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
“에구! 그건 그렇고, 두 번째 소원은 뭐였어요?”
“그야 토끼같이 예쁜 딸을 갖게 해달라고 한 거였네.”
“지니가 그것도 들어줬나요?”
“아암, 들어줬지. 결혼하고 딱 열 달 만에 딸을 낳았네.”
“그 소원은 만족하셨겠네요?”
“아니, 그것도 물리고 싶어.”
“왜요?”
“이건 딸이 아니라 웬수네. 맨날 돈만 달래. 어찌나 돈을 잘 쓰는지 내 지갑에 돈 들어 있을 날이 없어. 게다가 얼마나 툴툴거리는지 마음에 안 들어.”
생각만 해도 그렇다는 듯 슬쩍 이맛살을 찌푸리는 아저씨다. 그리곤 말을 잇는다.
“요즘엔 웬 잡놈과 결혼시켜 달라고 하네. 근데 그 녀석이 영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반대를 했더니 난리법석을 떨더군. 지니가 소원을 또 들어준다면 걔 낳은 거 취소하고 싶어.”
“아아! 그랬군요. 그럼 세 번째 소원은 뭐였지요?”
“그건 이 가게의 주인이 되게 해달라는 거였지.”
“그것도 들어줬군요, 지니가. 이건 만족하세요?”
“아니. 그래서 그것도 무르고 싶어.”
“왜요?”
“매일 이 가게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게 이젠 지겹거든. 지긋지긋해.”
“아! 그러시구나.”
충분히 이해가 된다.
조금 전 주인아저씨는 마냥 무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도 가장의 삶에 지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잘 문질러 보게. 지니에게 소원을 빌기 전에 한참 생각을 해보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나처럼 후회하니까. 알았지?”
주인아저씨는 다시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생각났다는 듯 말을 잇는다.
“참, 싸게 주면 그거 사 갈 건가?”
슬슬 작업을 건다. 이래야 물건이 팔리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이거 좀 문질러 보고요. 지니가 나오면 나도 제국의 공주인 바드루르버드루1)랑 결혼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바드루르버드루 공주님은 세상 최고의 미녀라네.”
말을 마친 주인아저씨는 껄껄거리며 웃는다. 하루 종일 심심했는데 이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현수는 램프를 살살 문질렀다.
“램프야, 램프야, 내 소원 좀 들어주렴.”
몇 번을 문질렀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아저씨는 모처럼 유쾌해졌다는 듯 환히 웃는다.
“조금 더 부드럽게 살살, 그리고 진심을 다해서 문지르게.”
“에이, 열심히 문질렀어요. 그래도 안 나오는 걸요. 지니가 저하곤 인연이 없나 봐요.”
이때 현수의 눈에 뜨이는 것이 있다.
구석에 둘둘 말린 채 세워져 있는 양탄자다.
끝부분이 살짝 펼쳐져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지, 아니면 진짜 오래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고풍스럽다.
“이건 뭐죠?”
“뭐긴,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지.”
주인아저씨는 현수와의 농담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주 천연덕스런 표정이다. 물론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았다.
“네에? 설마 저게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온 진짜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마법 양탄자라는 말씀이신가요?”
“왜 아니겠어? 우리 가게 이름을 봐. 아리비안나이트야. 그러니 그건 틀림없이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라네.”
뻔한 농담이기에 익살스런 표정이다.
“그럼, 여기서 이거 펴 봐도 되요?”
“그럼. 물론이지.”
펼쳐진 양탄자는 중간 정도 되는 사이즈이다. 예상대로 온갖 화려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다. 아주 멋졌다.
현수는 부러 신발을 벗었다. 그리곤 펼쳐진 양탄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올라앉았다.
다음엔 익살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날아라, 양탄자!’ 하면 이게 떠오르는 거죠?”
“후후! 아마 그럴걸? 한번 해보게.”
주인아저씨는 현수를 놀려먹는 재미라도 붙인 듯하다.
“자아, 플라잉 브랜켓! 하늘로 떠올라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양탄자가 떠오른다. 물론 진짜 플라이 마법을 구현시킨 때문이다.
둥실∼!
높이는 대략 1m 정도 된다. 물건을 진열해 놓은 매대의 높이가 그것보다 높으니 다른 가게에선 보이지 않을 것이다.
“허억! 세, 세, 세상에!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여태 느긋한 자세로 있던 주인아저씨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난다. 그리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눈을 뜬다.
물론 입도 딱 벌어져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이 놀라는 중이다.
하긴 이야기책에서나 등장하던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가 눈앞에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게다가 이 물건은 자신이 파는 물건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을 때부터 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크기가 아니기에 여태 팔리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현수는 내심 웃겼지만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물어본다.
“우와! 이거 아저씨 말대로 뜨네요! 근데 뜨기는 떴는데 저쪽으로 날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뭐라고 해야 가는 거죠? ‘날아라, 저쪽으로!’ 그러나요?”
“뭐? 뭐, 뭐라고? 오오, 세상에 맙소사!”
주인아저씨가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튀어나와 허공에 떠 있는 양탄자를 부여잡는다.
혹시 현수가 그걸 타고 날아가 버릴까 싶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제가 살게요.”
“아, 아니! 이, 이건 안 팔아! 이건 절대 안 파는 물건이네!”
행여 현수가 팔라고 조를까 싶어 그러는지 양탄자를 꽉 움켜쥐고 있다.
“그래요? 쩝, 아쉽군요. 막 마음에 들려고 했는데. 근데 저쪽에 있는 저건 또 뭐죠?”
양탄자에서 내려선 현수는 구석에 둘둘 말려 있는 굵은 밧줄을 가리켰다. 곁에는 왕골을 짜서 만든 높이 50㎝쯤 되는 바구니가 있다.
“설마 저거 피리를 불면 바구니 속에 있다가 코브라처럼 일어나는 그 마법 밧줄은 아니겠죠?”
“뭐? 모, 몰라. 그냥 밧줄이야.”
마법 양탄자에 정신이 팔린 주인아저씨의 무성의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사실이다.
현수가 지목한 밧줄은 장사 끝나고 집에 갈 때 매대를 방수포로 덮은 뒤 고정시킬 때 쓰는 것이다.
곁에 있는 왕골 바구니는 밧줄을 보관하는 것이다.
두리번거리던 현수의 눈에 매대 위에 있던, 피리와 나팔의 중간 형태를 한 것이 뜨인다.
그것을 집어 들고 살짝 불어보았다.
필리, 필릴릴리―!
“이건 소리가 묘하네요.”
피리도 아니고 리코더 소리와도 다르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소리가 섞여 있는 듯 낮은 소리가 난다.
현수의 말에 주인아저씨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양탄자를 둘둘 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는 악기를 밧줄 앞에 대고 그것을 불었다.
필릴리, 필릴리, 필릴릴리!
처음 만져 보는 악기이기에 음정은 엉망이다. 그런데 밧줄이 솟아오르려는지 꿈틀거린다.
“흐음, 내 실력이 낮아서 그런가? 아저씨, 혹시 이거 불 줄 아세요?”
어느새 양탄자를 둘둘 말아 품에 안은 주인아저씨는 조금 전 움찔거리던 밧줄을 보았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빌 때 현수가 물은 것이다.
“응? 그, 그럼. 불 줄 알지.”
“전 안 되는데 아저씨가 한번 불어보세요. 잘하면 일어날 것 같아요.”
“그, 그래? 알았어. 한번 불어보지.”
주인이 밧줄 앞에 가서 전통악기를 불기 시작했다.
삘리, 삘릴리, 삘릴리, 삐이이이, 삘리!
확실히 현수보다 잘 분다. 이슬람 음악인 듯한 음률을 연주하던 주인아저씨의 눈이 또 퉁방울만 해진다.
밧줄이 조금씩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려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아는 현수는 내심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짐짓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이제 보니 이것도 마법 밧줄이었군요! 아저씨, 이건 팔 거죠? 이건 얼마예요?”
현수는 진짜 사려는지 지갑을 꺼내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현수의 말에 대꾸할 생각이 없는지 악기를 계속 불었다. 그러자 밧줄이 1m 높이까지 치솟았다.
이때부터 밧줄이 음악에 따라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그러더니 열려 있던 왕골 바구니 속으로 들어간다. 마치 제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가며 똬리를 튼다.
그래도 계속 불자 바구니 위로 밧줄 끄트머리가 잠시 튀어나왔다가 쑥 들어간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다.
음악이 멈춰졌다. 주인아저씨는 멍한 표정으로 바구니와 전통악기를 번갈아 보고 있다.
“아저씨, 그거 얼마냐니까요? 안 팔 거예요?”
“뭐, 뭐라고?”
“그 악기하고 밧줄 저한테 팔라구요.”
“아, 안 돼! 이것도 안 파는 물건이야.”
혹시 강탈이라도 할까 싶었는지 악기는 뒤로 감췄고, 몸으로 바구니 앞을 막아선다.
“그래요? 쳇, 그럼 할 수 없죠. 그럼 이 마법 램프는 팔 거죠? 집에 가서 잘 문지르면 지니가 나올지도 몰라요. 그죠?”
“아, 안 돼! 그것도 안 팔아!”
주인아저씨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자신이 팔고 있는 물건 전부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왔던 그 마법 물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치이, 알았어요. 구경 잘했네요.”
“그, 그래! 어여 가게. 오늘은 가게 일찍 닫아야겠어.”
주인아저씨는 마법 양탄자와 낡은 밧줄, 그리고 다 썩어가는 전통악기와 마법 램프를 소중히 갈무리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혹시 다른 건 없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낡은 목마를 보았다.
“가만, 혹시 저건 간교한 페르시아의 마법사가 사부르 왕에게 선물했던 하늘을 나는 목마가 아닐까?”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 평상시엔 저걸 내다 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색창연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세월을 많이 타서 그런 것 같다. 하여 얼른 챙겨서 가게 안쪽에 옮겨놓았다.
그리고도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현수의 장난에 주인아저씨의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것이다.
이날 밤, 주인아저씨는 양탄자와 목마, 그리고 램프와 밧줄 등을 집으로 가져가 밤새도록 시험해 본다.
하지만 바라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현수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주인아저씨에게 잔재미를 주려 했다. 그런데 기대와 다른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장난기가 동한 현수는 다른 가게에서도 같은 장난을 쳤다.
그 가게 주인아저씨 역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가게 역시 일찍 문을 닫는다.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는 보물 중의 보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갑옷 파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중부 유럽은 물론이고 북부 유럽과 아랍의 갑옷까지 전시되어 있다. 아르센 대륙의 그것과 다른 점도 있지만 유사한 부분도 많은 것이 신기했다.
문득 박근홍 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8군 로버트 켈리 중령이 방탄복이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하여 아주 자세히 갑옷들을 살폈다.
비늘갑옷(스케일 아머), 찰갑(러멜러 아머), 사슬갑옷(체인 아머), 판갑(플레이트 아머) 등이 망라되어 있어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것들은 골동품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현대의 기술로 예전의 갑옷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당연히 품질이 좋다.
현수는 모두 한 세트씩 구입하였다. 이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아공간에 담겼다.
그러다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현대인들에게 흔히 접하는 빵, 맥주, 커피, 아이스크림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답은 이것 모두 이슬람 문화권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