이다.
작업자들 리어카를 가져갔기에 쉐리엔 채취반은 오후 늦게까지 외부에서 작업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되돌아온 것은 오후 6시경이다. 제법 능숙해진 솜씨로 리어카를 끌고 온다.
“마법사님! 이거 진짜 편리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물건을……. 이거 정말 저희에게 주실 겁니까?”
“자네들이 쉐리엔을 채취해 주는 대가로 어떤가?”
“네에? 이 귀한 걸요? 아이고, 그럼 저흰 앞으로 10년 동안 쉐리엔만 채취해야 합니다요.”
“겨우 10년……?”
현수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듯 촌장은 놀란 표정이다.
“그럼……? 이거 그렇게 비싼 겁니까?”
“테리안 왕국의 왕궁에도 없는 물건이지.”
“헉! 그럼……?”
“앞으로 20년간 쉐리엔을 채취해 주게.”
“……!”
농사지을 시간도 없이 쉐리엔만 채취하다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촌장의 낯빛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