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
그러다 보니 윤미지에게 다이어트에 특효가 있는 캡슐을 구해달라는 요구가 폭주했다.
톱스타라는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윤미지는 아직 연예계 초보이다. 그런 그녀에게 시어머니 같은 선배 연기자들의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일부는 곧장 윤영지에게 연락하였다. 윤미지가 언니에게서 얻었다는 말을 한 때문이다.
임신 중인 영지는 동생과 동료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전화기를 꺼놨다. 그리곤 민 사장에게 어서 빨리 현수를 만나 구해달라는 간청을 했다.
애처가인 민 사장은 얼굴을 볼 때마다 쉐리엔 타령을 하는 영지를 보기 뭐해 지난 며칠간 퇴근을 늦게 하는 상황이다.
그러던 차에 현수를 만났다. 그러니 대놓고 사정이다.
“김 전무님! 저 그거 못 구하면 집에 못 들어갑니다. 쉐리엔 원료 그거 언제 옵니까? 네?”
“……!”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애달파 하는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대꾸가 없자 민 사장이 두 손을 모은 채 비빈다.
그러면서 사람 하나 살려달라는 표정이다.
“설마 아직도 먼 건 아니겠죠?”
“하하! 네에, 곧 당도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휴우∼! 정말 다행입니다.”
민 사장은 이마에 솟은 진땀을 닦아낸다는 듯한 몸짓을 한다. 이제 아내와 처제로부터의 시달림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CF는 준비되었나요?”
“아, 네에! 그런데 김 전무님, 그 아가씨는 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인 겁니까?”
“이리냐요?”
“네, CF팀이 찍어온 걸 봤는데 이건 뭐 여신이더군요. 듣자하니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여대생이라던데…….”
“맞습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곧 슈퍼모델 반열에 오를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슈퍼모델 중에서도 톱이 될 거라 장담합니다. CF감독이 말하는데 모델이 되려고 태어난 아가씨 같답니다.”
“그랬어요?”
현수는 흡족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 목매고 있는 이리냐의 아름다움이 계속해서 칭찬 된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영상 한번 보십시오.”
민 사장은 현수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컴퓨터의 동영상을 플레이시켰다.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걸친 이리냐가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걷는다. 그녀가 가는 곳은 뷔페식당이다.
접시에 이것저것 수북하게 담아와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상당히 양이 많다. 물론 여자들 기준이다.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니 1.2㎏이다.
그걸 다 먹는다. 여기까진 상당히 빠른 속도로 화면이 바뀐다. 다 먹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음엔 아이스크림까지 핥아먹는다. 몹시 섹시하다.
그리고 체중계에 오른다. 이리냐의 몸무게는 51.1㎏이다.
이리냐는 푸른색 캡슐 한 알을 찬물과 함께 복용한다. 그리고 8시간이 지난다. 시계가 매우 빨리 돌아간다. 별도의 운동을 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시 저울에 오른다. 측정된 몸무게는 49.9㎏이다. 먹은 양이 그대로 빠진 것이다. 이리냐는 카메라를 응시한다.
“제 몸무게요? 쉐리엔이 지켜줍니다. 쉐리엔은 제 몸매의 가디언이거든요.”
영상은 이리냐가 섹시하게 윙크하는 것으로 끝난다.
“괜찮죠?”
“네, 괜찮군요.”
“발매와 동시에 TV광고를 할 겁니다. 여자들도 열광하겠지만 남자들도 상당히 좋아할 영상입니다.”
“그래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솔직히 저도 이 영상 100번 이상 봤습니다. 이리냐는 정말 여신입니다.”
“에구, 부인도 있으신 분이…….”
“하하, 마누라에겐 비밀입니다. 그리고 요즘 임신 중이라 절 멀리하잖습니까? 그래서 좀 굶주린 상탭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보시기에도 섹시하지 않습니까?”
“네, 보기 좋습니다. 그나저나 출시 준비는 된 건가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수 역시 이리냐에게서 섹시함을 느꼈다. CF를 찍으면서 오로지 현수만 생각했던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다.
“그럼요. 쉐리엔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상표등록은 모두 마쳤습니다.”
“식약청에서 다이어트 보조식품으로의 기능성 인정은 받았습니까?”
“네, 전화로 문의했더니 다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정식으로 통보만 받으면 됩니다.”
“포장 및 상표디자인 등은요?”
“3개월치 90알 소포장과 6개월치 180알 포장 두 가지로 발매될 겁니다. 상표는 이리냐 양의 몸매를 실루엣으로 처리한 걸 사용토록 했습니다.”
“그럼, 준비가 다 된 셈이군요.”
“네, 그러니 이제 원료 좀 공급해 주십시오. 그거 빨리 안 나오면 저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혀서 말라죽을 겁니다.”
“하하, 네에. 곧 당도할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네, 오매불망 기다리겠습니다.”
민 사장은 부러 엄살 부리는 표정을 지었다.
“연구실장님은 연구실에 계시죠?”
“그럼요. 같이 가십시다.”
“어서 오십시오. 김 전무님.”
“에구, 모두들 전무라 부르니 참 남세스럽네요.”
“무슨 말씀을……! 월급쟁이의 신화를 쓰신 분이……. 김현수 사장님은 국민 전무가 된 거 모르십니까?”
생전 농담이라곤 모를 것 같은 김지우 박사가 싱긋 웃음 짓는다. 아는 사람이 신화의 주인공이라 그럴 것이다.
“에구, 네에. 전무 맞습니다. 그나저나 쉐리엔 뿌리의 진통효과는 어떻던가요? 효과가 있었나요?”
“네, 분석을 해보니 진통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내친김에 인위적인 합성을 해보려 했는데 한 가지 물질만은 합성이 어렵더군요.”
“또요? 아무튼 효과가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에도 효과가 있던가요?”
“네,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합니다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군요. 다만 생리통과 치통, 그리고 두통 등엔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국내에서 시판되는 유명 진통제 가운데 이소프로필안티피린(Isopropylantipyrine) 성분이 포함된 것도 있습니다. 맞죠?”
“네, 모 제약회사의 진통제에 확실히 그 성분이 들어 있죠.”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성분은 골수 억제작용에 의한 과립구 감소증과 재생 불량성 빈혈 등의 혈액질환과 의식장애, 혼수상태를 유발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그 성분이 든 진통제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터키 등에서는 시판되지 않죠.”
“그것과 비교하면 쉐리엔은 어떤가요?”
“일반적인 진통작용은 쉐리엔을 이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통증은 충분히 커버됩니다. 게다가 발견된 부작용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CRPS로 인한 통증은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거죠?”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성분만으로도 충분히 신약이 됩니다.”
말을 마친 김지우 박사는 자그마한 캡슐을 들어 보인다. 벌써 상품화까지 신경 쓴 모양이다.
“이게 그겁니다.”
“NOPA? 상표명입니까?”
캡슐에 깨알만 하게 쓰인 걸 읽은 것이다.
“네, 무통증을 의미하는 ‘No Pain’에서 딴 겁니다. 마음엔 안 드십니까?”
“아뇨! 상표명이 무엇이든 어떻겠습니까? 효과가 문제지요.”
말을 마치는 순간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가만, 디오나니아의 열매도 진통작용이 있다고 했지?’
생각난 김에 얼른 아공간을 뒤졌다. 하지만 민 사장과 김 박사의 눈에는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으로 보인다.
“아, 찾았다. 김 박사님, 이거……!”
“네……? 이건 뭡니까?”
엉겁결에 나무 열매처럼 생긴 걸 건네받은 김지우 박사가 눈을 크게 뜬다.
“그거, 그것도 진통효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되는지 확인해 보시고, 둘을 섞으면 어떤지도 알아봐 주십시오.”
“아! 그래요? 네에, 그러겠습니다.”
새로운 과제는 늘 반가운 모양인지 김 박사가 환히 웃는다.
“참, 전에 말씀하셨던 유사 효소는 다 만들어진 겁니까?”
“네? 아, 미라힐이요? 그럼요. 진즉에 다 되어 있지요.”
“그거만 있으면 다 되는 거 확실합니까?”
“네,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근데 그걸로 어쩌시려고요?”
“제가 아는 박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에게 합성을 해달라고 하려고요.”
“그거 합성이 안 되던데…….”
김지우 박사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못한다 해서 남들도 못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럼 미라힐 생산과 발매도 준비하십시오.”
“그런데 진짜 특허를 안 내실 겁니까?”
“네, 안 낼 겁니다. 복사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하지요.”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현수는 대한약품에서 합성할 수 없다는 효소와 비슷한 성분을 지닌 것들을 받았다.
* *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하하, 네에. 별고 없죠?”
“그럼요! 전무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주셨는데 별고가 있으면 안 되지요. 안 그렇습니까?”
울림네트워크 박동현 대표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다행입니다.”
“한데 어쩐 일로……? 혹시 차를 더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 조금 곤란합니다.”
“왜죠?”
“라인이야 만들 수 있지만 부품 조달도 그렇고 기술 인력도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부품이야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기술자들은 새로 고용하면 되고요.”
“당장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로의 수출이 끝나면 그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서…….”
박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천지건설에서 스피드 한 대 계약했죠?”
“아! 그거 김 전무님이 소개해 주신 겁니까?”
“아뇨, 소개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기업 전무이사인 사람이 회사에서 자동차 한 대 계약한 걸 어찌 아느냐는 표정이다.
“그 차를 탈 사람이 접니다.”
“네……?”
“전무이사가 되니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차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BMW, 벤츠, 벤틀리, 롤스로이스, 재규어 등 여러 회사 차의 카탈로그를 받았습니다.”
“……!”
“제가 선택한 건 스피드입니다. 그래서 알죠.”
“저, 전무님……!”
박동현 대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심적 격동 때문이다.
현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핫 이슈의 주인공이다. 그런 사람이 스피드를 타고 다닌다면 비싼 돈 내고 TV 광고 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한 홍보효과가 발생된다.
월급쟁이들의 신화를 이룩한 사람이 타는 차라면, 그걸 꿈꾸는 사람들이 타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 많이 안 만들면 울림네트워크가 사람들 등살을 못 이길 걸요? 안 그렇습니까?”
“전무님……!”
박동현 대표는 이번에도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두덩이 뜨거워진 느낌 때문이다.
“돈이 부족하면 미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규모를 조금 더 키워보십시오.”
“……!”
“스피드는 국산 최초의 수제 스포츠카가 아닙니까? 한류가 전 세계로 번진 것처럼 스피드도 많이 팔아야지요.”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그나저나 내 차는 언제 나옵니까? 걸어다니려니 기동성이 떨어져서…….”
현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박동현 대표가 먼저 입을 연 때문이다.
“내일 모레, 딱 이틀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무님 차이니 최우선적으로 제작하겠습니다.”
“에구, 농담이었습니다. 수출 물량 만드는 것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그냥 천천히 만드셔도 됩니다. 걸어다니는 게 은근히 운동도 되고 좋더군요.”
“그래도…….”
“그냥 천천히 하세요. 그리고 오늘 제가 온 건 제가 탈 차의 엔진 때문입니다.”
“네? 엔진이요?”
자동차를 주문해 놓고 아직 장착도 되지 않은 엔진을 보여달라는 것 같아 의아하다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