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
현수는 아랍 전통 식당에 들러 팔레펠2), 타블라3), 캅사4) 등으로 배를 채웠다. 맛이 있어 어떻게 만드는가를 물어보았다.
아르센에 가면 만들어볼 생각이다.
공항으로 되돌아가 라운지에서 대기했다가 곧장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날아갔다.
아디스아바바는 새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면적은 530.14㎢이다. 참고로 서울은 605.33㎢이다.
아무튼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국토 한가운데에 있다.
국토 면적이 112만 7,127㎢이니 대한민국 영토의 11.3배쯤 되는 넓은 나라이다.
그런데 국민소득은 1인당 300달러 정도일 뿐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3,749달러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0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75명은 질병과 가난으로 숨진다.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저체중아 비율은 34.6%에 달한다. 그리고 평균 수명은 겨우 56.6세이다.
한마디로 에티오피아는 빈곤 국가이다.
그런데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현대식 철골 구조물로 크고 깨끗하다. 안에만 있으면 서울에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여길 지경이다.
도착 비자를 받으려 신청했더니 마냥 기다리라고만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외교관 신분증으로 통과하려다 말았다.
몇 시간쯤 걸릴 것이라 생각하곤 느긋하게 기다리리라 마음먹었다. 빨리 나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항 내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안내 책자를 보니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400여 m에 이르는 고원에 위치하여 공기가 희박하다.
이 때문에 연료가 불완전 연소가 되어 공기 오염이 심하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도 서울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아마도 탁 트인 푸른 하늘 때문인 듯하다.
한참을 기다려 비자를 받았다. 세 시간 이상 기다린 듯하다.
총총히 나서서 공항 앞에서 택시를 타고 힐튼호텔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는 현수의 유창한 암하라어(Amharic language)에 놀라는 듯한 표정이다.
가는 동안 택시기사는 눈치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한다. 그러면 팁을 더 받을까 싶은 모양이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을 보았다.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곳도 있고, 염소와 양을 이끌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현대식 건물들도 보이지만 아닌 건물이 훨씬 많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1960년대 후반의 시골 풍경이다.
길가에 산에서 잘라온 나무를 지고 내려가는 여인이 보이고, 당나귀도 뭔가를 진 채 이동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가는 건 보이는데 남자는 하나도 없다.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인지라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궂은일은 도맡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장이지만 택시를 몰고 있으니 본받을 만한 남자라고 으쓱댄다.
어이없었지만 그렇다고 맞장구쳐 줬다.
한참을 가다가 기사가 묻는다.
“가장 오래된 인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야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아닙니까? 에티오피아에서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압니다.”
현수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뜬다.
“에티오피아에 오래 계셨습니까?”
아니라고 하면 바가지를 씌울 작정을 한 듯하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자주 왔습니다.”
“아, 그래요?”
택시기사는 현수가 아디스아바바의 상황을 알고 있다고 파악했는지 더 이상 귀찮게 묻지 않았다.
차는 한참을 달렸다. 목적지에 당도해서 요금을 주며 팁을 얹어주었더니 허리를 직각으로 굽힌다.
그러면서 또 이용해 달란다. 연락처도 모르는데 어찌 찾겠는가! 하여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힐튼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이춘만 이사가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아이고, 우리 김 전무! 하하! 반갑네.”
“네, 저도요. 건강하시죠?”
“그럼! 휴가를 받아 마누라와 애들 보고 나니 힘이 부쩍 나네. 자네도 건강하지?”
“그럼요. 사모님도 안녕하시죠?”
“그동안 번 돈 좀 주고 이사로 진급되었다고 하니까 격하게 좋아하더군. 덕분에 살이 좀 빠졌어. 조만간 셋째가 나올지도 몰라. 하하하!”
이춘만 이사가 너스레를 떤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기에 현수는 자신이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흐뭇해했다.
이춘만 이사는 휴가를 받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갔다. 모처럼 아내와 아들을 보러 간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부인인 조영숙 여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년 과장 시절엔 마중 나오는 일이 없었는데 차장이 되고 생활비도 넉넉하게 보내주었더니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차를 타고 아내와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당도한 이춘만 이사는 물 한 잔을 청해 마셨다.
그리곤 가방 속에서 회사로부터 받은 신임 이사 발령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다음엔 천지건설 킨샤사 건설본부 본부장 명함도 건네줬다.
“어머, 여보! 당신이 어떻게……. 세상에, 천지건설 이사라니! 킨샤사 건설본부 본부장?”
“아버지!”
아내와 아들 모두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조영숙 여사는 남편이 사교성이 낮은데다 마음과 다른 말을 잘 못하기에 만년 과장으로 끝나거나 명퇴당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여 한때 심각하게 이혼도 고려했다.
하지만 참아냈다. 이혼한다 하여 팔자를 고치는 것도 아니고, 아들의 미래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웠다. 하여 마트 계산원으로 알바를 해야 했다.
그러다 킨샤사 지사장이 되면서 조금 나아졌다. 한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팔아 남은 돈 거의 모두를 송금했기 때문이다.
차장이 된 이후부터 갑자기 보내오는 돈의 액수가 달라졌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전에 보내오던 액수 뒤에 0이 하나 더 붙은 돈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범죄행위로 이득을 본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덜컥 나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인터넷으로 천지약품을 검색해 보라는 이야길 한다.
웹서핑을 하여 천지건설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어보았다.
킨샤사에 개설된 독보적인 의약품 도매상이라는 표현에 눈을 크게 떴다. 주변머리 없는 남편이 벌인 일치고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다시 통화를 하고야 전모를 알게 되었다.
김현수 사원이라는 인물 덕에 차장으로 진급하고 약품 도매업까지 하게 된 이야길 들은 것이다.
생활비가 넉넉해졌기에 조영숙 여사는 요즘 아들 뒷바라지하는 것 이외에 본인의 적성 계발에 나섰다.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남는 시간엔 몸매를 가꾼다.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얼굴도 환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제비 같은 놈들이 꼬이던 차이다. 조영숙 여사의 단물을 빼먹으려는 놈들이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단호하게 내쳤다. 남편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당당한 아내와 엄마로 남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이사로 진급했으며, 킨샤사 본부장이 된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춘만 이사는 남자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들에게 새 차 한 대 사줬더니 그걸 몰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기에 부부만의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거기서 일주일을 보내고 이곳 아디스아바바로 날아왔다.
현수가 이야기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마땅치 않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이곳의 상황도 모르기 때문이다.
불어를 쓰던 곳에서 영어를 쓰는 곳으로 와서 그런지 대화도 잘 안 통하는 것 같아 답답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지사를 세우려면 알아볼 것은 알아봐야 하기에 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네가 말한 코리안 빌리지에 갔었네. 정말 열악하더군. 그런데 자네가 말한 리야 아스토우라는 아가씨는 없었네.”
“그랬어요? 참, 그 아가씬 커피 농장에서 일해요. 그러니 업무 시간엔 없겠죠.”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바샤 아스토우라는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이상한 말씀을 하시더군.”
“뭐라고요?”
“자네를 코리안 성자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 무슨 병을 고쳐 줬다고…….”
이 본부장은 현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코리안 빌리지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에서 온 의료봉사대원 중 하나인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달랑 혼자 와서는 신부전증에 걸린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를 병석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마을 사람들의 고질을 치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137명을 치료하고 떠났다.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콜레라 백신을 주민들에게 투여했다. 그리곤 224명이나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이때 에티오피아의 대통령 기르마 올데 리오르기스 대통령을 만나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경화 등을 치료해 냈다. 뿐만 아니라 쉐리엔 분말로 비만까지 잡아줬다.
대통령 치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에티오피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리고 김현수는 코리안 성자로 불렸다.
이춘만 본부장이 알기로 현수는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이다. 의대나 한의대는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다.
천지약품을 개설하기 전에는 제약사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떤 질병이든 치료해 내는 성자라 불리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제가 본부장님께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
“뭐지?”
“제가 자재과에 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가를 냈었다는 거 아시지요?”
“그래, 넉 달 조금 더 쉬었다고 했던가?”
“네. 그때 강원도에 있는 어떤 산에 기거했는데 거기서 고명한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고명한 스승님?”
“네. 정식 한의사는 아니지만 침술에 조예가 있고, 기 치료를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기 치료? 그럼 기공을 하는 무술인?”
“네. 택견 등 우리 고유 무술을 연마하시는 동안 절로 체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배웠다고? 의술을?”
“네.”
“겨우 넉 달 남짓 배웠는데 그 의술로 거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말이 안 되잖아. 안 그런가?”
“현대인들의 잣대로 보면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곳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거의 못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작은 치료 행위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니었기에 이 본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현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지사를 할 만한 장소는 찾으셨습니까?”
“아니. 자네와 함께 오래.”
“아, 그래요? 뭐, 그럼 그러죠.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일찍 가요.”
“그래. 일단 술이나 한잔하세.”
“좋죠.”
현수와 이춘만 본부장은 호텔 라운지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대화를 하는 동안 이춘만 본부장이 행복해하고 있으며 현실에 만족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게 자네 덕이네. 고마워.”
“고맙기는요. 본부장님이 처음에 저를 잘 이끌어주셨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요.”
“아니지. 그건 아니야.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자네 덕만 봤지. 평생 두고두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겠네.”
“네에, 그러세요. 근데 조금 취하신 것 같아요. 이만 룸으로 가죠?”
“그래.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려면 이 정도가 딱 적당하네. 가세. 룸으로.”
말할 땐 멀쩡한 것 같았는데 계산을 하고 오니 취기가 엄습했는지 이 본부장이 엎드려 있다.
“으이구! 그러게 좀 작작 드시지.”