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
이 순간 리어카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현수의 뒷말이 이어진다.
“자네들이 농사짓는 시간을 빼고……!”
“네에……? 아이고, 마법사님!”
이제야 농담인 걸 알아들은 모양이다.
“많이 캐 왔나?”
“네, 보십시오.”
리어카 30여 대에 쉐리엔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등에 지고 있는 지게까지 수북하다.
“쉐리엔은 놔두고 가서 손부터 씻게. 저녁 먹어야지.”
“네에, 마법사님!”
촌장은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곤 마을 사람들에게 무어라 지시를 한다.
현수는 리어카와 지게에 있던 쉐리엔들을 살펴보았다.
이곳의 토양엔 지구엔 없는 박테리아라든지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 하여 채취된 쉐리엔은 전부 물로 깨끗하게 씻긴 상태이다. 현수가 그렇게 지시한 때문이다.
“흐음, 최상이군!”
마을 사람들이 아주 정성스럽게 손질한 흔적이 보였기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 아무리 친근하게 굴어도 이들에게 있어 마법사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존재이다. 따라서 마법사의 명은 가장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 오늘 저녁은 간단히 먹을 것이네. 식사 후엔 마을 바닥을 돌로 포장해야 하니.”
“네……?”
“이 마을은 비만 오면 진창이 되지? 안 그런가?”
“그야 당연하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도 돌을 박아 포장을 하게. 그럼 진흙탕이 되는 일이 훨씬 줄어들 터이니.”
“네……?”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흐음, 지금부터 내 지시대로 하게. 알겠는가?”
“네에,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일단 식사 먼저.”
현수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빵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마트 빵집에 있던 것들이다.
식빵도 있고, 소보로도 있으며, 크림빵과 바게트, 크루아상 등 빵집에서 파는 거의 모든 종류가 망라되어 있다. 식빵의 곁에는 포도잼, 사과잼, 오렌지잼, 땅콩잼 등이 놓여 있다.
현수가 먼저 잼을 발라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현수를 따라 잼을 발랐다. 그리곤 그것을 입에 넣곤 눈을 크게 뜬다.
너무 달다! 그리고 너무 부드럽다.
바싹 마르면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딱딱하고 시커먼 빵만 먹고 살았다. 곰팡이가 피어 있어도 대강 털어내고 먹었다.
침을 잔뜩 적셔야 간신히 흐물흐물해지고 맛도 없다.
그런데 현수가 내놓은 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데다 달콤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허겁지겁 입에 처넣는다.
“이런, 너무 급하게 먹네. 그럼 체할 수도 있는데.”
현수는 아공간 속의 우유를 꺼냈다. 그리곤 그릇에 그것을 부어주었다.
“너무 급하게 먹으면 탈 날 수 있으니 이것에 찍어서 먹는 게 좋을 것이네.”
“이, 이게 뭡니까요?”
촌장은 허연 색깔의 우유를 처음 보는 듯하다.
“몸에 좋은 것이니 묻지 말고 먹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요. 이보게들! 마법사님께서 빵만 먹지 말고 이것에 찍어서 먹으라고 하시네.”
“……!”
촌장도 모르는 우유를 어찌 마을 사람들이 알겠는가!
하지만 마법사의 말이라니 너도 나도 그릇을 들이민다.
이에 현수는 1리터짜리 우유 75개를 꺼냈다. 일인당 0.5리터 정도는 마실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잠시 후, 탁자 위의 수북했던 빵이 전멸당했다. 우유 역시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빈 팩에 입을 대고 쪽쪽 빨아먹는 중이다. 하지만 더 꺼내 주지는 않았다. 자칫 설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 이제 식사를 다했으면 작업을 하세. 메가 라이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개의 광구가 허공에 나타난다. 현수는 마나로 이것들이 띄엄띄엄 떨어지게 만들었다.
“와아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감탄사를 터뜨린다.
현수는 손짓으로 촌장을 불렀다.
“지금부터 마을의 모든 도로를 납작한 돌로 포장하게. 길은 이렇게 하고 가장자리는 이렇게 도랑을 파서 물길을 만들게.”
현수가 나무막대로 그림을 그려주자 곁에 있던 사람들까지 고개를 끄덕인다. 작업이라면 도가 튼 사람들이라 그런지 단번에 알아들은 모양이다.
“자아! 시작하게.”
“네, 마법사님!”
마을 사람들은 왜 이런 작업을 하라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이실리프 마법사 하인스는 알베제 마을을 이롭게 해줄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찍소리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어른, 아이, 아녀자 할 것 없는 그야말로 총동원 작업이다.
현수가 허공에 띄워놓은 광구 덕에 대낮이나 다름없다. 하여 작업은 꽤 빠르게 진척되었다.
현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잘못된 것들을 지적했다.
한쪽에선 빈 오두막을 해체하여 공동 목욕탕을 만드는 중이다. 현수는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무거운 목재에 경량화 마법을 걸어주었다.
서너 명이 달라붙어도 끙끙대며 들어야 간신히 들릴 목재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지자 대단히 놀라는 모습이다.
목재의 밑동을 받쳐 줄 바위도 이런 식으로 운반하게 했다.
현수는 기둥이 바위에 안정되게 서 있도록 홈을 파주었다. 물론 마법이다.
현수의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작업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끝날 일은 아니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들 깨끗이 씻었다. 펌프가 18개나 되었기에 30분도 안 걸려 목욕을 마칠 수 있었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다. 그리곤 코를 골며 행복한 꿈나라로 향했다.
다음 날과 그 다음 날도 작업은 이어졌다.
샤벨타이거가 작업현장 근처를 어슬렁거렸기에 몬스터의 출현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몇몇 어른들과 함께 마을의 환경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가장 먼저 남자와 여자용 공동 목욕탕을 완성시켰다. 그러고 보니 추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한쪽 벽에 페치카8)를 조성했다.
그런데 아르센 대륙엔 벽돌이라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개울 근처 황토를 이용하여 이것들을 만들었다.
황토와 물, 그리고 잘게 썬 지푸라기를 잘 섞도록 했다. 다음엔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틀에 넣고 다졌다.
이것들은 그늘진 곳으로 옮긴 후 결계를 치고 타임 패스트 마법을 걸었다. 이렇게 하여 황토 벽돌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엔 완성되어 있던 한쪽 벽면을 조심스레 뜯어내고 벽돌로 벽과 페치카를 조성시켰다.
다음엔 각 가정마다 페치카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상당히 많은 목재가 쌓이게 되었다. 이것들로는 쉐리엔을 채취하여 보관할 창고를 지었다.
각 창고에는 보존 마법 이외에도 공간 확장 마법이 인챈트되었다. 얼마든지 수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마법사님!”
“하인스 마법사님, 고마웠습니다. 또 오세요!”
“또 오셔야 합니다. 하인스 대마법사님!”
“마법사님! 쉐리엔 왕창 준비해 놓을게요.”
알베제 마을을 떠나는 현수의 등 뒤엔 150여 주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손을 흔들고 있다.
현수 역시 손을 흔들어 헤어지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곁에는 길들여진 샤벨타이거와 엘베른만이 있다. 샤벨이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할 수 없이 동행하는 것이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자 엘베른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마법사님! 저희 알베제 마을을 살기 좋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나를 위해 쉐리엔을 채취해 주기로 했잖은가.”
“그래도요. 그깟 잡초를 채취하는 대가로 너무 큰 것을 주셔서요. 촌장님과 마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다시 감사드립니다.”
엘베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잡초이긴 하지만 내겐 필요한 것이네.”
“그래도 고맙습니다. 또 오실 거죠?”
“그럼, 앞으로 자주 들를 것이네, 쉐리엔이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
“네, 열심히 채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베른과 샤벨이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동행했다.
“자! 이제 그만 헤어지세.”
“네에.”
현수가 텔레포트 마법으로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엘베른은 토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엘베른과 헤어진 현수는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곤 지구로 귀환했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흐트러진다.
* * *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기 오염이 심각하군.”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으며 중얼거린 말이다.
지구인다운 복장이 되자 핸드폰을 꺼내 로빈훗에게 연결했다. 다행히 주문했던 컴파운드 보우가 도착했다고 한다. 즉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네, 상당히 애쓰셨습니다.”
“애 쓰기는요. 주문하신 물건은 저쪽에 있습니다.”
로빈훗의 사무실 안쪽으로 가니 검은 빛 보우 하나가 놓여 있다.
“오늘 아침에 도착해서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느라 포장을 뜯었습니다.”
“네에.”
대답은 했지만 현수의 시선은 컴파운드 보우에 향해 있었다.
“제 힘으론 시위가 안 당겨지더군요.”
“……!”
“나머진 제대로 제작된 듯합니다. 제작처에서 말하길 사용 중 이상이 발생되면 언제든 A/S를 해주겠다고 합니다.”
“네에, 화살은요?”
“화살은 여기 있습니다.”
내민 화살을 보니 다른 것보다 더 굵고 긴 듯한 느낌이다. 또 묵직하다. 이를 본 로빈훗이 웃음 짓는다.
“보우의 장력이 커지면 화살 또한 그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도 평범한 것보다 더 굵고 길고 무거운 겁니다.”
“그래요?”
“네, 활과 화살이 맞아야 해서 그렇습니다.”
잠시 로빈훗의 설명이 이어졌다.
활쏘기에 입문하면 듣는 말이 있다. 약궁중시(弱弓重矢)라는 말이 그것이다. ‘활은 약하게, 화살은 무겁게’라는 뜻이다.
강궁을 사용하면 병이 생길 수 있으며, 가벼운 화살은 활을 망가뜨리고, 사수까지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이 강해지면 화살 역시 그와 비례해서 강도가 높아져야 하며 무거워져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화살에 활의 장력이 충분히 전해지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는 고스란히 활에 축적되므로 활이 파손되는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
화살이 시위의 장력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에는 박살 나면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활을 쏘면 추력이 화살의 뒤에서부터 가해지기 때문에 ‘휨’ 현상이 발생된다. 이것을 패러독스 현상이라 한다.
이렇기에 화살이 활공하면서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처럼 요동치는 것이다.
어쨌든 화살의 뒤쪽에서 가해지는 추력이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화살이 파손되거나 비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수는 타당성있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훗은 제작된 활의 탄속이 일반 컴파운드 보우에 비해 빠르지만 100파운드짜리의 3배는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높은 장력에 맞는 무거운 화살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갖게 되기 때문에 파괴력이 커져서 코끼리나 하마 같은 짐승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모든 설명을 들은 현수는 활을 잡아 가볍게 당겨보았다. 시위가 당겨지자 로빈훗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300파운드짜린 대체 얼마나 강한가 싶어 당겨보았었다. 조금은 당겨지지만 그 다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현수는 너무 쉽게 시위를 당긴다.
9장 사내아이를 낳을게요
“헐……!”
‘아차!’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현수는 얼른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핑―!
반쯤 당겼던 것임에도 파공음을 낸다.
‘마음에 드는군.’
“그걸 어떻게……? 아무리 당겨도 안 되었는데.”
로빈훗의 궁금함을 현수는 무시했다.
“참……! 이거 사거리는 얼마나 나온답니까?”
“제작사에서 기계로 당겨 확인해 본 결과 1489.30m까지 날아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