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1장 고효율 엔진
“어디 아프세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너무 긴장하신 거 같은데, 면접이 이번이 처음입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입사지원서를 몇 번이나 써보신 겁니까?”
“그건… 이실리프 상사가 63번째로 지원하는 회삽니다.”
“에구,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네? 네에.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명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아 매번 떨어졌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이명래 씨, 전기에 관해 묻겠습니다. 태양광발전은 맑은 날엔 좋지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엔 발전량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네?”
현수의 물음은 태양광발전을 전공한 교수나 박사들조차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학부를 졸업하려는 자신에게 물었으니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 아닙니다.”
대답을 못하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 이명래는 필사적으로 뇌리를 뒤졌다. 하지만 답변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그리곤 한마디 한다. 안 하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 개발을 통한 비용 절감과 에너지 효율을 올리면…….”
대답은 했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지극히 원론적이며 추상적이라는 마음이 들었는지 차마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수가 피식 웃음 짓는다.
“그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이명래 씨가 우리 회사에서 할 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공부 열심히 해서 회사 발전에 이바지해 달라는 뜻입니다.”
“……!”
이명래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방금 한 말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은 때문이다.
“다음은 최창식 씨!”
“네.”
“기계과 전공입니다. 본인은 본인의 기계 설계에 몇 점이나 주고 계시는지요?”
“저, 저요? 전… 제 자신에게…….”
최창식도 말을 잇지 못한다. 솔직히 중고등학생 때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하여 대강대강 살았다.
그러다 대학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물론 지방에 소재한 5류 대학교이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졸업은 시켜줬다. 그나마 다행이다. 대졸이란 소리는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 기계 설계 점수는 D입니다.”
“좀 짜네요.”
“죄송합니다.”
최창식은 고개를 숙였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자 애를 썼지만 아직 백수이다.
딱 한 군데 최종 합격시켜 준 곳이 있긴 했다.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을 하는 곳이다.
첫 출근을 하니 초도 물품 1,000만 원어치부터 사라고 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그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 회사 말고는 면접까지 온 것이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워낙 출신 대학이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붙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면접에 온 것은 되면 좋고 안 되어도 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현수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한 것이다.
“흐음, 최창식 씨는 본인의 기계 설계 점수가 A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래야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네, 노력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 당사 면접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발령은 인사부에서 낼 테니 준비를 해주십시오.”
“네?”
가장 마지막에 면접을 본 최창식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실리프 상사는 누구나 취업하고 싶어하는 회사 중 하나이다.
급여와 복지 모두 재벌 계열사 못지않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사부에 가시면 알 수 있으니 가보십시오. 자, 다음 면접을 봐야 하니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다섯이 엉거주춤하며 일어선다. 이실리프 상사의 직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사부장님, 다음 팀 받죠.”
“네. 미스 최, 다음 팀 들어오라고 하세요.”
나세희 등이 나가고 다시 다섯 명이 들어선다. 이때 복도 밖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앗싸! 만세! 하하! 취업했다! 하하하!”
“하하! 나도! 하하! 믿어지질 않네.”
최창식과 이명래의 음성이다.
현수가 빙그레 웃으며 인사부장을 바라본다.
“본사 인테리어 다시 해야겠지요? 방음이 시원치 않네요.”
“하하, 네에. 관리부에 연락하겠습니다.”
인사부장이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매번 떨어뜨리는 면접만 봤다. 그런데 오늘은 전부 다 붙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편해 보이는 얼굴이다.
* * *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연희 씨, 좋은 아침입니다. 휴가 잘 갔다 왔어요?”
“네, 전무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연희 대리는 연인이지만 회사라 그런지 깍듯하게 고개까지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현수 역시 주변의 눈이 있을 수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마음에 들어요?”
“네, 아주 깔끔하게 했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박진영 과장님은 아직인가요?”
“네, 아홉 시 되려면 30분이나 남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 기획영업단의 첫 회의는 정각 아홉 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하죠.”
“네, 박 과장님 출근하면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연희의 두 눈은 현수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웃음 띤 얼굴이다.
“그전에 커피 한잔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 뒀습니다.”
말을 마친 강연희가 책상 아래에서 커피 두 개를 꺼낸다. 회사 앞 엔젤리너스에서 사온 것이다.
“전무님도 방 마음에 드세요?”
“아직 못 봤습니다. 같이 볼까요?”
“호호! 네.”
전무이사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엔 푹신한 양탄자가 깔려 있다.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은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에는 유화 한 점이 걸려 있다. 남국의 해변을 실사한 듯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다. 아래를 살피니 SHS라 쓰여 있다.
신형섭 사장이 그린 그림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웬만한 화가 뺨칠 정도로 잘 그린 그림이다.
책상 옆에는 화분 셋이 리본을 단 채 줄지어 놓여 있다.
김현수 전무이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천지건설 회장 이창진.
김현수 전무이사의 취임을 축하합니다.
―천지건설 사장 신형섭.
김현수 전무이사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천지건설 전무 박준태.
천지건설 실세들의 화분이다.
이중 이창진 회장과 박준태 전무는 인척지간이다. 박전무의 누나가 이 회장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세 개의 커다란 화분 이외에도 작은 난 하나가 창틀 위에 놓여 있다. 보라색 호접란이다.
김현수 전무님의 취임을 축하드려요.
―기획영업단 대리 강연희.
지난 며칠간 많은 화분이 전무이사실로 쇄도했다. 천지건설 임원 대부분과 계열사 사장 및 임원들이 보낸 것들이다.
이것들은 기획영업단 사무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 덕에 웬만한 식물원 버금갈 정도로 초록색이 풍성하다.
“에구, 뭘 이런 걸 다…….”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강연희 대리가 정중히 고개까지 숙인다. 문득 장난기가 동한 현수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말로만요?”
“네?”
“전 이런 화분보다 강 대리님이 한 번 포옹해 주는 게 더 좋은데. 프리 허그, 뭐 이런 거 없습니까?”
“어머!”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강연희가 낯을 붉힌다. 이때 바깥쪽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어? 아직 안 오셨나?”
박진영 과장이 출근한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업무 시작 15분 전이다.
“박 과장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얼른 연희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강 대리님, 커피 남은 거 있어요?”
“아뇨. 없는데 어떻게 하죠?”
현수가 뭐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무이사실 문이 열리고 박진영 과장이 들어선다.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신고합니다. 기획3팀장으로 있던 과장 박진영이 기획영업단에 배속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바랍니다.”
일사천리로 할 말을 마친 박 과장이 시선을 든다.
“네, 앞으로 잘해봅시다. 일단 자리에 앉죠.”
“네, 그럼 앉겠습니다.”
현수가 상석에 앉고 강 대리가 오른쪽 소파에 앉자 박 과장은 왼쪽에 앉는다.
그리곤 다이어리를 펼치고 볼펜까지 꺼내 들었다.
“우리 기획영업단은 상부로부터 특별히 전달받은 업무 내용이 없습니다.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는 뜻이지요.”
“……!”
현수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기에 나머지 말을 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쪽의 업무는 놔둬도 잘 해결될 상황입니다. 따라서 두 분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박 과장님, 혹시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요?”
“죄송합니다. 아직 없습니다.”
“강 대리님도 없습니까?”
“제가 알기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될 재개발 사업권 획득이 난항인 것 같습니다. 공사 규모가 커서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그 일에 우리가 나서자는 뜻입니까?”
현수의 물음에 연희는 진즉에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 즉답을 한다.
“그 업무는 현재 해외영업부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론 기획영업단이 국내영업부뿐만 아니라 해외영업부까지 관장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희가 말을 잇는다.
“우리가 그 업무를 가로채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측면 지원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측면 지원이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
박진영 과장은 언제 현수를 갈궜으며, 언제 연희를 졸졸 쫓아다녔었냐는 듯 천연덕스런 표정이다.
“저는 본 설계에 포함될 조경 등의 참고 자료를 얻기 위해 한동안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뭐죠?”
박진영 과장의 물음에 연희는 노트북을 펼친다. 그중 한 폴더를 여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엄청나게 많다.
“이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제가 느낀 건 어쩌면 이 모든 게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
현수와 박진영 과장 모두 입을 다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영국의 정원을 브라질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꾸며놓은 정원이라 하더라도 이질감을 느끼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따라서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강 대리님 의견은 뭐죠?”
“재개발을 하면 거기에 들어가서 살 사람들은 브라질 사람입니다. 우리 입맛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어쩌면 영국식 정원 여럿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잔디밭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박 과장님은 혹시 다른 의견 있습니까?”
“오늘 기획영업단의 첫 출근이라 아직은 없습니다.”
“좋아요.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치죠.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박 과장님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강 대리님은 방금 말씀하신 걸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둘이 대답하자 현수가 물었다.
“두 분의 오늘 계획은 뭐죠?”
“저는 도서관에 가서 브라질 사람들의 주거 풍습 등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