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44화 (344/1,307)

# 344

제비뽑기에서 당첨제비를 뽑은 여인들이다.

“어서 오세요, 하인스님! 대체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네? 아! 그냥 여기저기…….”

“호호! 미혹의 숲에서 헤매셨죠? 하긴, 거긴 길잡이 없이 지나치긴 너무 어려운 곳이에요. 아무튼 잘 오셨어요. 전 부촌장인 라이사예요.”

이 마을에 당도하기 전 계곡에서 목욕하고 있던 하마같이 뚱뚱한 여인이 환히 웃는다.

“촌장님은 어디 가셨나 보죠?”

“네, 다른 마을에 볼 일이 있어서요. 얘들아, 뭐하니? 우리 마을의 은인인 하인스님이 오셨으니 잔치를 벌여야지.”

“네, 언니!”

라이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어느 여인도 물러나질 않는다.

“왜……?”

“언니, 샬롯과 에스더는 촌장님을 따라갔잖아요.”

“근데?”

“걔들이 당첨제비를 뽑았거든요. 근데 오늘 못 오잖아요.”

“아! 맞다. 알았어, 모두들 촌장 언니 오두막에 모여. 너희 여덟은 여기 있고.”

“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들이 우르르 달려간다. 그중엔 다프네도 포함되어 있다.

“대체 왜……?”

현수의 물음에 답한 여인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글래머 여인이다. 옷감이 적어서 그런 건지 이 마을 여인들은 딱 가릴 데만 가리고 사는 모양이다.

이 여인 역시 비키니 비슷한 것만 걸치고 있다. 그런데 그 비키니조차 너무 작다. 하여 시선 처리가 애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이 대꾸를 해준다.

“저희 마을엔 순번을 정해서 하는 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나저나 숲에서 다치신 데는 없죠?”

“네, 다행히 다친 덴 없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일단 좀 앉으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여인이 의자를 대령한다.

“흐음,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당연한 일인걸요.”

여인은 뭐가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튼다.

‘이 여자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현수는 힐끔거리는 여인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기에 현수는 머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곳 역시 알베제 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을엔 우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말구유처럼 생긴 통나무를 깎아 만든 물통이 보인다. 곁에는 물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디 먼 곳으로부터 물을 길어다 쓰는 모양이다.

‘가만있자. 아공간에 펌프가 남아 있지? 흐음, 할 일도 없는데 여기도 우물이나 파줄까?’

여자들끼리만 사는 마을이다. 물을 담으면 20㎏이 넘을 무거운 물통을 들고 다니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현수가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땅바닥에 앉아 있던 여덟 여인도 따라서 일어난다.

“어디 가시려고요?”

“아뇨.”

현수는 짧게 대답하곤 이그드라실의 잎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마을 내부로 움직였다. 여인들은 대체 뭘 하나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흐음, 수맥이 귀한 곳인 모양이군.’

알베제 마을에선 마을 복판을 가로지르는 수맥이 있어서 찾기 쉬웠는데 이곳은 아닌 모양이다.

방향을 바꿔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던 중 이그드라실의 잎사귀가 아래로 꺾이는 곳에 당도했다.

‘다행이군. 어디 보자, 어디가 물이 더 많을까?’

이그드라실의 잎은 수량이 풍부할수록 아래로 더 많이 꺾인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확연히 아래로 꺾이는 부분과 만나게 되었다.

“여기군. 좋아, 슬슬 시작해 볼까? 디그! 디그! 디그!”

마법이 구현될 때마다 땅이 푹푹 파여 나간다. 그렇게 직경 1m짜리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근데 여긴……? 루디 촌장의 집 근처군.’

그러고 보니 촌장의 거처 바로 곁이다.

“흐음, 집이 바로 옆에 있으니 물길은 이렇게 해서…….”

땅을 파던 현수가 루디 촌장의 집을 돌아서 가자 여인들이 또 따라온다. 그러던 중 소란한 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이번 제비뽑기는 무효예요, 라이사 언니! 아무리 언니라고 하지만 그건 반칙이잖아요.”

“그게 왜 반칙이야?”

누군가의 반문이다.

“내 두 눈으로 똑똑하게 봤어요. 라이사 언니는 당첨제비를 미리 손에 감추고 있었어요. 그렇죠?”

“맞아요, 언니! 나도 그거 봤어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라이사 언니가 금방 대꾸하지 못하는 걸로 미루어 짐작컨대 부정행위를 한 게 분명한 모양이다.

이때 누군가가 또 소리친다.

“라이사 언니! 언니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언니는 뚱뚱한데다 나이도 많아서 잉태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맞아요. 하인스님의 씨를 받는 건 젊은 동생들이 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언니는 임신도 어렵지만 노산이잖아요.”

‘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인스가 나 말고 또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날 두고…….’

현수는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이때 누군가가 또 소리친다.

“언니, 남은 실프의 눈물은 이제 반 방울뿐이에요. 이 마을을 찾은 남자는 하인스님이 유일하구요. 언니는…….”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이사가 성난 음성을 낸다.

“알았어, 이것들아! 이 늙은 언니는 빠질 테니 다시 뽑아. 하지만 조금 전에 다프네가 뽑은 건 부정행위를 한 게 아니니까 한 명만 다시 뽑으면 돼.”

“알았어요, 언니! 역시 언니예요.”

“자! 다들 모여. 이제 남은 당첨제비는 이제 하나뿐이라는 거 알지. 이 제비를 뽑은 사람이 오늘 밤 하인스님의 품에 안겨 씨를 받게 될 거야. 알았지?”

“네에.”

여자들의 소란스러움 속에 누군가가 당첨제비를 뽑은 모양이다.

“우와아, 만세! 나도 이제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 언니들 미안해요.”

“괜찮아! 기왕에 제비를 뽑았으니 오늘 밤 꼭 잉태해야 해. 알았지?”

“네에, 언니! 잘 생긴 사내아이를 낳을게요.”

‘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이 여자들이 지금……. 흐음, 안 되겠어. 이 마을 어서 떠나야겠어.’

현수는 파던 우물만 완성해 주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밤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얼른 되돌아와선 숙달된 솜씨로 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땅을 아무리 파도 물기가 비치지 않는다.

그러다 깊이가 40m를 넘자 비로소 젖은 흙이 나타난다.

천천히 10m를 더 팠다. 매우 깊었지만 계속해서 우물틀을 넣었기에 무너지진 않았다.

흙탕물의 깊이가 깊어지자 숯을 깔고 자갈로 위를 덮었다. 그리곤 서둘러 우물을 완성시켰다.

뚜껑을 덮고 수동펌프를 설치하자 여자들은 대체 뭐하는가 싶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아공간에 있던 삽으로 쓰고 남은 물이 흘러갈 도랑을 팠다. 일전에 부추를 심어놓은 쪽으로 물이 흘러가도록 물길을 잡은 것이다.

그리곤 말구유처럼 생긴 수조에서 물을 떠다 펌프에 넣고는 손잡이를 작동시켰다.

여자들은 여전히 현수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웬 쓸데없는 짓인가 싶었던 때문이다.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찌거덕!

쏴아아! 쏴아아아! 쏴아아아! 쏴아아아!

“헉……! 저, 저건……!”

“무, 물이다! 물이야!”

“세상에 이럴 수가…! 어떻게 저기서 물이 나오지?”

쏟아지는 흙탕물을 보고 여인들이 깜짝 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펌프를 가동시켰다.

그렇게 한참을 하니 물이 점점 맑아진다. 위에 있던 흙탕물이 거의 제거된 것이다.

이때 한 무리의 여인이 우르르 몰려온다.

“얘들아! 끝났어. 나하고 다프네가 당첨제비를 뽑았어.”

“어라! 이거 웬 물이야? 설마 너희들 물통 뒤엎은 거야?”

“세상에 맙소사! 그 많은 물을……. 니들, 니들이 가서 다시 물 떠와. 물 떠오기 얼마나 힘든지 잊었어?”

여자들이 성난 음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이에 여태껏 현수 곁에 있던 여인들이 손사래를 친다.

“아냐, 아냐! 하인스님이 이상한 걸 만드셔서 그래.”

“맞아, 여기 와서 봐봐! 물이 나와!”

“물이 펑펑 쏟아진다고……!”

세 여인의 말에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그리곤 펌프에서 나오는 물에 저마다 손을 대보려 한다.

“야, 비켜. 내가 먼저 확인할 거야.”

“아냐, 내가 먼저!”

금방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하인스님!”

어느새 곁에 다가온 다프네가 한 말이다.

“아! 다프네님! 마침 잘 되었네요. 잠깐만 나하고 이야기 좀 할래요?”

“네……? 저하고요?”

“그래요! 잠깐만요. 잠깐만 나하고 얘기 좀 해요.”

현수가 잡아끌자 다프네는 두말 않고 따라온다.

오늘 밤 씨를 내려줄 사내이기에 그러는 것이다. 둘이 비켜서자 여자들은 저마다 펌프질을 해보겠다며 아우성이다.

“제게 할 말이 뭐죠?”

“다프네님, 라이세뮤리안의 레어가 어느 쪽에 있어요?”

“네? 그건 왜? 내일 제가 알려 드리기로 했잖아요.”

느닷없이 물으면 저도 모르게 대꾸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인 듯하다.

다프네는 눈을 크게 뜬 채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가 되어줄 사람이구나. 그러고 보니 흑발이네. 머리카락도 짧고. 몸도 탄탄하고. 이제 보니 잘 생기기도 하셨네. 호호, 다행이야.’

다프네의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다.

“그냥 레어가 어디쯤인지 가르쳐 주면 안 돼요?”

“그게,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워서요. 여기서 그리로 가려면 빙빙 돌아야 하거든요.”

손짓이라도 해주면 눈치챌 텐데 다프네는 사람 민망하게 눈만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아……! 이 사내, 내 하나뿐인 낭군이 될 사람이야! 딱 한 번이겠지만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그리고 당신을 닮은 아들을 꼭 낳을게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현수에게 하는 대답이 건성이었던 것이다.

“끄응!”

현수는 다프네의 대답에 성의가 없음을 눈치챘다.

대화 내용과 관계없이 자신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대륙의 여자들은 다들 왜 이래?’

카이로시아도 그랬고, 로잘린도 그랬다.

뿐만이 아니다 줄리앙과 엘리시아, 그리고 그녀의 시녀 아델까지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표시했다.

나후엘 자작가 주방의 루시아를 비롯한 6명의 하녀도 노골적으로 대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수가 요구하기만 하면 언제든 벗을 준비가 되어 있던 여자라는 것이다.

“끄으응!”

“어디 불편하세요?”

현수가 나직한 침음을 내자 다프네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몸의 이곳저곳을 살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이제 곧 식사시간이네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 거예요?”

“호호, 네에. 하인스님은 여기저기 둘러보세요.”

“네……?”

“가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말을 마친 다프네는 현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목욕재계하고 빨아놓은 옷으로 갈아입기 위함이다.

현수는 멀어져 가는 다프네의 뒷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살랑거리는 둔부의 육감적인 모습이 잠시 이지를 흐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마을에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현수가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당첨제비를 뽑은 여자 10명은 때 빼고 광을 내고 있다.

나머지 여인 중 일부는 오늘 밤의 메인 무대가 될 침실을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오늘처럼 부산한 적은 없을 것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부촌장 라이사의 입술은 댓 발이나 튀어나와 있다. 꼼수를 부려 어떻게 하려다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전 같으면 심술이라도 부리겠지만 오늘은 그래선 안 된다. 어떻게든 현수로부터 씨를 받아 아이를 가져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사내아이여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여인들도 잉태하는 즐거움을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마법과 검술 둘 다 재능이 없어 드래곤니안이라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이지만 그래도 라이세뮤리안의 영향을 받은 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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