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
“전에 엔진 샘플을 주셨잖습니까?”
“네에, 그랬지요.”
“제가 엔진을 조금 손볼 건데 제 차엔 그걸 장착해 주십사 해서 온 겁니다.”
“엔진을 손을 보셨습니까? 출력이 부족해서 그러면 저희 기술진에게 말해서 높여 드리겠습니다.”
“아뇨, 출력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튼 제가 손본 엔진을 장착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러 온 겁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런데 엔진은 어디에……? 언제 주실 겁니까?”
“내일 오후에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오시면 가져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 드리고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꼭 제 차에 장착해 주셔야 합니다. 아셨죠?”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박동현 대표는 대체 왜 이렇듯 강조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참, 라인 증설뿐만 아니라 울림네트워크의 규모 확대 방안도 모색해 두십시오.”
“네……?”
“제가 손본 엔진이 합격점을 받으면 주문이 밀려들 거거든요. 하하하!”
현수가 부러 너스레를 떨었지만 박 대표는 얼떨떨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
“자, 그럼 이만 갑니다.”
“네에, 안녕히 가십시오.”
울림네트워크를 떠난 현수는 이실리프 어패럴로 향했다.
* * *
“김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네에. 샘플은 다 회수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최 대령에게 채근을 했지만 아직 반환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요? 알겠습니다. 특별히 다른 일은 없습니까?”
“전에 왔던 로버트 켈리 중령으로부터 방탄복에 관한 기술은 없느냐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방탄복이요?”
“네,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가능하다면 샘플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흐음, 방탄복이라…….”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박근홍 사장이 묻는다.
“혹시 방탄복에 관한 기술도 있는 겁니까?”
“개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조금 느닷없어서요.”
“혹시 그거 아세요?”
“뭘요?”
“작년에 감사원에서 군수품 조달 및 관리 실태 감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제작된 방탄복에 북한군 무기인 AK―47로 쏴봤더니 완전히 관통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네, 아무래도 야로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단안형 야간투시경에서도 문제가 발생되었답니다.”
“무슨 문제지요?”
“납품된 단안형 야간투시경의 17.4%에서 규정 이상의 흑점 및 긁힘 현상이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부는 신규 제품인데도 중고 부품이 사용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군요.”
“네, 군수품 납품 비리가 있지 않고는 그러기 힘들 겁니다.”
“병사들의 생명과 직결된 장구를 가지고 장난하면 안 되는 건데……. 쩝, 하여간 나쁜 놈들이 있다는 뜻이네요.”
12장 합격하셨습니다.
“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방탄복도 가능할까요?”
“연구를 한번 해봐야지요. 필요하면 기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서라도 제대로 된 걸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박근홍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시선을 맞춘다.
“참, 우리 회사에서 항온 전투화까지 만들게 되는 겁니까?”
“그래야겠지요. 기술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요.”
“네에, 그런데 요즘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합니까?”
“회사 근처에 못 보던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라서요.”
“우리 기술을 탐내는 놈들이 보낸 놈들일 겁니다. 사장님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된 모양입니다.”
“경호원이요?”
“네. 사장님을 납치할 수도 있으니까요.”
“끄으응!”
박근홍 사장이 나직한 침음을 낸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납치당해 봤자 넘겨줄 기술이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침음을 낸 이유는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기무사 비슷한 곳에서 보낸 사람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실리프 어패럴 근처에 있는 놈들은 미국, 일본, 지나에서 파견한 스파이들도 있다. 최 대령에게 준 샘플에 관한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번진 것이다.
“생각난 김에 경호회사엘 가봐야겠습니다.”
“네에. 그렇게 하십시오.”
박근홍 사장은 현수가 본인의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고용하려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 * *
“어떻게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전화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럼 김현수 씨인가요?”
여직원은 상냥하게 응대했다.
“네, 경호하실 분들을 직접 보고 싶어서요.”
“그렇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복도를 가로질러 간 여직원이 안내한 곳엔 제7팀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방이었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굵은 저음이다. 음성만으로 식별하자면 30대 중반쯤이다.
“팀장님! 안내 데스크 담당 미스 양입니다. 고객께서 직접 오셔서요. 경호요원들을 직접 보시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안으로 모시세요.”
“네! 저어, 손님. 안으로 들어가세요.”
“고맙습니다.”
현수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여직원은 더 크게 숙이고는 이내 안내 데스크로 되돌아간다.
현수가 방문한 이곳은 사설 경호회사이다. 경찰 및 특수부대 출신이 많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찾아온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토탈가드 7팀장 현인구입니다.”
“네에, 김현수라 합니다.”
“거기 앉으십시오.”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전직 군인인 듯하다.
악수를 하고 소파에 앉으며 상대를 살폈다. 짧은 머리에 다부진 체구, 굵은 뼈대가 인상적이다.
“경호요원들을 직접 보시겠다고요?”
“네, 제가 고를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어떤 경호를 원하시는 거죠?”
“제가 아는 분을 24시간 보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분만 보호하면 되는 겁니까?”
“그분의 부인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럼, 밀착경호입니까?”
“아뇨, 그건 불편해하실 테니 근접거리 경호였으면 합니다.”
“혹시 협박을 받는다거나 위험에 처해 계신 겁니까?”
7팀장은 꼬치꼬치 물으며 현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네, 납치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경호해야 할 대상은…….”
현수는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빼가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게 현직, 또는 전직 기무사 요원들일 것이라곤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하면 수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그러니까 산업 스파이 같은 거군요.”
“네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요원의 숫자는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단 4명이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여기 있는 프로필을 보시고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직접 대면하겠습니까?”
7팀장 현인구는 앞에 앉은 사내가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들어 계속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현수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프로필로 선택하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이중에 고르시면 됩니다.”
7팀장이 넘긴 파일엔 200여 명의 신상이 기록되어 있다.
공수부대나 특전사 출신도 있고, UDT, HID 출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전직 강력반 형사도 있고, 무술인들도 있다.
“이 사람과 이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현수가 고른 사람의 면면을 살핀 7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잘 고르셨습니다. 이 친구들 꽤 괜찮습니다. 자, 그럼 비용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현수는 상대가 달라는 금액을 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네 사람을 즉시 박근홍 사장 근처에 배치해 달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네 사람을 더 골라두었다.
먼저 파견될 사람들이 상황을 살펴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면 그러려는 것이다.
생각보다 비용이 비쌌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박근홍 사장이 납치된다 하더라도 기술은 유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수의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절차가 마쳐지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7팀장이 입을 뗀다.
“그런데 혹시 천지건설의…….”
이미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상태인지라 현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네, 그 김현수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대단하신 분이 저희 회사에 오신 거군요.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되는지요?”
“물론입니다.”
현수는 7팀장의 배웅을 받으며 토탈가드 사무실을 나섰다. 처음에 현수를 안내했던 아가씨는 대체 누구기에 7팀장 같은 사람이 공손한 자세로 배웅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궁금한 건 못 참는 모양이다.
현수가 나가자 7팀장에게 묻는다.
“팀장님! 조금 전 그분 누군데 배웅까지 하신 거예요?”
“조금 전 그분?”
“네, 그분이요.”
대꾸는 했지만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7팀장은 고객에게 그분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님이시더군.”
“네에……?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7팀장이 웃음 짓자 미스 양은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팀장님, 너무해요. 그럼 말이라도 해주시지. 저 김현수 전무님 정말 존경한단 말이에요. 히잉, 사인이라도 받아놨어야 하는데. 히이잉……!”
발까지 동동 구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미스 양을 본 7팀장이 싱긋 웃음 짓는다.
그리곤 들고 있던 파일에서 흰 종이 하나를 꺼내 건넨다.
“자, 받아요!”
“네? 이게 뭐예… 어머! 이건…!”
미스 양이 받아 든 종이엔 이렇게 쓰여 있다.
토탈가드의 아름다운 장미, 양미란 씨에게!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리며, 끊임없는 자기 계발로 풍요로운 미래를 맞으시길 기원 드립니다.
천지건설 전무이사 김현수 드림.
“우아앗! 팀장님.”
너무도 기쁜 나머지 미스 양은 저도 모르게 두 팔로 7팀장의 목을 껴안았다. 그리곤 방방 뛰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때 7팀장이 슬그머니 잘록한 미스 양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연모했지만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애를 태웠는데 현수 덕분에 글래머러스(Glamorous)한 미스 양을 안아본 것이다.
“나 이거 코팅해서 가보로 삼을 거예요. 호호!”
“그래요. 그렇게 해요.”
7팀장은 기뻐하는 미스 양을 더욱 깊숙이 안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어, 어머! 그러고 보니… 팀장님!”
후다닥 떨어져 나간 미스 양이 7팀장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지만 감히 다가갈 수 없던 사내가 자신을 안아줬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 미스 양! 내, 내가 방금 그런 건… 미, 미스 양을 어떻게 해보려고 그런 게 아니고……. 휴우! 에라, 모르겠다. 미스 양, 나 당신 좋아하는데 나하고 사귀어 줄래?”
“네? 팀장님이 저를요……?”
미스 양의 눈이 커진다. 7팀장을 노리는 쟁쟁한 여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은 때문이다.
“그래! 나, 미스 양 좋아해. 그러니 나하고 사귀자.”
“저, 정말이요?”
“그래.”
7팀장이 부끄러운 듯 시선도 못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미스 양이 얼른 다가가 다시 한 번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좋아요! 저도 팀장님 마음에 있었어요.”
현수 덕분에 서로 좋아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던 청춘들이 드디어 연애전선으로 뛰어드는 순간이다.
한편, 토탈가드를 떠난 현수는 이실리프 상사로 갔다.
“아! 어서 와라. 당분간 못 온다더니?”
막 사무실 문을 열던 민주영은 현수를 보자 반색한다.
“그랬는데 왔네. 별일 없지?”
“없을 리 있냐? 너 잘 왔다. 면접 좀 봐라.”
“면접?”
“그래, 지금 면접 보러 내려가야 하는데 배탈 났다. 그러니 네가 좀 봐줘. 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