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
연희의 말이 끝나자 박 과장이 질세라 한마디 한다.
“저는 우리가 할 만한 다른 일을 찾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 역시 외근할 계획입니다.”
“좋습니다. 오늘 하루 각자 활동하시고 결과는 전화, 또는 이메일로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현장에서 곧바로 퇴근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둘 다 밖으로 나갔다.
연희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실천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고, 박 과장 역시 외부로 나가서 사무실이 텅 비었다.
오늘은 도서관에 있을 거예요. 퇴근 후에 만나요.
그래요. 너무 무리하진 말아요. 이따 봐요!∧∧
10분쯤 후 연희와 현수가 주고받은 메시지이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엔진을 꺼냈다. 그리곤 생각했던 마법진들을 필요한 곳에 새기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각종 판금 기구들이 동원되었다.
엔진에 새겨지는 마법으로 인해 현수가 타게 될 스피드는 엄청난 연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작업을 마친 것은 오후 4시경이다. 생각보다 복잡하여 타임 딜레이 마법까지 동원되었다.
완성된 엔진은 겉보기엔 다른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마법진 자체가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꼼꼼하게 점검하곤 울림네트워크로 전화를 걸었다.
“아, 박 대표님? 김현수입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던 참입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전화를 드렸더니 엔진이 없다고 하더군요.”
“네, 제가 가지고 나왔습니다.”
“네? 그거 엄청 무거울 텐데.”
“무겁긴 하죠. 아무튼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조립 공정은 어디에서 진행되죠?”
“경기도 광주입니다. 폰으로 주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로 가죠.”
현수는 용달차를 불렀다. 그리곤 차가 올 곳 부근에 엔진을 꺼내 놓고 기다렸다. 용달차가 광주 공장에 당도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다들 금방 퇴근하셔야 하는데 제가 많이 늦었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공장 직원들은 박동현 대표로부터 현수가 누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금난에 빠진 회사를 단박에 정상화시켜 준 은인이며, 밀려 있던 급여를 일시불로 받게 해준 사람이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조립을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태이기에 작업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잠시 이를 지켜보던 현수는 박 대표의 차로 상경했다.
“그런데 왜 꼭 그 엔진으로 해달라고 하시는 거죠?”
“후후, 두고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
건설회사 직원이었던 사람이 차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나 싶어 박 대표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차는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보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해도 됩니다. 그리고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나저나 식사라도 같이 해야 하는데.”
“에구, 아닙니다.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박동현 대표의 차가 멀어질 때 전화가 진동을 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연희 씨! 다 끝난 겁니까?”
“네, 거의 다요. 지금 어디 계세요?”
“회사 근처에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 말하면 제가 가죠.”
“여기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이에요.”
“알겠습니다. 금방 갈 테니 기다리세요.”
연희는 이제나저제나 하며 연신 지나치는 차들에 시선을 준다. 혹시 현수가 내리나 싶었던 모양이다.
현수가 택시에서 내리자 반색을 하며 다가온다.
둘은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러 늦은 저녁 식사를 즐기며 영국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연희는 그때 먹었던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카지노에서 룰렛을 했던 이야기, 그리고 강도당한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현수는 아파서 병가를 냈을 때 연희가 사줬던 음식, 잠시 서울에 들렀을 때 서점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하하, 호호 하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되었다. 현수는 연희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데도 한사코 골목 어귀에서 돌아가라 하여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귀가 후엔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친환경 화장실 만드는 법과 각종 작물의 재배에 관련된 서적들이다. 물론 아르센 대륙에서의 일을 위한 독서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이어리에 연희와의 성공적인 데이트를 했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 * *
“전무님, 자료 조사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저도 며칠 더 도서관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 주말까지 시간을 드리죠. 다음 미팅은 월요일 아침 아홉 시에 하겠습니다. 그동안엔 출근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료 조사를 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치자 박진영 과장이 먼저 나간다.
어디를 가서 뭘 하려는지 몰라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듯 결의에 찬 모습이다.
강연희가 살그머니 다가온다.
“미안해요. 명색이 비서인데 맨날 밖에만 있어서요.”
“미안하긴. 난 괜찮아요. 오늘부턴 나도 밖으로 나돌 거니까요. 볼일 다 보면 통화해요.”
“네. 그리고 이거…….”
연희는 책상 밑에 있던 커피를 건넨다.
“박 과장님 것까지 사긴 싫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그래요. 잘 마실게요.”
강연희 대리마저 곁을 떠나자 현수는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를 검색하고 기록했다.
그러던 중 전화기가 진동한다.
부우우우웅―!
번호를 보니 이춘만 천지건설 킨샤사 건설본부장이다.
“이 이사님, 김현수입니다.”
“아! 우리 김 전무. 그래, 전무실은 좋은가?”
직급이 분명 차이 나지만 이춘만 이사는 현수에게 말을 놓고 있다. 그렇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한 때문이다.
“하하, 네에. 그럼요. 근데 어디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여행이라면 여행이지. 여기 아디스아바바이네.”
“네에? 벌써 거길 가신 거예요?”
“휴가 받은 김에 여긴 어떤가 하여 와봤네. 콩고민주공화국보다는 조금 낫지만 열악하긴 마찬가지군.”
“그렇겠죠. 천지약품이 거기서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을 것이네. 어때,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네, 기왕이면 코리안 빌리지에서 시작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거기 직업도 없는 사람들 많거든요.”
“오케이. 코리안 빌리지에 우리 근거지를 만드는 것으로 하지. 근데 도움 받을 사람이 있을까?”
“네. 거기 가셔서 리야 아스토우라는 아가씨를 찾으세요. 참전용사인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의 손녀입니다.”
“리야 아스토우?”
“네. 그 아가씨가 없으면 촌장님을 찾으셔도 됩니다. 제 이름을 대고 사정을 이야기하면 도움을 주실 겁니다.”
“흐음, 알겠네. 상황이 발생되면 다시 연락하지.”
“네. 그리고 그쪽으로 보낼 사람을 물색해 두었습니다.”
“사람?”
“네. 고강철이란 분으로 배움은 짧지만 성실하게 일해주실 분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가족 전부가 이주할 것이니 깔끔한 거처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러지. 그전에 자네가 한번 와야 하는 거 아닌가?”
“네. 그럼 오늘 오후에라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게. 난 힐튼호텔에 머물고 있네.”
“네,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곧장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아쉽게도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직항로는 없었다.
현수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두바이를 거쳐 아랍에미리트 항공으로 에티오피아에 당도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빨랐기 때문이다.
티케팅을 하곤 곧장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지 않다. 따라서 먼저 비자를 받고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시간이 없다.
그렇기에 일단 출국부터 하려는 것이다.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단점이다.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 외교관 여권이 있다. 그러므로 여의치 않으면 그걸 디밀고 입국할 생각을 한 것이다.
두바이까지 타고 간 대한항공은 비즈니스석이었지만 아랍에미리트 항공편에선 1등석을 이용할 예정이다. 좌석 남은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탑승하려던 항공기가 폭탄 테러의 대상이라는 첩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두 시간은 라운지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도무지 진척이 없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정밀 수색을 해야 하므로 앞으로 열 시간 정도 더 소요될 것이라 한다.
연락해 볼 전화번호를 메모하곤 입국 절차를 밟았다. 기왕에 온 것이고, 시간도 남으니 구경이나 하자는 의도였다.
단순 목적 방문이라면 60일간 체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수수료를 지불하고 공항을 나서니 택시들이 즐비하다. 이것들 중 하나를 타고 재래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현수는 천천히 걸으며 눈요기를 실컷 했다.
그러던 중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간판을 보니 아라비안나이트이다. 외국인들을 위해 아랍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다.
가게 안쪽엔 주인인 듯한 50대 사내가 무료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시선은 매대 아래쪽이다.
뭔가 했더니 작은 텔레비전 한 대가 있다.
현수가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던 주인아저씨는 둘러보라는 듯 TV로 시선을 돌린다.
이때 현수의 눈에 뜨인 것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마법 램프처럼 생긴 것이다. 물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것을 기준으로 한 마법 램프이다.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들어 살폈다. 재질이 뭔지 모르지만 고색창연하다. 겉에는 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마치 마법진을 그려놓은 듯하다.
이것을 자세히 살피던 현수가 물었다.
“주인아저씨, 이건 진짜 마법 램프인가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던 주인아저씨가 유창한 아랍어에 깜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다.
“후와아! 우리 말 잘하네! 자네, 짱일세!”
주인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하하, 그랬어요? 그나저나 이거 진짜예요? 진짜 알라딘(علاء الدين )이 쓰던 그 마법 램프인 건가요?”
현수는 부러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라는 뜻이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주인아저씨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2장 알라딘의 마법 램프
“물론이지. 그걸 잘 문지르면 램프의 요정 지니(Genie)가 나온다네.”
“후와, 그래요? 지니 나오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잖아요?”
“그래, 들어주지. 그러니 문질러 봐. 너무 세게 말고 살살.”
주인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웃음 짓는다. 심심하던 차에 즐겁다는 뜻이다.
“근데 이게 진짜 알라딘의 마법 램프면 엄청 귀한 건데 아저씨는 이걸 왜 팔아요?”
“그치. 그거 엄청 비싼 거였어. 근데 나는 벌써 세 가지 소원을 다 빌었거든.”
“아, 그래요? 뭘 비셨는데요?”
처음 보았지만 농담이 척척 진행된다.
“으음, 첫째는 예쁜 여자랑 결혼하게 해달라는 거였네.”
“그래서 하셨어요?”
“했지. 지금 마누라가 젊었을 땐 꽤 미인이었거든.”
“오오! 다행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근데 지금은 아주 후회해.”
“왜요?”
“마누라 바가지가 이만저만 해야지. 보기만 하면 박박 긁어대는데 미치겠어. 그래서 지니가 한 번 더 소원을 들어준다면 마누라랑 결혼한 거 물러달라고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