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
진짜 인간과 달리 300년에 가까운 수명이 그것이다.
10장 너, 한번 죽어봐!
촌장인 루디 언니는 30대 중반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135세이다. 부촌장인 라이사도 118세나 된 노파이다. 그럼에도 30대로 보인다.
그리고 250살까지 거의 같은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막내 삼총사인 에스더와 샬롯, 그리고 다프네의 나이는 각기 25, 24, 22살이다. 파릇파릇한 새싹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수는 눈치를 봐서 떠날 마음을 품었다. 실프의 눈물은 사부인 멀린 대마법사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마물이다.
그러니 저녁은 굶는 게 상책일 것이다. 어떤 음식에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을 전체가 부산하게 움직이던 어느 순간이다.
땡, 땡, 땡, 땡, 땡!
“오크다! 오크들이 다가온다!”
망루에 올라 망보던 여인의 고함에 모두의 움직임이 멈춘다.
“하필이면 오늘……!”
“빌어먹을 오크들! 오늘은 죽거나 말거나 대갈통 쏠 거야.”
“언니! 나 오늘 말리지 말아요. 저 빌어먹을 놈들 눈알만 노리고 쏠 거니까요.”
“그래! 오늘 아예 결판을 내자. 모두 들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오늘은 오크 새끼들을 모조리 쏴서 죽여! 알았지?”
라이사의 과격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들은 활을 챙겨 목책으로 향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식재료를 다듬던 여인들은 바지런한 손길로 음식을 만든다.
육류는 거의 없고, 채소 위주 식단이다.
“흐음! 오크들이 도와주는군.”
현수는 천천히 걸어 목책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라이사 부촌장이 동생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새끼들 다 죽여도 된다.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한 놈도 그냥 보내지 마라.”
“네, 언니!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어요.”
“아예 씨를 말려 버릴 테니까 말리지나 말아요.”
“언니! 진짜 책임져야 해요.”
“그래, 저 지긋지긋한 놈들 싸그리 죽여 버려.”
말을 마친 라이사가 가장 먼저 시위를 놓았다.
피잉―!
활을 떠난 화살은 녹슨 도끼를 들고 다가오던 오크의 이마 한가운데 격중된다.
퍼억―!
꿰에엑! 털썩―!
선두에 있던 오크가 쓰러지던 바로 그 순간 일제사가 시작되었다. 화살이 빗발치는 동안 오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곤 하나둘 쓰러진다.
화살은 심장, 이마, 눈알 이외엔 박히지 않는다. 움직이는 표적임에도 이런 결과를 빚으니 가히 명궁이라 할 만하다.
현수는 다가오는 오크의 숫자를 대강 헤아려 보았다.
마을 주민 수는 32명이다. 촌장인 루디 언니와 에스더, 그리고 샬롯이 자리를 비웠다.
남은 인원은 29명!
이중 둘은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활을 들고 있는 여인들의 수효는 27명이다.
그런데 다가오는 오크들의 수효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500마리가 넘는다.
일인당 55.5마리 정도 사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정도면 잔뜩 겁을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인들의 얼굴엔 두려움의 빛이 감돌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마을의 미래를 위해 씨를 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날마다 습격을 하니 분기탱천한 것이다.
“와라! 이 오크 새끼들아. 니들 오늘 다 뒈졌어.”
“그래, 이참에 아예 씨를 말려주마.”
“얘들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
여인들은 계속 화살을 쏘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 분노엔 당첨제비를 뽑지 못한 아쉬움도 섞여 있다.
쉬이익! 쐐에엑! 피잉! 슈아앙! 피이잉!
화살이 내는 파공음이 시끄러운 정도이다. 여자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현수는 전에 화살 창고로 쓰였던 오두막으로 향했다. 화살들이 다 떨어져 감을 본 때문이다.
“헐……! 뭐야?”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불과 500여 발 정도뿐이다. 그거라도 챙겨 나왔다.
“화살 없으신 분!”
“여기요!”
“여기도 줘요.”
“여기도 화살이 필요해요.”
현수의 말에 여자들이 일제히 소리친다. 각기 20발쯤 나눠주고 나니 남는 게 없다. 목책 너머를 보니 1,000마리는 넘는 것 같다. 남아 있던 화살과 나눠준 것을 합치면 600발 정도 된다. 모두 명중한다 하더라도 400여 마리가 남는다.
“화살이 모자라는데 다 쏘면 어쩌려구요?”
“대피소에 숨으면 돼요.”
너무도 태연자약한 대답이다.
“네?”
“저번처럼 마법으로 공격해 주면 안 돼요? 놈들이 마을로 들어오면 완전한 난장판이 된단 말이에요.”
시위에 새로운 화살을 얹으며 라이사가 한 말이다.
“알았습니다. 그러죠.”
대답은 했지만 마법을 구사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핑, 핑, 피핑, 피피피핑!
꿰엑! 크웩! 끄억! 쿠엑! 꾸엑!
화살이 허공을 가르면 오크들이 듣기 거북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진짜 명사수들인지 화살의 대부분은 머리에 박힌다.
잠시 후 빗발치듯 날아가던 화살이 점차 뜸해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멈췄다. 그리곤 일제히 현수를 바라본다.
이제 마법 공격을 해달라는 뜻이다.
“메가 매직 미사일! 체인 라이트닝! 메가 파이어 애로우! 메가 아이스 스피어!”
현수는 주로 2∼3써클 마법을 난사했다.
쉐에에엑! 콰콰콰쾅! 쑤아아아악! 쌔에에에엑!
꿰엑! 크웩! 끄억! 크웩! 꾸엑!
화살이 멈춰지자 일제히 달려들던 오크들의 선두가 와르르 쓰러진다. 곧이어 2열 역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멀티 윈드 커터! 메가 라이트닝! 메가 아이스 볼트!”
마법이 구현될 때마다 오크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날 즈음 오크들이 물러선다.
올 때는 1,500여 마리가 왔는데 도주하는 놈들은 아무리 봐도 두 자리 숫자를 넘지 못하는 듯하다.
마법을 써서 몰살시키려면 그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이겼다.”
“와아아! 드디어 놈들을 죽였어!”
“우리 마을 만세!”
“언니들 수고했어요. 하인스님도 수고했구요.”
여자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현수는 또 땅을 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변변한 농기구조차 없는 마을이다. 힘센 남정네도 없다.
30명도 안 되는 여자가 1,400구에 달하는 오크 시체를 묻기엔 힘에 부칠 것이다.
“에구! 내 팔자야.”
나직이 투덜거린 현수가 목책 너머로 뛰어내렸다.
여자들은 왜 그러나 싶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전에 파묻었던 곳을 떠올리며 땅을 팠다.
“디그! 디그! 디그! 아, 뭐해요? 나와서 이것들 파묻어야지요. 안 그래요? 디그! 디그! 디그!”
마법을 구현시킬 때마다 포크레인으로 한 삽 깊숙이 파낸 것 같은 구덩이가 푹푹 파인다.
여자들은 방책의 문을 열고 나가 또 한 번 진땀나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사용된 화살들을 회수했다.
오늘 현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몇날 며칠 동안이나 대피소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볼 때마다 고맙다는 소리를 한다.
작업은 해가 떨어지고도 끝나지 않았다. 오크들의 사체가 너무 많은 탓이다. 하여 라이트 마법까지 구현시켜야 했다.
“아이고, 힘들어!”
“에고, 허리야.”
“언니, 내 허리 좀 두들겨 줘.”
“내 허리도 끊어지는 것같이 아파, 이것아!”
여자들이 허리와 어깨 등을 두드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갑자기 힘든 일이 집중돼서 그런다.
마을에 들어와 모두가 씻는다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다. 물론 다프네를 비롯한 10명이 최우선적이다.
왜 그런지 알았지만 현수는 내색하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현수가 준비해야 했다. 오크들이 던진 돌덩이 때문이 아니다.
현수가 화살을 가져다주면서 마법으로 식탁을 쓰러뜨린 때문이다. 덕분에 모든 음식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어떤 것에 실프의 눈물이 섞여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가 내놓은 것은 마트 식품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샌드위치였다. 모두가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슬슬 작업이 걸려온다. 가장 먼저 현수의 오두막을 찾은 것은 다프네였다.
옥수수 비슷한 것을 쪘다면서 같이 먹자고 한다.
다프네는 분명 아름다운 여인이다. 한국에 데려다 놓으면 당장 엔터테인먼트사로부터 수십 장의 명함을 받을 것이다.
아름다운데다 몸매마저 뛰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아르센 대륙에 와서 처음 다프네를 만났다면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이로시아와 로잘린도 다프네와 충분히 비교될 정도로 아름답다.
그렇기에 슬립 마법으로 재웠다. 그리곤 마을을 돌며 모든 여인들을 재웠다.
안 그러면 밤새 하나씩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휴우∼! 이제 끝인가?”
새벽 무렵 더 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판단될 때 현수는 미련없이 방책을 넘어섰다.
그리곤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방을 살피던 현수의 눈에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고산준봉들이 줄지어 있다.
‘흐음, 저 정도는 돼야 살겠지?’
놈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야 한다. 그렇기에 얼른 땅으로 내려섰다. 그리곤 곧장 그 산으로 향했다.
‘설마 저 산 이름이 화이트 헤드는 아니겠지.’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을 본 현수가 피식 실소를 짓는다. 화이트 헤드 마운틴을 직역하면 백두산이 되기 때문이다.
가까워 보였지만 우거진 숲을 헤치는 것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때때로 같은 곳을 빙빙 돌기도 했지만 마법을 쓰진 않았다. 놈이 마나의 유동을 느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절벽 면에 뻥 뚫린 공동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프네가 사는 마을을 떠난 지 4일 만이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다. 직경이 대략 150m 정도 되니 드래곤의 레어로는 안성맞춤인 듯하다.
“흐음, 저기 있어야 하는데…….”
현수는 아공간 속의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레드 마피아가 콩고민주공화국의 반군에게 넘기려던 것이다.
배율을 조절하여 살펴보니 놈의 레어가 분명한 것 같다.
동굴의 안쪽에는 거대한 문이 달려 있다. 온통 황금으로 만들었는지 금빛이 번쩍인다.
그 가운데에는 루비 비슷한 붉은 보석들이 박혀 있다. 그것은 분명 레드 드래곤의 형상이다.
“흐음, 드래곤의 레어에는 가디언들이 있다고 하는데…….”
현수는 동굴 입구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리곤 2㎞ 지점까지 다가갔다. 다프네가 한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한참을 망원경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세상의 통설이 틀린 것 같다. 드래곤의 레어쯤 되면 적어도 트윈헤드 오우거 정도는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아이언 골렘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모두 레어 안에만 있는 건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들어가든지 말든지 하는데. 여기서 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끄응! 기다리는 거 딱 질색인데…….”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하지? 그냥 들어갔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
게임 판타지 소설 같으면 죽어도 그만이다. 적당한 페널티를 감수하고 다시 로그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나 소설이 아니다. 너무도 생생한 현실이다. 아르센 대륙에서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하여 한참을 고심했다.
“끄응! 할 수 없지.”
현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놈이 나왔을 때 저격을 하고, 실패할 경우 즉시 튈 장소를 물색한 것이다.
놈이 반격할 경우를 생각하여 텔레포트할 좌표까지 일일이 확인해 두었다.
드래곤은 마나의 향기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놈의 추적을 피할 방도를 고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